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가비(駕飛) 님의 서재입니다.

귀혼환령검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가비(駕飛)
작품등록일 :
2012.10.29 08:03
최근연재일 :
2020.12.20 20:55
연재수 :
284 회
조회수 :
6,951,973
추천수 :
23,721
글자수 :
1,875,669

작성
08.12.07 10:39
조회
17,157
추천
79
글자
18쪽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II - 청성괴사(靑城怪事) <03>

DUMMY

그는 원로를 발견하자마자 급히 몸을 추스르며 예를 갖추었다.


"여기는 어쩐 일로 들리셨습니까? 미리 기별을 해주셨으면 제가 직접 모셨을 것을요..."


왠지 자신이 이 곳을 방문한 데 대해 언짢아하는 기색이 엷게 전해져오고 있었다.

그러나 풍진운은 별 내색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어차피 내일 밝히게 될 일이겠지만, 일단 사백께서 원기종 장문인의 죽음에 대해 대충 알아보고 오라 명하셨네.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아...아닙니다. 다만 기별도 없이 방문하셔서 황송했을 따름입니다."


분명 원로들은 원기종의 죽음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고 있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변덕이 끓어올라 뒤꽁무니에서 은근슬쩍 사건의 전말을 캐고 있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그 늙은 너구리들이 도대체 무슨 속셈인지...)


염청석은 괜히 신경이 거슬리기도 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이때 풍진운이 염청석에게 돌연 물어왔다.


"헌데 원장문인이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즉각 알리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더군다나 매장을 서두르려 한 것 같은데..."


그 물음에 염청석은 속으로 뜨끔하였으나 겉으론 전혀 당황하지 않고 태연하게 대답해주었다.


"너무나 중대한 사건이 벌어졌기에, 저 역시 얼른 원로들께 알리려 했습니다만, 범인이 도피중인지라 우선 그 자부터 잡는 것이 시급하다 여겼습니다. 그리고 매장준비는 말 그대로 그저 준비만 한 것일 뿐, 범인을 잡고 나면 원로님들을 청성파로 모셔 처분에 따르려 했던 것입니다."


"음...그렇군."


풍진운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어차피 더 물어봐야 자신이 알아낸 새로운 사실과 부합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미 원기종 장문 살인사건에 뭔가 흑막이 있음을 확신한 이상, 괜히 사람들에게 집요하다는 인상을 주어 자신을 주목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던 이유도 있었다.


"조만간 사백께서 결정을 내리실 터이니 너희들은 이 곳을 잘 보존해놓도록 하여라."


"명에 따르겠습니다."


이 말을 끝으로 풍진운은 조용히 밖으로 발길을 돌렸다.

염청석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은근한 눈빛을 빛냈다.


(왠지 모르게 심계(心計)가 깊은 늙은이 같군...)


이런 생각을 한번 하던 그는 사제들에게 물었다.


"사백께서 이곳에서 무엇을 알아내셨느냐?"


"그냥...저희들에게 장문인의 죽음에 대해 기본적인 몇 가지를 물어보셨고, 잠시 밖에 나갔다 들어오신 것 외에는 특별한 게 없었습니다."


"그래?"


현장을 말끔히 정리해놓아서 그런지 원로가 얻어낸 소득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하긴 아무도 본 사람이 없는 그날의 사건을 간단한 증언만으로 어찌 짐작조차 할 수 있겠는가.


(청성파 늙은이들이 뭔가 알아보려고 몰래 원로 한 명을 보낸 모양인데...이 염청석이 그렇게 허술한 사람은 아니지.)


그날 새벽,

염청석은 주위의 이목을 뿌리치고 소리 소문 없이 청성파를 빠져나갔다.

장대비가 뿌리는 짙은 어둠을 헤치고 당도한 곳은 청성산 아랫마을 어귀 근처.

그곳에는 이미 약속을 한 듯 한 남자가 푸른 죽립을 깊게 눌러 쓰고 서 있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오. 그 동안 잘 지내셨소?"


