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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악물고 출세한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조상우
작품등록일 :
2018.07.20 15:47
최근연재일 :
2019.03.30 06:00
연재수 :
231 회
조회수 :
240,453
추천수 :
3,465
글자수 :
1,683,635

작성
18.08.01 12:00
조회
3,181
추천
39
글자
11쪽

5화-불경기(3)

제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DUMMY

5화-불경기(3)




라노르는 그날 하루, 의원 문을 닫아걸었다. 가엾은 지크를 도와주기 전에 알아보아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그는 불편한 다리로 열심히 지팡이를 짚으며 걸었다. 돈을 아끼려고 한참을 걷다 보니 골반과 허리가 쑤셨다. 라노르는 한 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다른 손으로 허리를 치며 페라보라 성으로 갔다.


성에 도착하자 경비병들이 문을 열어 주었다. 라노르가 성문 앞 야트막한 벤치에 주저앉아 땀을 닦았다. 그에게 치료를 받았던 경비병 중 하나가 그에게 물을 한 잔 주었다. 라노르가 물었다.


“범죄자 기록은 여기 다 있소?”


“네. 누구 보신 거예요?”


“확실하지가 않소. 다른 마을 것도 다 있지요?”


“한 달에 한 번씩은 왕성에서 다 뿌려 주죠. 발견하면 상대하지 마시고 바로 여기로 오세요. 위험해요.”


“걱정 마시오.”


라노르가 에구구, 소리를 내며 일어섰다. 경비병이 그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라노르가 성벽에 붙은 현상수배범의 얼굴을 꼼꼼히 살폈다. 지크의 얼굴은 없었다. 다행이다. 흉악범은 아닌가 보다.


그럼 탈영병일까?


라노르가 성 안으로 들어가서 사무원들과 인사를 하며 여기 저기를 돌아다녔다. 자주 감기에 걸리는 사무원을 발견하자, 그녀를 붙잡고 탈영병 목록, 특히 소년병 쪽이 있으면 보여 달라고 부탁했다. 사무원이 난색을 표했다.


“이유를 말씀해 주셔야 해요.”


“우리 집에 웬 소년이 찾아왔는데 많이 다쳤어. 그 애가 혹시 탈영병인가 해서 그런 거야. 무기를 가지고 있어 함부로 쫓아내거나 할 수도 없어요. 조용히 목록만 보여주오. 응?”


“그런 일이면 정식으로 절차를 밟으셔야죠.”


“그럼 오래 걸리는 거 알지 않소. 내가 총 맞아 죽는 꼴 보고 싶소?”


사무원이 잠시 고민했다. 그녀가 라노르를 벤치에 남겨두고 한참을 안 오다가, 서류철 하나를 툭 던져주고 가 버렸다. 라노르가 서류철을 꼼꼼히 살폈다. 그가 가벼운 얼굴로 서류철을 덮었다. 탈영병은 아니었다.


그럼 빚을 진 걸까? 악랄한 사채업자들한테서 도망치고 있는 중일까?


라노르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무원에게 서류철을 던져주었다. 집에 가서 세루크와 앙리한테 한 번 물어보고, 정말 사채업자들에게 쫓기고 있다면 친한 군사들에게 부탁해서 한 번 혼을 내 줄 작정이었다. 못된 마굿간 친구한테도 한 번 찾아가 달라고 하고. 그러면 만사 해결이었다.


하지만 마음에 딱 하나 걸리는 것이 있었다. 며칠 전, 마굿간 친구가 했던 말이 있었다.


“지크는 3급이라고.”


“뭐가 3급이야?”


“하여튼 3급이야. 그 놈, 조심해. 분명히 범죄자야.”


라노르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렇게 어린아이 돈이나 떼먹는 주제에, 말도 안 되는 말을 지어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말이 불안의 씨앗이 되어 그의 마음에 뿌리내렸다. 도대체 뭐가 3급이라는 것일까? 이 세상에 1급 2급 3급으로 등급이 매겨지는 것들이 뭐가 있을까?


라노르는 지크가 하루에 한 시간씩 검술을 연습하는 것을 떠올렸다. 분명 그는 군대 생활 경험이 있다. 탈영병이 아니라면 군대에서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인가?


라노르가 다시 성으로 돌아갔다. 그가 아까 말을 걸었던 사무원을 붙잡고 군사재판 목록을 좀 보여 달라고 청했다. 사무원이 딱 잘라 거절했다. 라노르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성문으로 돌아왔다.


“이보시오.”


