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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환 님의 서재입니다.

기점의 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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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환
작품등록일 :
2015.07.26 23:30
최근연재일 :
2015.09.05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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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5.08.12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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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헌터를 낚는 어부가 되거라 (3)

DUMMY

청연의 계획은 간단했다.


슬라임들의 산성액은 강력한 편이다. 하지만 너무 느려서 헌터들에게 그 강력한 산성액을 묻힐 수가 없다. 결국 슬라임들은 공격 한번 못한 채 헌터들한테 일방적으로 얻어터지기만 한다.


‘그럼 헌터들이 슬라임에게 먼저 꼬라박게 하면 되지 않을까?’


물론 헌터들이 미쳤다고 그렇게 해줄 리가 없었다.


‘역시 함정을 파는 수밖에 없나.’


사실 생각해보면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기도 했다. 레벨은 마이너스에 무기 하나 없었으니 정면 승부 같은 건 도저히 불가능했다. 그래서 청연은 함정을 만들기로 했다.


함정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건 네 가지였다. 하나는 덫을 파기에 적합한 환경, 둘째는 만든 함정을 가릴 위장, 셋째는 헌터를 낚을 미끼, 마지막으로 슬라임들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통솔권.


환경은 더 없이 좋았다. 동굴 안은 어두워서 사물을 식별하기 어렵고, 일직선으로 쭉 이어져서 다시 뒤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함정에 무조건 맞닥뜨리게 되어 있다. 경사가 가팔라서 사각지대도 많았다.


또 청연의 위조 능력으로 슬라임들을 바닥의 진흙과 비슷한 색으로 위장할 수 있었다. 진흙과 슬라임은 번들거리는 질감도 비슷해서 얼핏 봐선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세밀한 위장이 가능했다.


미끼도 있었다. 킹 슬라임의 이름을 들으면 웬만한 헌터들은 그냥 지나치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슬라임들의 통솔권. 이게 좀 문제였다. 청연은 그룹 신청을 해온 슬라임들과 전부 그룹을 맺고, 나머지 슬라임들도 보이는 즉시 렉스를 들이대고 그룹 신청을 했다. 그렇게 동굴 안 대부분의 슬라임들과 그룹을 맺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청연은 급격한 경사로가 끝나는 곳이 무의식적으로 풀쩍 뛰어내리기 좋은 위치란 것을 간파했다. 그래서 그곳을 맨손에 투기를 담아 땀을 뻘뻘 흘리며 허벅지 높이의 넓은 함정을 팠다. 그 짓을 하느라 온몸이 진흙투성이가 됐다.


거의 작은 연못 수준으로 함정을 판 뒤 그룹 맺은 슬라임들을 거기에 우르르 몰아넣었다. 하지만 슬라임들은 갑갑했는지 곧 버둥거리며 함정 밖으로 사방팔방 튀어 나왔다. 이 조그만 녀석들은 전혀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서 청연으로썬 통제가 불가능했다.


청연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슬라임들이 청연의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이 계획은 초기단계에서부터 완전 나가리였다.


“야. 너 얘들 좀 어떻게 할 수 없어? 명령이라던가, 조종이라던가?”


다행히도 이 문제는 킹 슬라임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다. 슬라임들을 계속 안으로 밀어 넣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던 청연은 혹시나 싶어 킹 슬라임에게 물었다.


“조종?”

“그래, 여기에 좀 가만히 있어보라고.”


킹 슬라임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왜?”

“할 수 있어?”

“있지. 난 왕이니까.”


그리고 자신의 위대함을 알아달라는 듯이 흥흥 하는 소리를 냈다. 청연은 무시하고 말했다.


“그럼 여기 가만히 좀 있다가 뭔가 닿으면 바로 산성액 내뿜어서 녹여버리라고 말 좀 해줘.”

“내가 왜?”


확실히 킹 슬라임이 청연의 청을 들어줄 이유는 없었다. 청연은 약간 고심하다 말했다.


“너 고기 먹어봤어?”

“고기? 조금.”

“고기 먹고 싶지 않아? 헌터 고기.”

“…별로.”


청연은 고기란 말에 킹 슬라임의 몸이 살짝 떨리며 솔깃해하는 걸 눈치 챘다. 비만인들은 대부분 고기를 좋아하기 마련이었다.


“헌터 고기 엄청 맛있는데.”