염청석의 입에서 이런 호의적인 말투가 나왔으나 죽립인은 들은 척도 안하고 차가운 음성부터 냈다.


"이제 다 해결한 것이오?"


빗물이 죽립을 타고 아래로 뚝뚝 떨어지는 가운데 내비친 무뚝뚝하면서도 냉혹한 죽립인의 눈동자를 정면으로 응시한 염청석은 이미 그의 성정을 잘 아는 듯, 언짢아하는 표정하나 짓지 않고 순순히 대답하였다.


"거의 다 해결한 셈이오. 그 분께는 조만간 청성파를 장악하고 나면 꼭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전해주시오."


"다 해결되었다? 의외로 손쉽구료."


왠지 빈정대면서도 청성파를 과소평가하는 듯한 발언이었다.

이에 염청석은 쓴웃음을 억지로 지어 보였다.


"청성파 전체가 원기종 장문 한 명에 의해서 좌지우지되었으니 말이오. 허나 이제 내가 청성파를 잡고 나면 과거보다 훨씬 더 단단해질 것이오."


속으로 강한 반발심이 일어난 염청석이 내뱉은 말이었다.


"그러기를 우리도 바라는 바이오. 그럼 모두 끝난 것으로 알고 돌아가겠소. 앞으로 파생되는 잡음은 모두 염대협이 해결하시오. 이 일과 무관해진 우리는 조금도 나설 수가 없을 테니..."


"걱정 마시오. 이젠 더 이상 생길 잡음조차 없을 것이오."


염청석의 단호한 소리에 죽립인은 원하는 것을 다 들었는지 이내 몸을 돌렸다.

그런데 막 떠나려는 찰나, 염청석이 뒤에서 재빨리 한마디를 덧붙였다.


"산공독을 구해줘서 감사하오."


그 말에 죽립인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냉랭하게 대꾸하였다.


"난 명을 받고 구해 준 것뿐이오."


죽립인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잠시 비를 맞고 서 있던 염청석은 갑자기 피식 웃었다.


"청성파를 완벽히 틀어쥘 때까지만 너희들의 꼭두각시 노릇을 해주지. 허나 그 다음엔 어림없을 것이다."



** **



먼동이 터 오면서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머물고 있던 청성파는 이른 아침부터 고요한 적막을 깨트렸다.

밤새 쏟아지던 거센 폭우가 한풀 꺾여들면서 가는 빗줄기만이 간간이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소집의 명을 받은 청성파 모든 제자들이 청허각(淸虛閣) 앞 연무대로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원로들께서 어떤 방침을 세우셨을까?"

"청성파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그들의 화제는 단연 원기종 장문인 살해사건에 대한 원로들의 대외적인 입장표명과 청성파가 앞으로 나갈 방향에 대한 그들의 결단과 조치였으며, 청성파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불신도 그에 못지 않게 가득 차있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청성각에서 나온 원로들이 천 여명이 넘는 청성파 제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청성파 제자들은 앞마당의 참새처럼 요란스럽게 재잘대다가 그들이 나오자 얼른 입을 다물고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원로들이 연무대 앞쪽으로 자리를 잡는 가운데 백발이 성성한 노인 하나가 한 걸음 나왔다.

청성파 제자들은 그가 청성파로 원로들과 제자들을 이끌고 온 사람임을 대번에 알아보았다.

그의 이름은 한백상(韓伯湘).

청성파 원로들 중 가장 서열이 높았고, 원기종의 사백이 되는 사람이었다.


현재 한백상은 청성파 장문인 대리의 자격으로 어떤 발표를 하려고 나와 있었으나, 사실상 그가 실질적인 청성파 장문인이 되어버렸음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했다.


"원기종 장문이 며칠 전 서거하였다."


예상대로 그는 입을 열자마자 원기종 장문에 대한 일부터 꺼내들고 있었다.


