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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미르 님의 서재입니다.

악마적 헌터가 AI를 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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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범미르
작품등록일 :
2024.05.08 10:21
최근연재일 :
2024.05.27 17:16
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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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950
추천수 :
1,572
글자수 :
139,358

작성
24.05.20 11:16
조회
1,453
추천
66
글자
12쪽

첫 번째 임무 (6)

DUMMY


17화 첫 임무 (6)




얼마나 오랜 시간 이 안에 있었던 걸까?

책은 오염된 거 하나 없이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마몬이 표지를 손으로 쑥 훑었는데, 부들부들한 고급 가죽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다.


‘이게 뭐지?’


책자를 넘기자, 코팅된 듯한 책의 페이지가 차르르 넘어간다.

커피를 쏟아도 묻지 않고 그대로 흘러내릴 것 같은 모습.

마몬이 무심코 내용을 봤는데······.


‘하나도 모르겠군.’


안엔 글자와 도형과 같은 기호가 거의 반반 비율로 섞여 있었다.

먹고 사는 게 고작인 치열한 삶이었다.

공부 같은 건 꿈꿀 수도 없었다. 글을 배운 것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이 안에 쓰인 건 복잡한 수식과 술식.

지금 마몬에겐 외계어와 다르지 않았다.


‘마법서인가?’


골든 서클이 기를 쓰고 가지려 했던 물건이다. 당연히 보통 물건은 아닐 것이다.

몰래 빼돌려 팔면 보수 이상의 엄청난 돈을 받을 수도 있을 터.

하지만 마몬은 미련 없이 책을 덮었다.


‘내겐 아무런 의미가 없는 책이네.’


본래 마몬(Mammon)이라는 이름은 악마의 것이다.

칠죄악 중 하나인 탐욕을 뜻하는 악마.

하지만 마몬은 그런 별명과는 다르게, 결코 남의 물건을 탐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한 번도 누군가의 물건을 빼앗거나 훔치지 않았다.

다만 누군가 자신의 걸 노리는 걸 절대로 참지 않을 뿐.

데모니움이라는 특수한, 아주 지독한 환경에서 자랐다.

빵 한 조각이라도 빼앗기면 굶어 죽을 수 있는 치열할 삶.

그렇기에 더 독해져야 했다.

동전 하나라도, 자신의 물건을 빼앗으려 하는 이가 있다면 반드시 응징했다.

그 결과 온갖 흉악범들이 모여 사는 데모니움에서도 악마라는 이명을 얻게 된 것이다.

이번에도 욕심내지 않고, 책을 다시 정십이면체 안에 넣었다.

책과 같이 들어 있던 작은 보석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담긴 상자(?)처럼 정십이면체로 세공된 보석.

신비로운 검붉은 빛이 어둠속에서도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몬은 손가락으로 그걸 빙빙 돌리다가 다시 상자 안에 넣었다.

아니 넣으려 했다.

분명 상자 안에 집어넣었는데, 갑자기 보석이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얌전히 상자 안에 들어가지 않고, 허공에 붕 떠오르더니 검붉은 빛을 내며 진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웅! 우웅!


마몬은 급히 손으로 보석을 꽉 쥐었다.

이곳은 여전히 개미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소굴의 한가운데다.

눈이 없는 개미들은 빛은 느끼지 못하지만, 진동은 선명하게 느낀다.

역시나 주변에 있던 개미들이 약간 의아하다는 듯이 발길을 멈췄다.


‘이런.’


지금 순간에도 마몬의 손안에서 계속 진동하고 있었다.

문득 이 광경이 익숙하단 걸 떠올렸다.

예전 도시 유적에서 푸른 보석을 발견했던 당시. 보석을 입으로 삼키고 테라를 만날 수 있었다.


‘테라?’


이 보석 역시 테라와 같은 물건이냐는 물음이다.

그런데 테라는 애매모호한 답변을 주었다.


[답변을 듣기 위한 마스터의 권한 등급이 모자랍니다.]


