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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환 님의 서재입니다.

기점의 마왕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주환
작품등록일 :
2015.07.26 23:30
최근연재일 :
2015.09.05 23:33
연재수 :
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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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8,649
추천수 :
14,219
글자수 :
166,684

작성
15.07.30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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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
글자
11쪽

내가 세상을 버릴지언정...(1)

DUMMY

청연은 완전히 두 손 들고 포기했다.


본래 세계로 돌아오자마자 즉각 강남에 있는 헌터 협회를 찾아갔다. 버그 플레이어 신고를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여기서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청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전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 바람에 당분간 연구소 및 각종 헌터 관련 기관에서 외부인의 출입을 전면 금지시켰습니다.”


헌터 협회의 정문 로비에서 서비스 담당을 맡고 있는 여직원이 딱딱하게 대답했다.


“연구소에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됐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청연은 당혹감에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전 버그 플레이어인데요? 그래도 안 됩니까?”


버그 플레이어란 말에 왠지 모르게 여직원의 얼굴이 더 싸늘해지는 것 같았다.


“외부인은 전부 출입 금지입니다.”


안 그래도 정신적으로 불안했던 청연은 갑작스런 사태에 더욱 마음이 흔들렸다. 그래서 여직원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약간 신경질적인 말투로 물었다.


“아니, 도대체 뭣 때문에 그러는 건데요?”

“죄송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선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청연은 답답한 나머지 계속해서 물어봤지만 여직원은 끝까지 대답해주지 않았다. 로비 부근의 사람들 몇몇이 실랑이하는 둘을 주목했다. 헌터 협회 건물 안에 들어올 수 있는 건 헌터뿐이니 그들도 모두 헌터일 것이다. 청연은 시선을 의식하고는 다시 목소리를 낮췄다.


“그럼 저 같은 버그 플레이어는 어떡합니까? 버그 때문에 던전에 들어가질 못하는데.”


여직원은 자기 사정이 아니라는 듯이 딱 잘라 대답했다.


“일단 버그 신고에 대한 접수는 해놓겠습니다. 하지만 연구소가 다시 개방될 때까지 당분간 기다리셔야 할 겁니다.”


청연은 여직원의 까칠한 태도에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참고 다시 물었다.


“언제 다시 문 여는데요?”

“죄송하지만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청연은 결국 여직원에게 더 묻기를 포기하고 로비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구석 진 자리로 가서 자신이 다녔던 헌터 학원의 선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름 대형학원의 선생이니 이 사태에 대해 뭔가 알고 있을까 싶어서였다. 역시 연줄이 있는지 선생은 지금 이 사태에 대해 대충 알고 있었다.


“사흘 전에 버그 플레이어랍시고 연구소로 침입한 헌터가 보안들 다 때려눕히고 연구소의 극비 자료 다 털어갔단다. 그 와중에 건물도 한 채 무너지고…장난 아니었다더라. 협회는 지금 완전 뒤집어졌다던데.”


청연은 그제야 헌터 협회의 툴툴대는 태도도 좀 이해가 갔다. 자기들 본거지가 한 명의 헌터에게 무참하게 털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렇다고 청연의 화가 풀리는 건 아니지만.


‘그래서 아까 여직원이 그런 눈으로 쳐다봤던 거였나? 에이씨, 그 헌터 새끼는 하필 또 버그 플레이어로 가장해서 연구소를 털었냐.’


속으로 연구소를 털었다는 헌터를 마구 욕한 뒤 청연은 다시 허겁지겁 질문했다.


“그, 그럼 언제쯤 다시 외부인 출입금지가 풀리는지 혹시 아세요?”

“나도 그냥 술 마시면서 들은 얘기라 자세히는 잘 모르겠는데.”

“대충이라도…”

“글쎄? 최소 이, 삼 개월은 걸리지 않을까? 어쩌면 더 길어질 수도 있고. 그 동안 보안에 너무 허술했다고 여기저기 고치거나 아예 싹 바꾸는 모양이야.”


최소 삼 개월? 그동안 손가락만 빨고 있으라고? 너무 어이가 없다보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런 청연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생이 엉뚱한 용건을 꺼냈다.


“뭔 일 있냐? 그런 걸 다 물어보고. 참, 그러고 보니 너 마침 전화 잘했다. 너 혹시 언제 시간되면 학원 한 번 나와서 학원 얘들한테 어떻게 헌터로 각성했는지 강연 비스무리하게 좀 해줄래?”


