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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환 님의 서재입니다.

기점의 마왕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주환
작품등록일 :
2015.07.26 23:30
최근연재일 :
2015.09.05 23:33
연재수 :
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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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8,328
추천수 :
14,219
글자수 :
166,684

작성
15.07.2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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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6
글자
10쪽

첫판부터 끝판왕(3)

DUMMY

“오빠, 오늘 헌터 동기들이랑 모임 있다고 하지 않았어?”


이틀 뒤, 가족들이 전부 모인 저녁식사에서 청연과 4살 차이의 여동생 세연이가 질문해 왔다. 그 말에 청연의 부모님들도 의아한 눈으로 청연을 바라봤다. 청연은 당황해서 물고 있던 젓가락을 씹을 뻔했다. 실망이 너무 커서 가족들에게 오늘 모임이 있다고 얘기했던 걸 깜빡했던 것이다.


“아, 그거…취소 됐어요.”

“그래?”


청연의 힘없는 대답에 부모님들은 이상하단 표정을 지었다. 세연이가 다시 질문했다.


“왜?”

“몰라. 갑자기 내일로 미뤄졌어.”


아버지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별 일 아닌 거지?”


걱정에 속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지만 청연은 애써 태연한 척 밝게 웃었다.


“하하, 그럼요. 아직 던전은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어요? 그냥 내일로 미뤄진 거예요.”


그동안 청연이 오랜 기간 헌터가 되지 못하고 고생하는 걸 보며 덩달아 마음고생이 심했던 부모님들이었다. 청연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부모님들만큼은 절대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았다.


“알았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래요. 청연이가 알아서 잘 하겠지. 그나저나 여보, 어제 보니까…”


부모님들은 청연이 헌터가 되고 난 뒤 전적으로 청연을 신뢰했다. 그래서 더 이상 캐묻지 않고 하던 잡담을 나누며 저녁식사를 계속했다. 그런 부모님들을 보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청연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자신의 방으로 잽싸게 돌아왔다.


‘으, 내일은 나가서 책방에라도 처박혀 있어야겠군.’


그때 세연이가 청연의 뒤를 졸졸 쫓아 방으로 따라 들어왔다.


“야, 왜 들어와? 나 혼자 있고 싶으니까…”


세연은 방문을 닫고 나서 밖의 부모님들이 듣지 못하게 조용히 말했다.


“이제 진짜로 말해봐. 뭐가 문제야?”

“뭐, 뭐가?”


당황하는 청연에게 세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안 그래도 고양이상인 얼굴이 눈을 가늘게 뜨자 더욱 새치름해졌다.


“요 이틀 동안 오빠 좀 이상했어. 헌터 되고 나서는 시도 때도 없이 바보처럼 히죽거리더니 그러지도 않고.”


청연은 움찔했다. 역시 아닌 척 해도 티가 나는 모양이었다. 세연이가 알아챌 정도라면 부모님들도 당연히 눈치 챘을 것이다. 청연이 아닌 척 하니까 부모님들도 모른 척 넘어가주시는 것이겠지.


“혹시 오빠… 또 저번처럼 따돌림 같은 거 당하는 거야? 동기 헌터들한테? 오빠보고 오늘 오지 말래?”

“뭔 소리야!”


청연은 기가 막혔다.


“내가 언제 따돌림 당했냐?”

“오빠 예전에 학원에서 괜히 나섰다가 왕따 당해서 혼자 궁상떨면서 지냈잖아. 밥도 맨날 혼자 먹고. 결국 학원도 옮기고”

“따돌림 당한 게 아니라 내가 무시한 거라고.”

“…그게 바로 따돌림 당한다는 거야.”


세연은 ‘에헴’ 하고 헛기침 소리를 낸 뒤, 청연의 침대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침대를 리듬감 있게 팡팡 두드렸다.


“자, 가슴 아픈 옛날 얘기는 이쯤하고. 이 믿음직하고 똑똑한 동생한테 다 털어놔봐. 무슨 일인데 그래?”


청연은 쓴 웃음을 지었다. 안 그래도 누군가와 상담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잘됐다 싶어서 청연은 모든 사실을 털어놨다. 이야기를 전부 들은 세연은 혀를 찼다.


“역시 오빠, 쩔어…”

“왜?”

“늘 운이 억세게 없다니까. 재수 없는 인생의 표본이라고나 할까?”

“야이, 씨.”


세연은 혀를 쏙 내밀었다.


“헹, 헌터가 민간인 치면 바로 콩밥이야.”


세연은 그쯤에서 청연을 놀리는 걸 멈추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그래서 어떡하려고?”

“보름 뒤에 다시 던전 들어가 보고, 또 똑같은 증상이 나타나면 그때는 헌터 협회에 버그 플레이어로 보고해야지.”

“그 렉스인가 뭔가 하는 기계가 고장 난 거 아냐?”


그건 당연히 청연도 맨 처음으로 떠올렸던 생각이었다.


“바로 헌터 협회 가서 정밀 검사 받아봤는데 멀쩡하대. 그래도 혹시나 해서 새 걸로 바꿔왔어.”


혹시 헌터 협회에서도 감식 못한 기계 고장이 있을까봐, 이유 없이는 안 바꿔준다는 걸 청연이 억지를 부려서 굳이 바꿔왔다.


“흠…”


더 이상 생각나는 게 없자 세연은 자신의 단발머리를 손가락으로 비비 꼬았다.


“이런 오류가 자주 일어나는 거야?”


청연은 단호하게 말했다.


“절대 아니지.”


세연은 입술을 삐죽였다.


