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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건의 막소설

바퀴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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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건
작품등록일 :
2014.07.20 23:57
최근연재일 :
2015.10.05 00:51
연재수 :
53 회
조회수 :
388,421
추천수 :
9,206
글자수 :
200,772

작성
14.10.03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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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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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글자
11쪽

6장 당신이 잠든 사이에 (6)

DUMMY

감독이 원하는 것.

그건 그 안에 있었다.

김홍준은 선수들의 떠드는 이야기 속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어서 경기가 시작되기를 기다릴 따름이었다.



전반 2실점으로 선수들은 가라앉아 있었다.

꼬리아는 다른 고참 선수들과 함께 관객석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경기장 전체를 볼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서였다.

경기는 지난 친선경기처럼 엉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모든 선수가 만난 지 한 달 좀 넘은 신참들이었기에 조직력이라고는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패스를 하려면 먼저 선수를 눈으로 찾아야 했다. 그로인해 공격 전개도 더뎠고 그 사이 자리를 잡은 상대팀 선수들 때문에 패스가 연결되지도 못했다.

꼬리아는 서포터의 야유 소리를 들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텄군. 텄어.”

지난 친선경기에서 상대팀은 잉글랜드 7부 리그 클럽이었다.

오늘 상대하는 클럽은 독일 2부 리그 클럽으로 이번 시즌 승격이 유력하다고 평가 되는 강팀이었다.

거기다 대부분 주전에 컨디션도 좋아 보였다.

활기찬 움직임과 능란한 기술, 강력한 피지컬을 보며 꼬리아는 설사 경기장에 자신들이 서있었다 해도 승부를 장담하기 힘들었을 거라 생각했다.

사실상 전반 초반이 다 되도록 2실점으로 막아내고 있는 것도 요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힘들겠죠?”

“뭐?”

꼬리아는 옆에서 들려 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오늘도 질 것 같지 않아요? 지난 경기 이상으로 엉망으로 지면 감독도 우리를 대하는데 좀 신경을 쓰겠죠?”

“글쎄..”

동료의 이야기에 꼬리아는 벤치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감독을 바라봤다.

2실점으로 끌려 다니고 있음에도 그는 침착해 보였다. 오히려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건 옆에 앉아 있는 수석코치였다.

누가 보면 승격 결정전이라도 치루고 있나 싶을 정도로 산만한 모습이었다.

“지난 연습경기 때는 괜찮아 보이더니.. 결국 본성이 나오는군...”

몇 년 째 클럽에서 함께 하고 있는 포츠의 모습을 보며 꼬리아는 혀를 찼다.

그러며 다시 경기장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장내 아나운서의 외침이 꼬리아의 귀를 때렸다.

“꼬오오오오오올~! 원정팀이 추가골을 넣습니다! 독일에서 네덜란드까지 먼 길을 온 손님에게 골을 허용하는 텔스타! 손님에 대한 배려가 너무 후하네요!”

오두방정을 떠는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들으며 꼬리아는 점수판을 확인했다.

3:0

전반 32분을 막 넘어가는 시점에 벌어진 실점이었다.

꼬리아는 눈꼬리를 찌푸리며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에 서있는 팀내 유일의 아시아인 선수를 쳐다봤다.

그는 그라운드 위에 서서 상대팀 선수들의 골 세레모니를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만만해 하더니. 뭐하는 거야?’

꼬리아는 라커룸에서 지켜본 그를 떠올렸다.

입단 테스트를 받는 시한부 인생이 맞나 싶은 여유 넘치는 표정이었다.

“그냥 포기한 거였나?”

꼬리아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옆에 앉은 선수가 경기장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거 또 7:0 보겠는데.”

“에쎈, 너는 팀이 지고 있는데 웃기냐?”

“그럼 울까요? 어찌되었든 이렇게 되는게 부주장 의도였잖아요. 감독에게 팀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가 누구인지 보여 주자면서요.”

그 말대로였다.

꼬리아는 동료의 대답에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의 귓가에 다시 동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저 아시아 놈이요.”

꼬리아는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어투로 대답했다.

“저 녀석이 뭐?”

“꽤 재밌는 플레이를 보여주는데요?”

“뭐?”

에쎈의 말에 꼬리아는 김홍준을 바라봤다.

