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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산책

사랑의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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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산책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6
최근연재일 :
2023.09.14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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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04,667

작성
23.08.2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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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27화 교통사고

DUMMY

임미순 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수원의 작은 시장 한 귀퉁이에 김밥 집을 오픈한 첫 날, 자신의 가게는 버려두고 20인분이 넘는 김밥을 한의원으로 가져 왔던 임미순 씨.


그녀는 그 이후 오랜만에 연락해 온 것이다.


-가게는 잘 되시고요?-

-말도 마세요. 원장님. 처음 열흘간은 하루 매상이 만원, 이만 원 그랬어요. 야아, 이러다 우리 내외 길바닥에 나 앉겠구나싶어 아찔하던걸요. 하지만 죽자 사자 열심히 했더니 매상이 많이 올라왔어요. 이대로라면 우리 내외 입에 풀칠은 하고 살 것 같아요.-

-다행이네요. 임미순 씨 음식 솜씨가 보통이 아니잖아요? 처음엔 고생 좀 하시더라도 금방 잘 될 줄 알았습니다. 그나저나 김재철 씨 건강은 어떠세요?-

-원장님 덕분에 지렁이가 용 됐죠, 뭐. 요즘은 식당 안에서 서빙도 하고, 청소도 하고, 간혹 설거지도 도와주고 그래요. 자기 밥값은 해요.-

-그러면 됐죠, 뭐.-

-그럼요, 저는 이제 아무 것도 더 바라지 않습니다. 원장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쭈욱 살면 좋겠어요.-

-바라시는 대로 되실 겁니다.-

-내 정신 좀 봐. 바쁘신 분을 붙들고 내가 수다를 떨고 있었네.-

-하나도 안 바쁘니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다른 게 아니라, 정은실이라고, 제가 잘 아는 성님이 오늘 한의원으로 가실 거예요. 며칠 전에 예약했으니 잘 봐주십사해서 전화 드렸습니다. 원장님.-

-정은실 씨요?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성님 치료비는 제가 원장님 통장으로 한 번에 보내 드릴 테니 받지 마시고요.-

-예. 알겠습니다.-


#


정은실 72세. 여.


그런데 차트의 주소란이 비어 있었다.


정은실 씨는 목발을 짚고 진료실에 들어오셨다.


‘72세? 맞나?’


미안한 말이지만 여든도 넘어보었다.


“어서 오세요. 임미순 씨 아시죠?”

“그럼요. 알고말고요. 제 친동생이나 다름없는 동생입니다.”

“임미순 씨가 조금 전에 전화하셨더라고요. 잘 봐달라고 하시면서요.”

“예. 동생이 원장님 같은 명의가 없다고 얼마나 자랑하는지! 사실은 제가 여기 올 형편이 안 되는데 한 번 와 봤어요.”

“형편이요? 그건 무슨 말씀이세요?”

“저, 거지나 다름없거든요.”

“예?”


그는 내심 놀랐다.


거지도 누가 거지라고 하면 싫어하는 법이다.


그런데 스스로 거지나 다름없다고 하니,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정은실 님 치료비는 임미순 님이 대신 내시기로 하셨습니다. 치료비는 염려하지 마시고······. 어디 불편하신가요?”

“석 달 전에 교통사고를 당했거든요. 책임보험만 가입되어있는 차에 치었어요.”

“저런! 책임보험에만 가입되어있으면 있으면 보상을 얼마 못 받는데요?”

“예. 그렇더라고요. 가해자가 합의를 보자고해서 봤죠. 당장 치료비도 없고, 먹고 살 돈도 없어서요.”

“다해서 얼마나요?”

“보험금까지 합해서 삼 백만 원 조금 넘게요.”

“합의금을 그것 밖에 못 받았다고요? 사람이 이 지경이 됐는데요?”

“가해자도 크게 넉넉한 사람은 아닌 거 같고, 길게 실랑이하는 것도 피곤해서요.”

