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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환 님의 서재입니다.

기점의 마왕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주환
작품등록일 :
2015.07.26 23:30
최근연재일 :
2015.09.05 23:33
연재수 :
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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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8,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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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19
글자수 :
166,684

작성
15.08.01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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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마왕에게 살아남는 방법! (1)

DUMMY

“아오, 머리…”


늦은 오후. 청연은 숙취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잡고 일어났다. 어제 자신이 술에 취해 했던 말과 추태 등을 떠올리자 창피해서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으, 혼자 마셔서 다행이지. 누구랑 같이 있었으면 이불킥 10년치 감이었네.’


청연은 좀비처럼 비틀거리며 거실로 나왔다. 집엔 청연 혼자였다. 부엌 식탁 위엔 어머니가 끓여둔 걸로 보이는 콩나물국이 있었다. 해장하라고 일찍 일어나서 끓여놓고 일하러 나가신 모양이다. 술 취해서 들어온 못난 아들, 굳이 챙겨주는 부모님의 정성에 청연은 약간 찡해졌다.


‘정신 차리자. 김청연!’


어젯밤 술에 취해서 오글거리는 말들을 늘어놓긴 했지만 그 결심만큼은 진짜였다. 이제 남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었다. 그것이 간신히 된 헌터를 포기하게 되는 것일지라도.


일단은 화장실로 가서 샤워부터 했다. 몸 구석구석을 박박 문지르며 닦고 덥수룩한 수염도 말끔히 깎아냈다. 건강한 육체에 맑은 정신이 깃든다는 말처럼, 몸이 청결해지자 정신도 한결 맑아지는 것 같았다.


씻고 난 다음엔 부엌으로 와서 콩나물국을 다시 데웠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콩나물국을 보니 입에 저절로 침이 고였다. 청연은 뜨끈한 콩나물국에 고춧가루를 설설 뿌린 뒤 거기에 밥을 말아 먹으며 천천히 생각했다.


‘자, 상황을 다시 하나하나 되짚어보자.’


스스로의 힘으로 이 난관을 타개한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실제로 행하기엔 무척이나 어렵다. 지금 청연이 처한 상황 중에서 청연 개인의 힘으로 변화를 꾀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마왕에게 바로 워프되는 버그는 고칠 방법조차 몰랐고, 닫힌 연구소를 억지로 개방해서 버그를 고치라고 할 수도 없었다. 생면부지의 헌터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고, 요청해도 전혀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도 깨달았다.


하지만 이 악조건들과 상관없이 청연의 힘만으로도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가 딱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 존재는 지금의 암울한 상황을 단박에 역전시킬 수 있는 힘도 지니고 있었다. 그건 바로…


‘마왕 리니아.’


버그 때문이지만 어쨌든 리니아는 청연이 직접 마주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리고 리니아는 분명 청연과 같은 언어를 사용했고, 몇 마디뿐이지만 대화도 주고받았다. 대화가 통한다는 건 자신의 의도를 상대방에게 전할 수 있고, 한발 더 나아가선 설득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청연은 그녀와 대화를 나눠 설득시킨다는 건 생각조차 안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리니아와 청연은 상생이 불가능한 관계였기 때문이다.


헌터라는 존재들은 던전의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마정석을 쓸어 모으는 게 일이다. 따라서 헌터인 청연에게 몬스터들의 정점인 마왕 리니아는 절대 악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타협이 전혀 불가능한, 죽이거나 죽거나, 혹은 피해야 할 존재.


리니아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을 터였다. 부하(?)들을 때려눕히고 마정석을 강탈해가는 존재인 헌터와 대화를 나눌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녀 입장에서 헌터는 보이면 즉시 눌러 죽여야 할 해충과 같은 존재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청연이 헌터였을 때의 이야기였다. 만약 청연이 헌터가 되기를 포기한다면, 즉 몬스터들을 사냥하지 않는 보통 인간으로써 리니아와 마주한다면… 지금처럼 일방적인 죽임을 당하는 관계가 아닌, 좀 더 온화한 관계를 맺게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헌터를 포기하여 리니아와 대립해야 할 이유를 없앤다. 그리고 리니아를 설득시켜서 죽임당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청연이 세운 계획을 이루기 위해 달성해야 할 첫 번째 과제였다.


생각을 여기까지 정리한 청연은 씁쓸한 표정으로 콩나물국을 후르륵 들이켰다.


‘근데 문제는 어떻게 리니아를 설득시키느냐지.’


사실 리니아를 설득시킬 말도 어느 정도는 생각해둔 바가 있었다.


진짜 문제는 리니아가 청연을 보이는 즉시 죽인다는 점이었다. 일단 대화가 성립이 되야 설득을 하든지 욕설을 내뱉든지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첫 만남 때를 제외하곤 리니아는 청연과 대화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워프하자마자 바로 죽이려고 할 텐데.’


청연이 리니아의 방에 워프되고, 리니아가 그걸 죽이는데 걸리는 시간은 기껏해야 2~3초 남짓했다. 청연의 갑작스런 등장에 당황하던 리니아도 이젠 익숙해졌는지 죽이는 속도가 갈수록 더 빨라졌다.


이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든 리니아를 설득시켜야 했다. 최소한 눈에 띄자마자 죽이는 것만큼은 중지시켜야 했다. 물론 거기에 물리적으로 저항할 방법 따위는 전혀 없었다. 청연과 마왕의 힘의 격차는 코끼리와 개미 그 이상이었다. 어디까지나 리니아 스스로 힘을 거두게 해야 했다.


