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화룡점정(畵龍點睛)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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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굴에서 내력과 체력을 어느 정도 회복하고 나온 위현룡과 허혜린은 곧바로 마교 무사들이 포진하고 있는 서쪽으로 내달렸다.
달리는 와중에 문득 홍후인이 이런 말을 꺼냈다.
[근데 말이다...귀혼환령검 비급에 귀혼심법의 마지막 경지가 10성이라고 적혀있다만...정말 10성이 다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구나. 어째서 귀혼심법의 12성은 존재하지 않을까...]
위현룡은 그가 뜬금없이 12성을 운운하자 자신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분명 귀혼환령검 비급 귀혼심법편에 보면 12성에 대한 언급은 없었던 것이다.
그때 홍후인이 조그마하게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언젠가 소림사에서 만났던 두 명의 괴짜 늙은이들이 해댄 소리가 마음에 걸리는구만. 특히 추악한 얼굴을 가지고 있던 땡중이 언급했던 무(無)와 유(有)의 경지는 귀혼심법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 분명한데...]
위현룡은 얼마 전 소림사에서 만났던 두 사람을 기억하였다.
그들의 내력은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것은 그들은 절세무학을 지니고 있는 기인(奇人) 중에 기인이라는 것이었다.
근데 홍후인의 중얼거림을 듣고 있자니 뭔가 이상했다.
(귀혼심법에 관련된 무(無)와 유(有)에 대한 이론은 선배님께서 밝혀내신 것이 아니었던가?)
홍후인은 혼자 고심을 거듭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그 땡중이 귀혼심법에 대한 심오한 뜻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거참....만약 내가 그들이 주고받던 대화를 듣지 못했더라면 어쩔 뻔했느냐! 귀혼심법의 난해한 문구를 생각하자면 정말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구나. 어쩌면 마지막에 그들이 언급한 대화들이 내력이 소모되는 귀혼심법의 약점을 보완해줄 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그 늙은이들을 다시 한번 만나봐야 할 필요성이....아차!]
순간 정신이 번쩍 난 홍후인은 혼비백산하여 자신의 입을 두 손으로 꽉 틀어막았다.
당시 귀혼심법의 난해한 구절을 마치 자신이 깨달은 것처럼 자랑스럽게 늘어놓았다는 것을 깜박 잊었던 것이다.
그때 위현룡이 얼마나 자신을 우러러보고 존경심을 보였던가.
식은땀을 흘리던 홍후인은 슬쩍 위현룡의 눈치를 보았다.
그러나 위현룡은 아무런 내색도 없이 허혜린과 함께 경공을 전개하고 있을 뿐이었다.
[현룡아...내 말 알아들었느냐? 무슨 소리인지 이해 못했지? 별 소리 아니니까 염두에 두지 말거라. 내가 실수로 아무런 상관도 없는 놈들을 입에 올렸구나.]
위현룡의 얼굴에 별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으므로 홍후인은 겨우 한숨 놓았다.
하긴 위현룡은 그때 기절해 있었으니 자신의 말을 이해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홍후인은 억지로 이렇게 단정지었다.
그러나 그는 모르고 있었다.
위현룡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졌음을...
** **
그들은 서쪽방향을 가늠하면서 막연하게 달려나갔다.
협철곡은 험난한 지형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말이 서쪽이지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지형적 장애물은 그들이 어쩔 수 없게 우회하도록 만들곤 하였다.
그 때문에 간혹 척후(斥候)를 위한 대천무사들이 출현하여 예기치 않게 조우(遭遇)하게 되면 그들은 필사적으로 뚫고 지나갔다.
"서쪽이 아닌 것 같아요."
불안해진 허혜린의 말이었다.
"조금만 더 가보다가 적들의 수가 많아지면 그때 방향을 틀어도 늦지 않습니다."
위현룡은 서쪽으로 갈수록 대천무사들이 출현하는 수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음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에서 정체 모를 무사 세 명이 튀어나왔다.
[앗! 이 놈들이 어떻게!]
주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적들의 출현이나 암습을 미리 일러주고 있던 홍후인은 깜짝 놀랐다.
위현룡은 재빨리 검을 뽑아들고 적들이 공격해오기도 전에 먼저 몸을 날렸다.
"잠시만!! 저희는 적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 자리에 부복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위현룡은 무슨 일인가 싶어 공격을 거두고는 일장 뒤로 물러났다.
"당신들은 누구시오?"
위현룡이 약간의 방심도 풀지 않은 채 물었다.
"저희들은 종덕휘대협과 유원학대협의 수하들인데 이곳에 잠복을 하면서 소교주의 행방과 적들의 기습을 알리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그럼 그렇지....잠복을 하고서 숨을 죽이고 있었으니 내가 알아채지 못했던 것 아니겠느냐.]
홍후인은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여 암습을 알아채지 못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은근히 강조하였다.
"정말 종덕휘 대협의 수하인가요?"
허헤린은 유원학을 한번도 만난 적이 없기에 종덕휘만을 언급하면서 물어보았다.