“그 정도로는 치료비도 안 될 텐데요?”

“안 되고말고요. 그래서 치료도 받다가 그만 뒀더니 몸이 이 지경이 됐어요.”

“하아! 참. 정말 딱 하시네요. 그래서 지금은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안 아픈데 가 없어요, 원장님. 뒷목, 어깨, 등, 허리, 무릎, 다리. 요 주둥아리 말고는 다 아파요.”

“병원에서는 몇 주 진단 받으셨나요?”

“2주 진단 받았어요.”


‘이렇게 몸이 엉망이 됐는데도 2주 밖에 안 나왔다니? 이게 말이 돼?’, 라는 생각이 들 법하지만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우리 몸은 30대 중후반부터 조금씩 퇴행이 진행된다.


그러니 70대인 정은실 씨의 경우, 교통사고와 무관하게 여러 가지 병이 있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런데 이런 기저질환과 교통사고에 의한 질환을 명확하게 구별하는 게 쉽지 않다.


정밀 검사를 해도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리고 전치 3주 이상의 진단서를 발급할 경우 경찰에서 전화가 오기도 하기 때문에, 의사 입장에서는 피곤하다.


“그런데 주소지가 빠져있네요. 우리 선생님들이 깜빡 했나봅니다.”

“제가 사는 곳이 일정치가 않아요. 몇 달 전까지는 주택에서 월세 방 얻어 살았는데, 교통사고 당하는 바람에 다 까먹고, 그 다음 부터는 찜질방에서 지냈는데 그 찜찔방도 곧 문 닫는대요.”

“그러면 어떡해요?”

“에휴! 죽기밖에 더 하겠어요.”

“아이고. 무슨 말씀을요. 요즘 일흔 둘이면 한참이신데요.”

“무슨 놈의 팔자가 이렇게 더러운지? 교통사고 났을 때 콱 죽었으면 얼마나 좋아요?”

“그런 말씀은 아예 하지 마세요. 그런 생각도 하지 마시고요.”

“안 된다는 거 알지만, 살기가 너무 힘들어서요.”

“정은실 님. 제가 최선을 다해 치료해 드릴 테니 꾸준히 치료 받으러 오셔야합니다. 아셨죠?”


그러나 정은실 씨는 시원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환자보다 더 정성들여 치료했다.


그러나 다시는 안 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고령인데다가 체력을 감안해서 이틀 뒤를 예약날짜로 잡았는데, 그 날 정은실 씨는 한의원에 왔다.


그리고 보약도 한 제 달여 놓았다.


치료를 받아내기 어려울 만큼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당사자에게 약 값을 받을 수는 없고, 임미순 씨에게도 말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어쩌겠어! 공짜로 지어드리는 거지, 뭐.’


그런데 정은실 씨는 이틀 전보다 안색이 더 창백했다.


‘내 치료에 문제가 있었나? 그럴 리가 없는데?’


그는 정은실 씨를 침구실의 침대에 눕힌 다음 진맥 했다.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는 이번에는 정은실 씨의 배를 만져보았다.


“어르신. 식사 언제 하셨어요?”

“밥이요? 요즘 입맛이 없어서······.”

“솔직히 말씀해주세요. 식사 언제 하셨나요?”

“원장님. 사실은 이틀 동안 아무것도 못 먹었어요.”


그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왜요? 돈이 없어서요?”


정은실 씨는 눈물만 주르륵 흘렸다.


“하아.”


그의 입에서 절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저기, 지금 이틀 동안 아무것도 못 드신 상태에서는 침을 맞으실 수 없으세요. 효과는커녕 오히려 탈이 날 수 있거든요.”

“그러면 어떡해요? 그냥 돌아가요? 여기까지 큰 맘 먹고 힘들게 왔는데요?”


정은실 씨는 애원하듯 말했다.