킹 슬라임은 더 참지 못하고 덥석 물었다.


“그렇게 맛있어?”

“완전 야들야들하고 부드러워. 그냥 살살 녹아. 저런 푸르딩딩한 버섯이랑은 차원이 달라.”


킹 슬라임이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먹어 봤어?”

“…차마 먹어보진 못했지만 아무튼 버섯보단 맛있다는 건 장담한다.”

“그래, 고기는 다 맛있어.”


킹 슬라임은 육중한 몸을 이쪽저쪽 갸우뚱하며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어떻게 먹여줄 건데?”

“일단 얘들 좀 모아봐.”


킹 슬라임은 청연이 시키는 대로 슬라임들을 모았다. 백 마리가 넘는 형형색색의 슬라임들이 쪼르르 모여서 킹 슬라임과 접촉했다. 그리고 몸의 일부를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눈 후 순순히 청연이 파놓은 곳으로 들어갔다.


청연은 함정 안에 들어간 슬라임들을 위조 스킬로 전부 진흙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위조 스킬만으로 부족한 곳은 진짜 진흙을 덮어서 메웠다. 그 후에도 이것저것 다른 함정을 파놓은 청연은, 만반의 준비를 갖춘 후 헌터들을 낚기 위해 집결지로 향했던 것이다.


***


청연은 덫에 빠져 몸부림치는 헌터들을 무표정하게 바라봤다. 비록 좋은 놈들은 아니었지만 같은 인간으로써, 신체가 녹아내리는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헌터들의 모습은 동정심과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는 개뿔! 통쾌 그 자체였다!


‘크, 사이다네, 사이다. 3년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는 것 같다. 더욱 더 고통스럽게 울부짖어라. 이 썩은 귤 같은 양아치 헌터 놈들아.’


어차피 진짜 죽는 것도 아니고 고통도 잠깐이다. 잃는 것은 경험치와 아이템 뿐. 게다가 이놈들은 기회만 되면 청연 뒤통수를 치려고 했었다. 불쌍하게 생각할 필요가 눈곱만큼도 없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기를 친 건데 왠지 좋은 일을 한 것 같은 뿌듯함까지 느껴지는군.’


청연은 팔짱을 낀 채 헌터들이 죽어가는 걸 그윽한 눈빛과 만족스러운 미소로 감상했다.


‘슬라임들. 장난 아니게 잘 녹이네. 몇 마리 데려가서 번식시킨 다음에 쓰레기 소각장 차리면 성공하겠어.’


물론 불가능한 일이다. 던전의 생물들은 원래 세계로 건너올 수 없다. 그게 가능했다면 벌써 다른 헌터들이 여러 몬스터를 생포해서 다양한 용도로 써먹었을 것이다.


‘그나저나 걱정했던 것보다 너무 간단하네.’


사실 청연은 헌터들을 끌고 오면서도 내내 가슴이 쫄려 혼났다. 들키면 어떡하나, 함정 안 밟으면 어떡하나, 밟아도 안 죽고 살아나오면 어떡하나, 한명만 밟고 나머지들은 안 밟으면 어떡하나…온갖 걱정과 돌발 상황이 머릿속에서 불안하게 맴돌았다.


그래서 청연은 바보 시늉까지 내면서 헌터들을 안심시켰다. 있지도 않은 고블린을 언급해서 슬라임에 대한 방비를 약화시켰고, 헌터들이 경사로를 내려올 때 조금이라도 신경을 분산시키기 위해 큰소리로 계속 말을 걸었다. 또 이것이 파훼되거나 한명만 밟을 경우를 대비해서 이 뒤에도 이중, 삼중으로 덫을 파놨었다.


다행히 이런 우려와 달리, 이 멍청한 헌터들은 사이좋게 나란히 손잡고 슬라임이 우글대는 함정에 다이빙 해줬다. 그리고 슬라임들은 예상치 못한 강한 화력(?)으로 헌터들을 땡볕의 아이스크림처럼 순식간에 녹여버렸다.


‘하긴, 생각해보면 저들도 초보니까. 허술한 게 당연한 건가?’


만약 조금만 경험이 있는 헌터라면 저런 식으로 손잡고 뭉쳐서 돌아다니진 않을 것이다. 또 상대방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그룹을 맺든 안 맺든 프로필은 무조건 확인했을 거고. 1차 전직을 해서 서포터가 있었다면 감지 스킬로 함정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운 좋게 넘어가서 다행이다.”