전반 43분, 경기는 종반에 이르러 있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김홍준은 상대팀 선수들에게 농락당하며 끊임없이 공간을 노출하고 있었다.

어떻게 봐도 흥미를 끌만한 모습은 아니었다. 저 모습을 재밌다고 한다면 조롱 이외에 다른 의미가 있을 수 있을까?

“재밌기는... 저래도 같은 팀이다.”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잘 보세요. 저 녀석 움직임이 누구와 닮지 않았어요?”

에쎈의 지적에 꼬리아는 주의 깊게 김홍준을 살폈다.

전반 44분 추가시간은 4분이었다.

5분의 짧은 시간, 새삼스런 눈길로 경기장을 보던 꼬리아는 이내 에쎈이 내뱉은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저러면 오히려 마이너스 아니에요? 자기 플레이를 보여줘야지. 저렇게 뛰어다니면 문제가 생길 텐데?”

꼬리아는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친선경기는 이기기 위한 경기가 아니야.”

“예?”

꼬리아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관중들의 야유 속에 묻혔지만 에쎈은 꼬리아의 호쾌한 웃음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

꼬리아의 시선이 김홍준을 향했다.



김홍준은 경기장에 서서 전광판을 올려다봤다.

하프타임이 끝나고 45분이 다시 시작된다.

후반전을 맞아 김홍준은 하프라인 중앙에 놓여 있는 공을 바라봤다.

주심의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 김홍준은 바쁘게 눈동자를 굴려 그라운드 위에 서있는 선수들을 살폈다.

눈동자가 향하는 곳은 상대팀 진영이 아니었다. 눈앞에 존재하는 아군 공격수들 그리고 후방에 위치한 수비들을 향해서였다.

부산한 움직임 속에서 3실점의 후유증이 드러나는 조급함이 엿보였다.

김홍준은 짧게 심호흡을 하고 시선을 돌려 벤치에 앉아 있는 감독을 바라봤다.

‘잘 보고 있습니까?’

지난 이틀 간 생각한 답이 정답인지 김홍준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생각 해낼 수 있는 최고의 답은 이미 정해 놓은 상태였다.

김홍준은 다시 시선을 돌렸다.

주심의 입에 휘슬이 물렸다.

날카로운 휘슬 소리가 경기장에 울리고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김홍준은 최고의 답을 따라 움직였다.

친선경기를 뭐라고 생각합니까?

대부분의 축구팬들은 이 질문에 이렇게 대답 할 것이다.

‘시즌 전에 몸 푸는 거 아니에요?’

그 말도 맞다.

휴식 기간 동안 굳었던 경기감각을 끌어올리기 위한 사전 정비 작업이다.

하지만 신임 감독이 오고 새로운 선수가 영입된 구단은 친선경기를 어떻게 써야 할까?

김홍준은 경기장을 달렸다.

한 순간도 쉬지 않았다.

끊임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남고 싶다는 이기심에 돌아오지 않는 오버래핑을 한 오른쪽 풀백의 뒷공간을 메운다.

주전 확보를 위해 강한 인상을 남겨야 한다는 이기심에 수비보다 공격을 택한 중앙 미드필더의 빈자리를 향해 달려간다.

친선경기에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 매뉴얼은 존재하지 않는다.

감독이 백 명이면 백 명의 답안이 있고 구단이 백 개 라면 백 가지 답안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선수에게는 한 가지 답만이 존재한다.

감독이 원하는 것.

김홍준은 달리는 와중에도 생각했다.

감독이 원하는 프리시즌은 무엇인가?

경기장을 굴렀다.

상대의 태클에 넘어졌다.

몇 번이가 바닥을 굴러 흙투성이가 된 몸을 이끌고 일어나 김홍준은 공을 탈취한 상대팀 선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입에서 단내가 났다.

거인이나 다름없는 게르만 혈통의 공격수에게 달라붙어 김홍준은 공을 향해 다리를 뻗었다.

상대의 어깨에 밀려나는 김홍준의 모습이 고목나무에 매달렸다 미끄러지는 매미에 진배없었다.

겉에서 보면 분명 좋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김홍준은 모양새 좋지 않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거체에 밀려 튕겨져 나가 바닥을 굴러도 개의치 않았다.

