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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서재입니다.

이악물고 출세한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조상우
작품등록일 :
2018.07.20 15:47
최근연재일 :
2019.03.30 06:00
연재수 :
231 회
조회수 :
240,464
추천수 :
3,465
글자수 :
1,683,635

작성
18.07.21 13:00
조회
8,393
추천
97
글자
10쪽

1화-재로 빚은 추억(2)

제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DUMMY

1.1. 재로 빚은 추억(2)



“저 쪽! 저기 바위 쪽으로!”


등 뒤에서 장교가 고함을 쳤다.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빨리 가라니까!”


소년병 중 하나가 울음을 터뜨렸다.


“거긴...”


“당장 가지 못해!”


장교가 칼을 뽑아들었다.


“항명자는 사형이다!”


지크가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가 울음을 터뜨린 동료의 등을 두드렸다.


“가자. 가자.”


“저긴 구슬지뢰가 많아.”


동료가 눈물을 닦았다. “저긴 진짜 죽는다구!”


부대원들이 울음을 터뜨렸다. 지크가 눈물을 참았다.


“그래도 가야 돼.”


지크가 동료들을 다독였다. “안 가면 어차피 죽어.”


등 뒤에서 장교가 다가왔다. 등줄기가 서늘했다. 스릉, 칼 뽑는 소리. 지크가 장교를 노려보았다.


“갈 거예요!”


“빨리 가! ”


장교가 다그쳤다. 모래밭에 배를 깔고 엎드린 지크와 소년병들이 엉금엉금 기어가기 시작했다. 오른손에 쥔 부드러운 나무막대기로 사삭, 사삭 하고 모래를 쓸면서 왼손의 특수 장갑 - 도대체 뭐가 특수 장갑이라는 건지 - 으로 지뢰의 핀을 뽑는다.


지크와 라프, 아크, 그리고 200명의 소년병들이 변변한 훈련도 없이 배치된 딥스로트 해변은, 바다 너머 침공한 진 제국이 수백만 개의 지뢰를 깔아 놓고 3년 전 퇴각한 최격전지였다. 진 제국은 퇴각했지만 이다볼 왕국은 총 인구수 3억 중 20% 전사라는 엄청난 인명피해를 입었다. 징병된 군사 2천만명 중 돌아온 사람은 8백만에 불과했다.


바다를 건너 이다볼 대륙과 마주본 진 대륙은 천오백만이 넘는 상비군을 보유한 강국이었다. 강력한 무용을 가진 태자 부차와 네 명의 당상관인 상국 주지서, 태재 백비, 사관 왕손록, 대장군 주진영은 황제 쉬명을 도와 진 제국을 일통한 주축이었다. 이제 그들의 칼끝은 이다볼 왕국을 향하고 있었고, 곧 다가올 2차 대전은 시계 제로 상태였다.


이다볼의 국왕은 와병으로 몸져누워 있었고, 장녀인 베르단디 공주와 차자인 드라마스 왕자 사이에 치열한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다볼 왕국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 아무도 지크와 라프, 아크 같은 평민의 목숨에는 관심 없었다.


지크는 조심스럽게 모래를 쓸며 앞으로 나아갔다. 대열을 지키지 못하고 자꾸 물러서는 동료들이 생겼다. 장교가 짜증을 내다. 으아악, 하는 소리가 났다.


지크가 고개를 돌리지 않으려고 머리를 모래에 처박았다. 봐 봤자 악몽에 시달릴 뿐이니까. 피를 뒤집어쓴 동료들이 울음을 터뜨렸다. 장교들이 을러 댔다. “너도 죽고 싶어? 다 같이 죽고 싶어? 어!”


“아니에요!”


동료들이 자리에 주저앉아 울먹였다. 지크가 동료들의 얼굴을 보았다. 그 중에 라프가 있었다.


지크가 열에서 이탈했다. 그가 라프를 껴안았다.


“중사님! 제가 얘 자리에 있을게요.”


