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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건의 막소설

바퀴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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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건
작품등록일 :
2014.07.20 23:57
최근연재일 :
2015.10.05 00:51
연재수 :
53 회
조회수 :
388,416
추천수 :
9,206
글자수 :
200,772

작성
15.09.06 19:38
조회
1,681
추천
32
글자
11쪽

2권 1장 - 필연적 퇴장 (7)

DUMMY

“생각해보니까. 내 18번은 수사가 아니라 중재더라.”

대한민국 취객들의 주사를 떠올리며 김홍준은 자리에 앉아 신발을 신었다.

“그 인간들에 비하면 이건 초딩 화해시키는 수준이지.”



한적한 주택가의 전원주택 앞에 네 명의 남자가 서있었다.

도보에 일렬로 서있는 그들은 보기만 해도 숨 막히는 덩치의 소유자들이었다.

그 무리의 왼쪽 맨 끝에 서있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저기가 네 집이지?”

옆집을 가리키며 김홍준이 질문했다.

게롤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내 집이지.”

김홍준은 고개를 돌려 눈앞에 있는 집에 시선을 주며 말했다.

“네 마누라가 있는 집은 여기고?”

게롤드는 무안한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홍준은 어이없는 표정을 애써 숨기지 않았다.

“참 멀리도 갔군. 비행기 여러 대 갈아타야 겠네.”

“옆집이라고 꼭 가깝다고 할 수는 없어. 맨~”

비꼬는 김홍준의 옆에서 오마에가 말했다.

“오키나와에서는 부부싸움하고 옆집으로 도망가면 못 잡는 경우가 흔해.”

김홍준은 뭔 소리 하냐는 표정으로 오마에를 쳐다봤다.

오마에는 김홍준의 표정에도 아랑곳 않고 말했다.

“현지인과 결혼한 미군들 같은 경우에 군부대로 들어가면 잡을 수가 없지. 맨~”

어디서 웃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는 농담이었다.

홀로 웃고 있는 오마에를 보며 김홍준은 본론에 집중했다.

“그러니까 네 마누라는 네가 바람을 폈다고 생각한다 이거지?”

“그래, 평생 여자라고는 엄마와 아내뿐이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구라 치지마라. 구라 안 쳐도 도와줄 테니까.”

김홍준은 냉소적이었다.

게롤드는 김홍준의 냉소적인 반응에 뭔가 찔리는 게 있는지 눈을 돌렸다.

그 반응에 한 숨을 내쉬며 김홍준은 오른편 맨 끝에 서있는 남자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그런데 넌 왜 온 거냐?”

김홍준의 질문에 남자가 대답했다.

“사정은 들었다. 안 좋은 일이 있었지만 팀 동료로서 동료의 위기를 외면 할 수는 없지.”

꼬리아는 김홍준은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무뚝뚝한 반응이었지만 불쾌감은 들지 않았다. 김홍준은 뒷목을 긁으며 게롤드의 등을 밀었다.

덩치에 안 맞게 게롤드는 순순히 밀려났다. 앞으로 걸음을 옮기는 게롤드를 따라 남자 셋이 발걸음을 옮겼다.

덩치 넷이 한 번에 움직이는 모습이 어디 뒷골목 수금원 같아 보였다.

옆집에서 이 모습을 목격했다면 당장 경찰서에 신고가 들어가도 할 말 없을 것 같은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현재 옆집은 텅 빈 상태였다.

문 앞에 선 게롤드는 몇 차례 헛기침을 내뱉은 후 초인종을 눌렀다.

한 번 눌렀을 때는 반응이 없었다.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스무 번째가 되었을 무렵에서야 반응이 왔다.

“그만 눌러요!”

게롤드의 아내가 문 밖으로 불쑥 머리를 내밀고 빽 소리를 질렀다.

깜짝 놀란 4인방이 주춤 뒷걸음질 쳤다.

동시에 뒷걸음질을 쳤다는 사실이 멋쩍었는지 4명 모두 헛기침을 하며 슬쩍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김홍준이 굳어있는 게롤드의 등을 쳤다.

“여..여보, 오랜만이야.”

“이틀 밖에 안 됐는데 오랜만은 무슨...”

뾰족한 대답에 게롤드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우물우물 하고 있는 게롤드가 갑갑했는지 꼬리아가 나섰다.

“린다, 이 친구 해명 좀 들어봐요. 바람 핀 적 없답니다. 본인이 그렇게 주장을 하잖아요.”

