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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우 (劍雨)님의 서재입니다.

검우천하(劍雨天下)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검우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0
최근연재일 :
2020.07.31 09:05
연재수 :
84 회
조회수 :
307,719
추천수 :
5,245
글자수 :
613,901

작성
20.05.15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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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글자
20쪽

제8화 떠나는 자 남는 자 1

DUMMY

장북현 외곽에 위치한 장복사(張福寺)!

장복사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떠도는 이야기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지금은 살기가 어려워도 복을 많이 베풀면 살아서는 장북현을 벗어나고 죽어서는 좋은 곳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유명한 기도처라는 것과, 또 하나는 수 십년간 주지로 있는 노승 무초(無草) 스님이 소림사의 덕 높은 고승이라는 것이다.


“철관음 향이 좋습니다. 주지 스님.”


장복사 주지실 작은방에, 백엽과 두 동생이 무초스님과 찻상을 두고 마주앉아 있다.

철관음차(鐵觀音茶)는 복건성 안계현에서 생산되는, 치유의 신인 관음보살이 내려준 전설이 있는 차다.

여러 번 우려내어도 맛과 향이 변함이 없는 것으로 유명한데, 무초스님이 마시는 차는 너무 많이 우려내 향을 느끼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은 그 것을 느끼는 백엽이 용했다.


“클클클! 피만 아는 녀석인 줄 알았더니 다향도 아는구나!”

“어려서 마신 기억이 있습니다.”

“좀 싸주랴?”

“아, 아닙니다. 스님.”

“하긴, 떠나는 놈이 차는 뭐할까.”


장복사는 어머니가 살아생전 남편과 자식들 무사귀환과 발복을 기원하며 불공을 드리던 사찰이다.

백엽도 부모님을 모시고 두 동생과 함께 몇 번 들려 무초스님과 안면이 있었다.

엽이 보는 무초 스님은 나이 측량이 불가능했다. 5척은 겨우 될 것 같은 작은 키에, 돌아가실 때의 아버지보다 더 마른 몸매였지만 정정했다.

거기다 머리는 얼마나 박박 밀었는지 살이 파르라니 보일 정도였다.

하얀 턱수염은 얼마나 길고 멋있는지 왜소한 풍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지금도 왼손으로는 단주(短珠-54개 이하의 구슬로 만든 짧은 염주)를 끊임없이 돌리고 있다. 오른쪽 옆에는 자신의 키보다 한척은 더 클 것 같은 주장자를 눕혀 놓고서.


“스님 할아버지. 우리 아버지 잘 부탁드려요. 제가 나중에······, 곡차 한잔 거하게 대접해 드릴께요. 아셨죠?”


여동생 백연(白蓮)이 애교 섞인 목소리로 무초스님에게 아버지를 부탁했다.

갑자기 무초 스님 표정이 환해진다.


“껄껄껄! 걱정 마라 예쁜 시주. 이 고승만 믿어라. 좋은 곡차나 꼭 구해오너라. 약속했다?”

“네 스님!”


무초스님은 백엽을 쳐다볼때와는 달리 즐겁다는 듯이 동생을 대했다.

엽과 두 동생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아버지 때문이었다.

세 남매는 아버지 유언대로 한줌으로 변한 유해를 곱디고운 오동나무 상자에 담아, 장복사에서 운영하는 납골당에 모신 것이다.

언젠가는 어머니 유해도 모셔와 같이 봉안해야했다.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스님. 법체(法體)보중하십시오.”

“끌끌끌 법체라니 이놈! 어디서 아부하는 것만 배웠더냐. 부처님 노하신다. 나 땡중이다. 땡중! 밖에 있는 이놈아. 손님 나가신다. 모셔라.”


나가라는 무초스님 손짓에따라 셋은 조심스런 뒷걸음질로 주지실을 나섰다.

어느새 문밖에는 무초스님이 부른 “밖에 있는 이놈아.” 중년승이 대기하고 있었다.


“한 마리 용이 드디어 하늘로 날아오르는 구나! 나무아미타불! 오랜만에 집에 편지나 한통 써야겠구나.”


무초 스님이 방에서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


‘아버지는 왜 그런 삶을 사셔야만 했을까?’

‘왜 물질과 문명을 모두 거부한 채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사셨을까?’

‘그러면서 우리 세 남매는 모두 출사해, 훨훨 날아가라 하셨을까?’