“웃기지 마! 당장 돌아가!”


“중사님. 제발요. 얘 좀 보세요. 얘는 이 쪽은 못 해요.”


지크가 차분하게 장교를 설득했다.


“얘 이 상태로 여기 못 해요. 여기는 지뢰가 훨씬 많잖아요. 여기 잘못 건드리면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지뢰가 한꺼번에 폭발할 수도 있어요. 그러면 우리 다 죽는다구요. 중사님이 다칠 수도 있잖아요. 네?”


저 멀리서 두셋의 장교가 다가왔다. 장교들이 서로 의논하더니, 눈이 풀린 라프를 질질 끌고 지크의 자리에 눕혔다. 라프가 훌쩍이며 지크에게 눈인사를 했다. 지크가 애써 웃었다.


“일해! 이 식충이들아.”


장교들이 눈을 부라렸다. 지크가 입을 다물고 피를 머금은 모래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동료들도 지크를 보며 하나둘씩 자리에 누웠다. 장교들이 지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자신이 열의 맨 앞에 있다. 지크가 머리를 바싹 숙이고 속도를 낮췄다. 왼쪽에서 쾅, 하는 소리가 났다. 지크는 고개를 숙였다. 누군가가 소리를 쳤다. “라프! 안 돼!”


지크가 벌떡 일어났다. 저 멀리 연기가 자욱한 곳으로 달렸다. 장교가 지크를 잡으려고 뛰어왔다. “라프! 라프!”


지크가 울음을 터뜨렸다. “라프!”


피를 흘리는 세넷의 동료들이 지크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제 저들은 지크를 원망하며 퇴역할 것이다. 하지만 가엾은 라프는 영원히 퇴역하지 못하리라.


“라프!”


지크가 라프의 찢긴 머리를 안아 올렸다. 뺨은 홀쭉했고, 멀쩡한 쪽 눈이 부어 있었다. 다른 쪽 눈은 지뢰에 찢겨 피에 덮여 있었다. 지크가 통곡했다.


“라프! 안 돼!”


장교들이 지크를 끌어 냈다. “시체 치워. 빨리!”


“라프! 라프!”


지크가 눈물을 흘리며 아크를 찾았다. “라프가 죽었어! 라프가!”


장교들이 지크를 걷어차고 라프의 시체를 질질 끌고 갔다. 지크가 바닥에 쓰러져 흐느꼈다. “라프! 미안해. 미안해!”


지크가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하고 엉엉 울었다. 보다 못한 장교 하나가 지크에게 휴지를 주었다. 지크가 휴지를 갈갈이 찢어 버렸다. 지크가 벌떡 일어섰다.


“너희들, 내가 다 기억할 거야.”


선의를 베푼 장교가 인상을 썼다. “뭐야?”


“너희 장교들 말이야.”


지크가 이를 갈았다.


“다 죽여 버릴 거야! 진 제국으로 갈 거야. 거기서 너희를 다 죽이고 말겠어!”


장교의 인상이 험악해졌다. 그가 칼을 뽑아들었다.


“이 새끼가 미쳤나. 다시 말해 봐!”


저 멀리서 누가 우다다다, 하고 달려왔다. 아크였다. 아크가 지크의 뺨을 쳤다.


아크가 소리를 쳤다. “미친 새끼야! 중사님께 무슨 미친 소리야!”


아크가 장교를 돌아보았다. “중사님, 죄송해요. 얘가 조울증이 있어요. 친구가 죽어서 그래요. 중사님도 기분이 안 좋으실 때가 있잖아요...”


아크가 무릎을 꿇었다.


“중사님, 한 번만 넘어가 주세요. 네?”


중사가 칼을 집어넣었다. 그가 지크의 배를 걷어찼다. 바싹 마른 지크가 힘없이 고꾸라졌다.


“개새끼! 넌 내가 지켜볼 거야. 오늘은 밥도 없을 줄 알아!”




