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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악물고 출세한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조상우
작품등록일 :
2018.07.20 15:47
최근연재일 :
2019.03.30 06:00
연재수 :
231 회
조회수 :
240,448
추천수 :
3,465
글자수 :
1,683,635

작성
18.07.22 12:00
조회
7,126
추천
82
글자
10쪽

2화-소년가장(1)

제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DUMMY

1.2. 소년가장(1)



“우욱...”


지크는 구역질을 끝내고 겨우 고개를 들었다. 군에서 처방해 준 약은 부작용이 구토였다. 지크의 바싹 마른 등줄기가 벌벌 떨렸고, 깡마른 갈빗대가 쉴 새 없이 오르내렸다. 한 번 시작하면 10분이 지나도록 구토기가 가시질 않았다.


“헉. 헉.”


지크는 나무 둥치에 기대어 잠시 쉬었다. 그가 말에 달아 끌고 가야 하는 자루에는 친구 아크의 시신이 들어 있었다.


아크는 라프가 죽고 나서 3개월 후에 폭사했다. 아크는 날이 갈수록 우울해지고 밥도 적게 먹었다. 죽기 일주일 전에는 잠도 잘 자지 못했다. 죽은 전우들의 시체가 떠올라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했다.


죽기 전날, 아크는 지크에게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했다. 지크는 그 말을 듣고 일부러 열을 바꿔 아크 옆에 붙었다. 같이 점심을 먹고 나서, 아크는 지크를 밀쳐 내더니 지뢰 핀을 건드리고 말았다.


일부러 그런 것인지 지크는 알 수가 없었다. 설마 일부러 그랬겠는가? 나를 놔두고? 아크가 그렇게 약한 아이였던가? 우리 셋 중 가장 책임감 있는 친구였는데?


지크는 눈물을 흘렸다. 한 쪽 눈이 구슬탄에 실명되어서 다른 쪽 눈으로밖에 울 수가 없었다. 장교들은 지뢰 핀을 정교하게 뽑을 수 없게 된 그를 집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아크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지크는 눈물을 닦고 일어섰다. 아크의 시신은 피와 내장의 대부분이 찢겨 나가서 참 가벼웠다. 자루에 넣어 커다란 가방에 넣어 들고 가도 20kg도 나가지 않았다. 가엾은 아크. 내가 꼭 부모님께 데려다 줄게.


지크가 파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일어섰다. 오늘 밤이 지나기 전에 이 지역을 지나야 한다. 여기는 아케메네스 장군이 진 제국의 게릴라를 상대하는 곳이다.


어디서 군화 소리가 들린다. 지크가 재빨리 나무 뒤에 엎드렸다. 징병을 당한 후로, 그는 자기를 향해 우루루 다가오는 군화 소리에 노이로제에 걸리게 되었다. 정작 자기도 군복을 입고 있으면서도 그랬다.


“이 쪽! 이 쪽으로!”


병사 한 명이 소리를 쳤다. 지크가 가방을 품에 그러안고 숨을 삼켰다. 만약 여기서 잡힌다면, 그리 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으리라. 그래서 아크를 꼭 부모님께 데려다 주리라고 다짐했다.


“빨리! 장군님!”


저기서 비척거리는 걸음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가 헉헉 하고 밭은 숨을 몰아쉬고 있다. 한 무리의 장교들이 누군가를 호위하며 이 쪽으로 오고 있다. 그 말은 적들도 이리로 오고 있다는 뜻이다.


우두두두, 하는 총소리와 함께 으아아악! 비명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우수수수수 넘어지고 난리가 났다. 장교들이 고함을 질렀다.


“장군을 보호하라! 저기! 저기다!”


장교들이 권총을 난사하며 어딘가로 달려갔다. 비척거리는 걸음소리가 이 쪽으로 향하다가 윽, 하는 소리와 함께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지크가 고개를 죽 빼고 한 10m는 될 법한 절벽 아래를 넘어다보았다. 피투성이가 된 초로의 금발 남자가 몸을 파르르 떨고 있다.