‘실패하면 바로 죽는다.’


리니아에게 한방에 죽었던 기억들이 떠오르자 기가 죽었다. 죽을 때의 고통과 온몸의 뼈가 으스러지는 끔찍한 감각은 뇌리에 박혀 쉽사리 잊히지 않았다.


“…벌써부터 힘 빠지면 어떡하냐!”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시무룩해지려는 자신에게 흠칫한 청연은 고개를 크게 내저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북돋기 위해 힘차게 외쳤다.


“까짓 거! 진짜 죽는 것도 아닌데 해보자고!”


9년이란 기간 동안 오로지 헌터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만약 10년이 걸려 헌터가 될 운명이었다면 10년 동안 노력했을 거고, 20년이 걸릴 운명이었다면 20년을 노력해서 헌터가 됐을 것이다. 근성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두들겨라! 언젠간 열릴지어니!


생각을 마친 청연은 콩나물국을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그리고 설거지를 하면서 마왕과 대화를 이끌어낼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설거지를 마치고도 한참을 생각하던 청연은 마침내 한 가지 방법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극히 평범하고 기발하지도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가장 효과적일수도 있는 방편이었다. 무엇보다 리니아에게 싸울 의사가 없다는 점을 보여주기엔 이만한 것도 없었다.


‘좋아, 바로 시도해보자!’


청연은 처음 던전에 입장했을 때처럼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즉각 행동에 들어갔다. 렉스를 가동시키고 모든 절차를 마치자 익숙해진 어둠이 청연을 감쌌다.


***


탑의 꼭대기 층.


리니아는 눈을 감은 채 거대한 왕좌에 온 몸을 기대어 앉아 있었다.


얼마나 긴 시간동안 그렇게 있었을까?


꼼짝도 않고 있던 리니아의 미간이 살짝 찡그려졌다. 무언가가 자신의 공간을 억지로 비집고 들어오려고 하는 게 마력장에 포착됐다. 이 느낌은 익숙했다. 리니아는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동작으로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또 그 놈인가…”


이상한 일이었다. 처음엔 다른 곳에 신경 쓸 일이 많아 대충 죽이고 결계를 강화하는 정도로만 그쳤다. 하지만 그 헌터는 자꾸 결계를 무시하고 자신의 공간 가장 깊숙한 곳인 이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헌터가 스스로의 힘으로 결계를 통과해오는 것 같진 않았다. 헌터의 능력은 보잘 것 없었다. 끽해야 슬라임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쳐놓은 결계를 마치 없는 것처럼 자유로이 통과해오는 건 꽤나 경계심을 자극시켰다.


‘설마…발륜의 짓인가?’


자신의 결계를 무시하고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는 존재는 발륜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가 이런 짓을 벌일 이유가 전혀 없었다.


‘모르겠군.’


리니아는 생각을 관두고 우선 자신의 공간에 침입해오는 자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곧 리니아의 방 한쪽 공간의 성질이 바뀌며 낯선 이계의 물질이 침범해오기 시작했다. 역시 그 헌터 놈이었다. 리니아는 모습이 드러나는 즉시 없애버리려고 손에 마력을 모았다. 울렁거리던 미지의 공간에서 마침내 헌터가 리니아의 공간으로 완전하게 전이되었다.


“?”


마력장을 쏘아내려고 했던 리니아의 손이 움찔하며 멈췄다. 헌터는 나타나자마자 즉시 땅에 철퍼덕 엎드렸다. 그리고 손과 발 머리를 땅에 붙이고, 슬라임처럼 몸을 동글게 움츠린 자세를 취한 뒤 꼼짝도 하지 않았다.


‘…뭐지?’


리니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


이게 바로 청연이 한참을 고민한 끝에 떠올린 방법이었다.


부처님도 갸륵해하실 완벽한 오체투지의 자세로 시작부터 꿇고 들어가기! 대항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걸 보여주는 완벽한 순종과 굴종의 자세로 경계심과 공격 의지를 꺾는다!


마왕도 왕이다. 나름 왕이라 불릴 정도면 그만한 힘과 권위, 그리고 품격을 갖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리니아가 왕의 품위란 걸 안다면, 굴복하는 태도를 보이는 상대를 바로 쳐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라고 청연은 멋대로 추측했다.


너무 굴욕적인 자세와 태도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자신과 리니아의 격차를 생각해보면 이 정도가 딱 좋았다. 굴욕이든 뭐든 간에 일단 살아남아 리니아와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게 중요했다.


청연은 오체투지의 자세를 유지한 채 초조하게 리니아의 반응을 기다렸다. 과연 청연의 예상이 맞았는지 예전과는 달리 5초가 넘게 지났는데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성공?’


청연은 고개를 슬그머니 들어보였다. 마왕 리니아가 눈살을 찌푸린 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좋아!’


성공이라고 생각한 청연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리니아님, 제가 드릴 말씀이…꽥!”


순간 덤프트럭을 등에 올려놓은 듯한 엄청난 압력이 청연을 짓눌렀다. 청연은 돌에 깔린 개구리처럼 땅에 짓눌리면서 생각했다.


‘야이씨, 죽일 거면 빨리 죽이지. 괜히…’


‘…설레이게 하고 있어.’ 라는 생각을 끝마치기도 전에 청연은 또 죽었다.


작가의말

재밌게 보셨다면 선작과 추천 부탁드립니다~


비축분 없이 그날 그날 연재하려니까 죽겠네요; 역시 미리 좀 써놓고 연재를 시작했어야 했는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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