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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농곰의 서재입니당

리드리스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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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농곰
작품등록일 :
2018.01.26 10:19
최근연재일 :
2018.09.30 17:30
연재수 :
206 회
조회수 :
67,662
추천수 :
957
글자수 :
1,177,611

작성
18.04.12 07:28
조회
280
추천
5
글자
12쪽

다시 만난 사람들 2

DUMMY

“이 망할놈들이!”


스스로의 성격대로 모렉 공작은 말보다 행동, 책상을 쿵 내리쳤다. 나무로 된 책상은 또 한번 부러지고 말았다. 모렉 공작가의 노집사는 한숨을 푹 쉬었다.


“공작님. 이번 달만 여섯개를 부숴먹으셨습니다. 자제해주십시오.”


“제길! 열 뻗치는걸 어쩌란말이냐!”


“볼드 남작령의 일은 잘 처리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잘 처리하긴 개뿔! 그 영지 인원이 모조리 죽어버렸는데 말이다!”


잠깐 분노하는 모렉 공작에게 시간을 주고 노집사가 물었다.


“그래서 이번엔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이 망할놈들 이라고 했으니 누군가가 모렉 공작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리라. 벌써 수십년이나 된 주인과의 인연은 어지간한 일로는 당황조차 하지 않는 강철의 심장을 주었다. 물론 그게 기쁘지는 않았지만.


“브라헴의 잡것들이 감히 우릴 상대로 손가락질하지 않느냔말이다!”


“허어···”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수십년을 함께한 만큼 집사는 정세를 파악하는 눈도 가지게 되었다. 대충 상황을 파악하자 조금 어이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브라헴의 의원들에게 어느정도 입막음을 해두었을텐데 이상하군요. 그런데···”


잠깐 모렉 공작과 책상을 번갈아보던 집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화나시는건 알겠지만, 부수는건 자제해주십시오. 쓸데없는데 돈을 낭비하게됩니다. 그리고··· 서류를 다시 정리하는건 매번 귀찮아하시지 않습니까? 허허허.”


“생각하면 할수록 괘씸하군! 내 당장 그놈들을!”


“허나 이해못할 바는 아니지요. 자신들과 함께하던 자가 죽어나갔는데 아무것도 따지지 않는게 더 이상합니다.”


모렉 공작은 책상을 내리쳤으나 이미 반토막 나 바닥에 널부러진 책상을 칠 수 있을리가 없었다. 허공을 휘젓자 뻘쭘해진 공작은 손을 거두었다.


“그러니 더 열받는게야!”


“아무튼 책상을 부수는건 자제해주십시오. 명색이 공작되시는 분이 바닥에서 집무를 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 장면을 상상하던 집사는 고개를 저었다. 모렉 공작이라면 어쩌면 집무실 바닥조차도 부숴놓을테니까.


“책상이 낫겠군요.”


노집사의 시름은 깊어만간다.




***




“가느냐?”


벤자민 씨가 먼저 나와있었다. 새벽에 몰래 기어가려고했는데 눈치도 좋지. 나이가 들어서 밤잠이 없는걸까? 차마 입밖으로 꺼낼 순 없는 생각을 해봤다.


“네.”


“갈 곳은 정했고?”


“처음엔 주교가 말한대로 용병협회가 있는곳으로 가려고 했는데··· 화촌으로 가려고요. 모던 씨를 만나는게 더 좋을것 같아서요. 가깝기도 하고.”


벤자민 씨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모던··· 그래. 그라면 알지도 모르겠구나.”


더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벤자민씨는 좋은 의견이라고 동의해주었다. 왜 비루를 찾는지는 묻지도 않고 도와주는 그의 배려에는 한번 더 감사한다. 일단 화촌으로 가서 모던씨도 모른다고 한다면 용병협회로 갈 생각이다.

그리고 왠지 모르겠지만, 벤자민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뭐 잊은거라도 있나요?”