잠깐 사이에 헌터들은 모두 녹아 뼛조각 하나 없이 사라졌다. 오직 그들이 남긴 아이템만 반짝거리며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아쉽게도 떨구는 아이템은 랜덤이라 대부분 보조 장비들 뿐이었다. 하지만 그 중엔 청연이 예전에 쓰던 OTD삼단봉도 하나 있었다. 제일 말이 없던 헌터가 들고 있던 무기였다.


‘불쌍한 놈, 그래도 다른 놈들이 나 비웃을 때 혼자 묵묵히 있어서 그나마 동정이 갔던 놈이었는데 하필 그 놈이 제일 비싼 무기를 떨궜냐? 하여튼 사람 팔자라는 게 참…’


운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이다. 평범한 초보 헌터인 청연이 지금 이렇게 인생 방향이 송두리째 바뀐 것처럼. 평생 선하게 살아도 전 재산을 사기 당하고, 평생 악하게 살아도 한 번의 고생 없이 승승장구할 수도 있는 불합리함의 극치.


청연은 어깨를 으쓱이곤 아이템을 줍기 위해 슬라임들에게 다가갔다. 근데 렉스에서 레벨업을 알리는 신호음이 울렸다.


‘어라? 헌터들 잡았다고 레벨업 한 건가? 이제 나도 완전히 몬스터1 취급이로군.’


몬스터를 잡으면 경험치가 떨어지니, 반대로 헌터를 잡으면 경험치가 오르는 게 타당한 것 같긴 했다. 그나마 마이너스 레벨로 평생 살아야 되는 건 아닌 게 밝혀져서 또 한시름 덜었다.


‘1렙으로 복구 됐으려나… 0렙은 아니겠지?’


거의 100마리가 넘는 슬라임, 그리고 킹 슬라임과 그룹을 맺어 경험치를 나눠먹었다. 그리고 상대는 고작 초보 헌터 넷 뿐. 경험치가 많이 올랐을 것 같진 않았다. 청연은 큰 기대감 없이 렉스를 꺼내 확인했다.


“엑?”


렉스의 화면을 본 청현은 깜짝 놀라 탄성을 터뜨렸다.


[레벨업하셨습니다]

[레벨업하셨습니다]

[레벨업하셨습니다]

[레벨업하셨습니다]

[레벨업하셨습니다]

[레벨업하셨습니다]


‘뭐 이렇게 한 방에…’


청연은 또 버그인가 싶어 다급히 프로필을 확인했다.



이름: 김청연

소속: 리니아의 탑

길드: 없음

직업: 리니아의 노예(계약직)

레벨: 5

기술: 변장[초급], 위조[초급]

특기: 친화, 교류


체력: 202 투기: 82 마력: 0 힘: 23 학습: 10 민첩: 16



버그가 아니었다. 마이너스 레벨이 순식간에 5렙까지 치고 올라와 있었고, 스텟도 레벨에 걸맞게 대폭 상승됐다. 청연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대박…”


청연은 정말 오랜만에 진심으로 기분이 날아갈 것처럼 좋아졌다. 내심 이렇게 평생 쪼렙에 바보 흉내 해가면서 초보 헌터들이나 낚고 살아야 되나 걱정이 됐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보다 헌터들을 사냥하는 게 훨씬 노다지였다. 몬스터 사냥이었으면 이틀은 꼬박해야 달성할 레벨을 한방에, 그것도 너무나 손쉽게 이뤄낸 것이다.


이 정도 속도라면 김영배와 정승환에게 빠른 시일 내에 복수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헌터들 중에서 가장 레벨이 높은 헌터, 즉 가장 강한 헌터가 될 가능성도 충분했다.


몇 번이나 프로필을 다시 봤지만 감동은 전혀 희석되지 않고 매번 새롭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오랜만에 진심으로 몸 전체에 열정이 이글거리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진 반쯤은 체념한 상태로 어쩔 수 없이 헌터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청연 스스로가 헌터들을 사냥하려는 의욕에 가득 차 있었다. 청연은 주먹을 불끈 쥐며 중얼거렸다.


“헌터들아, 좀만 기다려. 이 형아가 너희들 다 털어줄게.”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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