‘왜 백가장으로 돌아가시는 것을 거부하셨을까?’


엽은 지금도 아버지 마음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

존경받는 대학사로서의 찬란한 위명이 원초적인 물리력 앞에 하루 아침에 땅바닥으로 전락해버린 자신의 삶을 스스로 용서하지 못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스스로를 그렇게 학대하셨는지도······,

그러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은 것은 대학자라는 마지막 자존심이었을지도.

곧 돌아가실 아버지, 마음이나 편하게 해드리자고 따랐을 뿐이다.

덕분에 두 동생도 움막에서만 살았다.


아버지는 모든 것을 불태우고 이곳을 떠나라고 명했다.

이곳의 삶은 오직 본인에게만 해당된다고 누누이 말씀 하셨다.

이곳은 쳐다보지 말라고······.

너희들의 삶은, 너희들의 꿈은 이곳이 아닌 더 넓고 큰 곳에서 찬란히 피어나야한다고.


“아버지······”

“어머니······”


백엽은 조용히 마음속으로, 두 동생이 알아 듣지 못하도록 아버지와 어머니를 불렀다.

아버지가 갑자기 그리워졌다.

그리움을 타고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들! 나는 학사다. 붓 한자루로 태양이 되어 천하를 살찌우는 그런 꿈을 꾸었다. 하지만 실패했다. 아들은 손에 쥔 검 한자루로 어떤 세상을 꿈꾸느냐? 검이 목표냐? 수단이냐? 너만의 길을 가거라! 네가 꿈꾸는 세상을 네 검으로 만들어라! 이 애비는 아들의 검이, 비가 되어 메마른 천하를 촉촉이 적셔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네 어미에게 당신이 무공을 가르친 우리 아들이 이렇게 잘 컸다고 자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내 아들. 사랑한다.”


.....


장북현 만향루(萬香樓)!


“하하하하.”

“호호호호.”

“그래서 말야 내가······.”


고래등 같은 기와지붕 전각 수 십여채에서 웃움소리와 시끌벅적한 소음이 뒤섞여 귀를 멍하니 울린다.

이명(耳鳴)을 앓는 환자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만향루는 향이 다른 만 가지 음식과 술이 있는 곳이다.

장북현은 물론 인근 모든 현에서도 오고 싶어하는 선망의 장소였다.

죽기전에 딱 한번만 가보아도 소원이 없겠다는 사람이 부지기수일 정도로.


“광귀도 한잔해. 대학사님도 이해해 주실거야.”


최고급은 아니지만 가격이 일반인 상상을 초월하는 만향루 별실에 몇 사람이 있었다.

백엽과 백산 백연 두 동생, 그리고 광귀창과 허의원이다.

아버지를 모신지 며칠밖에 안지난지라 세 남매는 술잔을 간간히 입에만 댈 뿐, 행동에 조심하고 있었다.

결국 주로 술을 마시는 사람은 광귀창과 허의원이었다.

방법도 둘 다 똑 같이 자작이다.

두 사람은 마치 원수라도 된 듯 서로의 잔에 술 한잔 따라 주지 않았다.

그러다 혼자서 자작하기에 지쳤는지 허의원이 백엽에게도 한잔 하라고 한 것이다.

백엽은 그냥 살짝 웃었다.


“······대장, 섭섭합니다. 어르신이 돌아가셨는데, 제게 알리지도 않다니요.”


이번에는 광귀대 부대주 광귀창이다.

그도 별실에 온 다음부터 아무말 없이 혼자서 술만 연거푸 들이켰다.

그러다 어지간히 취기가 오르자 백엽에게 정말 서운한 듯, 하소연조로 말을 건넨것이다.

백엽은 지난 마지막 출전 귀환시 한 약속대로 부대주를 만났다.


“미안.”


백엽은 그 말을 끝으로 그냥 살짝 웃었다.

부대주는 대장의 그 모습이 너무 슬퍼 보여 말을 더 이어갈 수 없었다.


“어이 광귀창. 섭섭하면 집에가! 내가 다 먹을 테니까. 좋은 음식과 술을 앞에 두고 뭐하는 소리야. 으······음, 이 향기, 역시 만향루야. 내 살아생전 만향루 별실에서 술과 음식을 먹을 수 있다니······, 밀실은 아니지만 나 허의원 일생 기념비적인 날이야.”