게롤드를 변호하기 위해 한 말이었지만 어투가 공격적이라 역효과가 났다.

“안소니, 게롤드와 친구 사이가 아니었다면 그 말 믿었겠어요!? 저도 제 친구가 해준 말이라 믿는 거에요! 현실이 아니었으면 하지만... 친구가... 친구가 목격했다구요!”

“게롤드...너 진짜냐?”

역으로 질문해오는 꼬리아의 모습에 게롤드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뭐가 진짜야? 바람 핀 적 없어! 너도 알잖아! 훈련 끝나면 바로 집에 가는 거! 그런데 바람 필 시간이 어딨겠냐!?”

“바람 필 시간이야 못 만들 게 뭐야! 마음만 먹으면 뭔들 못 만들어!”

“요~ 맨, 틀린 말 아닌데? 미군부대에서 2교대 근무 서던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도 어떻게 바람을 피더라구. 내 인생에 그렇게 교묘한 스케쥴 관리는 처음이었지.”

“넌 그냥 닥치고 있어라.”

“들었죠? 전 할 말 없어요! 본 사람이 있다는데 더 이야기해서 뭘 해요!?”

김홍준은 오마에를 밀어내며 앞으로 나섰다.

흥분해서 벌겋게 달아오른 게롤드의 아내를 보며 김홍준이 말했다.

“부인, 진정하시죠.”

“어떻게 진정을 해요!”

“부인, 이야기를 쭉 들어봤는데 그러니까... 부인이 부군 되는 분의 외도를 의심하게 된 건 친구 분의 목격 증언 때문이라는 거죠?”

“예...그래요.”

사무적인 김홍준의 화법에 린다의 화가 조금 누그러졌다.

갑자기 경찰로 복직한 듯한 김홍준의 모습에 오마에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 모습이 마치 늑대를 만난 토끼 같았다.

“흠..., 말 한마디에 그 정도로 신뢰를 할 정도라면 그 친구분과는 꽤나 오랜 시간 교우를 나눴겠군요.”

“예... 어렸을 때부터... 거의 20년 넘었으니까요.”

김홍준은 손가락으로 입술을 두드렸다.

뭔가를 고민하는 듯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 입술에서 손가락을 떼며 김홍준이 말했다.

“결국 여기 프로메스씨의 외도를 의심 할 증거는 부인과 그 친구분 사이의 20년 우정 밖에 없다는 말이군요. 부인 말에 따르면 다른 영상 데이터 같은 건 없을 테구요.”

“그래요... 하지만 그 친구가 제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 친구분은 현재 어디에...?”

“한 달 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김홍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인, 20년 우정에 대해 이야기 하셨는데 그렇다면 여기 부군과는 결혼한지 몇 년이나 되셨습니까?”

“이이와는 10년이 넘었죠.”

“20년과 10년이군요.”

“그게 중요한가요!?”

침착했던 린다의 목소리가 다시금 높아졌다.

김홍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하지요.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10년이라면 한 번의 기회를 더 줄 수 있는 시간은 되지 않겠습니까?”

“한 번의 기회라뇨?”

“부인, 부군이 잃어버린 신뢰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주시지 않겠습니까? 부군의 사랑을 증명 할 기회를 말이죠.”

“그게... 무슨...”

김홍준은 뒷짐을 지며 고개를 돌려 옆집을 쳐다봤다.

“부군을 완전히 떠날 생각이셨다면 이렇게 가까운 곳으로 오지는 않으셨겠죠. 안 그렇습니까?”

린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부인, 기회를 주시죠.”

차분하게 흘러나온 김홍준의 요구에 린다의 미간이 좁혀졌다.

한참을 고민하던 린다가 이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좋아요. 증명 할 기회를 드리죠. 여기서 잠깐 기다리세요.”

그 말과 함께 린다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자 꼬리아가 말했다.

“이게 다 무슨 쇼야? 척 봐도 그 친구라는 여자가 거짓말 한 거 아냐? 그럼 거기서 더 밀어붙여야지.”

불만이 깃든 목소리였다.

옆에서 오마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둘을 보며 김홍준이 말했다.

“싸우고 싶으면 그렇게 하던가.”

“그게 무슨 말이야?”

꼬리아가 되물었다.

김홍준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중재는 상대를 굴복시키는 게 아냐. 상대가 내 말에 귀 기울이게 하는데 목적이 있는 거지. 일단 이혼을 막아야 하잖아? 안 그러냐? 게롤드.”