경기장에 서있는 누구보다도 더러워진 유니폼의 소매로 얼굴을 닦아내며 김홍준은 초원 위의 미어켓처럼 사방을 살폈다.

그리고 지금 이 경기장에 없는 선수들을 떠올렸다.

병실에 누워있는 프랑크 코어페슈크, 관객석 어딘가에 있을 안소니 꼬리아 그 외 1군 주전으로 뛰는 고참 선수들이 김홍준의 뇌리를 떠돌았다.

그들은 지금 이 자리에 없지만 김홍준은 지금 이 자리에 그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머릿속을 지배하는 건 지난 한 달 간 보아온 프랑크 코어페슈크의 플레이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안소니 꼬리아의 헌신적이고 전투적인 플레이가 몸을 따라 재현되었다.

어설펐지만 김홍준은 그들을 떠올리며 그들의 플레이를 필드 위에 재현하려 노력했다.

신참들에게는 없는 것, 그건 팀을 위한 헌신이었다.

인간은 생존에 눈이 팔리면 주변을 보지 못한다.

사랑에 눈이 팔리면 상처 받을 사람을 떠올리지 못하는 것처럼.

김홍준은 경기장을 뛰어다니는 동료들을 쳐다봤다.

그들 모두 팀에 남고 싶다는 욕망에 들끓어 있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나를 보여주는 것보다 팀을 위해 뭘 할 수 있는지 증명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감독의 지시보다 더 벌어진 수비진과 미드필더 라인 사이의 드넓은 간격의 중간에서 김홍준은 홀로 분투했다.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넓은 황야 위에 홀로 선 병사 같은 모습이었다.

패전이 아로새겨진 황무지 위의 병사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김홍준은 허리를 굽힌 채 숨을 헐떡이며 전방을 바라봤다.

코너킥 상황에 모든 선수가 올라가 있었다.

잠시 잠깐의 휴식을 음미하며 김홍준은 상대편 골에어리어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집중했다.

키커가 공을 찼다.

왼쪽 코너킥 라인에서 올려 진 공이 오른쪽으로 감겨 들어갔다.

선수들이 일제히 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김홍준은 묘한 예감 같은 걸 느꼈다.

고등학교 시절 한창 축구에 빠져있을 때, 느꼈던 감각이었다.

당시 친구들은 식스센스냐며 놀려댔었다.

하지만 김홍준은 그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경기시간 후반 37분.

스코어는 4:0.

코너킥 라인에서 찬 공이 상대팀 수비의 머리에 맞아 골에어리어에서 튕겨져 나왔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공이 떨어졌다.

그 자리에 김홍준이 있었다.

거의 풀려버린 다리에 억지로 힘을 주며 김홍준을 원바운드 된 공을 논스톱으로 때렸다.

공은 회전하지 않았다.

야구의 싱크볼처럼 불규칙한 움직임을 그리며 공이 골대를 향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김홍준은 쥐가 난 다리를 부여잡고 그대로 쓰러졌다.

시선은 하늘을 향했고 김홍준은 다리를 붙잡고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런 김홍준의 귀로 관객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고통 속에서 김홍준은 웃었다.

“제가 내린 답이 맞습니까?”

몸을 덮쳐오는 동료들에게 짓눌려 김홍준은 한국어로 작게 중얼거렸다.


작가의말

오류 및 오타 지적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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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2권 1장 - 필연적 퇴장 (2) +2 15.08.18 2,136 38 8쪽
41 2권 1장 - 필연적 퇴장 (1) +5 15.08.15 2,402 45 10쪽
40 2권 서장 15.08.15 2,047 33 2쪽
39 후일담- 1. 비빔밥의 미학 (후) +17 14.10.30 6,570 147 10쪽
38 후일담- 1. 비빔밥의 미학 (전) +15 14.10.28 5,662 149 8쪽
37 7장 목표는 같다. (9) +18 14.10.25 6,261 167 10쪽
36 7장 목표는 같다. (8) +18 14.10.24 6,472 178 17쪽
35 7장 목표는 같다. (7) +13 14.10.22 6,673 159 7쪽
34 7장 목표는 같다. (6) +17 14.10.20 6,687 172 7쪽
33 7장 목표는 같다. (5) +18 14.10.17 6,849 16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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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7장 목표는 같다. (2) +22 14.10.10 8,240 20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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