"원기종 장문인의 시해사건은 중대한 사안이다. 허나 청성파는 이 사건을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 중원에 큰 혼란을 야기하고, 아울러 청성파의 명성에 누가 되는 일은 만들지 않을 것이다. 또한 오늘 이후로 청성파 내에서 더 이상 원기종 장문인에 대한 언급은 엄격히 금할 것이며, 장문인의 장례는 서둘러 치르도록 할 것이다."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공표가 떨어지자마자 청성파 제자들 사이에서는 놀람과 의문을 가득 담은 거센 폭풍이 몰아쳤다.

원기종 장문의 죽음에 대한 심심한 애도는 고사하고, 청성파의 명성을 운운하면서 아예 없던 일로 묻어두자고 하고 있고 있으니 말이다.

한백상은 갑자기 주위가 소란스러워지자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꾹 참고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새벽까지 이어진 회의로 결정된 사안이니 너희들은 더 이상 원기종 장문의 죽음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라! 그리고 기존의 청성파 제자들은 모두 삼대 제자로 격하시키며, 속가제자들은 하인으로 쓸 몇 명만 빼고는 모두 해산시켜 본래의 청성파로 되돌아갈 것이다."


청성파 제자들은 연이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에 자신들의 두 귀를 의심하였다.


"뭐라고?"

"이게 왜 날벼락이냐!!"

"이건 말도 안 된다!!"


또 다시 엄청난 소란이 시작되면서 청성파 제자들은 벌떼처럼 들고일어났다.

자신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원기종 장문인의 죽음이라던가 청성파의 명성과 미래 따위는 이미 관심에서 멀어진지 오래였다.

일대 제자들은 흥분한 목소리로 강하게 항변을 하고 나섰다.


"저희들은 정당하게 실력을 겨뤄서 일대 제자로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삼대 제자로 밀어내는 것은 부당하신 처사가 아니옵니까!"

"맞습니다. 세상에 이런 법은 없습니다!!"


하극상(下剋上)도 이런 하극상이 없었다.

마치 폭동이라도 일으킬 기세로 덤벼드는 그들을 보면서 원로들은 기가 막힌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에 한백상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발끈하고 있는 그들을 향해 추상과도 같은 호통을 내질렀다.


"이런 건방진 놈들을 보았나!!! 엄연히 구대문파의 법도와 항렬이 존재하거늘 어찌 너희들이 일대제자가 될 수 있단 말이더냐!!"


그건 그랬다.

중원 구대문파에서 일대제자란 장문인과 그의 사형, 사제들이 주축을 이루고, 다시 그들의 제자들이 이대제자를 이루는 것임을 앞서 설명한 바가 있다.


그런데 청성파의 서열을 굳이 따져본다면, 한백상이 속해있는 가장 위 서열은 이미 일대 제자라는 서열에서 벗어나 원로라는 통칭을 쓰고 있는 것이기에, 정작 일대제자는 원기종과 그의 사형, 사제들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기존의 청성파 제자들은 원기종의 제자들이었으므로, 서열을 엄격히 적용시킨다면 이들은 이대제자들이 되는 것이 정상이라 할 수 있었다.

때문에 한백상의 일갈에 주춤한 청성파 일대제자들은 이런 맹점(盲點)을 놓치지 않고 악착같이 물고 늘어졌다.


"그럼 어째서 저희들이 삼대제자란 말입니까? 문파의 서열 대로라면 저희들은 이대제자가 되어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들의 항변에 한백상은 조금도 당황해하지 않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응수하였다.


"물론 구대문파의 서열대로라면 너희들은 당연히 이대제자들이다. 허나 그것은 너희들이 청성파 제자들일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다!"


항의하던 이들은 갑작스런 소리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그게 무슨....그럼 우리들이 청성파 제자들이 아니란 말씀이십니까?"