“20분 후면 점심시간이니까 저하고 같이 점심 드시러 가세요. 여기 잠깐 누워서 쉬고 계세요.”

“아이고, 제가 여기 누워있으면 다른 분들이 못 쓰잖아요?”

“오전 진료가 끝나갈 때가 다 돼서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차 선생이 정은실 씨를 침구실의 빈 침대로 안내했다.


#


두 사람은 일층 백반 집에서 마주 앉았다.


이틀 동안 굶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닌 것 같았다.


정은실 씨는 처음엔 쭈뼛거렸다.


그는 일부러 먼저 먹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르신도 그를 따라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내 무서운 속도로 밥 한 그릇을 다 비웠다.


그는 얼마든지 밥을 더 시켜줄 수 있었지만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


적지 않는 연세인데 과식하면 탈나기 쉽기 때문이다.


“남편 분은 뭐하시나요?”

“세상 떠났어요? 코로나 걸린 지 닷새만에요.”

“그렇군요?”

“제 기구한 이야기 한 번 들어보실라우? 원장님?”

“예. 말씀하세요.”

“돌아가신 우리 양반이 빵쟁이라우. 빵만 50년 가까이 만든 양반이우.”

“그렇습니까?”

“그런데 원장님도 아시겠지만 동네 빵집이 사라진지 오래됐잖아요?”

“그러게요, 빵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은데 유명 브랜드 베이커리만 보이고 작은 동네 빵집은 거의 안 보이더라고요.”

“그게 다 큰 회사에서 골목상권까지 다 집어삼켜서 그런 거거든요.”

“맞습니다.”

“우리도 대로변에서 빵집을 오래 하다가 도저히 못 버티고, 몇 년 전에 시장으로 들어와 다시 차렸죠. 규모를 반 이상 줄여서요. 돈 벌 생각보다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 하니까요. 어쩌겠어요? 할 줄 아는 게 빵 만드는 것 밖에 없는데요.”

“전업 한다는 게 쉽지는 않죠. 그래서요?”

“차린 지 몇 달 만에 코로나가 터지니까 손님들 발길이 뚝 끊어지더라고요. 이제나 끝날까 저제나 끝날까? 아무리 기다려도 끝나기는커녕 점점 더 심해지고, 그러다가 도저히 못 버티고 빵집 문을 닫았죠. 한 달에 백만 원 벌어도 먹고 살기 힘든데, 백만 원 이상 손해가 나니 어떻게 버티겠어요? 그런데 나중에 정부에서 코로나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들한테 손실보전을 해주겠다는 발표를 했는데, 그 기준 날짜가 21년 12월 31일 이었는데, 우리가 한 달 전에 문을 닫았거든요.”

“저런! 그러면 손실 보전금을 못 받으신 거예요?”

“못 받았죠. 한 푼도요.”

“그래서요?”

“빵집은 문 닫았지, 나이가 많아서 새로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고, 그래서 공공근로를 했죠. 먹고 놀 팔자는 못되니까요. 그러다가 얼마 전 남편이 코로나에 걸려 돌아 가셨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 양반 세상 떠나기 한 달 전부터 정부에서 코로나 장례비 지급을 중단하더라고요.”

“아아? 그러면 손실보전금도 못 받고, 장례비도 못 받은 거네요?”

“정부에서도 언제까지 지급할 수 없으니 이해는 하지만, 하필 그 양반 세상 떠나기 한 달 전에 중단하니 막막했죠.”

“정말 안타깝네요.”

“그 뿐만 아니에요. 원장님. 남편이 세상을 떠났으니 다시 빵집을 할 수도 없고, 그래서 뭐라도 해야 먹고 살겠기에 여기 저기 알아보니까 서울 변두리에 있는 건물 청소하는 아줌마를 구한다기에 그 일을 하게 됐어요. 그것도 나이가 많아서 안 된다는 걸 사정사정해서 시작했는데, 새벽에 나가다가 차에 치여 몸이 이 지경이 돼서 이젠 그것도 못하게 됐어요.”