허의원이다.

순간, 광귀창 표정이 돌변했다.


“대장! 저 돌팔이 영감탱이는 왜 부른거요? 저 돌팔이가 먹은 술값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 알기나 합니까? 내쫓고 우리끼리 한잔 합시다. 내가 살께요.”


그 말 끝에 술에 취한 몸짓으로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허의원은 그런 광귀창을 쳐다보지도 않고 여전히 술을 입에 털어 넣고 있었다.


“앉아 부대주! 허의원은 지난 7년간 아버지를 돌봐주셨잖아. 고마워서 내가 오늘 부른거야. 부대주가 이해해······.”


백엽은 광귀창이 저러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자신이 떠난다는 것을 알고,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에 슬픔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하고, 그렇다고 자신에게나 두 동생에게는 화풀이를 못하니······,

결국 애궂은 허의원에게 시비를 거는 것이다.

광귀창은 가슴속 답답함을 허의원에게 풀려고 하고 있었다.


“크으······읔!······빌어먹을!”


광귀창은 다시 주저앉더니 술병을 집어들었다.

일이 이렇게 마무리 될 줄 알았다는 듯이 허의원은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


허의원!


백엽은 허의원 이름도 모른다.

그냥 허의원이다.

이곳 장북현 일대에서는 유명한 낭의(浪醫)로 정체가 불분명하지만 술에 취하면 스스로 편작의 후예라고 떠들어 대곤 했다.


“다들 그만 마셔요! 지금까지 먹고 마신게 돈이 얼만지 알아요? 부대주님이 계산할 거 아니잖아요. 허의원님이 계산할 것도 아니고!”


백연이다.

아닌게 아니라 방안에는 수 십개의 술병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처음에는 비싼 백주를 마셨지만, 어느 순간부터 청주로 바꿨다.

음식은 첫 주문이 마지막 주문이었다.

먹고 마신 돈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오라버니가 계산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한 백연이 있었다.


“어이 사란······! 이거 왜 이래? 셋이 작전 다닐 때 병든 아버지 간호한게 누군데? 7년씩이나 더 사신게 누구 덕인데 응? 그런데 이깟 술 몇병이 아깝다 이거야? 서운해 사란!”


모두 자라처럼 목을 움추렸지만 한명만은 당당했다.

허의원이다.

그의 말도 사실이다.

허의원은 곧 돌아가실 것 같은 아버지 생명을 7년이나 연장시켰다.

백엽은 그것을 보면서 허의원이 확실히 실력은 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백엽이 알기에 장북현에서 허의원 치료를 받은 자중 병이 완치는 안되어도 신통하게 죽는 이도 거의 없었다.

당연히 죽을 자 빼고는 말이다.

그래서 백엽은 정말 허의원이 편작의 후예가 아닐까, 후예는 아니더라도 비전의 한가락이라도 이은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종종 해왔다.

그런 허의원은 꼭 광귀, 흑랑, 사란, 광귀창 등 별호만 불렀다.


“형님이 더 시켜준다잖아. 형님 돈 많아! 그치 형님?”

“산오라방! 조용히 안해? 죽고 싶어?”


백엽의 남동생 백산(白山)이 나섰다가 동생에게 한소리 듣고는 목을 움추렸다.

그런 두 동생을 보며 백엽은 웃었다.

동생 백연은 달빛처럼 밝고 환한(月光) 비단 무사복을 입고 있었다.

너무 아름다웠다.

월궁의 항아가 강림한다해도 동생보다는 미울 것 같았다.

검은 무복을 입은 동생 산도 정말 멋있었다.

백엽은 싫다고 하는 두 동생을 강제로 장북현에서 가장 큰 포목점으로 데려가 옷을 사주기를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천붕의 슬픔을 이겨내는 두 동생이 너무 대견했다.


“내 사랑하는 동생 산, 그리고 연아! 괜찮다. 나 돈 많다. 너희들 알다시피 잘 살기위해 나는 열심히 피 흘리며 돈 벌었다. 그런데 단 한번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오늘 처음으로 동생들에게 옷도 사주고 맛있는 음식도 사주고 술도 한잔 사주니 내 마음이 너무 기쁘다. 처음으로 동생들에게 형 노릇, 오라비 노릇한 거 같아서······. 그러니 우리 오늘은 마시고, 즐기자! 더구나 아버지 명이 아니더냐. 응?”