남자가 지크를 발견했다.


“도...”


남자가 말했다.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들리지 않았다. 지크가 입모양을 읽어 냈다.


“도와 줘.”


살려야겠다. 더 이상 사람이 죽는 건 참을 수가 없으니까. 죽은 건 라프와 아크로 족하니까.


지크가 용감하게 일어섰다. 저 멀리서 비명소리가 계속 울린다. 게릴라가 몇 명인지 모르겠지만 장군이 이렇게 다칠 정도면 분명 열세다.


지크가 억센 손으로 절벽에 튀어 나온 나무 뿌리와 바위를 잡고 절벽을 내려갔다. 아크가 든 가방이 참 무거웠지만 절벽 아래로 던질 수는 없었다. 그가 몇 번이고 손을 헛디뎠다. 산을 타고 다니며 사냥을 하고 열매를 따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


절벽 아래로 내려서니 생각보다 장군의 상태가 심각했다.


“어때 보이니?”


지크가 거짓말을 했다. “괜찮아 보여요.”


“거짓말 마라.”


아케메네스 장군이 웃었다. “이름이 뭐냐? 소년병.”


“지크 쿠아디스예요. 퇴역했으니까 이제 소년병 아니예요. 지뢰 제거반에 있었어요.”


“그랬군.”


아케메네스 장군이 씁쓸하게 웃었다.


“지뢰 제거반이라니, 말도 안 되는 짓거리야.”


“일단 저기 동굴로 같이 가요. 걸으실 수 있겠어요?”


“못 걸어.”


지크가 배낭을 내려놓았다. 그가 아케메네스의 두 손을 잡고 낑낑대며 그를 동굴로 옮겼다. 아케메네스는 무척 아팠을 텐데도 한 번도 신음하지 않았다. 지크가 식은땀을 흘리며 손을 놓았을 때는 한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총 소리가 이제 안 들리는구나.”


지크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다 죽었나 봐요.”


아케메네스가 울먹였다. “그랬겠지. 다 나 때문이다!”


지크는 아케메네스를 외면하며 말했다.


“어떻게 하죠? 장군님은 이제 못 걷는데.”


“모르겠구나.”


지크는 이를 악물었다. 그가 절벽 아래부터 동굴까지 흥건한 아케메네스의 피를 흙으로 덮어 지웠다. 만약 상대가 개를 데리고 온다면 장군의 위치는 금방 발각될 터였다.


“일단 여기 숨어 있는 수밖에 없네요. 지원군이 오겠죠?”


“올 거다. 다만...”


아케메네스가 파리한 안색으로 말했다.


“내가 그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지크가 주머니에 든 약을 꺼냈다.


“이걸 드세요.”


아케메네스가 지크의 눈에 감긴 붕대를 보았다.


“너도 다쳤잖니.”


“괜찮아요.”


“산 사람은 살아야지.”


“눈 하나 없어도 살아요. 일단 진통제하고 소염제부터 드세요. 제가 상처를 좀 볼게요.”


아케메네스가 약봉지를 받아들었다. 그가 약을 씹어 삼켰다.


“고맙다.”




지크는 아케메네스의 상처를 싸매야 했다. 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것 중 깨끗한 건 아크의 시신을 포장한 천 자루밖에 없었다. 그가 비닐에 담긴 아크의 시신을 꺼내고 자루를 찢었다.


아케메네스가 지크의 약을 씹어삼키며 말을 했다. “이리 다오.”


“뭘요.”


“네 죽은 친구.”


지크가 아케메네스 장군을 돌아보았다. 약을 너무 많이 먹어서 미쳤나?


아케메네스는 지크가 받은 일주일치 약을 네 시간 만에 다 먹어 버렸다. 그런데도 고통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눈의 상처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지크는 고통을 꾹 눌러 참았다.


지크가 그에게 아크를 주었다. 아크의 시신은 진공 포장을 했는데도 시커멓게 썩어 있었다. 아케메네스가 아크의 썩은 얼굴을 어루만졌다.