세루크가 열 한 살이 되던 날, 아크 아줌마는 아이를 위해 고구마 케이크를 구워 주었다. 세루크와 앙리는 게걸스럽게 고구마 케익을 먹어 치웠다. 이 아이들도 크면 아크처럼 전장에 나가겠지. 그런 생각만 하면 아줌마는 마음이 미어졌다.


군에서 편지가 당도한 날, 아크 아줌마는 고구마와 바질, 밀가루를 반죽해서 맛있는 피자를 만들었다. 세루크와 앙리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뻐했다. 애들에게 있어 아크 아줌마는 천사나 다름없었다. 맨날 먹는 고구마도 아줌마가 만들면 온갖 방법으로 변주되어 매일 다른 식사가 되었다.


“아줌마아.”


세루크가 앙리의 입을 닦아 주며 말했다.


“근데 형은 언제 와요?”


아줌마가 울음을 터뜨렸다. 세루크와 앙리는 당황했다.


“왜 그러세요?”


앙리가 조그마한 입으로 물었다. “형 죽었어요?”


“개새끼야! 그런 소리 하지 마!”


세루크가 앙리를 마구 때렸다. 앙리가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 마! 하지 마!” 아줌마가 계속 흐느끼면서 두 아이를 뜯어 말렸다. 세루크가 헉헉대며 소리를 쳤다.


“죽여 버릴 거야! 개새끼야!”


아줌마가 세루크를 때렸다. 세루크가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세루크도 울음을 터뜨렸다.


“잘못했어요, 아줌마!”


아줌마가 세루크와 앙리를 껴안고 흐느꼈다. 세루크와 앙리도 함께 엉엉 울었다. 제일 먼저 울음을 그친 건 앙리였다.


“형.”


앙리가 세루크의 손을 잡았다.


“내가 잘 할게. 걱정 마.”


“무슨 소리야!”


앙리는 다섯 살 답지 않게 무척 똑똑하고 어른스러웠다. “내가 큰형 대신 형 옆에 있을게.”


세루크가 이익, 하고 동생을 밀쳤다. “개새끼!”


“얘들아, 그런 거 아니야. 아직 형은 안 죽었어.”


“진짜요?”


세루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왜 울어요?”


“아크가 죽었단다. 시...”


아줌마는 차마 시체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지금 오고 있어. 지크가 데리고 온다는구나.”


두 아이는 말을 잃었다.


“라프 형이 죽은 게 아니구요? 아크 형도 죽었다구요?”


“일주일 전에 죽었다는구나.”


세루크가 입을 막았다.


3개월 전 갈가리 찢긴 라프의 시체가 세 개의 자루에 담겨 도착했을 때, 재봉사였던 라프의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아들의 시체를 바느질했다. 관 안에 누운 라프의 얼굴에는 가면이 덮여 있었다. 가면 안에는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았다.


“지크 형은 왜 와요? 형은 다쳤대요?”


“응.”


“얼마나... 얼마나?”


“모르겠구나. 그래도 움직일 수 있으니까 애들을 데리고 오는 거겠지.”


세루크와 앙리가 말없이 바닥만 쳐다보았다.


“얘들아. 부탁이 있어!”


아크 아줌마가 눈물을 닦으며 애써 웃었다.


“라프와 아크 대신, 너희가 우리 가족이 되어 줄래? 라프 엄마도 나도 남편이 없어. 전쟁에서 죽었지. 이제 아들들까지 죽었으니, 우리한테 남은 남자라곤 너희와 지크 뿐이야. 우리 같이 살자. 내가 너희를 위해서 매일 맛있는 걸 해 줄게! 너희가 징병되면 너희가 오길 기다려 주고!”


“좋아!”


앙리가 손뼉을 쳤다. “좋다! 맨날 맛있는 거 먹는다!”


세루크가 앙리를 흘겨보았다. 그가 아크 아줌마의 손을 잡았다.


“아줌마. 너무 힘들어 하지 마세요.”


세루크가 어른스럽게 말했다.


“우리가 아줌마를 지켜 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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