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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환 님의 서재입니다.

기점의 마왕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주환
작품등록일 :
2015.07.26 23:30
최근연재일 :
2015.09.05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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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8.16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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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last one (3)

DUMMY

티이센의 끔찍한 비명소리가 동굴 안에까지 울려 퍼졌다. 진흙탕을 질척거리며 달려가던 청연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청연은 이를 악물며 더욱 속도를 높였다.


‘조금이라도 오래 버텨라.’


도와줄 수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원래 리센륭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잡았을 헌터였다. 그저 대비를 마칠 수 있도록 시간이나 좀 끌길 바랐다. 청연은 첫 번째 함정을 넘고 두 번째 함정까지 넘어 순식간에 킹 슬라임이 있는 곳까지 도달했다.


“헌터들 오고 있어?”


투명해져 있던 킹 슬라임이 달려오는 청연을 보며 물었다. 청연은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대고 조용하란 제스처를 취했다.


“손가락 뜯어 먹으려는 거야?”


킹 슬라임이 청연의 동작을 이해 못하고 물었다. 청연은 벌컥 성질을 내고 싶었지만 꾹 참고 조곤조곤 설명했다.


“진짜 위험한 놈이 오고 있으니까 꼼짝 말고 조용히 있어. 넌 최후의 보루니까.”


킹 슬라임은 잘 이해가 안 되는 듯 했지만 자신이 최후의 보루라는 말엔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었다.


“그래. 조용히 한다.”


킹 슬라임의 산성액은 보통 슬라임보다 훨씬 강하다. 저 헌터 사냥꾼 놈도 닿기만 하면 바로 죽진 않더라도 제법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 최후의 보루라는 단어는 급하게 말하다보니 엉겁결에 튀어나왔지만 진짜로 그렇게 될 수도 있었다.


청연은 킹 슬라임도 넘어서 동굴 가장 안쪽, 템들을 쌓아놓은 곳으로 갔다. 함정만으론 저 헌터 사냥꾼을 잡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청연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싸울 셈이었다. 청연은 가장 먼저 하이드 아머를 장착했다. 그리고 건틀렛까지 착용한 뒤, 어떤 무기를 잡을까 고민했다.


익숙한 건 OTD삼단봉이었다. 하지만 이 초보자용 무기로는 저 헌터 사냥꾼에게 타격을 주기 힘들 것이다. 고민하던 청연은 결국 OTD삼단봉 대신 증폭검을 잡았다. 9년 동안 온갖 수련을 다 겪었다. 어떤 무기를 잡든 대충은 다 다룰 자신이 있었다.


‘어차피 한방 승부야. 이판사판이다.’


청연이 집어든 증폭 검은 헌터들에겐 돈 먹는 검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검이었다. 원래 헌터 무기는 내부에 마정석을 박거나, 마정석을 녹여서 겉면에 바른다. 하지만 증폭 검엔 마정석의 힘이 전혀 담겨있지 않았다. 대신 검의 그립 부근에 마정석을 가져다 대면 그것을 그대로 흡수하면서 위력이 일순간 크게 증폭됐다.


위력은 흡수한 마정석의 양에 따라 차이가 났는데 효과는 꽤 좋은 편이었다. 다만 그 위력이 일시적이고, 또 초보자용이라 아무리 마정석을 먹여도 30렙 무기 이상의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마정석이 밥줄이나 다름없는 헌터들은 증폭 검을 좋아하지 않았다. 인기가 없으니 가격도 500만원 정도로 초보자용 무기인 OTD 세트보다 저렴했다.


청연은 모아놓은 마정석을 꺼내 손바닥에 올려보았다. 38g의 마정석. 이것도 전부 헌터들이 죽으며 떨군 마정석이었다.


‘이거면 어느 정도는 싸울 수 있겠지.’


원래는 장물아비에게 팔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살아남아 퀘스트를 완수하는 게 더 급했다. 챙길 수 있는 모든 장구류를 챙긴 청연은 어떻게 헌터 사냥꾼을 상대할까 고민했다. 20~30초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머리에서 연기가 날 정도로 뇌를 혹사시킨 청연은 작전 하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


청연은 떠오른 작전을 준비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다리가 잘 움직이지 않았다. 왜 그런가 하고 내려 보니 다리가 오들오들 떨리고 있었다. 너무 심하게 긴장한 나머지 몸이 안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 싸우려는 게 던전에 와서 겪는 첫 전투인가?’


