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다크엘프의 숲(1)
제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1.3. 다크엘프의 숲(1)
지크는 두 동생들이 말에서 떨어질까 봐 밧줄을 허리에 감았다. 동생들이 허리가 아프다며 칭얼댔지만 받아 줄 시간이 없었다. 이아이누 태수의 추격병들이 오고 있었으니까.
그깟 평민 어린애 세 명 도망간 걸 가지고 뭘 그렇게 징글징글하게 구는지, 이아이누의 추격병들은 일주일을 포기하지 않고 짓쳐들고 있었다. 내가 어지간히도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하고 지크는 혼자 쓴웃음을 지었다.
“여기서 잠깐 쉬자.”
말이 상태가 안 좋다. 아무래도 그만 가야할 것 같다. 지크가 아이들을 말에서 내려 주었다. 말이 푸르르 떨며 자리에 주저앉는다. 오늘은 여기서 자야 할 것 같다.
“얘들아. 오늘은 여기서 자야겠다. 말이 못 움직일 것 같은데.”
“여기서? 엄청 축축해.”
앙리가 옷깃을 여미며 말했다.
“어떻게 자?”
지크가 군대에서 받은 침낭을 아이들에게 주었다.
“너희가 여기 안에서 자. 난 밖에서 잘게.”
“이렇게 축축한데 그냥 잔다고?”
세루크가 인상을 썼다.
“집을 찾아보자. 거기서 하룻밤만 재워 달라고 하자.”
“말이 힘들어서 못 가.”
“내가 갔다 올게.”
“안 돼!”
지크가 강경하게 말했다.
“난 괜찮아. 어서 들어가 자!”
“그럼 형이 갔다 와. 우린 여기 꼼짝 말고 있을 테니까.”
지크가 고민했다. 두 애들과 말만 여기 놓고 자리를 벗어나긴 맘이 편치 않았다.
“그럼 너희가 자면 갔다 올게. 깨 있으면 보나 마나 여기 저기 돌아다닐 거잖아.”
“형을 놔두고 어떻게 자?”
“안 자면 안 갈 거야.”
세루크가 앙리의 손을 잡았다.
“알았어. 일단 들어가자.”
앙리와 세루크는 침낭에서 몸을 포갰다. 아이들은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지크가 동생들의 새근새근한 숨소리를 들으며 잠시 졸았다. 엉덩이가 축축해서 오래 못 잤다.
안 되겠다. 집을 찾아봐야지.
지크가 말과 아이들을 남겨두고 나무에 표시를 하며 나아갔다. 발걸음이 들릴까 봐 발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나아갔다. 웃기는 일이다. 불이라곤 라이터불과 달빛 뿐인데 누가 본다고.
한참을 가다 보니 불빛이 보였다. 지크가 주의 깊게 집을 살폈다. 초로의 남자와 여자아이 하나가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남자는 인상이 별로 좋진 않았다.
지크가 조용히 물러나 침낭으로 돌아갔다. 세루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형을 기다리고 있었다.
“찾았어?”
“왜 안 잤어.”
“안 올까 봐.”
지크가 웃으며 세루크의 볼을 꼬집었다. 세루크가 아야! 소리를 쳤다. 앙리가 깼다.
“뭐야? 왜 소리 지르고 지랄인데.”
세루크가 앙리의 몸을 허벅지로 조였다. “이 새끼가!”
“싸우지 마!”
세루크가 금방 다리를 풀었다. 앙리가 짜증을 내며 다시 잠을 잤다. 세루크가 앙리의 등을 토닥이다가 말했다.
“형. 집은 찾았냐구.”
“응.”
“그럼 그리 가야 되는 거 아냐?”
“생각 좀 해 보고.”
“무슨 생각? 여기 잘 데 없잖아. 재워 달라고 하자. 내가 얘기해 볼게. 난 애니까 들어주지 않을까?”
“여긴 다크엘프의 숲이야. 앙리만 두고 갈 순 없어. 적어도 네가 있으면 말은 탈 수 있잖아.”
“형 바보야? 세상에 다크엘프가 어딨어?”
“이게! 하여튼 짐승들이 많단 얘기야.”
“그럼 빨리 갔다 와. 밤이 더 깊어지면 말도 못 꺼낼 거 아냐.”
지크가 잠시 고민했다. 동생들을 한번 더 두고 가기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안 되겠다. 얘들아. 같이 가자. 그게 낫겠다.”
“그래! 앙리. 일어나!”
“우웅...”
앙리가 잔뜩 인상을 찡그렸다. “왜 그래.”
“들어가서 자자.”
