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약왕문(藥王門)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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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녀석 보게나...졸개치고는 뜻밖의 실력인걸...]
홍후인이 녹무군과 접전을 하고 있는 자를 눈여겨보며 한마디하고 있었다.
위현룡은 부상을 입거나 투항한 대막천궁 무사들을 도망치지 못하게 한쪽으로 몰아 넣었다.
이미 전의(戰意)를 상실한 그들은 땅바닥에 부복( 伏)한 채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위현룡의 검(劒) 앞에서 그저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저 사람의 무공이 그런 대로 훌륭한 편입니다. 하지만 녹대협을 이길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만...저 정도 실력을 지닌 자가 겨우 졸개 몇 십 명을 거느린 부장이라는 게 왠지 우습지 않느냔 말이다. 대막천궁에 그 정도로 고수들이 넘쳐 났던가?]
녹무군과 대막천궁의 일개 부장과의 싸움은 점차 사나워지고 있었다.
허나 이는 두 사람의 실력이 백중지세였기에 그런 것이 아니었다.
대막천궁 말단 부장의 실력이 도대체 어느 정도나 되는지 호기심이 동한 녹무군이 그의 공격을 얌전히 받아주고 있었던 탓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찌 그자가 백 여 초식이나 버텨낼 수 있었겠는가.
대막천궁 부장은 혼신의 힘을 다한 공격이 번번이 봉쇄되자 놀랍기도 하고 노하기도 하여 이를 악물고 끝까지 살벌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느냐?"
녹무군이 무표정한 얼굴로 이렇게 입을 열자 상대의 안색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정 그렇다면...."
그의 공격을 받아주고만 있던 녹무군은 앞으로 날아 들어오는 검날을 힘껏 쳐내는 동시에 앞으로 움직이면서 빠르게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대막천궁 부장은 무서운 공격이 태산처럼 짓눌려 들어오자 정신을 바짝 차리고 방어초식으로 맞섰다.
그러나 녹무군의 검이 철광(鐵光)을 번뜩이면서 금세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휘둘러지자 그만 숨통이 다 막혀왔다.
-쨍그랑.
한 자루의 검이 바닥에 처참히 내동댕이쳐졌다.
"이젠 끝났다!"
녹무군이 부장의 목덜미에 차가운 검날을 바짝 붙이면서 짧게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악착같이 버텼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허망하게 굴복을 당하게 된 부장은 허탈한 표정을 지어버렸다.
녹무군은 그를 위현룡 앞에 끌고 나가 강제로 무릎을 꿇렸다.
위현룡이 물었다.
"내게 어찌 된 상황인지 설명을 해준다면 당신들을 모두 놓아 보내주겠소. 말해보시오. 마교 사람들과 대막천궁 무사들은 모두 어디로 가고 당신들만 덩그러니 이곳을 지키고 있는 것이오?"
살려주겠다는 위현룡의 약조에 대막천궁 무사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면서 머뭇거렸다.
이때 분한 마음에 씩씩거리던 부장이 수하들에게 호통을 쳤다.
"모두 입을 닥치거라! 말하든 안 하든 어차피 우리들은 모두 죽음을 당할 것이다!"
그의 말을 들은 대막천궁 무사들의 얼굴은 일제히 하얗게 굳어졌다.
그러자 녹무군이 검(劒)을 움직여 부장의 목덜미에 긴 혈선(血線)을 그어놓았다.
붉은 핏방울이 홍화(紅花)처럼 피어올랐다.
"네 놈부터 죽고 싶은 것이냐?"
곧장 녹무군의 협박이 뒤따랐다.
하지만 부장은 꿈쩍도 인했다.
"어차피 죽음을 당할 처지인데 굳이 입을 열어 네 놈들을 도와줄 필요가 있겠는가!!"
"네가 아니라도 입을 열 사람들은 여기 많다. 차라리 너를 죽여서 이들에게 헛된 개죽음이 어떤 것인지를 뼈저리게 깨닫게 해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흥! 맘대로 해보거라!"
그때 두 사람의 입씨름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던 위현룡이 녹무군에게 말했다.
"녹대협! 그들을 그냥 보내주십시다."
뜻밖의 말을 들은 대막천궁 무사들은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무림의 속성상, 십중팔구 입막음을 당하는 것이 당연지사였다.
그런데 그냥 풀어주겠다고 하니 어찌 어리둥절하지 않겠는가.
"하지만...주군...그러다 이들이 우리들의 행적을 대막천궁에 알리기라도 한다면 얼마안가 집요하고 위험한 추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녹무군이 난처한 기색을 내비치자 위현룡이 엄숙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럼 이들을 모두 죽이겠다는 말입니까?"