라노르가 아까 물을 주었던 경비병의 손을 붙잡았다. 라노르의 손이 땀에 젖어 있었다.


“왜 그러세요? 어디 아프세요?”


“저기, 군사재판 기록을 좀 보여 주시오. 우리 친척이 회부된 것 같소. 제발 좀. 부탁하오.”


라노르가 고개를 숙였다.


“부탁하오. 여기 근처에 사령부가 있지 않소? 군사재판 기록을 좀 열람하게 도와주시오.”


병사가 인상을 썼다.


“제 마음대로 볼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경비대장님께 허락을 받아야 해요, 그런 건.”


“대장이 누구지? 지난번에 몸살약 타갔던 사람 맞소?”


“맞아요.”


“지금 어디 있소? 같이 갑시다. 빨리.”


라노르가 병사에게 동화 몇 닢을 쥐어주었다.




병사는 라노르를 데리고 성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사령부로 갔다. 사령부는 흰색의 소박한 2층 건물이었다. 페인트가 발린 벽돌 건물 안에서 장교들이 분주하게 오갔다.


병사가 라노르를 대장에게 보여주었다. 라노르를 알아본 경비대장이 반색했다. 라노르는 페라보라 마을 사람들 모두가 좋아하는 인심 좋은 의사 선생님이었다.


“아니 선생님. 왕진 오셨어요? 우리 식구 중에 누가 아팠나?”


라노르가 우는 소리를 했다. “아이고! 대장님.”


그가 대장의 손을 붙잡고 오래 전에 전장에서 죽은 자기 친척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군사재판에 자기 친척을 죽인 놈이 올라왔는지 보고 싶다고 거짓말을 했다. 재판에 가서 원수놈의 얼굴을 꼭 보고 싶다고 통사정을 했다.


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피해자 명단을 찾아보죠. 친척분의 이름이 뭐죠?”


“내가 직접 찾아보면 안 되오?”


“그렇게는 안 됩니다. 제가 찾아볼게요.”


라노르가 잠시 고민했다.


“지크 쿠아디스요.”


대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같이 가시죠. 서류 창고서 바로 보시게요.”


“고맙소!”


라노르가 지팡이를 짚으며 대장과 함께 어두운 지하 창고로 내려갔다. 대장이 서류철을 뒤적였다.


“지크 쿠아디스... 없네요.”


“없소?”


“피의자밖에 없어요.”


“피의자?”


“네. 얜 소년병이에요. 선생님의 친척분 사건은 아직 없는 것 같네요. 군사재판 목록은 각 사령부에 다 발송이 되거든요. 사령부에서 장군님이 즉결 재판을 할 때 필요해서.”


“그거라도 좀 보여주시오.”


“그 사람 아니라니까요. 한 번 보시든가요.”


대장이 서류철을 넘겨주었다. 첫 장을 라노르가 인상을 썼다. 지크와 세루크, 앙리의 얼굴이 있었다.


라노르가 서류를 꼼꼼히 읽었다. 큰형인 지크는 중군 사령관급 장군 중 하나인 아케메네스 장군의 목숨을 구한 공훈으로 3급 무공 훈장을 받았지만, 어린 동생들이 보급로를 닦는 노역장에 끌려가자 동생들을 데리고 도망을 쳤다.


지크는 군사재판의 피의자 신분이었다. 지크는 군사재판에 회부되는 군인들만 추격하는 특수부대의 추격을 받고 있었다. 지크에게 직접 무공훈장을 추천했던 아케메네스 장군은 크게 노하여 별도로 군사를 풀어 지크를 찾고 있는 실정이었다.


라노르가 떨리는 손으로 서류철을 덮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괜찮소.”


라노르가 지팡이 끝으로 바닥을 탁탁 쳤다.


“망할 놈의 돌벽 때문에 허리가 아파 죽겠구만. 귀찮게 해서 미안하오. 어서 돌아갑시다.”




성을 나온 라노르는 얼굴이 벌갰다. 그는 그를 수상쩍은 눈으로 보는 경비대원에게 인사도 하지 않았다. 성에서 가장 가까운 곳의 주점에 앉은 그는 어울리지 않게 맥주 한 잔을 시켰다.


“아니 선생님!”


웨이트리스가 하하 웃었다.


“웬일이세요? 대낮부터 술을!”


“당장 가지고 오지 뭘 해!”


라노르가 지팡이로 바닥을 탕탕 쳤다. 마을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선생님! 또 돈 떼먹히셨어요?”