‘강연은 무슨… 저 지금 완전 망하게 생겼거든요?’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선생한테 이렇게 직접 말할 순 없었다.


“죄송해요. 제가 좀 문제가 생겨서…강연은 힘들 것 같네요.”


청연의 어두운 목소리에서 뭔가 감이 왔는지 선생은 더 요청하지 않았다.


“그래? 뭐, 알겠다. 몸조심하고. 다음에 또 연락하자.”

“네, 정보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도 몸 건강하세요.”


통화를 마친 뒤 청연은 벽에 등을 기대어 무너지듯 쭈그려 앉았다. 어이가 없었다. 개똥도 약에 쓸려면 없다더니(?) 지금이 딱 그 꼴이었다. 하필 자신이 버그에 걸렸을 때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진짜 동생 세연이 말대로 재수도 우라지게 없었다.


‘이제 어떡하지? 헌터 홈페이지에 도와달라고 글이라도 올려야 되나? 염병…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처음부터 바로 찾아올 걸…’


계속해서 이어지는 말도 안 되는 불운에 멘탈이 터진(?) 청연은 잉어처럼 입을 벌리고 멍하니 허공을 쳐다봤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유체이탈 비슷한 증상까지 갔었던 청연의 귀에 갑자기 웅성거리는 잡음이 들려왔다.


“저거 카이블랙 녀석들 아냐?”

“맞아, 여긴 웬일이래?”

“크, 걷는 자세부터가 포스가 넘쳐흐르다 못해 콸콸 쏟아지는구만.”


주변의 웅성거림에 정신을 차린 청연은 소리가 나는 근원지 쪽을 힘없이 쓱 쳐다봤다.


‘와!’


청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금발의 외국 미녀 하나와 한국인 남자 하나가 담소를 나누며 로비 쪽으로 오고 있었다. 둘 다 청연이 아주 잘 알고 있는 자들이었다. 헌터들 중에서도 초월급 헌터들만 가입할 수 있다는 소수정예의 명문 길드 「카이블랙」, 그 카이블랙의 소속원인 에일린과 트레셔였다.


에일린은 미국 소속의 헌터였다.


염동력이 주특기로, 빈센터의 레드라인을 공략하는 상위 헌터 그룹들 중 가장 선두에 위치하고 있다고 알려진 헌터였다. 외모 또한 연예인 못지않아 온갖 패션잡지 및 광고에 단골로 출연하고 있는 세계적인 헌터였다.


하지만 그런 에일린보다 청연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그녀의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젊은 동양인 남자, 트레셔였다.


8년 전 어려운 가정형편을 딛고 스무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헌터로 각성, 3차 전직까지 가장 레벨업이 빠른 헌터로 기네스북에 등록, 한국인 최초로 카이블랙 길드에 가입, 잘생긴 외모와 쫙 빠진 기럭지 등등, 대한한국 소속 헌터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자였다.


또 트레셔는 청연의 우상이기도 했다.


세연의 게이 아니냐는 놀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트레셔의 대형 브로마이드를 자신의 방에 붙여놓고 틈날 때마다 사진을 보며 헌터의 꿈을 키웠다. 소장용, 독서용, 포교용으로 트레셔의 자서전을 3권이나 샀다. 트레셔의 이름으로 벌이는 이벤트나 불우이웃돕기에는 없는 돈을 탈탈 털어서 참여하기도 했다.


그런 우상과 유명 헌터가 청연의 바로 코앞을 스쳐 지나갔다. 건물 안의 헌터들도 같은 헌터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아이돌을 만난 중고딩 같은 동경어린 시선으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둘을 뚫어져라 지켜보던 청연은 문득 저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저 사람들이라면 최종보스를 잡을 수 있는 능력이 있을 테니 내 얘기를 귀담아 들어줄지도 모른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세연이가 말해줬지 않는가? 인생사 새옹지마! 어쩌면 지금까지의 불운은 지금의 기연을 위해서였을지도 몰랐다.


‘저들이 최초로 마왕을 잡는 걸 바로 코앞에서 구경하는 헌터가 될 수 있을지도 몰라!’


뭔가 미묘하게 굴절된 소심한 소망이었지만, 어쨌든 청연은 몸을 벌떡 일으켜 둘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막 협회의 정문 밖으로 나가려던 트레셔와 에일린이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다가오는 청연을 쳐다봤다. 주변 헌터들의 이목도 모두 청연에게 집중됐다.