"그...그건 아니지만...최소한 이곳에 붙잡아 두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만일 저들을 여기 붙잡아 놓는다면 대막천궁에서는 이곳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죄를 물어 저들의 목을 베려할 것입니다. 허나 이들을 풀어준다면 각자 흩어져 몸을 보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위현룡의 뜻이 매우 확고했으므로 녹무군은 더 이상 고집을 피울 수가 없었다.
"모두 각자 갈 길을 가시오!"
녹무군이 그의 명을 받아 이렇게 외쳤다.
하지만 대막천궁 무사들은 함부로 움직이지 못한 채 그저 부장의 눈치만 살살 보고 있었다.
이는 부장이 얼마나 이들을 혹독하게 조련하였는지 충분히 짐작케 해주는 광경이었다.
"잠시 기다리거라!!"
이런 명을 내려놓은 그가 위현룡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원하는 게 뭐요?"
건방지기 이를 때 없는 언사(言辭)였다.
대막천궁 무사들은 그의 오만 방자함 때문에 혹시나 마음을 바꿔먹은 위현룡에게 개죽음을 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몸서리를 쳐댔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당신들이 살길을 도모하는 것이오. 그뿐이오."
"우리들은 대막천궁 무사들이오. 이곳에서 살아나가는 즉시 당신들에 대해 보고를 할 것이오."
부장의 말에 전전긍긍하던 대막천궁 무사들은 그만 기겁을 하고야 말았다.
[아니 저 놈이 돌았나!!!]
홍후인이 기가 다 막혀 입을 쩍 벌리고 있는데 위현룡은 살짝 미소를 띄우며 대답하였다.
"그럴 마음이면 그렇게 하시오."
순간 부장의 얼굴위로 이상야릇한 표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자신의 귀를 의심하고 있는 듯했다.
"현재 대막천궁 무사들이 이 일대에 대거 집결해 있소. 아무리 당신들의 무공이 출중하다 한들 추격이 시작되면 절대로 포위를 뚫고 도망치지 못할 것이오."
대막천궁의 전력을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로 들렸다.
위현룡은 잠시 그를 쳐다보다가 조용한 음성을 냈다.
"당신들이야말로 대막천궁에서 죄를 추궁하기 전에 속히 빠져나가는 것이 좋을 것이오. 그럼 가보겠소."
위현룡은 약왕문 내부로 좀 더 진입해 볼 요량으로 녹무군과 함께 몸을 돌렸다.
그러자 뒤에서 부장이 급히 불러 세웠다.
"약왕문으로 통하는 출입구가 두 군데요. 대막천궁의 주력은 이곳이 아닌 다른 쪽으로 쳐들어갔소이다. 그리고 아까 그 쪽에서 소수의 마교인들이 포위 당한 채 거세게 저항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으니 그리 가보도록 하시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녹무군이 고개를 끄덕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주군! 저자의 말대로 약왕문에는 두개의 출입구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출입구의 존재는 약왕문에서도 소수의 수뇌들만 알고 있는 극비사항입니다. 또한 안으로 굳게 닫혀있어서 외부에서는 절대로 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쪽으로 들어왔다면 분명 내부에서 첩자가 호응을 해주었을 것입니다."
위현룡은 약왕문 내에서 문주 은무적을 따르는 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쩌면 그들이 마교인들을 제거하기 위해 대막천궁을 안으로 끌어들였을 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하게 되었다.
"확실하오?"
위현룡이 짐짓 못미더워하는 눈초리를 보이자 부장이 냉소(冷笑)를 쳤다.
"믿어도 그만 안 믿어도 그만이오."
위현룡은 포권과 함께 고개를 살짝 숙였다.
"좋은 정보 감사하오!"
그때 떠나려던 위현룡을 부장이 또 다시 불러 세웠다.
"가기 전에 당신의 이름을 알려 줄 수 있겠소?"
그의 물음에 위현룡은 망설이지 않고 즉각 대답해주었다.
"위현룡이라 하오."
"뭐요!!!"
그 이름 석자를 듣자마자 부장의 안색이 백지처럼 창백하게 변했다.
"지금 당신의 이름이 위현룡이라 했소? 중원 청성파 장문인을 단칼에 죽여 무림공적이 되었고, 얼마 전 협철곡에서 대천마교 최고고수를 꺾은 것도 모자라 약 천여 명에 달하는 대천마교 무사들의 공격을 뚫고 마교인들을 무사히 탈출시켰다는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이란 말이오!!!"
홍후인은 그의 말을 들으면서 쓴 입맛을 다셨다.
[현룡이의 소문이 빨리도 퍼졌군....그나저나 저런 말단 부장까지 협철곡의 일을 알고 있는 것을 보니 적월교나 대막천궁의 정보망도 무시 못하겠는걸...]