답은 거부했지만, 이 역시 테라와 어떤 식으로도 관련이 있다는 뜻이었다.

묻고 싶은 건 많았지만, 장소가 좋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책만 상자 안에 집어넣은 다음, 배낭 안에 넣고 떠날 준비를 했다.

이곳에 아직 살아있는 다섯 명의 사람이 있지만, 그들의 목숨까지 챙길 여유는 없다.

······라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거짓말처럼 쓰러진 다섯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스스스스!


평범하게 자리에서 일어선 게 아니다.

마치 누가 등을 떠민 것처럼 누운 자세 그대로 각도만 좁히며 꼿꼿이 섰다.

마몬이 눈을 찡그리며 그들을 살폈는데,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눈은 떴지만, 눈동자에 초점이 없이 그저 멍하게 있을 뿐이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살피는데, 다시 테라가 말했다.


[자세한 건 말씀드릴 수 없지만, 저들을 모두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게 마스터에게 이익이 될 겁니다.]

‘어째서?’

[제가 알려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남은 건 마스터의 선택입니다.]


마몬의 성격을 이미 파악했기 때문일까?

테라는 강요하지 않고 선택권을 마몬에게 넘겼다.


“······.”


마몬은 표정을 구기고 잠시 생각했다.

아직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이들 다섯을 데리고 몬스터 소굴을 빠져나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위험 부담을 생각하면 포기하는 게 당연한 일.

하지만 테라의 말을 무시하기도 어려웠다.

마나가 하나도 없던 마몬이 볼칼을 죽일 정도로 강해진 건, 테라의 도움 덕분이 아니던가?

이 붉은 보석이 테라와 같은 오파츠라면······.


‘할 수 없지.’


생각을 정리한 마몬은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리 마몬이 포식 능력으로 힘이 강해졌다고 해도, 성인 다섯을 동시에 옮기는 건 신체 구조상으로 무리였다.


‘뭔가 쓸만한 게······.’


주변을 둘러보던 마몬의 눈에 들어온 건, 아까 검으로 자른 고치 잔해.

찢어진 고치를 대충 엮어서 포대를 만든 후, 사람들을 그 위에 올렸다.

그리고 포대를 끌 듯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이익!


아무리 조심해도 고치가 끌리는 소리가 울릴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 있던 개미 몬스터들이 이쪽을 돌아보며 더듬이를 연신 움직였다.

몇몇은 빠르게 다가와 돌발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타닥타닥.


순식간에 개미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였다.

금방이라도 공격할 듯이 포위한 개미들의 모습에도, 마몬은 냉정하게 생각했다.

이곳에서 분류한 페로몬의 종류는 총 네 개.

다른 세 개는 일상적으로 사용되었지만, 하나는 조금 더 특별했다.

동굴 천장에 닿을 정도로 비대한 여왕 개미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다. 그래서 일개미들이 식사를 여왕의 입에 직접 넣어야 했다.

가장 맛있고 영양가 있는 먹이만을 선별하여 옮긴다.

마몬은 그것을 파악하여 다크 오러를 섬세하게 조절하기 시작했다.


파직! 파직!


특정 페로몬만 이쪽으로 유도했다.

페로몬이 마몬 주변을 감싸자, 빠르게 다가오던 개미들이 멈칫했다.

공격적인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고분고분하게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이다.

앞다리를 이용해 더듬이를 쓸어 닦더니 이내 다시 흩어졌다.

여왕과 관련된 임무라 감히 다가서지도 못한다는 모습.


‘역시 통하는군.’

[마스터는 헌터보다는 개미학 박사에 더 소질 있겠군요.]


마몬은 고치를 바닥에 질질 끌면서도 개미들의 방해 없이 입구로 돌아올 수 있었다.

무사히 돌아온 마몬의 모습에 왕왕은 놀랍다기보다는 황당하다는 듯이 물었다.


“무, 무슨 짓을 한 거야?”


개미 소굴 사이를 마치 산책하듯이 유유히 들어가더니, 사람들을 전부 데리고 왔다.