"당연히 아니다! 애초부터 원기종은 청성파 장문인이 아니었다. 우리 원로들 뿐 아니라 문파 내 그 누구도 그를 청성파 장문인으로 인정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원기종 혼자서 청성파를 멋대로 개혁시켜 청성파 본래의 전통과 색채를 모두 변질시켜 버린 것이다. 알겠느냐!! 원기종은 청성파를 말아먹은 죄인이고, 더 이상 청성파 사람이 아니란 말이다! 그러므로 원기종이 거둬드린 너희들 또한 청성파 제자가 아니다."


그의 단호한 음성에 청성파 제자들은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대놓고 원기종을 청성파 장문인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데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문파에서 장문인의 직책은 중요하고도 높았다.

허나 그 위에 원로들은 그런 장문인을 질책하고 파면시킬 수 있는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점에서, 원로들이 원기종을 청성파 출신으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원기종은 더 이상 장문인이 아닌 것을 의미했다.


"허나 그런 이유로 너희들을 모조리 내친다면 그 또한 청성파의 명성을 위해 못할 짓이니, 특별히 관용을 베풀어 너희들을 모두 삼대제자로 받아주는 것이다. 그러니 만약 불만이 있다면 그날로 당장 청성파를 떠나도록 하거라!"


한백상의 엄포에 청성파 제자들은 기가 죽어서 뭐라 대꾸조차 나오질 않았다.

청성파를 좌지우지하던 원기종이 죽은 지금, 청성파가 완전히 원로들의 손아래 놓여졌음을 현실적으로 깨닫게 된 것이었다.

그들은 더 이상 불만의 목소리를 높일 수가 없었다.

잘못하다가는 일대제자라는 서열을 되찾기도 전에 모조리 쫓겨나갈 판이니 말이다.

헌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부터 청성파의 대사제는 여기 임사손이 맡게 될 것이니 모두 그를 존중하고 따르도록 하여라!"


키가 멀대 같이 크고, 몸은 바짝 말랐으며, 얼굴엔 광대뼈가 툭 튀어나와 어딘지 모르게 음흉스럽게 생긴 사내가 소개를 받아 앞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임사봉으로서 서열로 치자면 이대제자에 속했다.


그런데 한백상이 장문이 된다고 가정한다면, 실질적으로 대제자는 일대제자에서 나오는 것이 마땅하므로, 임사봉은 대제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나이 많은 원로들과 일대제자들이 슬슬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그를 미래의 장문인으로 추대하겠다는 무언의 뜻이나 다름없지 않겠는가.


청성파 제자들은 더욱 기가 막혀 일제히 염청석에게 눈길을 돌렸다.

조금 전까지도 대사형이었던 그를 조금도 대우해주지 않고 냉정하게 내쳐버리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 들었던 것이다.


역시나 염청석의 얼굴은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져있었다.

허나 그는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고 원로들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듯, 묵묵히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

어차피 이런 일을 어느 정도 예상했기에 다른 제자들보다 충격이 적은 탓도 있었지만, 원로들의 저의를 정확히 짚지 못한 상태에서 내보이는 경거망동은 오히려 자승자박(自繩自縛)이 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원로들이 무슨 꿍꿍이란 말인가...)


자신이 예측했던 상황과 의외로 괴리가 심한 탓에 염청석은 상당한 번민을 해야만 했다.

그는 서열이 강등되고, 새로운 자가 대사형이 된다 한들, 원로들만 사라져준다면 순식간에 청성파를 휘어잡을 수 있을 것이라 자신만만해하고 있던 차였다.

하지만 지금 따져보니 원로들은 떠나기는커녕 원기종을 노골적으로 비방하면서 완전히 청성파를 차지할 욕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전혀 계산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청성파 제자들은 염청석이 뭐라 강하게 항의라도 해주길 내심 바랬지만 그가 침묵을 유지했으므로 더 이상의 불만을 표출해낼 수가 없었다.

어찌 보면 가장 억울할 사람인 그도 가만히 있는데 자신들이 대놓고 나서기도 뭐했으니 말이다.

한백상은 일이 순조롭게 일단락 되자 얼굴에 만족한 미소를 가득 띄웠다.