마음속으로 아무리 준비를 했어도, 12년간 수없이 경험을 했어도, 아버지 죽음은 가장 큰 슬픔, 하늘이 무너지는 천붕(天崩)의 아픔이다.

그래도 이제는 모두 훌훌 털고 날아올라야한다. 자신도 날고 동생 백산도 백연도 함께 날아야한다.

오늘은 마지막이자 시작이다.


아버지 어머니 덕분에, 지금까지 단 한번도 두 동생은 좋은 음식을 먹어보지 못했다.

좋은 집에 살지도 못했다.

비단옷 한번 입어 보지 못했다.

백엽은 그것이 너무 미안했다.

더구나 만향루는 아버지가, 정작 본인은 한번 같이 가자고 그렇게 말씀드려도 늘 웃기만 하시면서 떠나기전 꼭 한번 가보라고 한 곳이다.

아마 아버지는, 자신을 돌보느라 청춘을 한번도 즐기지 못한 세 남매를 가엾게 여겨 장북현을 떠나기전, 반드시 하룻밤 자고 가라고 명을 내렸을 것이다.

백엽의 장북현 마지막 선택은 그래서 만향루였다.


“자! 모두 잔 들어······. 위하여!”


잔을 들었다.


“위하여!”

“나도······, 위하여!”


언제나 한발 늦는 흑랑 백산이다.


.....


‘형! 연아!’


백산은 술잔을 내려놓고······,

잠시 물끄러미 형 백엽과 동생 백연을 쳐다보았다.


백산은, 돈을 벌기위해 떠돌던 낭인무사 아버지를 따라 이곳 장북현에 왔다.

어머니는 애초에 기억에도 없었다.

아버지는 이곳에 와서 낭인용병이 되어 출전한 첫 전투에서 돌아가셨다.

그리고 자신에게 남겨진 군부에서 받은 몇푼의 보상금은, 지킬 힘이 없는 어린 사람에게는 재앙이었다.

사파 무인도 아닌 동네 양아치에게 흠뻑 두드려 맞고 모두 빼앗겼다.

그렇게 8살 나이에 거리의 소년이 되었다.


‘좋은 아버지는 아니셨다. 계실 때도 매일매일 얻어터지기 바빴지’

‘그래도, 아무리 나쁜 아버지였어도 계시는 것이 어린 나에게는 축복이었다. 안계시자 바로 지옥이 시작되었으니까······’


그때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이 동생 백연이다.

연은 산보다 세 살 어린 5살이었다.

고아였다.

역시 이름도 없었다.

둘은 그날로 오누이가 되었다. 함께 어둠을 헤쳐나갔다.

산은 동생을 굶어 죽지않게하기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 태양은 없었다.

하루하루를 구걸과 도둑질로 살아가야만 했다.


‘그러다 태양을 보았다. 내가 10살때였다. 너무 눈이 부셨지······’


산은 처음으로, 중천에 높이 떠서 세상을 고루 비추는 태양을 보았다.

어머니 팽서희였다.

그날도, 동생을 먹이기위해 힘겹게 구한 찬밥 한덩어리를 지키기 위해 덩치 큰 양아치들과 싸워야해했다.

양아치들은 자기들이 먹을 것도 아닌데 밥을 빼앗으려 했다.

거지라고 놀리며 밥덩어리를 땅에 내던지고는 발로 비벼 못먹게 할 참이었다.

그들에겐 그냥 장난이었다.

하지만 산과 연 두 사람에게는 목숨이었다.

산은 목숨을 지키기위해 싸우다 일방적으로 얻어 맞았다.

너무 많이 맞아 이미 정신을 잃어 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모처럼 시내에 왔던 어머니가 봤다.


어머니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였다.

동네 건달들을 간단한 손짓 한번으로 모두 다 쫓아냈다.

그리고는 다가와, 그 고우신 손으로 피를 줄줄흘리며 바닥에 엎어져 정신을 잃어 가던 자신을 따듯하게 감싸 앉아 일으켰다.

잘못하면 기도가 막혀 죽을 수 있었다.

그때 산은 정신을 잃어가면서도 동생 연을 온몸으로 보호하고 있었다.

그리고 연은 산의 몸 보호아래 찬밥 덩어리를 소중한 보물을 감싸안 듯 가슴에 꼭 끌어안고 있었다.

