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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농곰의 서재입니당

리드리스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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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농곰
작품등록일 :
2018.01.26 10:19
최근연재일 :
2018.09.30 17:30
연재수 :
206 회
조회수 :
67,667
추천수 :
957
글자수 :
1,177,611

작성
18.03.13 07:11
조회
314
추천
5
글자
12쪽

에르네스 메르셀 2

DUMMY

방으로 돌아왔을때,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신나게 식사를 하던 도중 재수없게도 비행선에서

아줌마와 맞딱드렸고 나는 이에 대한 변명을 생각해내기 위해서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아줌··· 누나. 누나는 왜 여기에 왔는데요?”


단숨에 끼워맞출 변명이 생각나지 않았기에 나는 일단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아줌마는 내가

의도적으로 화제를 돌렸다는걸 알면서도 추궁하지는 않았다. 물론, 팔짱을 끼고있는것이 여실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기색을 뽐내고 있었다.


“···일이 있어서 왔어. 얘, 그래서 무슨일로 비행선을 탄 거니?”


그녀는 짤막하게 대답했고, 다시 물었다. 그에 난 눈알만 굴릴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뭐라고 말해야할까?


‘······.’


제법 긴 침묵끝에 아줌마는 답답하다는 듯이 나를 한번 더 재촉한다.


“무슨일로 온 거냐고 물었어. 들리지 않니?”


제기랄. 나는 내가 머리가 돌아가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그럴듯한 변명이 떠오르질 않는다. 일단 아줌마는 대략의 사정을 알고있다. 대주교 영감님과 함께 아줌마를 만났을때 사정을 대략적으로 설명했으니까.

물론 세세한 사정을 알려준건 아니고 그저 내가 하쉬의 제자이며 하쉬는 푸른 악마에게 목숨을 잃었다··· 정도로만 알고있다.


‘그치만.’


그치만 그때부터 시간이 꽤 지났다. 약혼자였던 하쉬의 죽음에 대해서라면 어쩌면 혼자서라도 조사를 해봤을지도 모른다. 과연 어디까지 알고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


그렇다고 내가 왕국에 혼자서 갈만한 이유가 달리 있는것도 아닌데··· 것보다 대주교 영감님은 왜 자기 딸이 여기있는데 그걸 모르는거지? 제길. 먹을것에 정신을 판 내가 미친놈이지. 먼저 아줌마를 발견했더라면 절대 들키지 않았을텐데.


“얘, 세번째야. 무슨일로 브라헴에 가는거니?”


더 이상 얼버무릴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냥 되는대로 이름을 팔았다.


“영감님이 아무에게도 말씀하시지 말라시더라구요.”


과연, 아줌마의 눈썹이 움찔거린다.


“아버지께서? 괜찮아. 그러니까 한번 말해보겠니?”


딸이었지! 나는 일단 한발 더 물러나기로 했다.


“아니··· 그래도 말이에요.”


“그렇구나.”


아줌마는 갑자기 처연하게 고개를 툭 떨궜다. 당장이라도 눈물이 흐를것같은 그렁그렁한 눈동자. 내 눈이 돌아가는 속도가 더욱 더 빨라진다.


“그래··· 날 못믿는거구나. 그럴 수 있겠지. 어쩔 수 없겠네. 내가 믿음을 주지 못한거니까 말이야. 미안해.”


일부러저러는걸 알고 있는데도 손이 떨린다. 대주교 영감님이 종종 말했던 어른의 치사함이라는게 저런걸까? 진짜 치사해!

나는 치를 떨었다. 저렇게 나오는 이상 가르쳐줄 수 밖에 없으니까. 교국에 관련된 일이라는 뉘앙스를 풀풀 풍겨버렸는데 교국 유일의 성자라는 사람한테 알려주지 못한다는것도 이상하다. 하물며 시킨 사람이 대주교 영감님이라고 했는데 그 딸인 이상에야!


“그, 그건···!”


사면초가였다. 말하면 분명히 따라나선다고 난리를 피울게 뻔하다. 따돌리면 오히려 혼자 다닐테니까 더 위험하지.

물론, 아줌마가 실력이 없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었다. 교국 유일의 성자라는건 다시 말해서 신성神聖부문에서는 아줌마를 따라올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소리였으니까.

그래서 나도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마, 말하면 대주교님한테 혼구멍이 날거라구요. ‘제 사정’좀 봐주시면 안 되나요?”