옆에서 듣고 있던 게롤드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때로는 져주는 게 답이 되기도 해. 야, 져줘서 해결 할 수 있다면 아직 괜찮은 거야. 뭘 해도 막을 수 없는 경우보다는 말이지...예를 들어 아내가 이혼 합의서를 던져두고 집을 나갔다던가...”

한이 묻어나는 해설이었다.

한 순간에 분위기가 축 쳐졌다.

8월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서늘한 분위기 속에서 김홍준이 우울해 하고 있을 때, 벌컥 문이 열렸다.

“받아요.”

린다가 내민 건 예의 물통이었다.

“이건... 그겁니까?”

꼬리아가 물었다.

린다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보다 많이 탔어요. 이걸 다음 경기에서 전부 마시면 당신의 말을 믿겠어요.”

마지막 말은 게롤드를 향해서였다.

게롤드는 비장한 표정으로 물병을 바라 봤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물통을 잡았다.

“알았어. 증명하지.”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린다는 문을 닫았고 네 남자의 수중에는 약 탄 요구르트 한 통만이 남았다.

오마에가 두려움에 찬 시선으로 물병을 바라봤다.

“그만두는 게 좋아. 맨~. 잘못하면 평생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구~.”

게롤드는 고개를 저었다.

“사랑을 위해 인생을 바치겠어!”

물통을 번쩍 들며 게롤드가 말했다.

그 모습을 김홍준과 꼬리아가 쳐다봤다.

“XX, 꼴깝 떠네.”




다음 날.

경기 당일.

스코어는 1:0.

경기 시간은 후반전.

모든 게 순조로웠다.

전술은 계획대로 기능했고 흐름은 스톰포겔스 텔스타의 수중에 있었다.

이어지는 골키퍼의 선방으로 작게나마 남아 있던 빈틈도 잘 틀어막고 있었다.

김홍준은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전광판을 쳐다봤다.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후반 40분.

경기장에 있는 두 선수, 김홍준과 꼬리아는 동시에 침을 삼켰다.

힐끗 골키퍼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에는 남모를 두려움이 차있었다.

‘또 골키퍼를 해야 하나?’

꼬리아의 속내다.

‘풀백은 제발... 시키지마.’

김홍준의 속내였다.

둘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게롤드 프로메스는 골대에 기대어져 있는 물병을 집어 들어 남아 있는 내용물까지 탈탈 입 안에 털어 넣었다.

비장했다.

표정만 보면 요구르트가 아니라 사약이라도 먹는 것 같아 보였다.

그 모습에 김홍준과 꼬리아가 참담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렇게 경기는 계속되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1:0의 스코어는 변함없었다.

추가 시간도 거의 끝나갔다.

경기 종료 직전까지 팀 동료, 서포터, 기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사건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1승 2무.

스톰포겔스 텔스타의 시즌 기록 보드에 첫 승이 기록되었다.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소리와 동시에 게롤드의 얼굴에 환희의 표정이 어렸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거야. 맨~”

경기장을 나서는 김홍준에게 오마에가 물었다.

김홍준은 스포츠백을 고쳐 매며 주차장 한켠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게롤드와 그의 아내 린다가 있었다. 격정적인 키스를 나누는 둘을 보며 김홍준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어떻게 되기는...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거지.”

그 말과 함께 김홍준은 등을 돌렸다.

게롤드의 눈을 피해 주차장을 벗어나며 김홍준은 생각했다.

‘이제 이런 일은 없겠지. 설마 그러겠어?’

그것은 김홍준의 작은 소망이었다.


작가의말


  하루 늦었습니다.

  이번 화로 필연적 퇴장은 끝납니다.

  다음 장의 제목은 ‘터프해져야 하는 이유’ 입니다.

  다음 장에서는 좀 더 김홍준과 축구에 집중한 이야기를 쓸 생각입니다.

  계획대로 될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계획은 그렇습니다.


   오타 및 오류 지적 환영합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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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2장 터프해져야 하는 이유 (1) +4 15.09.08 1,543 30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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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2권 1장 - 필연적 퇴장 (6) +4 15.09.01 1,594 2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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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2권 1장 - 필연적 퇴장 (1) +5 15.08.15 2,402 4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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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후일담- 1. 비빔밥의 미학 (후) +17 14.10.30 6,570 147 10쪽
38 후일담- 1. 비빔밥의 미학 (전) +15 14.10.28 5,662 149 8쪽
37 7장 목표는 같다. (9) +18 14.10.25 6,261 167 10쪽
36 7장 목표는 같다. (8) +18 14.10.24 6,471 178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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