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야농곰의 서재입니당

리드리스 일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야농곰
작품등록일 :
2018.01.26 10:19
최근연재일 :
2018.09.30 17:30
연재수 :
206 회
조회수 :
67,656
추천수 :
957
글자수 :
1,177,611

작성
18.04.03 03:23
조회
270
추천
5
글자
12쪽

참사 12

DUMMY

“미친 놈! 그게 너 따위가 감당할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하나!”


나는 피식 웃어버렸다.

알고있다. 이게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힘이란것은. 내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사람이라면 이런 힘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이 힘을 탐내서 가지려고 하는게 아니었다.

웅웅웅.

어둠의 구체는 내 손에 쥐어지는것을 거부하며 칠흑을 뿜어냈지만 그런 앙탈을 받아줄 생각은 없다.


“지금 놓지 않으면 네 영혼 또한 거기에 들어가게 될거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오히려 손에 힘을 줬다. 전혀 다가오려하지 않는 벤터스를 보면 녀석의 말은 사실인 듯 싶지만.


“상관없어.”


내가 할 일은 오직 이 구체를 망가뜨리는것 뿐. 영혼이 비명지르는, 죽음을 구현화시킨 어둠의 구체를 망가뜨리기만 한다면 그 안의 영혼들은 알아서 빠져나올 것이다.

거창한 희생정신 같은게 아니라 나는 저울을 한번 더 꺼냈을 뿐이다.

거기에 올린건 수 많은 사람들의 목숨같은 거창한게 아니란 말이다.


‘그저···’


의식이 몽롱해지며 저 편으로 가라앉았다.




***




-왜, 왜 난 죽어야해? 난 어째서 죽었나? 우린 나는 너는···


끝없이 나를 스쳐가는 목소리들.


-죽기싫어! 죽기싫어! 죽기싫어어어어어어어!


나는 이곳이 어딘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지금 나는 영혼들의 세계에 있게되었다. 정확히는 어둠의 구체. 그 속으로 들어온거겠지.

결국 벤터스 아르쿠잔이 말한대로 어둠의 구체에 먹혀버린 것이다.

즉··· 실패했나.


-살고싶어! 살고싶어! 살고싶어어어어어어어!


구체속에서 영혼들은 좁은 틈을 비집고 서로가 서로를 밀치며 마치 파도처럼 넘어지고 일어나고를 반복한다. 지옥이 있다면 이런 광경일까? 그들에게 남은건 오로지 해방되고 싶다는 욕망 하나 뿐.


-나가게해줘! 난 나가야해! 나가야 할 이유가 있다고!


-내 아들은 어딨지? 내 딸은 어딨지? 나, 나는 어딨지?


아무리봐도 제정신이 아닌 영혼들이 괴로워하는걸 보고 있자니 나 또한 정신이 흐려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나도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정신차려라! 나는 무엇을 하려고 했지?


‘어둠의 구체를 파괴.’


이 지독한 감옥을 파괴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궁리하기 시작했다. 애초 생각은 잡아서 그냥 으스러뜨려 부술 생각이었다. 그러기전에 오히려 먹혀버렸으니.


‘가능한가?’


-살려줘어어어어어어어어! 되돌려줘어어어어어!


비명지르는 영혼들을 보면 결코 쉬운일이 아니란걸 알 수 있었다. 기천이 훨씬 넘는 영혼들이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이렇게 갇혀있는걸 보면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다들 내 말을 들어줘요!”


나는 곧 영혼들을 설득하기로 마음먹었다. 서로가 서로를 밀치는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준다면 어쩌면 빠져나갈 방법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그 어떤 영혼도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스스로의 괴로움과 고통에 빠진 영혼들은 스스로를 가두고 있었다.


“내 말을 들어줘요!”


-싫어. 싫어. 싫어. 죽고싶지 않아. 싫어. 싫어. 싫어.


-난 여기에 있으면 안 돼! 내 돈! 내 돈! 내 돈!


-엄마, 어딨어? 엄마, 엄마아아아!


나는 입술을 씹었다. 몸뚱아리가 있었더라면 강체력을 목소리에 담아 시선을 내게 집중시키는 것도 가능했을테지만 영혼 상태에서 그런건 불가능했다.

결국 이대로 나도 저들중 하나가 되고 마는건가?

아니! 그럴순 없다. 결코!

나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이곳이 영혼의 세계라면 바깥에서의 상식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영혼들은 서로를 밀치고 밀치면서 넘어지고 있으면서도 상처 하나 입지 않았잖는가.

이곳은 정신만이 존재하는 곳이다.

꿈과 같은 곳. 즉 내 마음과 생각에 따라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소리다!


“모두! 내 말을 들어줘요!”


나는 다시 한번 크게 소리쳤다. 그 목소리는 방금전과는 달리 영혼들의 귓가에 똑똑히 들렸는지 몇몇 영혼들이 나를 주시했다.


“다들! 내 말을 들어줘요!”