사람들이 죽었는지 확인하다가, 눈을 부릅뜬 모습에 깜짝 놀라 뒤로 뛰었다.


“설마 이들을 데려가려고?”


마몬을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목숨을 걸고 사람들을 구할 정도로 마몬이 상냥하지 않단 건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꼭 마몬이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그럴 거다.

필릭스는 아예 길길이 날뛰었다.


“뭐 하는 거야? 물건만 챙기고 저들을 버려!”


필릭스 역시 마몬과 생각하는 게 같았다.

그들에게 일일이 이유를 설명할 수 없던 마몬은, 그저 무심히 말했다.


“빨리 빠져나가자.”


고치로 만든 포대는 바닥에 닿아도 쉽게 헤지지 않을 정도로 튼튼했다.

문제 없이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을 터.

이대로 끌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마몬이 뭔가 이상하단 걸 지적했다.


“하운드는?”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같이 있었던 하운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대기하고 있던 다른 이들도, 그제야 하운드가 없어졌단 걸 깨달은 모양.

왕왕은 황당하다는 듯이 눈을 찌푸렸다.


“어라? 그 아저씨 어디 갔지?”


주위를 한 바퀴 둘러봤지만, 그 어디에도 하운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그새를 못 참고 도망친 거야?”


골든 서클의 의뢰이니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하운드다.

그런 그가 이런 깊숙한 곳까지 따라와 놓고선 이제야 나갔다?

이상한 일이었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낀 그 순간이었다.

일행이 들어온 입구 저편에서 거대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콰과과과광!!!


“우앗!”


강력한 충격파가 밀어닥쳐, 앞으로 나아가던 왕왕이 뒤로 넘어졌다.

이내 거대한 흙먼지가 일행의 정면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몬은 중심을 잡고 넘어지지 않았지만,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폭음을 들은 개미들이 동시에 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타다닥! 타다닥!


수십 마리의 개미들이 동시에 바닥을 디디며 달려오는 소리다.

여왕이 있던 굴만이 아니라, 사방에서 개미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필릭스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이런 빌어먹을! 모두 도망쳐!”


일행은 왔던 방향으로 빠르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모두가 헐레벌떡 도망치는데, 뜻밖에 마몬이 여전히 고치로 된 포대를 끌고 움직였다.

그걸 본 왕왕이 기겁하며 소리쳤다.


“지금 상황에서도 사람들을 구하겠다고? 미친 거 아냐?”


당연한 반응이다.

꼭 데모니움의 흉악범들이 아니더라도 이 상황에선 자기 목숨부터 챙길 테니깐.

마몬은 둘에게 말했다.


“너희들이라면 뚫고 나갈 수 있지?”


그 말에 왕왕과 링링은 멈칫하며 서로를 힐끗 쳐다봤다.

눈빛을 잠시 교환한 후 링링이 고개를 끄덕이자, 왕왕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버지에게 혼나겠네.”


왕왕은 활을 치우고 검을 잡았다.

크게 호흡을 가다듬고 자세를 취하자, 이전의 왈가닥이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기세가 흘러나왔다.

물론 그렇다고 거친 입담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빌어먹을 놈들. 대가리와 엉덩이를 바꿔주마.”


링링 역시 아까와는 전혀 다른 파지법으로 검을 잡았고, 그 모습을 본 마몬은 잠시 눈에 이체를 띄었다.

하지만 이내 묵묵히 포대를 끌고 앞으로 나아갔다.


“자! 밀고 나간다!”


밀물처럼 쏟아지는 개미 몬스터 무리이었지만, 왕왕은 전혀 기죽지 않았다는 듯이 오히려 한 발 더 앞으로 내밀었다.


“후읍!”


크게 들어 쉰 숨을 반쯤만 내뱉은 후 검을 휘둘렀다.


번쩍!


다가오던 개미 네 마리가 동시에 검에 베여 둘로 나뉘었다.

아니, 여섯이다.

뒤에 바짝 붙어서 오던 두 마리가 푸르스름한 검기에 당해서 조각났다.