이로써 가장 난점이었던 청성파 제자들을 확실히 굴복시키고 청성파를 완벽하게 통제하게 된 것이다.



** **



원로들의 공표가 있은 후, 청성파 내부는 며칠 내내 이런 저런 진통을 겪어야만 했다.

기존의 청성파 제자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비단 청성파 제자들만 원로들에 의해 희생당한 것이 아니었다.


천승비는 등문각 앞에서 수 백여 명의 속가제자들에게 둘러싸였다.

청성파 원로들이 속가제자들을 모두 내친다는 결정을 듣게 된 이들이 천승비를 불러서 격렬히 항의하고 있었던 것이다.


"천대협!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청성파가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원한이 있어 이렇게까지 한답니까?"

"뭐라 말 좀 해보십시오! 천대협!!"


마치 천승비가 이 결정을 내린 원흉인 양, 그를 삥 둘러싼 그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으로 참을 수 없는 울분을 거침없이 토해내고 있었다.

천승비는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아무런 말없이 그들을 한 명 한 명 바라보았다.


처음 몇 명으로 시작한 속가제자들은 이제 그 수가 수백으로 불어나 있었다.

이는 속가제자 출신도 실력만 되면 명문정파의 정식제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소문나 무림 전역에서 몰려든 자들 때문이었다.

지금도 청성파 속가제자로 들어오기를 희망하는 자들은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세였다.

허나 이제는 그들 뿐 아니라 이미 속가제자가 된 이들에게도 축객령(逐客令) 이 내려져 버렸다. 그리고 조만간 청성파에서 속가제자들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위현룡이 없는 지금은 천승비가 속가제자들의 대형이었다.

일대제자 중에서도 상당한 위치까지 올라섰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위현룡의 부탁을 받아 속가제자들을 배척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신경을 써주고 있었던 것이다.

형제요, 인생의 동지 같던 위현룡을 배신하면서까지 어렵게 구해낸 속가제자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그가 행한 배신은 단지 헛짓거리가 되어버렸을 뿐이었다.


"여기를 떠나면 정녕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면 부모님 뵐 낯이 서질 않습니다."

"저희들의 꿈은 어떻게 합니까? 다른 문파에서는 청성파만큼 속가제자들에게 좋은 대우를 주지도 않습니다."


거칠었던 항의는 어느덧 자조와 한탄으로 변해 그들 스스로의 마음을 더욱 짓누르고 있었다.


흔히들 인생에는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고 말한다.

성공한 인생은 빛으로, 실패한 인생은 어둠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들이 어둠 속에 갇혀 있다고 상상해본다면, 칠흑 같은 공포와 함께 우리들은 단 한발자국도 내딛지 못한 채 그저 벌벌 떨며 불안한 방황만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 와중에 작은 불빛이라도 발견하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아마도 우리들은 안도감을 느끼고, 용기를 내어 앞으로 천천히 걸어나갈 시도를 하게 될 것이다.


속가제자들에게 있어서 청성파는 이런 불빛과도 같은 것이었다.