“그러니까 선불로 하시라니까요!”


“당장 술이나 가져와!”


라노르가 화를 냈다. 웨이트리스가 당황하며 얼른 술을 갖다주고 자리를 피했다. 라노르가 그 자리에서 맥주를 벌컥벌컥 다 마셔 버렸다. 그의 얼굴이 벌개졌다.


라노르가 푸들거리는 손으로 동전 몇 개를 탁자에 집어던졌다. 그의 사나운 태도에 마을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아니 선생님.”


“말 걸지 마!”


라노르가 지팡이를 콱 하고 짚으며 일어섰다. 지팡이가 손에서 헛돌았다. 라노르가 테이블을 짚고 일어나다 말고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마을 사람들이 라노르를 부축했다.


“선생님, 무슨 일 있으세요?”


“개 같은 세상이야!”


라노르가 쌍욕을 했다.


“씨X 놈의 세상이야!”


라노르가 사람들을 헤치며 주점을 나갔다. 사람들이 그를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봤다. 라노르가 푸들거리는 손으로 지팡이를 짚으며 걷고 또 걸었다.


한 한시간 쯤 걸으니 술기운이 가셨다. 라노르가 안경을 추켜올렸다. 저 멀리 마굿간 간판이 보인다. 라노르를 발견한 지크가 깜짝 놀랐다.


“선생님!”


말똥과 여물로 더러워진 지크의 꼴을 보자 라노르의 눈이 젖었다. 지크가 라노르에게 달려가려다가 자기 꼴을 내려다보고는 멈춰 섰다.


“들어오지 마세요. 더러워요.”


지크가 손을 저었다.


“오지 마세요.”


라노르가 지팡이를 휘둘러 대며 외쳤다.


“그 놈 어디 있어!”


“누구야?”


라노르가 휙 돌아보았다. 마굿간 맞은 편에 있는 대여점에서 깨끗한 티셔츠를 입은 마굿간 주인이 마굿간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라노르가 달려들었다.


“야!”


라노르가 소리를 쳤다.


“야, 첼시! 이 개새끼야!”


그제서야 지크는 마굿간 주인의 이름을 알았다. 첼시가 인상을 콱 구겼다.


“뭐야? 술주정하러 왔어?”


라노르가 첼시의 멱살을 잡았다.


“당장 얘 돈 줘. 개새끼야!”


“왜 이래 갑자기!”


첼시가 라노르의 손을 뿌리쳤다.


“미쳤어!”


“돈 안 주면, 너 내가 가만 안 둘 거야!”


라노르가 안경을 고쳐 쓰며 아이처럼 소리를 질러 댔다.


“얘가 지금까지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 줄 알아! 그런 애 돈을 떼먹어? 야! 당장 돈 줘!”


“힘들긴 뭐가 힘들어!”


첼시가 질세라 소리를 쳤다.


“3급 무공훈장이면 연금도 엄청 받았을 건데! 여기만 벗어나면 잘 먹고 잘 살 건데!”


그 말을 들은 지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라노르와 첼시가 지크를 본 척도 않고 싸우기 시작했다.


“이 개새끼야!”


라노르가 첼시의 얼굴을 쳤다. 둘이 더러운 마굿간을 뒹굴어 댔다. 첼시가 라노르를 타고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크! 이 새끼, 이 새끼 어디 갔어!”


첼시가 이를 악물고 마굿간을 튀어나갔다. 그의 몸이 말똥으로 엉망이었다. 첼시가 방방 뛰었다.


“지크! 당장 돌아와! 이 새끼, 감옥 가기 싫으면 당장 와!”


라노르가 첼시에게 기어갔다. 그가 첼시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첼시가 바닥을 데구르르 굴렀다.


“너 걔 고발하면 가만 안 둬!”


라노르가 첼시를 주먹으로 마구 쳤다.


“가만 안 둘 거라고!”


첼시가 라노르를 비웃었다.


“웃기네! 이왕 이렇게 된 거, 내가 현상금 좀 받아야겠어! 너한테도 좀 나눠줄 테니까 넌 가만 있어!”


“개새끼야!”


라노르가 힘없는 주먹으로 다시 첼시를 쳤다. 하지만 마굿간 주인인 첼시한테 힘으로 상대가 못 됐다. 첼시가 라노르를 마구 때렸다. 라노르가 여물 위를 나뒹굴었다.


“여기서 김 좀 식히고 있어라!”


첼시가 숨을 몰아쉬며 외쳤다.


“나는 현상금이나 타먹으러 갈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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