그녀가 자신을 믿어달라고 한 이상 반대로 이런 부탁은 거절할 수 없을 터. 아줌마는 눈을 갸늘게 떴다.

그게 마치 ‘그렇게 나왔다 이거지?’라는듯한 눈빛이어서 절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서로간의 신경전을 벌이고 있을때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일이 생겼나봐요!”


나는 재빨리 방을 나섰다. 아줌마가 내 팔을 잡으려했지만 난 그걸 눈치채고 피했다. 방으로 빠져나와 웅성거리는 방향으로 향했다. 뒤에서 ‘도망쳤다 이거지?’라는 소리가 들린것 같았다.


“무슨 일이에요?”


웅성거리던 곳은 비행선의 홀이라고 할 수 있는 중심부였다. 아래로 둥글게 튀어나온 모양의 홀에는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었다. 다들 창문에 달라붙어 있는게 이상했지만.


“오오. 이럴수가.”


어째서 그렇게 달라붙어있는지 궁금해 난 사람들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가 창문을 구경했다. 그리고 바로 알 수 있었다.


“와아···”


그 광경은 신비 그 자체였다. 도대체 그 광경을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표현력이 좋지 않아서 아름답다는 말밖에 못 하겠다.

아름다운 무지개가 저물어가는 황혼 사이를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를 수십 마리의 새들이 지나간다. 새라고는 했지만 이만한 거리에서 새라는걸 알 수 있을정도인걸 보면 크기가 어마어마할 것이다.

어느새 노을빛으로 물든 하늘과 구름이 은은하게 빛을 뿌린다. 그러나 사람들이 보고 놀라는건 경치 때문만은 아니었다.

바로 이 비행선의 주변에서 작은 새들 수백, 수천마리가 열을 이루며 황혼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이 있을수가 있다니!”


그러게나 말이다. 난 언뜻들린 누군가의 말에 격하게 공감했다.

그러나 어째서 저 광경이 아름답게 보이는걸까.

어쩌면 한 순간의 덧없이 져버릴, 아주 잠시간의 환상이기에 그런것이 아닐까.




***




“정말로 그렇게 할 생각이오?”


한센 남작은 엄지손가락의 손톱을 씹어대며 턱을 달달 떨었다. 눈밑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내려앉고 눈은 이리저리 주변을 살피고만 있고 안색은 좋지 못하고 창백했다. 여실히 폐인이 되어버린듯하다.


“내가 한다고 했음 하는거지. 더 이상은 못 참아. 확인해봐야겠다고.”


책상 하나와 술 잔 두개를 사이에 두고 반대편의 남자는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안색에 피곤함이 몰려있었고 표정이 어둡긴 했지만 눈빛은 강렬하고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는듯한 고집이 담긴 얼굴이었다.


“도, 도망쳐도 모자랄판에 그리하겠단거요?”


말을 더듬으며 한센 남작은 또 다시 몸을 떨었다. 반대편의 남자, 비루는 눈을 좁혔다. 한센 남작이라는 사람. 분명 오 년 전까지만해도 이렇게 겁쟁이는 아니었는데 완전히 망가져버릴줄이야.

팔 년 전의 비루가 푸른 악마에 대한 공포로 망가져버렸다면, 지금의 한센 남작은 레너 왕에 대한 공포로 망가져버린것이다.


“당신은 도망치라고. 난 확인해야하니까.”


척하고 비루는 창으로 자신의 어깨를 때렸다. 뻐근한 어깨가 조금은 풀리는것만 같았다. 과연 자신의 지난 세월이 모두 헛짓이었는지 어떤지를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신 부탁대로 난 참아줬잖아.”


“겨, 겨우 이, 일주일이잖소!”


목을 삐걱이며 비루는 뼈를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몸을 풀며 당장이라도 쳐들어가겠단 의지를 전신으로 뿜어대고 있었다.


“그래서 뭐?”


심드렁한 얼굴로 턱짓하자 한센 남작이 움찔했다. 비루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금 이 남자는 공포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겪어봤으니까 알고있다. 그를 탓할 생각은 없었다.


“난 확인하지 않으면 안 돼. 내가 보낸 지난 5년이···”


그저 이용당하기만했을뿐인 개짓거리였는지를.


“레, 레너 왕이 정말로 답해줄거라 생각하는거요? 애초에 당신이 내게 물은것도 그런 의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오?”