이는 우여곡절 끝에 새외로 흘러 들어온 위현룡이 적월교의 추격을 받게 된다면 상당히 골치 아플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중원에서는 대천마교가, 새외에서는 적월교가 예의주시하고 있으니 무림 천지에 몸을 숨길 곳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위현룡은 그가 자신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이 매우 의아하였다.
"당신이 언급한 일들과는 크게 부합되지 않으나 내 이름이 위현룡인 것은 맞습니다. 그럼 가보겠소."
위현룡과 녹무군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기에 뒤도 안 돌아보고 훌쩍 떠났다.
부장은 시야에서 사라져 가는 그들을 보면서 크게 소리쳤다.
"제 이름은 건모용(乾謀湧)이라 합니다! 훗날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겠습니다!!"
자신의 외침이 아지랑이처럼 사라질 무렵 건모용은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였다.
(드디어 내 원대한 야망을 실현시켜줄 사람을 찾아냈구나!! 중원과 새외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무림공적 위현룡! 역시 이 정도의 인물은 되어야 마음놓고 동행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건모용은 미래에 이룰 큰 뜻을 상상하면서 심장이 요동치는 희열을 맛보았다.
그때 대막천궁 무사들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저기...저희들은 어찌할까요?"
"어쩌고 싶으냐?"
"아무래도...대막천궁에 저들의 행적을 알리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대막천궁을 배신하여 도망친다 한들 어디로 갈 수 있단 말입니까?"
그 자의 말이 끝나자 연이어 다른 자가 맞장구를 쳤다.
"맞습니다. 제 가족들도 모두 이 곳 새외에 있는데다가, 대막천궁이 추격을 놓는다면 얼마안가 금세 잡히고 말 것입니다."
"그렇겠군..."
건모용은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가 땅에 떨어진 자신의 검을 슬며시 주워들었다.
수하들은 뜬금없는 그의 행동에 뭔가 불길한 예감을 직감하였다.
"왜...왜...이러십니까..."
건모용의 눈동자에 진한 살기가 감도는 것을 본 수하들은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뒷걸음질을 쳐댔다.
"미안하지만...아무래도 너희들은 나를 위해서 모두 죽어줘야겠다!"
"뭐요!! 어...어떻게 그...그런...으악!!!"
맨 앞에 서 있던 자가 먼저 건모용의 검에 목이 뎅겅 잘리고 있었다.
수하들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악몽이 재연되자 혼비백산하여 달아날 시도를 하였다.
처절한 비명과 함께 뜨거운 피가 마른 바닥을 적셨다.
건모용은 빠른 신법을 전개하면서 자신을 따르던 수하들을 눈 하나 끔뻑이지 않고 베어 넘겼다.
그리고 자신의 손아귀를 빠져나가던 자들은 끝까지 쫓아가서 확실하게 숨통을 끊어놓았다.
어느 새 주위는 불귀(不歸)의 객(客)들이 남겨놓은 육신(肉身)들만 가득 남게 되었다.
건모용은 원혼들의 원성도 아랑곳하지 않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몇 번 털어 내면서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흘렸다.
"이걸로 위대협과의 첫걸음이 시작된 것이다. 허나 그 전에 마지막으로 위대협의 능력을 똑똑히 보아두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과연 이번에도 그가 협철곡에서처럼 마교인들을 무사히 구출하여 약왕문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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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위현룡과 녹무군은 두 번째 출입구가 있는 곳으로 전력을 다해 경공을 전개하고 있었다.
"녹대협! 다른 쪽에 있는 출입구는 여기서 얼마나 떨어져있습니까?"
"일각도 채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가는 길이 좀 복잡하긴 합니다만 제가 지름길을 알고 있으니 저만 따라오십시오!"
약왕문의 대문과 전각들은 협곡의 복잡한 지형을 교묘히 연결해서 지어져 있었다.
그 때문에 약왕문은 전체가 한번에 드러나지 않고 군데군데 숨겨져 있는 형태를 보이고 있었다.
또 다른 출입문 쪽으로 달린지 얼마 되지도 않아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가 미풍을 타고 은은히 전해져왔다.
"주군! 이제 곧 입니다!!"
기괴한 암석들을 이용하여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을 지나게 되자 전방으로 대나무가 우거진 곳이 보였다.
그리고 그 부근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홍후인이 먼저 소리쳤다.
[저기 협공을 당하는 녀석은 주유천이 아니냐? 위험천만인데...더군다나 그를 따르는 마교 무사들은 겨우 이십 여명도 안 된다. 이런...완전히 전멸을 당했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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