“어디? 어디?”
“형이 집을 찾았대!”
앙리가 손뼉을 쳤다. 지크는 어떻게 해서든지 오늘 밤, 아까 발견한 그 집에서 자야지 하고 결심했다.
“저기요.”
지크가 불꺼진 오두막 문을 두드렸다.
“저기요. 저기요.”
오두막 안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저기요오.”
앙리가 앳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도와주세요오.”
그제서야 오두막 안에 불이 켜졌다. 철컥 하고 문이 열렸다.
“뭐야? 누구냐?”
손에 가득 피를 묻힌 초로의 남자가 지크를 흘겨보았다. 지크가 손의 피를 보고 식겁했다. 그가 말을 잃었다.
“누, 누구...”
“내가 먼저 물었잖아. 너희 누구냐?”
“하룻밤만 재워주세요!”
손의 피를 못 본 세루크와 앙리가 외쳤다.
“부탁드려요. 아저씨. 하룻밤만 재워 주시면 안 돼요? 너무 추워요. 잘 데가 없어요.”
“아저씨. 하룻밤만요 네?”
집주인이 세루크와 앙리의 얼굴을 살피더니 지크에게 말했다.
“뭐 하는 놈들이야? 산속에서 한밤중에.”
“엄마한테 가고 있는데 한 밤중에 길을 잃었어요. 한 번만 도와 주세요.”
지크가 간절하게 말했다.
“네? 방값은 드릴게요.”
“얼마?”
“얼마 드려야 하는데요?”
세루크가 손을 꼬물거렸다. 돈이 없을까 봐 걱정하는 눈치였다. 앙리가 말했다.
“쪼금만 드리면 안 돼요?”
아저씨가 피식 웃었다. 그가 지크에게 말했다.
“칼은 이리 내놔. 말도 있어?”
“네.”
“말을 가져와. 애들은 들어오게 하고.”
지크가 잠시 생각했다.
“애들 데리고 말 가져와서 칼 드릴게요.”
아저씨가 하하 웃었다. “그럼 그렇게 하든가.”
지크와 두 동생은 모처럼 편안하게 잠을 잤다. 집주인이 손에 피를 묻혔던 건 그 아저씨가 사냥꾼이어서 그런 거였고, 결코 집에 같이 있던 여자애를 살해했다던가 하는 끔찍한 일은 없었다. 지크는 혼자 가슴을 쓸어내렸다.
여자애는 사냥꾼의 딸이었다. 여자애가 구워주는 빵은 별 재료가 안 들었는데도 맛있었다. 지크는 아크 아줌마가 생각나서 콧망울이 시큰거렸다.
아침을 다 먹고 나자, 지크는 사냥꾼에게 청했다.
“아저씨, 제가 뭐 도와드릴 일 없을까요?”
사냥꾼이 배를 두드리며 씩 웃었다.
“안 그래도 부려먹을 참이다!”
사냥꾼이 자루를 주었다. “어제는 너무 졸려서 인사도 안 하고 잤다. 이름이 뭐냐?”
“전 지크예요. 여기 얘는 세루크, 막내는 앙리예요.”
“나는 율리우스다. 내 딸 이름은 안나야. 열 네 살이지. 너도 그 쯤 되지?”
“동갑이에요.”
“그래. 말이 엄청 지쳐서 3일은 쉬어야겠더라. 3일 간 뒤뜰에다가 땔감을 쌓아 놔라. 가득 쌓아 놔야 해! 근데 군복 입은 거 보니까 탈영병이냐? 이 칼은 훔친 거냐?”
“탈영병 아니에요. 그 칼은 아케메네스 장군이 주신 거예요. 전 3급 무공 훈장을 받았어요.”
“3급 훈장이나 받았어? 근데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한밤중에 이렇게 산을 넘어다녀? 도망다니는 게 아니고?”
“사정이 있어요.”
“흠.”
율리우스가 수염이 더부룩한 턱을 쓰다듬었다.
“뭐 내가 알 바 아니지. 난 땔감만 있으면 돼. 막내애는 너무 어리니까 집에 있으라고 하고, 둘째는 내 딸을 도와라. 쟤 바느질 할 줄 아냐? 새끼줄도 꼴 줄 알지?”
세루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 잘 해요.”
“잘 됐다. 창고에 옷들이 좀 있어. 찢어져서 못 입는 건데, 그거 다 기워 놔라. 새끼줄도 만들어 놓고!”
율리우스가 책상을 짚으며 일어섰다.
“칼은 네가 돌아가는 날 돌려주마. 돌려받고 싶으면 열심히 일해!”
지크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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