던전에 와서 겪는 첫 전투이자 첫 위기였다. 마왕에게 많이 죽어봤지만 그건 위기라기보다는 폭풍이나 지진 같은, 체념하게 되어버리는 재난이나 재앙의 느낌이 더 강했다. 그에 반해 헌터 사냥꾼 상대로는 칼날이 목젖 바로 밑에 닿은 것 같은 위기감을 진저리칠 정도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젠장, 난 왜 이렇게 마주하는 상황마다 난이도가 최악이냐. 처음 던전에 와서 만난 건 마왕, 처음 던전에 와서 받은 퀘스트는 1렙의 맨 몸으로 헌터 40명 잡기, 첫 싸움 상대는 나보다 렙이 최소 두 배는 높은 헌터 사냥꾼…’


자신의 겪어온 상황들을 곱씹으니 객관적으로 봐도 진짜 우라지게 재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연은 좌절이나 한탄을 하기보단 씩 웃었다. 이제 하도 이런 상황을 겪다 보니 적응이 된 것 같았다.


‘세연이가 말했지. 인생사 새옹지마. 버티고 버티면 좋은 운은 언젠간 반드시 돌아온다. 만약 내가 소설 주인공이라고 치자. 그러면 작가 씹새끼도 양심이 있으면 이젠 나한테 운 좀 따르게 해주겠지.’


청연은 그런 식으로 가볍게 농담을 떠올리기도 하면서 몸의 긴장을 풀었다.


‘쫄지 말자. 실제로 죽는 것도 아니고 여기서 죽어봤자 보름 뒤에 다시 돌아오면 그만이다.’


몸의 떨림은 금세 멎었다.


‘참…근데 내가 죽으면 슬라임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갑자기 킹 슬라임과 슬라임들이 떠올랐다. 청연이야 죽어도 죽는 게 아니니 보름 뒤에 다시 던전에 입장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자신이 지면 이곳의 슬라임들은 리센륭에게 다 죽을 것이다. 청연은 자기만 생각하며 가볍게 마음먹을 상황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지면 어쩔 수 없지만…그래도 반드시 이긴다. 그리고 퀘스트도 완수한다.’


청연은 크게 심호흡하며 마음을 새로이 다잡았다. 그리고 증폭검을 한 손에 불끈 쥔 채, 진중한 마음가짐으로 헌터 사냥꾼을 사냥하기 위해 입구 쪽으로 향했다.


***


리센륭의 진짜 이름은 청슈하이로 중국 국적의 헌터였다. 그는 31렙의 서포터였다.


서포터의 주된 역할은 복잡한 던전에서 길 찾기, 적의 약점 파악, 은신한 적이나 함정 유무 확인, 체력이 빠진 동료에게 힐을 해주는 등의 보조적인 일이다. 서포터라고 전투 중에 손가락만 빨고 있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전투에서의 비중이 탱커나 딜러, 마법사보다 많이 낮은 편이다.


그 서포터라는 직업이 청슈하이를 헌터 사냥꾼이자 범죄자로 만든 가장 큰 계기였다. 청슈하이는 헌터가 되기 전부터 탱커나 딜러를 직업으로 하고 싶었다. 우락부락한 외모도 그렇고 괄괄한 성격도 보조하는 역할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렉스로 처음 측정한 그의 모든 스텟이 턱없이 낮았다. 마법사는 스텟과 무관하게 마나를 느껴야만 할 수 있는 직업이니 예외로 치더라도, 탱커나 딜러로 전직하기엔 평균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그의 스텟으로 일인분을 제대로 할 만한 직업은 서포터밖에 없었다.


처음엔 좌절했지만 어쩔 수 없이 헌터 협회의 권유와 주변 사람들의 추천대로 서포터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탱커 외에 다른 직업들은 거의 동등했다. 하지만 서포터로 전직을 하고 레이드를 다니자 청슈하이는 곧 회의감을 느꼈다.


‘이건 아니야.’


마정석 배분에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동료들이 싫은 것도 아니다. 그냥 서포터가 적성에 맞지 않았다. 서포터 역할을 제대로 해낼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었지만 레이드를 돌고 나면 언제나 짙은 후회감이 몰려왔다.


‘남들이 뭐라고 하던 그냥 내가 원하는 직업을 고를 것을.’