아무리 인생이 고단하고 암울하여도 그들은 이런 불빛을 길잡이 삼아서 조금씩 미래를 설계하고 앞으로 전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이제는 그 불빛마저 꺼져버리고 희망은 매몰차게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천승비는 한때 속가제자의 고달픈 삶을 산 적이 있었기에 지금 이들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지듯 아플지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들이 내뱉는 울분과 슬픔은 물론 거친 항의까지도 물리치지 않고 고분고분 다 받아주면서 조금이나마 위로를 해주려 노력하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귀혼환령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88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II - 청성괴사(靑城怪事) <05> +59 08.12.21 15,662 81 18쪽
187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II - 청성괴사(靑城怪事) <04> +70 08.12.14 14,902 73 15쪽
»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II - 청성괴사(靑城怪事) <03> +60 08.12.07 17,158 79 18쪽
185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II - 청성괴사(靑城怪事) <02> +65 08.11.30 15,592 75 16쪽
184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II - 청성괴사(靑城怪事) <01> +106 08.11.27 20,858 87 15쪽
183 ↑↑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II -연재 시작합니다.- ↑↑ +74 08.11.27 14,639 55 1쪽
182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1 부- 를 마칩니다. +230 08.09.14 16,639 75 6쪽
181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47>完 +63 08.09.14 19,344 70 18쪽
180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46> +71 08.08.31 17,003 69 12쪽
179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45> +81 08.08.18 15,849 72 15쪽
178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44> +100 08.07.28 15,247 74 19쪽
177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43> +74 08.07.13 16,263 78 14쪽
176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42> +87 08.07.06 16,634 69 15쪽
175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41> +51 08.06.16 15,827 73 13쪽
174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40> +62 08.06.09 15,676 68 11쪽
173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39> +68 08.06.02 16,108 70 12쪽
172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38> +132 08.05.28 15,369 73 13쪽
171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37> +66 08.05.18 17,623 73 14쪽
170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36> +69 08.05.12 15,624 79 10쪽
169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35> +69 08.05.04 15,685 71 14쪽
168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34> +86 08.04.27 17,848 75 13쪽
167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33> +69 08.04.13 16,009 71 12쪽
166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32> +71 08.04.06 15,824 73 13쪽
165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31> +66 08.03.16 16,620 70 12쪽
164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30> +61 08.03.09 16,373 77 14쪽
163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29> +91 08.02.19 16,709 67 11쪽
162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28> +63 08.01.20 17,178 70 10쪽
161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27> +28 08.01.20 17,347 77 10쪽
160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26> +58 08.01.06 19,413 70 7쪽
159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25> +67 07.12.30 18,001 70 16쪽
158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24> +79 07.12.02 20,815 68 16쪽
157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23> +71 07.11.11 18,742 68 16쪽
156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22> +92 07.10.21 19,381 77 14쪽
155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21> +111 07.10.14 19,181 71 13쪽
154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20> +97 07.09.16 20,217 75 18쪽
153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19> +58 07.09.10 19,543 72 14쪽
152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18> +53 07.09.02 20,175 68 16쪽
151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17> +57 07.08.19 21,556 72 17쪽
150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16> +65 07.08.12 21,501 70 13쪽
149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15> +48 07.08.05 21,544 66 14쪽
148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14> +72 07.07.29 20,966 72 13쪽
147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13> +76 07.07.22 21,498 68 21쪽
146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12> +61 07.07.15 22,224 68 18쪽
145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11> +64 07.07.08 21,814 70 18쪽
144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10> +54 07.07.01 22,022 74 14쪽
143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09> +71 07.06.24 22,269 72 17쪽
142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08> +78 07.06.17 22,399 79 15쪽
141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07> +41 07.06.10 23,482 58 13쪽
140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06> +75 07.06.03 23,337 67 15쪽
139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05> +57 07.05.27 23,156 71 12쪽