연은 두려운 표정으로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훗날 어머니는 동생 연이 찬밥덩어리를 뺏길까봐, 산 오빠랑 같이 먹을 밥을 빼앗길까봐 그랬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얼마나 우셨는지 모른다.


산과 연은 그날 어머니를 따라 집으로, 움막으로 왔다.

어머니는 산에게 군에가 있는 아들 백엽이 돌아오면 그 아들을 주군으로 섬길 것을 제안했다. 산은 연과 함께 먹고 살 수 있다는 말에 주저없이 동의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웃으셨다.

웃는 얼굴이 하도 고와 산과 연은 넉을 잃고 쳐다 봤었다.

어머니는 두 사람을 집에 데리고 와서, 모두 씻기고 사온 옷을 갈아 입히더니 이러셨다.


“내 새끼들 ······! 씻기고 예쁜 옷 입히니, 내 아들 정말 잘 생겼다. 내 딸 정말 예쁘구나!”


그리고 어머니는 “너희들은 지금부터 내 새끼다” 하고는 품에 안아주셨다.

산은 그날 처음으로 어머니라는 존재를, 사랑을 알았다.

어머니는 아들의 종을 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불쌍해서 구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혹시 산의 독한 태도를 보고는 자존심 상해 따라오지 않을까봐, 댓가로 종이 될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산은 세월이 한참 더 지난 다음에, 나이가 들어서야 그런 사실을 알았다.

그때 얼마나 또 울었는지 모른다.

어머니 사랑이 너무 커서······!


“집이 볼품없지? 하지만 어쩌겠니 애들아! 이 애미 손이 흙손인걸! 호호호······!”


어머니는 집이 볼품없어 미안해하며 웃었지만 산과 연에게는 대궐이었다.

단 한번도 어머니를 가져보지 못한 두 사람은 그날부터 어머니와 같이 자기위해 맨날 싸웠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우측에는 산을, 좌측에는 연에게 팔베개를 해주고는 아버지 백승 대학사 이야기, 형 백엽 이야기를 해주고, 무림 이야기를 해줬다.

산은 너무 행복했다.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집이었지만 가장 행복한 보금자리였다.

어머니는 먹여주고 재워주고 무공을 가르쳐 주셨다.


5년후 백승 대학사를 만나, 아버지를 얻었다.

그날 산은 백이라는 성을 백씨 가문 가주에게 허락받고, 산(山)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동생 사란은 연(蓮)이라는 예쁜 이름을 얻고······.

어머니는 그때까지, 자식 이름을 짓는 것은 가장 고유의 권한이라며 이름을 지어주지 않으셨다.

어쩌면 어머니는 그래야지만 아버지가 살아돌아오신다고 스스로 체면을 걸은 것일 수 도······. 그날 산과 연은 부둥켜 안고 밤새워 울었다.

너무 기뻐서······!

두 사람은 아버지 몸이 성할 때 글을 배웠다.

어머니는 무공은 조금 알지만, 학문은 아주 일천하다고 늘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2년 후 형이, 어머니가 주군으로 섬기라고 제안했던 그 형이 돌아온다는 소식이 왔다.

산과 연은 며칠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려서 세상물정을 일찍 깨우친 두 사람이다.

형이 나쁜 사람이면 어쩌나······, 어머니와 아버지가 형만 사랑하면 어쩌나······,

다시 거리로 나가는 것은 무섭지 않았지만 부모를 잃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기우였다.

형은 돌아와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인사를 마치더니 자신들을 바로 찾아왔다.

그리고는······,


“내게도 동생이 생기다니 이럴 수가! 야호오······ 옷!”


하고는 산을 덥석 안았다.

키가 자기보다 더 큰데도 강제로 머리를 숙이게 해서는 끌어안고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러다 사란에게 가더니······,


“이렇게 예쁠 수가! 오! 예쁜 내 동생······!”


하더니 볼을 웅켜쥐기도 하고 끌어안기도 하고 세상에 다시 없는 보물을 보듯했다.

그날부터 형은 늘 함께였다.

앉아 있는 시간보다 앓아 누워 계신 시간이 배는 더 많은 아버지 대신이었다.

어머니도 대신했다.

나이가 제법 있어 개구쟁이처럼 빈민촌을 휩쓸지는 못했지만, 대신 함께 술을 마시고 음식을 사먹고 장북현을 좁다하고 쏘아 다녔다.