그는 마음이 너무 아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원장님. 제 팔자는 왜 이래요? 저 열심히 살았거든요. 배운 거 없고 가진 거 없는 년이 죽어라 일 안하면 어떻게 먹고 살아요? 그렇게 열심히 일하면서 살았는데 이게 뭐예요? 나 거지 됐어요. 거지 됐다고요. 손이 갈퀴가 되도록 열심히 일했는데도 거지가 됐다고요.”


정은실 씨는 설움이 북받쳐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식당 손님들이 다 쳐다봤지만 한 번 터진 울음은 쉽게 멈출 줄 몰랐다.


“정은실 씨. 어디 가지 마시고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세요.”


그는 식당을 나가 근처의 ATM기에서 현금으로 백만 원을 찾아 식당으로 다시 왔다.


그는 돈 봉투를 정은실 씨앞에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원장님?”

“이 골목으로 조금 올라가면 모텔이 하나 있어요. 임미순 씨 내외분이 한동안 머물던 곳인데, 당분간 거기서 지내시면서 치료 받으세요.”

“원장님이 왜 이런 큰돈을 저한테?”

“당장 오늘 밤에 주무실 때도 없잖아요? 이틀 동안 아무것도 못 드셨다면서요? 그러시면 큰일 나세요.”

“제가 괜한 주책을 부렸네요.”

“빨리 집어넣으세요.”


그러고도 한참을 망설이던 정은실 씨는 돈 봉투를 챙겨 넣었다.


"감사합니다, 원장님. 이 은혜를 어떻게 다 갚아요?”

“건강하게 잘 사시면 그게 은혜 갚는 겁니다. 자, 점심시간이 다 끝나가네요. 올라가셔서 침 맞으셔야죠.”


#


그는 점심식사를 하고 정은실 씨와 함께 한의원으로 돌아왔다.


대기실에는 환자들로 붐볐다.


앉을 자리도 부족해서 몇 분은 서 계셨다.


서 있는 환자 분들 중에는 건물주 황종우 씨도 있었다.


그는 지난 번 건물주라는 우월적 지위를 활용해 치료비를 내지 않고 그냥 갔었다.


그러나 그가 기어코 치료비를 받아내자 삐져서 한동안 안 오다가 어제부터 다시 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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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141화 서울에 온 리주하 +1 23.09.05 844 23 12쪽
140 140화 침마취 +1 23.09.04 837 23 12쪽
139 139화 계획 변경 +1 23.09.03 901 26 12쪽
138 138화 우리 화장품 윤지현씨 얼굴에 좀 바릅시다 +1 23.09.02 890 25 12쪽
137 137화 리진 회장의 딸 리주하 +1 23.09.01 927 23 12쪽
136 136화 중국으로 가다 +2 23.08.31 914 23 12쪽
135 135화 재기 +1 23.08.30 948 23 12쪽
134 134화 돈 갖고 튀었다 +1 23.08.29 924 22 12쪽
133 133화 야구선수 양재원 +1 23.08.28 937 21 12쪽
132 132화 소매치기 야구선수 +1 23.08.27 944 25 12쪽
131 131화 베풀면서 돈 잘 버는 허준영 +1 23.08.26 963 25 12쪽
130 130화 악몽 +1 23.08.25 966 23 12쪽
129 129화 퇴원하자마자 또 입원 +2 23.08.24 997 24 12쪽
128 128화 위장이혼 +1 23.08.23 992 24 12쪽
» 127화 교통사고 +1 23.08.22 1,005 23 12쪽
126 126화 엿이나 먹어라 +1 23.08.21 1,027 24 12쪽
125 125화 광고모델 허준영 +1 23.08.20 1,052 22 12쪽
124 124화 장사꾼 +1 23.08.19 1,040 24 12쪽
123 123화 리진 회장 +3 23.08.18 1,048 2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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