"그렇습니다! 소인은 전에 단대인의 수하였기에 소교주를 가까이서 뵌 적이 몇 번 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소교주가 지나치는 것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 뻔했습니다."
"그럼 현재 마교는 어디에 있는 것이오?"
혹시나 계략일까 싶어 위현룡이 슬쩍 물어보았다.
"지금 소교주와 대협께서 향하시는 길이 맞습니다. 현재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유원학대협이 이끄시는 중군(中軍)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위현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방향을 속이지 않는 것을 보니 확실히 아군이었던 것이다.
[유원학이라는 자(者)가 제법 병법을 알고 있구나. 주둔을 할 때는 일정거리를 두고 사방에 무사들을 잠복시켜서 적들의 기습을 인지하는 것이 당연지사이지. 그런 점에서 마교가 이런 인물을 수장으로 두었다는 것은 대단히 마음에 놓이는 일이다.]
홍후인이 다행이라는 어투로 유원학에 대해 좋은 평을 내리고 있었다.
"저희들은 계속 여기 남아서 적들의 동태를 파악해야 하니 소교주와 대협께서는 어서 유원학대협을 만나십시오. 지금 두 분께서 돌아오시기를 학수고대하고 계십니다."
허혜린과 위현룡은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제 든든한 아군이 버티고 있으니 전처럼 험난한 도피는 더 이상 없을 것 만 같았다.
두 사람이 마교 무사들이 주둔한 곳에 당도하자 한 막사에서 몇 사람이 허둥지둥 뛰쳐나왔다. 맨 앞에는 낯익은 종덕휘가 보였고 그 뒤로 두 사람이 또 그 뒤로 사검귀천과 참모 허운이 보이고 있었다.
허혜린은 그 동안 동고동락했던 사검귀천과 허운이 모두 무사하자 반가운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소교주!!"
허혜린이 행방불명되자 초조한 기색으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온전히 돌아와 주었으니 이거야말로 뿌연 안개로 막혀있던 사방이 탁 트이는 것과 다름없었다.
잠시동안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는 동안 종덕휘가 그녀에게 두 사람을 소개하였다.
"소교주! 이 분들은 유원학대협과 노진대협입니다."
"소녀가 두 분 대협을 처음 뵙습니다."
허혜린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자 노진과 유원학은 기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이 사람이 소교주를 구하지 못해 교주께 큰 죄를 짓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무사하시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대략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사람이 허혜린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건장한 체격에 구릿빛 피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갑주와 비슷한 두터운 복장을 입고 허리에는 대검(大劍)을 차고 있었다.
-유원학.
이 사람은 젊은 시절부터 마교 교주 허석문과 교분을 쌓았던 사람으로써 마교 출신이 아닌 새외(塞外)에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또한 마교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허석문을 도울 정도로 허석문과 깊은 신뢰를 유지하고 있기도 했다.
북마교와의 전투 때에도 유원학은 남마교의 한 축을 지탱하였고, 이번에 마교가 위급에 빠지자 또다시 세력을 이끌고 당도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물론 허혜린을 구해내고 대천마교를 쳐서 허석문의 원수를 갚겠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들은 허혜린을 가운데 놓고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현재 이 협철곡을 어떻게 무사히 벗어나야 하는지, 설령 벗어난다 해도 어떻게 대천마교의 추격에서 완전하게 빠져나가야 하는지 등이 심도있게 거론되었다.
"그런데 주대협과 단대인은 어디 계시죠?"
허혜린이 돌연 물어오자 그들은 깜짝 놀랐다.
"주대협이라면 주유천을 말하시는 것입니까?"
참모 허운이 급히 묻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주유천을 만난 정황을 설명했다.
"허...주대협이 살아 있다니...더군다나 금천대까지 이끌고 협철곡 안에 들어왔으니 이는 필시 하늘이 우리에게 큰 기회를 주신 것이오."
종덕휘가 격정에 사로잡혀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잠시 깊은 생각에 빠져든 허운은 신중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주대협이 대천마교 무사들이 완벽히 봉쇄하고 있는 협철곡안으로 들어왔다면 어딘가 다른 경로를 통해서 일 것입니다. 또한 주대협처럼 척후에 능한 사람이 우리측으로 오지 않았다는 것은 필시 대천마교의 배후를 노리겠다는 뜻입니다."
그의 혜안에 모든 사람들이 감탄하였다.
"그렇다면 대천마교의 허(虛)를 찌르는 최고의 협공작전이 되겠군요!"
유원학이 날카로운 안광을 번뜩이면서 말하고 있었다.
"저기...단대인께서는 어찌 되셨습니까?"
소외되어 있던 위현룡이 단중의 신변이 걱정되어 염치 불구하고 끼어 들었다.
위현룡이 허혜린을 호위하는 일개 무사인 것으로 알았던 유원학을 비롯한 종덕휘와 노진은 그의 무례한 언행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네 놈이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끼어 드는 것이냐!"
성정이 불같은 노진이 참지 못하고 크게 호통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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