가끔이기는 하지만 낭인용병 생활도 했다.

그러다 흑랑이라는 별호도 얻었다.

어려서부터 뒷골목에서 치고받고 싸우던 모습 그대로 전투를 하다보니 한 마리 늑대가 되었다.


어머니 팽서희가 돌아가셨다는 소리에 너무 슬퍼 땅에 주저앉아 넉 놓아 엉엉 울었다.

동생 연은 기절을 했다.


이제 22세에 6척이 조금 넘는 키를 가졌다.

누가보더라도 남자라고 할만큼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사내가 되었다.

탄탄한 근육질로 커다란 대도를 무기로 사용했다.

모든 것이 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형 덕분이었다.

그 형과 이제 새로운 길을 갈 것이다.

형 앞길을 막는 자, 내 도를 먼저 맛봐야 할 것이다.


동생 연은 19세였다. 나날이 예뻐졌다.

5척반 정도로 여자로서는 상당히 큰 키와 탄탄한 몸매를 가졌다.

첫눈에 볼때는 조금 날카로워 보이는 듯 하지만 몇 번 보면 호감이 절로 가는 인상이다.

오늘 형이 사준 새옷을 입은 동생은 까무러치도록 예뻤다.

그래서 한번 안아보자고 했다가 뒤지게 맞을 뻔했다.


산은 술이 들어가자 어머니 아버지가 더 그리워졌다.

그래도 형이 있다. 동생이 있다. 혼자가 아니다.

그것이 정말로, 산에게는 정말 다행이었다.


“형! 동생! 한잔해! 건배!”

“어딜 만져······퍽!”

“크······악!”

“퍽!”

“크······아······악!”


산이 다른 생각에 잠겨있다가 건배를 외치며 무심결에 내뻗은 손이 연의 가슴 부위를 스쳤다.

그 댓가는 연의 일방적인 구타였다.