“안타깝지만 내가 아는 게 없으니까 이래라 저래라 조언 해줄 수도 없네. 오빠가 알아서 해. 이젠 위풍당당한 헌터님인데다가 나이도 계란 한판인데, 자기 앞길은 자기가 헤쳐 나가야지.”


세연에게 딱히 해결책을 기대한 것도 아니기에 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이렇게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이 됐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엄마 아빠 걱정시키지 않으려면 표정 관리나 좀 잘하라는 거야. 오빠 지금 완전 우거지상이야.”

“그러냐?”

“응, 헌터 되기 전에 쭈구리 같던 오빠 같아.”


쭈구리라는 말에 청연은 피식 웃었다. 하지만 곧 한탄을 내뱉었다.


“간신히 헌터가 됐는데 왜 나는 처음부터 왜 이렇게 꼬이냐? 진짜 네 말대로 재수가 없나?”


세연은 싱긋 웃으며 청연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잘되겠지. 9년이나 노력해서 된 헌터잖아. 오히려 시작부터 평범하지 않은 게 유니크해 보여서 좋네. 인생사 새옹지마라잖아. 지금은 힘들어도 나중에 이 경험 때문에 더 좋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

“어째 말하는 게 네가 내 누나 같다?”

“헤헤, 원래 내가 오빠보다 정신 연령은 두 배 높잖아.”


그리곤 덧붙였다.


“어찌됐든 내 헤르메스 가방 사주기로 한 약속은 절대 잊으면 안 돼?”

“나가.”


세연은 넉살 좋게 헤실헤실 웃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손뼉을 쳤다.


“참, 리니아를 봤다고? 여태까지 던전 보스들을 만나본 헌터는 하나도 없다며?”

“나도 그렇다고 들었어.”

“그럼 이거 엄청 대단한 거 아냐?”

“어…그러고 보니 그런가?”


손해 본 것에만 신경쓰다보니 미처 떠올리지 못했는데, 생각해보니 자신은 최초로 던전의 보스를 두 눈으로 직접 본 헌터였다. 가장 공략이 많이 된 레드라인의 최종보스인 빈센트도 아직 그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다.


“뭐, 그게 진짜 리니아라는 확신은 없으니까.”

“어떻게 생겼어? 완전 무섭게 생겼나? 막 혐오스러워? 이마에 뿔났어?”


세연이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피팅 모델이 직업일 정도로 외모가 출중하다 보니 그렇게 동경하듯이 올려다보자 제법 귀엽게 느껴졌다.


“음…섹시하던데?”

“섹시? 여자야?”

“응. 마왕만 아니면 완전 내 스타일.”

“…가슴 큰가 보구나?”


청연은 피식 웃고는 자신이 본 리니아에 대해 자세히 묘사해줬다. 세연은 좋은 청자였다. 리액션도 좋고 궁금한 건 자세히 물어보기도 했다. 두 남매는 한참 대화를 나눴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청연은 답답했던 게 많이 수그러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마 세연도 이런 효과를 노리고 대화해준 것이리라. 평상시엔 건방지고, 약 올리고, 칭얼거리기만 하지만, 그래도 역시 착하고 좋은 동생이라고 청연은 생각했다.



***



어영부영 보름이 지났다. 청연은 긴장으로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썼다.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조금도 믿지 않았던 신들에게 절실하게 기도했다.


‘하느님. 부처님. 앞으로 교회랑 불교 동시에 다니면서 꼬박꼬박 헌금하겠습니다. 이젠 부모님께 효도하고 동생한테 멋진 오빠 소리 듣는, 사람답게 사는 헌터가 되고 싶어요. 그러니 제발요!’


헌터가 되기 전에는 오히려 초연한 편이었다. ‘신은 없다.’ 라는 것이 청연의 본래 생각이었다. 그러나 막상 헌터가 되고 이렇게 예상치 못한 사고를 겪자 오히려 더욱 간절해졌다. 원래 가지지 못한 것보다 가졌다가 뺏긴 것에 더욱 미련이 남는 법이었다.


기도를 마친 청연은 심호흡을 크게 하고는 렉스의 옆구리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뜨자 거기에 맞춰 아이디를 입력하고, 지문을 인식시키고, 입장할 던전을 선택했다. 이번에도 청연이 선택한 던전은 빈센트의 레드라인이었다.


『지금 바로 던전에 입장하시겠습니까? Y/N』


처음의 호쾌함과는 달리 한참을 망설이던 청연은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Y를 눌렀다. 저번과는 달리 이상한 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리지 않았다.


‘역시 저번은 단순 오류였나?’


약간의 변화에 청연은 희망을 가졌다. 만약 레드 라인에 제대로 입장만 한다면 처음 만난 몬스터의 손을 잡고 기쁨의 캉캉 춤이라도 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야가 어두워지자 청연은 가슴을 졸이며 눈앞이 밝아지길 기다렸다. 눈을 몇 번 깜빡이자 금세 다른 공간이 눈앞에 나타났다.


“아!”


워프된 청연은 비명 같은 한탄을 내뱉었다.


“또!”


저번에 왔던 그곳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청연은 울 것 같은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너…저번에 그 놈?”


여전히 아름다움과 차가움을 동시에 뽐내는 리니아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청연을 쳐다보고 있었다. 청연은 허둥지둥하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저기, 일단 좀 진정하시고…”


리니아는 냉정하게 손을 휘저었다.


퍽!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의해 벽에 짓눌린 청연의 전신이 곧 으스러지기 시작했다.


‘아, 씨발…’


푸칵!


또 죽었다. 이번엔 저번보다도 더 빨랐다. 정확히 35초 만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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