“그러게 말이다. 뭔가가 기억날것만 같은데··· 으음!”


이제 건망증이 생길 정도로 벤자민 씨도 나이를 먹었단거겠지. 아쉽긴 하지만 흘러가는 세월은 잡을 수 없다··· 같은 생각을 하며 벤자민씨를 보고 있으니까 내 머리에 콩하고 꿀밤을 먹였다.


“난 아직 늙지 않았다! 얼른 가거라.”


“알겠어요. 부디 건강하세요.”


“누가보면 죽는줄 알겠구나. 허허··· 너야말로 몸조심하거라.”


우리는 서로의 무사를 빌어주며 멀어져갔다. 그러고보니 나도 뭔가 잊은게 있는것 같은데··· 에이, 중요한건 아니겠지.




***




어릴적이라고 해야할까? 5년 전에는 그리도 오르기 힘들었던 화촌의 산길이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평길을 걷는것처럼 그저 편했다. 새삼 이런곳에서 시간이 지났음을 느끼며 새로운 감회가 생긴다. 숨을 크게 들이쉬자 산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다. 한 시간 가량을 올라가고 있으니 슬슬 화촌이 보여야 정상인데···


“아!”


나는 짧게 탄성을 질렀다. 이 아침에 뭉게뭉게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힘을 더해서 뛰듯이 산길을 오르자 낯익은 목책이 눈에 들어온다.

어찌 잊으랴. 평생이 가도 그날의 일은 절대 잊을 수 없다.


“누구요?”


퉁명한 목소리, 그렇지만 믿음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인 아저씨!”


정말 오랜만이다. 나는 반색하며 반갑게 외쳤지만 케인은 목책 너머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기만한다. 그리곤 오히려 되물었다.


“응? 누구요? 날 아시오?”


여전히 수염이 덥수룩한 마치 산적을 그대로 본따 그린듯한 덩치큰 아저씨가 고개를 갸웃거려봤자 전혀 귀엽지 않다. 그리고 날 아쇼? 라니! 이쯤되면 억울하다!


‘마셸 형도 그랬는데! 진짜로!’


내가 그렇게 바뀌었단말인가? 분명 시간이 지났다고는 했지만 이렇게 알아맞추는 사람이 없어서야! 아니지. 아줌마는 바로 알아맞췄던가?


‘아···!’


뒤늦게 잊어먹은게 뭔지 생각났다. 아줌마한테 아무말도 하지 않고 나온 것이었다. 이야기하면 귀찮아질건 뻔했지만, 다음에 만날때 후폭풍이 두려워서라도 이럴 생각은 없었는데! 바보, 바보, 바보!

머리를 쥐어뜯고 있자니 케인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허, 참. 거 괜찮소? 혹시 여기가 아픈거요?”


아프냐고 물으면서 관자놀이를 툭툭 건드렸다. 즉, 정신병자냐는 물음이었다.


“아, 아니에요. 아무것도··· 그나저나 절 모르시겠단거에요?”


“흠! 내 이름을 아는걸보니 모르는사람은 아니겠지만, 난 거의 평생을 여기서 지냈단말이지. 당신 또래의 사람은···”


그러다가 케인은 흠? 하고 내 얼굴을 이리저리 살폈다.


“으음. 이상하게 낯이 익은데··· ”


검지와 엄지를 턱에 가져다대고 케인은 잠깐 고민하다가 손바닥을 주먹으로 쳤다.


“오?! 리드! 리드 아니냐!”


그래도 잊지는 않았구나.


“오랜만이에요! 케인 아저씨.”


오랜만의 만남에 즐겁게 해후를 나누고 있는데 착각이겠지만, 갑자기 오한이 드는 기분이었다.




***




“정말 그 말은 틀림없는거겠지!”