138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04> +67 07.05.20 22,752 74 13쪽
137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03> +72 07.05.16 22,703 72 15쪽
136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02> +72 07.04.29 24,751 70 17쪽
135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01> +49 07.04.22 25,726 73 14쪽
134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화룡점정(畵龍點睛) <21> +70 07.04.14 24,488 66 13쪽
133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화룡점정(畵龍點睛) <20> +47 07.04.08 23,074 72 14쪽
132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화룡점정(畵龍點睛) <19> +73 07.04.01 23,298 72 12쪽
131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화룡점정(畵龍點睛) <18> +77 07.03.25 22,723 68 10쪽
130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화룡점정(畵龍點睛) <17> +56 07.03.18 23,799 70 12쪽
129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화룡점정(畵龍點睛) <16> +71 07.03.11 24,016 68 18쪽
128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화룡점정(畵龍點睛) <15> +90 07.03.04 24,028 75 17쪽
127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화룡점정(畵龍點睛) <14> +93 07.02.25 24,263 73 15쪽
126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화룡점정(畵龍點睛) <13> +72 07.02.18 23,612 73 14쪽
125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화룡점정(畵龍點睛) <12> +80 07.02.11 23,651 70 18쪽
124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화룡점정(畵龍點睛) <11> +47 07.02.04 24,133 74 14쪽
123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화룡점정(畵龍點睛) <10> +63 07.01.28 24,440 72 15쪽
122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화룡점정(畵龍點睛) <09> +64 07.01.21 24,429 69 12쪽
121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화룡점정(畵龍點睛) <08> +63 07.01.14 25,010 79 13쪽
120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화룡점정(畵龍點睛) <07> +79 07.01.09 25,089 79 13쪽
119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화룡점정(畵龍點睛) <06> +60 07.01.02 25,821 67 11쪽
118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화룡점정(畵龍點睛) <05> +57 06.12.29 25,066 76 11쪽
117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화룡점정(畵龍點睛) <04> +59 06.12.22 25,170 73 14쪽
116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화룡점정(畵龍點睛) <03> +55 06.12.19 24,845 74 9쪽
115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화룡점정(畵龍點睛) <02> +99 06.12.14 25,165 72 10쪽
114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화룡점정(畵龍點睛) <01> +52 06.12.10 25,997 68 10쪽
113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귀혼검법(鬼魂劍法) <50> +65 06.12.04 25,495 71 13쪽
112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귀혼검법(鬼魂劍法) <49> +70 06.11.30 24,400 72 8쪽
111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귀혼검법(鬼魂劍法) <48> +41 06.11.26 23,918 66 13쪽
110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귀혼검법(鬼魂劍法) <47> +61 06.11.21 24,255 62 16쪽
109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귀혼검법(鬼魂劍法) <46> +52 06.11.18 23,838 75 15쪽
108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귀혼검법(鬼魂劍法) <45> +44 06.11.14 24,038 66 11쪽
107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귀혼검법(鬼魂劍法) <44> +36 06.11.12 24,085 64 13쪽
106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귀혼검법(鬼魂劍法) <43> +32 06.11.09 24,611 69 13쪽
105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귀혼검법(鬼魂劍法) <42> +31 06.11.07 24,607 70 10쪽
104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귀혼검법(鬼魂劍法) <41> +38 06.11.03 24,865 72 13쪽
103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귀혼검법(鬼魂劍法) <40> +39 06.11.01 24,963 70 10쪽
102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귀혼검법(鬼魂劍法) <39> +37 06.10.30 25,085 75 9쪽
101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귀혼검법(鬼魂劍法) <38> +43 06.10.26 25,635 71 11쪽
100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귀혼검법(鬼魂劍法) <37> +62 06.10.21 28,370 68 14쪽
99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귀혼검법(鬼魂劍法) <36> +51 06.10.17 25,632 70 10쪽
98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귀혼검법(鬼魂劍法) <35> +47 06.10.11 25,497 73 12쪽
97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귀혼검법(鬼魂劍法) <34> +57 06.10.06 25,293 72 10쪽
96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귀혼검법(鬼魂劍法) <33> +39 06.10.03 25,531 68 9쪽
95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귀혼검법(鬼魂劍法) <32> +48 06.09.28 25,504 71 10쪽
94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귀혼검법(鬼魂劍法) <31> +39 06.09.23 25,600 74 10쪽
93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귀혼검법(鬼魂劍法) <30> +41 06.09.20 25,840 77 10쪽
92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귀혼검법(鬼魂劍法) <29> +41 06.09.16 25,419 71 8쪽
91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귀혼검법(鬼魂劍法) <28> +35 06.09.14 26,505 75 10쪽
90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귀혼검법(鬼魂劍法) <27> +38 06.09.07 27,491 77 12쪽
89 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귀혼검법(鬼魂劍法) <26> +43 06.08.26 28,531 77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