“가엾은 녀석.”


지크가 눈물을 닦으며 아케메네스에게 붕대를 갈아 주었다. 이제 깨끗한 천이 거의 남지 않았다. 어느새 해가 저물어 왔다. 들짐승들이 킁킁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불을 피울 수가 없네요. 장군님.”


지크가 고통에 헐떡이며 말했다.


“늑대들이 오면 우린 다 죽을 거예요.”


“늑대가 오면 넌 도망쳐.”


“장군님하고 친구를 여기 두고요?”


“너라도 살아야지.”


“절대 안 그럴 거예요.”


지크가 주머니에서 약초를 꺼내 몸과 얼굴에 발랐다.


“이 약초를 바르면 들짐승들이 가까이 오지 않아요. 장군님께도 발라 드릴게요.”


“지크.”


아케메네스가 고요한 눈길로 말했다.


“네가 가지고 있어라. 내가 죽으면 넌 여길 빠져나가야지. 약도 없는데 그 약초까지 주면 넌 어쩌려고.”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일단 이 일이 끝나면 생각하려구요. 당장 오늘 밤에 살아야 하잖아요.”


“방법이 있다.”


“뭔데요?”


“늑대가 오면 이 친구를 주자.”


지크가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건 안 돼요.”


아케메네스가 지크의 손을 잡았다. 피투성이 손이었다. 지크가 그를 뿌리쳤다. 지크의 손도 피투성이였다.


“지크. 친구들을 두고 너만 살아서 힘드니?”


지크가 울음을 터뜨렸다.


“나도 그렇다.”


아케메네스가 지크를 안아 주었다. 지크가 흐느꼈다. 아케메네스가 지크의 등을 두드렸다.


“미안하구나. 전쟁 같은 건 없어야 했는데. 다 우리 군인들의 잘못이다.”


지크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크, 산다는 건 숭고한 거야. 죄책감 때문에 인생을 포기하는 건 잘못된 일이다. 내가 살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야. 나도 나 하나 살자고 수백의 장교들을 하루아침에 다 잃었다. 하지만 난 포기하지 않을 거다. 왜인 줄 아니?”


“몰라요.”


“내가 죽으면 더 많은 사망자가 나올 테니까. 아케메네스 지역은 게릴라단의 손에 떨어지고, 더 많은 지역이 반란군의 손에 죽을 테니까. 책임감이란 건 그런 거다. 죄책감과 책임감을 혼동하지 말아라. 고향에 널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잖니.”


아케메네스가 지크의 뺨을 두드렸다. 피로 된 손자국이 났다.


“그 사람들을 생각해야지. 어디 출신이니?”


“가티푸 산이요.”


“거기 애들까지 딥스로트로 끌려왔구나.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아케메네스가 한숨을 쉬었다.


“난 친구를 버리라고 강요하지 않을 거다. 강요할 자격도 없어. 하지만 나와 친구와 함께 여기서 죽는 것보다, 친구를 보내 주고 살 기회를 얻는 게 네 고향 사람들을 위한 길이야. 알겠니?”


지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케메네스가 지크를 놓아주었다. 지크가 아케메네스에게서 친구를 받아들었다.


지크가 포장된 봉지를 열었다. 역한 냄새 때문에 구토할 뻔 했다. 아케메네스가 찌푸렸던 인상을 애써 고쳤다. 지크가 아크의 머리카락 몇 가닥을 뽑아 냈다.


“이거라도 갖고 가야겠어요.”


지크가 아크의 시신을 꺼내 동굴 앞에 펼쳤다. 동굴 입구에는 약초를 바른 돌을 여기 저기 놓아 두었다.


“이러면 오늘 밤은 안전할 거예요.”


크르르르, 하고 늑대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지크가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아케메네스 장군이 지크를 껴안았다.


“걱정하지 마라.”


장군이 말했다.


“내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널 지키마. 용감한 지크 쿠아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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