브라헴 자유무역도시에서 모든 마부들이 아르미안으론 가지 않을거라 호언장담했던 마부는 지금 아르미안으로 가고 있었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이 일어나게 된건 마셸의 말 때문이었다.


“물론입니다! 서로 확인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의 동료가 태웠다던 그 둘은 제가 찾고있는 사람들입니다!”


말을 워낙 거치게 몰고 바람이 거센지라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래도 높이지 않을수가 없었다. 서로에게 소리치듯, 마차에서 말로. 말에서 마차로 목소리를 교환한다. 돈을 얼마나 주던 의지를 꺾을것 같지 않았던 마부가 마셸을 태우고 있는 이유는 물론 돈 때문은 아니었다.

마셸은 그 마부가 태운게 자신의 동인것 같다고 했고 그렇다면 마부의 죽음에 대한 상황을 더 알 수 있을거란 설득 때문이었다.

윗대가리들이 뭘 쳐먹었는지 입도 뻥긋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 답답했던 마부는 죽은 동료의 넋이라도 달래주려 그 제안에 승낙한 것이다.


“아, 그래! 우라드 자작령이랬지! 얼마 안남았으니 약속은 꼭 지키쇼!”


다그닥다그닥!

마부의 솜씨가 보통이 아닌지 마차를 메달고 있음에도 말들이 나아가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방향을 조절하는것도, 채찍을 때리는 타이밍도 놀랍기만하다.


“말을 모신지는 얼마나 되셨습니까!”


“엉? 뭐라고?”


유난히 바람이 불어온다. 얼굴을 때리는 바람을 애써 무시하며 마셸은 다시 목청을 높였다.


“말을 모신지는 몇년이나 되신지 물었습니다!”


“아, 그 소리요? 어디보자···”


마부는 손가락을 접었다폈다하며 세더니 머리를 긁었다.


“삼십년··· 아니다. 좀 더 된거같은데 기억은 안 나는걸. 잘 모르겠소! 삼십년에서 사십년쯤 되는것 같소!”


마부 나이가 얼추 쉰은 안 되어보였다. 즉, 남들이 뛰어놀 나이에 말을 몰았다는 소리였다. 진정으로 인생의 대부분을 말과 함께한 그에게 살짝 감탄했다.


“이제 우라드 자작령이 보이는구만!”


저 멀리서 마부의 말대로 성문이 보이고 있었다. 아직 손가락으로 가려질만큼 멀리 있었지만 보이기 시작했으니 도착하는건 시간문제였다.

시간도 때울겸 잡담좀 하고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검문을 받고, 통과했다. 둘 다 국적이 외국인이다 보니 애를 썩을뻔했지만, 성기사 신분인 마셸이 듀란드교의 문양을 보여주자 어렵지않게 통과할 수 있었다.


“어디? 어디로 가면 되는거요?”


“신전입니다. 따라오시죠.”


마부는 아르미안 왕국의 많은 길을 용케도 아는듯 싶었지만, 영지내의 길까지는 모르는듯했다. 하기사 그걸 아는게 더 이상하겠지.


‘그래도 도착했네. 다행이다.’


막막했던게 어찌어찌 도착할 수 있었다. 원래라면 이틀이 걸려야할 거리인데 이 마부는 놀라운 실력과 자기가 알고있는 지름길들을 이용해 하루하고 한나절로 단축시켰다. 고작 12시간 단축시킨게 뭐가 대단하냐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다른 마부들도 마부를 할 만큼 실력이 있는 사람들이란걸 생각하면 대단한게 맞았다.


‘아직 있어야할텐데···’




***




“리드! 정말로 오다니! 도대체 이게 얼마만이냐?”


케인의 집에서 잠깐 기다리고 있자,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들은건지 기쁜 기색으로 멕이 날 안아주었다. 나도 마주안아 포옹했다. 멕도 5년이나 지났는데 바뀐게 없었다.


“오랜만이에요. 맥 아저씨!”