뒤늦게 후회했지만 한번 선택한 직업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이렇게 직업을 잘못 고르고 후회하는 헌터들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보통 헌터들은 후회하는 정도에서 멈추는데 그는 한발 더 나아가 잘못된 선택을 해버렸다.


‘서포터라도 탱커나 딜러가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는 엉뚱하게 탱커나 딜러의 스킬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레벨이 낮을 땐 그런 편법도 그럭저럭 통했다. 하지만 레벨이 오를수록 금세 처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꾸역꾸역 40렙이 되자 그는 서포터도, 딜러도, 탱커도 아닌 어중간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헌터들은 아무도 그를 그룹에 껴주지 않았다.


물론 헌터들 중에선 가끔 서포터이면서 탱커인 자들도 있었고, 탱커이면서 딜러인 자들도 존재했다. 흔히 말하는 천재들이었다. 하지만 청슈하이는 천재가 아니었다. 그룹에게 버림받은 청슈하이는 엉뚱한 방향으로 분노의 화살을 돌렸다.


‘난 탱커가 되고 싶었는데 너희들이 서포터를 하라고 해서 원하지도 않는 서포터가 됐고 결국 이 꼴이 됐다. 다 너희들 책임이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엉뚱한 헌터와 헌터 협회에게 돌렸다. 원한은 날이 갈수록 커져 결국 청슈하이를 헌터 사냥꾼으로 만들었다.


처음으로 초보 헌터들을 죽였을 땐 범죄를 저질렀다는 생각에 겁도 났다. 패널티로 인해 어렵게 올린 레벨이 깎이는 것도 무척 아쉬웠다. 하지만 몇 번 하다보니까 곧 익숙해졌다. 그는 덤덤하게 헌터들을 죽였다.


‘진짜 죽이는 것도 아니잖아?’


이 점이 그의 죄책감을 확 줄여줬다. 차라리 진짜 살인이었다면 그는 헌터 사냥꾼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선 죽는 게 아니니, 크게 잘못을 저지르는 게 아니라는 식으로 자기 합리화가 가능했다. 그는 갈수록 흉폭 해졌고, 마침내 헌터 협회에 수배가 붙고 감찰단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됐다.


이미 현실의 주거지엔 감찰단들이 들이닥쳐 대기하고 있었다. 청슈하이는 현실로 돌아가는 즉시 그들에게 붙잡힐 것이고, 헌터들 전용 감옥인 메스티드에 갇힐 것이다.


동굴로 달아난 청연과 티이센이 갖고 놀 수 있는 마지막 사냥감들이었다. 그래서 청슈하이는 지금껏 어떤 헌터들을 상대할 때보다 더 진지하고 잔혹하게 청연과 티이센을 대하기로 했다.


“이런 걸 두고 최후의 만찬이라고 하던가?”


청슈하이는 티이센을 만족할 만큼 괴롭히다가 죽였다. 앞으로 티이센은 죽는 것보다 더한 정신적 외상을 갖고 살게 될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청연 하나뿐이었다. 청슈하이는 청연을 아주 아프게 해줄 계획이었다. 아주 철저히, 세포 하나하나 고문하며 즐길 생각이었다. 그동안 헌터들을 사냥하며 익힌 사람 괴롭히는 방법을 청연에게 전부 선보여줄 예정이었다.


청슈하이는 동굴 입구로 다가가 박힌 도끼를 잡아 뺐다. 잡아 뺀 도끼의 날을 잠시 손가락 끝으로 만지작거린 그는, 동굴 입구에 대고 아주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도하면서 기다리고 있게 친구. 나 지금 들어갈 테니.”



작가의말

헤헤...20화를 넘긴 시점에서 처음으로 주인공의 전투씬이 등장하겠군요.


20화까지 전투씬이 없었다니...저 스스로도 깜짝 놀랐습니다!


재밌게 보셨다면 선작과 추천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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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last one (5) +41 15.08.18 17,779 418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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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헌터를 낚는 어부가 되거라 (3) +41 15.08.12 18,439 451 11쪽
15 헌터를 낚는 어부가 되거라 (2) +43 15.08.11 18,190 416 9쪽
14 헌터를 낚는 어부가 되거라 (1) +45 15.08.09 18,998 38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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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헌터 헌터 (2) +35 15.08.05 20,890 42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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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마왕에게 살아남는 방법! (2) +36 15.08.03 20,993 38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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