한번 더 소리치자 대부분의 영혼들이 나를 바라본다. 서로 밀고 밀치던 그 상황이 내 말 한마디에 끝이난다. 어쩌면 내 말이 그들의 희망의 불씨를 지펴낸걸까? 수많은 영혼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자 나는 목도 없으면서 침을 삼켰다.


“우린 이 곳에서 나가야해요!”


-나가··· 여길?


-나갈 수 있어? 나갈 수 있어?


나는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방법? 물론 모른다. 그렇지만 저 많은 숫자들이 함께한다면 분명 가능하리라.


“우리가 힘을 합친다면 가능해요! 혼자라면 모르되 모두의 힘을 합친다면!”


절반은 내 말을 듣다가 내가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걸 알자 듣는둥 마는둥 무시했지만 다른 절반은 무척이나 솔깃한 기색이었다.


-우리. 힘. 합친다. 너. 우리. 같이. 한다.


이 사람들은 모두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이다. 볼드 남작령의 영혼들. 모두 잘못 없는 선량했던 사람들의 영혼일 것이다.

나는 가볍게 고개숙였다.


“고마워요.”


나는 우릴 가로막고 있는 어둠의 구체의 내벽을 노려보았다.




***




“마음에 들지 않는구나.”


가면의 사내, 네임리스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눈쌀을 찌푸리고 있을 것이다. 그의 반대편에선 누군가는 놀랍게도 아주 당당히 그의 앞에 서 있었다.

네임리스가 뿌리는 그 중압감을 온몸으로 받으면서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다.


“그래. 수호자가 짐에게 무슨 일이더냐?”


“···말했을거야. 이 사태를 멈추지 않는다면 가만있지 않을거라고.”


수호자는 단호한 음성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네임리스는 코웃음쳤다.


“그걸로 고마가 나를 없애겠다고 하더냐? 그건 수호자. 네 독단일터.”


수호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고마님께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셨어. 그렇지만 난 용납할 수 없어.”


“성격이 급하구나. 방금 타협했던대로 짐은 이 일에서 손을 떼었노라. 그걸로 충분치 않더냐?”


“너는 용서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어.”


수호자의 태도는 단호하다. 수호자는 네임리스가 죽인 모든 생명들을 잊지 않았다. 그가 영혼들을 모아 만든 어둠의 구체를 잊지 않았다. 저 수많은 영혼들의 비명을 무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네임리스는 그의 가면처럼 비웃을 뿐이다.


“그래서 뭘 어쩌라는것이더냐? 죽은 자는 되살릴 수 없다. 그건 이 세상의 절대적인 법칙이노라. 무엇보다 수호자가 인세의 일에 끼어들어서 뭘 어쩌겠다는것이냐?”


“······.”


대답하지 않는 수호자의 태도에 네임리스는 자신의 망토를 펄럭였다.


“어리구나. 수호자여. 그리고 명심하는게 좋을것이다. 내가 네 요구를 들어준건 고마에게 경의를 표했기 때문일 뿐이란것을.”


다시 한번 더 끼어든다면 가만놔두지 않겠다는 의사를 듬뿍 담고있었다.


“정 싫다면 차라리 지금부터 네가 이 일을 막아보지 그러느냐? 큭, 하긴. 그럴수도 없을테지만···”


수호자는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수호자가 재미없다는 듯 네임리스는 수호자를 지나쳐 걸어갔다.


“위선자 주제에.”


마지막 말을 남기고서.




***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벽은 쉽게 뚫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효과가 없는건 아니었는지라 이곳저곳이 금이 가기 시작했다.


“조금 더!”


-우릴 가두지 마라! 우릴 가두지 마라!


나는 영혼들과 합심해 구체의 내벽을 부숴대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맘먹은 그 어떤일도 뜻대로 되는지라 우리는 거대한 공성추를 만들어 내벽을 부수기도 했고, 때로는 투석기를 만들어 바위를 던져보기도 했다.

그 결과로 제법 금이 가긴 했지만 겨우 그거? 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시간이 지난다면 언젠가 뚫을수는 있겠지만 과연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더럽게 단단하네. 이래서 끝나긴 하겠어?’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벤터스 아르쿠잔이 말했었는데···


‘그래. 죽음을 구현화한 힘! 수 많은 생명이 지는 순간, 빠져나오려는 그 영혼! 그 순간이야말로 죽음 그 자체지. 그 영혼들을 한데 모아놓은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구체는 영혼들을 한데 모아놓았기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구체도 강해지는건가?!’


나가겠다는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구체도 단단해지는 거라면 뭘 어떻게하든 같은 결과가 되어버린다.

나는 스스로가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몇천씩이나 되는 영혼들이 부수지 못하길래 안될거라고 생각하고 시도조차 안했거늘.

그때라면 오히려 가능성이 있었다.

모든 영혼들이 자포자기하고 나약했던 때 의지를 갖고 있던 내가 소리치지 않고 벽을 부쉈더라면.

영혼들을 복돋지 않았더라면.


‘아냐. 이 모든건 그저 가정일뿐이야.’


확실한것도 아닌걸 사실처럼 생각하지 말자. 나는 머리를 흔들어 그 생각을 털어버렸다.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 뿐이다.