멕과도 짧게 해후를 나누고 나는 멕에게 물었다. 케인에게 물으려했지만, 케인은 호들갑을 떨며 이 소식을 알리겠다고 날 집안에 앉혀두고는 자기혼자 뛰쳐나갔기에 물어보질 못했었다.

지금도 분명 호들갑을 떨고있겠지.


“사실 제가 온건 모던 씨를 만나기 위해서에요.”


“모던··· 말이냐?”


멕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아니 귀에 띄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 목소리에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 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모던 씨에게 무슨일이!”


“아니, 아니. 그건아니다. 다만 모던은 지금 화촌엔 없단다.”


“네? 모던씨가 화촌에 없다구요?”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모던씨가 왜 화촌에 없단말인가?


“그래. 처자식까지 데리고 떠난지가 얼추 삼 년이 되는것같구나.”


“모던씨는 왜 떠난거죠?”


내 물음에 멕은 턱을 긁적였다. 이걸 말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는 표정이었지만 에이 모르겠다하고 말해주었다.


“벤자민. 그 성기사가 경고해줬다더구나. 자기네 주교라는 양반이 뭐 이상한걸 알아챘다나 뭐라나.”


잠깐 뜸들이다가 멕은 말을 이었다.


“너도 모던이 보통 사람이 아니란걸 알지 않니? 아마 자기 과거랑 관련이 있는것 같은데··· 모던은 아무한테도 자기 과거를 말하지 않았으니 알 수가 있나.”


수긍이 가면서도 가지 않는 이야기였다. 모던씨의 과거가 평범하지 않다는건 물론 알고있었다. 그는 자신의 입으로 이전에 자기가 연금술사라고 말했으니까.

그러나 그 모던씨가 자기 과거로 인해 곤란해졌다라. 그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믿기 힘든 일이었다. 뭘 하고 도망칠 그런 사람으로는 안 보였는데.

하물며 도망쳐야할 정도의 일이라니.


“뭐, 아무튼 그래서 모던은 없다. 아쉽지만 말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바뀐게 없다고 생각했던 멕의 얼굴에는 주름이 몇 가닥 늘어있었다.

···아니, 잠깐.


“잠깐, 누가 경고를 해줬다구요? 벤자민 씨요?”


“음? 그래. 분명 벤자민이라고 했지. 그건 기억이 나는구나.”


제기랄. 벤자민씨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을때 알아봤어야했는데··· 그가 잊었던게 이거였었나.

이래저래 꼬이고 말았다며 나는 한숨을 쉬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신전으로 돌아가야하나.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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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참사 16 18.04.09 602 5 16쪽
79 참사 15 18.04.06 249 5 15쪽
78 참사 14 18.04.05 246 5 11쪽
77 참사 13 18.04.04 261 4 13쪽
76 참사 12 18.04.03 271 5 12쪽
75 참사 11 18.04.02 284 7 13쪽
74 참사 10 18.04.01 260 5 18쪽
73 참사 9 18.03.31 280 5 13쪽
72 참사 8 18.03.28 288 4 13쪽
71 참사 7 18.03.27 306 5 12쪽
70 참사 6 18.03.25 285 6 12쪽
69 참사 5 18.03.23 294 4 15쪽
68 참사 4 18.03.22 324 5 14쪽
67 참사 3 18.03.21 297 4 14쪽
66 참사 2 18.03.20 346 5 13쪽
65 참사 18.03.19 322 4 16쪽
64 비루 3 18.03.16 295 4 12쪽
63 비루 2 18.03.15 301 4 11쪽
62 비루 18.03.14 292 5 14쪽
61 에르네스 메르셀 2 18.03.13 314 5 12쪽
60 에르네스 메르셀 18.03.12 332 6 12쪽
59 5년 후 3 18.03.09 336 6 13쪽
58 5년 후 2 18.03.08 320 4 14쪽
57 5년 후 18.03.07 347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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