‘역시 최소 4레벨이군. 어쩌면 5레벨일 수도 있고.’


왕왕과 링링은 이곳에 참여할 때 3레벨이라 신고했다.

하지만 마몬이 본 그들의 실력은 결코 3레벨 정도가 아니었다.

감춘다고 감췄지만, 그들이 은연중에 내뿜는 기운은 자신이 쓰러트렸던 볼칼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을 정도였으니.

그런 그녀들의 실력을 믿었기에 마몬은 사람들을 버리지 않은 것이다.

정확히는 보상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의 분위기가 달라진 건 다른 이들 역시 알 수 있었다.

열심히 뛰던 필릭스가 소리쳤다.


“설마, 레벨을 속인 거냐?”


많은 헌터가 레벨을 속이려 노력한다.

주로 더 많은 보수를 얻기 위해, 아니면 다른 헌터를 뒤통수 치기 위함일 수도 있었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헌터 협회에선 임무 전에 그들의 레벨과 이름들을 이미 공개한다.

이번 퀘스트는 긴급이었지만, 어쨌든 헌터에서 정식 의뢰한 임무.

분명 왕왕과 링링이 레벨을 말했을 때도 협회 관계자는 별말 하지 않았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었다.

첫 번째는 저들이 오랫동안 레벨 측정을 하지 않고 헌터 생활을 이어간 경우다.

레벨만큼 대우받는 헌터 세상에선, 오히려 레벨을 부풀리는 경우는 많아도 줄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간혹 모종의 이유로 낮은 레벨로 유지하는 이들도 있긴 했다.

두 번째 가능성은 헌터 협회원도 입을 다물게 할 정도로 거대한 뒷배가 있는 경우였다.

마몬은 후자라고 생각했다.

유추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검왕에겐 딸이 둘 있다지?”


마몬의 말에 검을 휘두르던 왕왕이 움찔했고, 링링은 올 게 왔다는 듯이 한숨 쉬었다.

왕왕은 당황스럽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어, 어떻게 알았지?”

“애초에 가명을 너무 성의 없이 지었다고 생각하지 않나? 왕왕, 링링.”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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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적 헌터가 AI를 주움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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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악마의 이빨 (2) +2 24.05.27 1,025 62 12쪽
21 악마의 이빨 (1) +1 24.05.26 1,117 61 12쪽
20 첫 번째 임무 (9) +3 24.05.25 1,162 55 14쪽
19 첫 번째 임무 (8) +7 24.05.22 1,329 77 13쪽
18 첫 번째 임무 (7) +2 24.05.21 1,394 72 14쪽
» 첫 번째 임무 (6) +2 24.05.20 1,454 66 12쪽
16 첫 번째 임무 (5) +5 24.05.19 1,523 60 14쪽
15 첫 번째 임무 (4) +1 24.05.18 1,595 58 14쪽
14 첫 번째 임무 (3) +3 24.05.17 1,704 66 14쪽
13 첫 번째 임무 (2) +2 24.05.16 1,855 61 16쪽
12 첫 번째 임무 (1) +2 24.05.15 2,031 63 16쪽
11 악마적 헌터 (2) +3 24.05.14 2,157 73 12쪽
10 악마적 헌터 (1) +1 24.05.13 2,247 72 12쪽
9 헌터 헌터 (2) +4 24.05.12 2,375 84 19쪽
8 헌터 헌터 (1) +3 24.05.11 2,489 85 15쪽
7 악마적인 재능으로 (3) +3 24.05.10 2,567 78 15쪽
6 악마적인 재능으로 (2) +2 24.05.09 2,697 73 14쪽
5 악마적인 재능으로 (1) +7 24.05.09 2,869 80 16쪽
4 운수 좋은 날 (4) +2 24.05.08 2,933 78 15쪽
3 운수 좋은 날 (3) +2 24.05.08 3,032 81 13쪽
2 운수 좋은 날 (2) +1 24.05.08 3,557 81 13쪽
1 운수 좋은 날 (1) +4 24.05.08 4,837 8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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