“우릴 도와줘요!”


아직까지도 참여하지 않고 있는 절반 정도 되는 영혼들이 우릴 도와주길 바래야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빨리 구체를 부숴버릴 수 있을테니까.

그러나 그들은 들은척도 하지 않는다. 어째서?


-우린 여기서 나갈 수 없다.


그 의문은 다른 유령이 답해주었다. 그들의 대표격되는 유령인가? 나는 그의 이름을 물었다.


“당신은 누구죠?”


그의 목소리엔 짙은 자조가 깔려 있었다. 목소리의 주인 되는 영혼은 콧수염이 신사처럼 길러져있었고 좋은 옷을 입고 있다. 나이는 중년정도 되어보이는 멋들어진 사내. 언뜻봐도 일반 영지민과는 다르다는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내 생각이 맞다는걸 알려주듯 그가 말했다.


-나는 아라한 볼드. 볼드 남작령의 영주다.




***




“아누. 괜찮니?”


에르네스는 아누를 걱정스런 눈길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대부분 이런 상황에서 에르네스는 절대적인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이번만큼은 전혀 도움이 되질 않는다. 언데드에게 신성을 사용해봤자 결과는 뻔하다.


“······.”


아누는 대답하지 못했다. 않은게 아니라 못한것이다. 이미 뇌의 일부는 기능을 정지하고 있을 터였다. 에르네스의 말이 아누에게는 얼마나 들렸을까? 이미 진작에 본능만을 탐하는 짐승이 되도 이상하지 않은데 아누는 아직까지 견뎌내고 있다.

장하다. 정말로 장하다고 에르네스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어떻게 그렇게 견뎌낼 수 있을까? 그저 저 세상에서 만날 자신의 동생 아노에게 떳떳하기 위해서.

에르네스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할까? 아누를 두고 리드를 도와야할까? 아니면 이대로 아누의 옆에 있어야할까?


“가요.”


아누의 차가운 손이 에르네스의 팔에 닿았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그 감촉에 에르네스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가··· 줘요. 난 아,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요.”


“하지만 아누.”


“그에게는 내가 가겠··· 크륵.”


아누의 눈빛이 일순 붉게 돌변했다가 다시 되돌아왔다. 활을 강하게 쥐고 아누는 다시 말했다.


“싸, 싸우고 있는··· 저들에게··· 가, 줘요. 나는···”


아누는 고개를 들어 영주성을 올려다보았다. 가장 위에 동생의 원수가 있을것이다. 에르네스에게 들은 동생을 목졸라 죽인 자.

그렇다면 리드에게 갈 사람은 에르네스가 아니라 자신이다.


“부, 부탁··· 해요.”


에르네스는 아누의 차가운 손을 꼭 쥐었다. 이미 얼음장처럼 식어버린 손은 에르네스의 결심을 오히려 굳게 만들었다.

아누의 굳은 의지에 에르네스는 아누를 믿기로 했다. 이 아이는 결코 사람을 탐하는 괴물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알겠어. 리드에게는 네가 가주렴. 나는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도우러 갈게.”


에르네스는 망설이지 않고 영주성의 반대편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 즈음에 영지에는 불이붙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추천,선작,조회,코멘트 언제나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리드리스 일대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6 찾아야 할 사람들 18.04.17 249 6 17쪽
85 다시 만난 사람들 4 18.04.16 264 6 12쪽
84 다시 만난 사람들 3 18.04.13 268 4 12쪽
83 다시 만난 사람들 2 18.04.12 280 5 12쪽
82 다시 만난 사람들 18.04.11 725 4 11쪽
81 참사 17 18.04.10 277 4 12쪽
80 참사 16 18.04.09 601 5 16쪽
79 참사 15 18.04.06 249 5 15쪽
78 참사 14 18.04.05 246 5 11쪽
77 참사 13 18.04.04 261 4 13쪽
» 참사 12 18.04.03 271 5 12쪽
75 참사 11 18.04.02 284 7 13쪽
74 참사 10 18.04.01 260 5 18쪽
73 참사 9 18.03.31 280 5 13쪽
72 참사 8 18.03.28 287 4 13쪽
71 참사 7 18.03.27 306 5 12쪽
70 참사 6 18.03.25 285 6 12쪽
69 참사 5 18.03.23 294 4 15쪽
68 참사 4 18.03.22 323 5 14쪽
67 참사 3 18.03.21 297 4 14쪽
66 참사 2 18.03.20 346 5 13쪽
65 참사 18.03.19 322 4 16쪽
64 비루 3 18.03.16 294 4 12쪽
63 비루 2 18.03.15 301 4 11쪽
62 비루 18.03.14 292 5 14쪽
61 에르네스 메르셀 2 18.03.13 314 5 12쪽
60 에르네스 메르셀 18.03.12 331 6 12쪽
59 5년 후 3 18.03.09 336 6 13쪽
58 5년 후 2 18.03.08 320 4 14쪽
57 5년 후 18.03.07 347 3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