“싸인 안 해드립니다.”


이런 상황에 익숙한 듯 트레셔가 잡상인 내쫓는 것처럼 손바닥을 보이며 청연의 접근을 막았다. 청연은 이런 영웅(?) 같은 존재들에겐 비굴한 태도를 보이는 건 오히려 역효과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최대한 당당해 보이는 태도를 취했다.


“싸인 때문이 아닙니다.”

“쩔도 안 해드립니다.”

“쩔 때문도 아닙니다!”


흥분해서 약간 언성을 높였던 청연은 아차 싶어서 다시 언성을 낮추고 최대한 공손하게 말했다.


“혹시 시간이 되시면 저 좀 도와주실 수 없으십니까? 저는 버그 플레이어입니다.”

“버그 신고는 저쪽 협회 로비에서 하시면…”

“리니아에 관심 있으십니까? 리니아의 거탑 최종보스 리니아가 관련된 버그입니다.”


에일린이 더 이상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옆에서 트레셔의 팔짱을 끼고 보챘다.


“그냥 가자.”

“잠깐만.”


트레셔가 보채는 에일린을 달래고는 청연에게 말했다.


“말씀해 보세요.”


역시! 자신의 우상이었던 트레셔가 관심을 보이자 청연은 솟구쳐 오르는 희망과 감격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청연은 그들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아주 상세하게 설명해줬다.


“…이렇게 된 겁니다.”


트레셔는 진지한 얼굴로 청연의 이야기를 전부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상큼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꺼져.”

“…”


청연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서 트레셔를 멍청하게 바라봤다. 하지만 트레셔는 어깨로 청연을 툭 밀치고 에일린과 함께 정문 밖으로 나섰다.


“저, 저기 잠깐…”

“꺼지라고.”


트레셔가 청연을 경멸에 찬 눈으로 노려봤다. 초월급 헌터의 칼날 같은 눈빛에 청연은 동작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트레셔는 그런 청연을 마지막으로 쓰레기 보듯이 쓱 쳐다보곤 헌터 협회 건물 밖으로 나갔다. 에일린이 그런 트레셔의 팔짱을 낀 채 재잘거렸다.


“것 봐. 그냥 가자고 했잖아.”

“저런 멍청한 사기꾼인줄은 몰랐지. 사기도 그럴 듯하게 쳐야지. 원…”

“넌 너무 상냥해서 탈이라니까.”

“나도 어려운 형편에 헌터가 됐다보니…불쌍한 표정으로 다가오면 거절하기 힘들어.”

“하긴, 너의 그런 상냥함이 매력 포인트 중 하나이긴 해.”


멀어지는 에일린과 트레셔의 화기애애(?)한 대화가 청연에게 어렴풋이 들렸다.


“쯧쯧. 저거 저럴 줄 알았다.”

“사기도 걸릴 만한 사람한테 쳐야지.”


보고 있던 헌터들도 킥킥 거리며 멍하니 서 있는 청연을 비웃었다.


“하…”


쇠망치처럼 묵직한 충격이 뒤늦게 청연의 뒤통수를 때렸다. 모멸감에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너무 분해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여태까지 겪었던 불운들보다 트레셔의 꺼지라는 말 한마디가 더 가슴을 후벼 팠다.


‘상냥? 그게 상냥한 거면 내 동생 세연이는 천사다. 이 새끼들아!’


백 번 양보해서 청연의 말을 안 믿을 수도 있다. 그럼 그냥 무시하고 가버리면 되지. 굳이 모욕적으로 꺼지라는 말을 할 필요가 있었는가? 그래놓고 자기들끼리 상냥하다고 자화자찬하며 낄낄 거리는 꼴이라니.


청연의 말이 진짜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던 건가? 자신이 간신히 용기를 내서 어렵게 도움을 청했을 거라고는? 그런 점을 좀 배려해줄 수는 없었던 걸까? 저런 싸가지 없는 놈을 좋다고 벽에 브로마이드 붙여두고 칭송했던 자신의 과거가 부끄러웠다.


“김영배 저 개새끼…”


청연은 트레셔의 촌스러운(?) 본명을 입안에서 곱씹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지금의 모욕을 꼭 갚아주겠다고 다짐했다.


작가의말

김영배란 이름이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건 청연만의 생각일 뿐입니다. 


글쓴이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


재밌게 보셨다면 선작과 추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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