“연아! 오라비 살려······으악! 형······! 동생 죽어! 살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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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제71화 장씨 가족의 문(張家口) 1 +2 20.07.14 2,747 47 14쪽
71 제70화 혼자 오는 것은 없다 (2부 시작) +2 20.07.13 2,840 51 16쪽
70 제69화 널리 편안하게(廣平) 4 (1부 끝) +4 20.07.12 2,698 52 14쪽
69 제68화 널리 편안하게(廣平) 3 +1 20.07.11 2,772 48 16쪽
68 제67화 널리 편안하게(廣平) 2 +6 20.07.10 2,903 53 15쪽
67 제66화 널리 편안하게(廣平) 1 +2 20.07.09 2,990 61 16쪽
66 제65화 막힌 것을 열다(開封) 7 +4 20.07.08 3,061 51 17쪽
65 제64화 막힌 것을 열다(開封) 6 +6 20.07.07 3,070 52 15쪽
64 제63화 막힌 것을 열다(開封) 5 +6 20.07.06 3,145 57 17쪽
63 제62화 막힌 것을 열다(開封) 4 +10 20.07.05 3,252 62 17쪽
62 제61화 막힌 것을 열다(開封) 3 +4 20.07.04 3,267 54 18쪽
61 제60화 막힌 것을 열다(開封) 2 +4 20.07.03 3,254 57 16쪽
60 제59화 막힌 것을 열다(開封) 1 +12 20.07.02 3,510 58 16쪽
59 제58화 표행의 끝 +4 20.07.01 3,239 53 16쪽
58 제57화 개봉(開封)으로 +1 20.06.30 3,187 57 16쪽
57 제56화 질개 (蛭丐) +3 20.06.28 3,239 51 16쪽
56 제55화 입지 (立志) +1 20.06.28 3,161 55 15쪽
55 제54화 추상(秋霜) +3 20.06.27 3,333 54 18쪽
54 제53화 해후 +2 20.06.26 3,406 60 16쪽
53 제52화 백산과 백연 6 +1 20.06.25 3,249 57 15쪽
52 제51화 백산과 백연 5 +2 20.06.24 3,159 46 15쪽
51 제50화 백산과 백연 4 +5 20.06.23 3,165 51 13쪽
50 제49화 백연과 백산 3 +2 20.06.22 3,258 46 14쪽
49 제48화 백연과 백산 2 +3 20.06.21 3,505 54 14쪽
48 제47화 백산과 백연 1 +2 20.06.20 3,387 56 14쪽
47 제46화 만검신협 6 +2 20.06.19 3,502 60 14쪽
46 제45화 만검신협 5 +4 20.06.18 3,444 66 14쪽
45 제44화 만검신협 4 +1 20.06.17 3,468 65 14쪽
44 제43화 만검신협 3 +2 20.06.16 3,469 68 15쪽
43 제42화 제갈승과 제갈도 2 +6 20.06.15 3,439 62 16쪽
42 제41화 제갈승과 제갈도 1 +4 20.06.14 3,552 59 18쪽
41 제40화 만검신협 2 +2 20.06.13 3,553 69 15쪽
40 제39화 만검신협 1 +4 20.06.12 3,587 75 17쪽
39 제38화 금검과 천사검 +5 20.06.11 3,695 55 18쪽
38 제37화 신과 선인들의 고향 9 +4 20.06.10 3,757 59 19쪽
37 제36화 신과 선인들의 고향 8 +3 20.06.09 3,453 64 17쪽
36 제35화 신과 선인들의 고향 7 +3 20.06.08 3,458 65 14쪽
35 제34화 신과 선인들의 고향 6 +3 20.06.07 3,527 60 15쪽
34 제33화 신과 선인들의 고향 5 +1 20.06.06 3,505 66 14쪽
33 제32화 신과 선인들의 고향 4 +1 20.06.06 3,493 63 16쪽
32 제31화 신과 선인들의 고향 3 +1 20.06.05 3,623 70 16쪽
31 제30화 신과 선인들의 고향 2 +3 20.06.04 3,720 65 17쪽
30 제29화 신과 선인들의 고향 1 +1 20.06.03 3,933 60 18쪽
29 제28화 푸른 바다 7 +1 20.06.02 3,720 68 17쪽
28 제27화 푸른 바다 6 +3 20.06.01 3,805 69 20쪽
27 제26화 푸른 바다 5 +1 20.05.31 3,794 70 17쪽
26 제25화 푸른 바다 4 +2 20.05.30 3,843 68 16쪽
25 제24화 푸른 바다 3 +2 20.05.29 3,797 67 15쪽
24 제23화 푸른 바다 2 +3 20.05.28 3,869 66 16쪽
23 제22화 푸른 바다 1 +5 20.05.27 4,126 70 19쪽
22 제21화 네 개의 강 8 +4 20.05.26 3,993 66 15쪽
21 제20화 네 개의 강 7 +2 20.05.25 3,916 69 16쪽
20 제19화 네 개의 강 6 +2 20.05.24 3,882 67 15쪽
19 제18화 네 개의 강 5 +3 20.05.23 3,873 70 16쪽
18 제17화 네 개의 강 4 +4 20.05.22 3,906 67 17쪽
17 제16화 네 개의 강 3 +2 20.05.21 4,049 69 18쪽
16 제15화 네 개의 강 2 +2 20.05.21 3,995 70 21쪽
15 제14화 네 개의 강 1 +3 20.05.20 4,161 70 17쪽
14 제13화 천뢰와 월광 2 +3 20.05.19 4,207 73 17쪽
13 제12화 천뢰와 월광 1 +2 20.05.19 4,338 70 20쪽
12 제11화 떠나는 자 남는 자 4 +2 20.05.18 4,269 79 17쪽
11 제10화 떠나는 자 남는 자 3 +4 20.05.17 4,270 75 14쪽
10 제9화 떠나는 자 남는 자 2 +1 20.05.16 4,372 75 22쪽
» 제8화 떠나는 자 남는 자 1 +1 20.05.15 4,490 68 20쪽
8 제7화 시작되는 인연 4 +1 20.05.14 4,480 69 19쪽
7 제6화 시작되는 인연 3 +1 20.05.13 4,525 69 17쪽
6 제5화 시작되는 인연 2 +3 20.05.12 5,052 68 18쪽
5 제4화 시작되는 인연 1 +3 20.05.11 5,819 86 19쪽
4 제3화 모랫바람 3 +3 20.05.11 5,815 85 18쪽
3 제2화 모랫바람 2 +6 20.05.11 6,228 96 19쪽
2 제1화 모랫바람 1 +5 20.05.11 8,499 105 15쪽
1 들어가는 글 +7 20.05.11 11,215 14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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