비루는 긍정했다.


“그렇지. 그래서 알 법한 작자중 제일 만만한 당신을 족친거지. 그리고 당신이 튈 시간을 기다려줬잖아. 일주일이면 됐지. 뭘 바래?”


심드렁한 표정이기는 하지만 비루의 얼굴 그 아래에 짙은 분노가 깔려있다는건 바보 천지가 아닌 이상에야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터질것만같은 활화산, 흡사 짐승의 분노였다.

지난 5년간 악마신봉자들과의 싸움은 비루를 더욱더 거칠게 만들었다. 그 누구보다 앞에 서서 모조리 죽여왔다. 모든 싸움이 만만치 않았고, 그 싸움들은 모두 비루를 강하게 만드는 원천이 되었다.


“다, 당신. 죽을거요!”


그럼에도 한센 남작은 비루가 죽을것임을 의심치 않았다. 아무리 강해졌다고해도 일개 개인이었다. 이 세상에서 개인은 단체를 이길 수 없다는건 절대 명제였다. 한 두명도 아니고 왕에, 그리고 국가를 상대로라면 더더욱.


“흥.”


비루는 코웃음쳤다. 한센 남작의 말이 개소리처럼 들렸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의 비루에게는 자신의 죽음조차도 의미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의문을 가진건 애초에 5년 전부터였다.

수호자라는 존재를 모르는 그들. 푸른 악마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그렇게까지 악마신봉자들과 싸우려는 것일까? 겉으로는 왕국을 좀먹는 그들을 몰아낸다고는 하지만···


‘글쎄.’


비루는 믿지 않았다. 레너 왕의 분노와 증오는 직접 만나본 이상 진실임을 믿을 수밖에 없을만큼 지독했다. 도저히 의심할 수 없을만큼의 증오였다. 그건 모렉 공작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악마 신봉자들을 뼈저리게 증오하고 있다.

그래서 의심했다.


‘그렇게까지 증오할 이유가 있을테니까.’


비루는 그 모든 열쇠가 수호자에게 있다고 생각했었다. 적어도 수호자라는 존재를 찾을 수 있다면 악마신봉자들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 수 있을것다.

그래서 수호자라는 존재를 어떻게든 찾아보려 노력했지만 5년간의 노력에도 수호자라는 존재의 꼬리조차 잡을 수 없었다.


‘···정말로 존재하긴 하는건가?’


그렇게 의심할 수밖에. 푸른 악마가 흰소리를 했다고 의심할만큼이나.

왕립도서관의 고서에도. 마탑의 고명한 마법사들도. 높은 귀족 나리들도. 악마신봉자와 대적하는 저 레너 왕조차도 수호자라는 이름 자체를 모르고 있다. 하물며, 그 ‘악마신봉자’들조차도 말이다.


“결국 당신도 왕이 어째서 그들을 그렇게 증오하는지는 모르는거잖아?”


“···그건 그렇소.”


“과연 자기 혈육을 몰살하고 왕국의 귀족들을 죽이고 내쳐서까지 증오할 이유! 난 그걸 알고싶다고.”


“이, 이유 따위는 없을지도 모르오. 그게 중요한건 아니잖소?”


“난 그렇게 생각 안 하거든. 반드시 이유가 있을거야. 그리고 그건 두번째지.”


그렇다. 레너 왕의 증오의 이유 따위는 두번째에 불과했다. 정말로 궁금한 것. 아니, 확인하고 싶은것은···


“팔년 전의 나와 동료들, 흐르는 모래를 붉은 숲으로 보낸게 정말로 레너 왕인지.”


푸른 악마를 마주치게하여 흐르는 모래 모두를 몰살시킨자가 레너 왕이 맞는지.


“하쉬가 죽도록 판을 깔아놓은게 그가 맞는지.”


성기사 하쉬를 죽음으로 몰아넣고서 자신까지 이용한자가 정녕 레너 왕이 맞는지.


“당신이 말해준 그 사실들을 확인하고 싶은거라고.”


결국 수호자라는 존재를 찾을 수 없었던 비루에게 남은 선택은 하나뿐이었으니까. 알 법한 사람에게 물어보는 방법 뿐이었고, 그렇기에 한센 남작에게 조금 거친 방법을 써서라도 진실을 들춰낸 것이다.


“···그, 그건 당신의 자유요. 내가 말릴수는 없소. 하지만 말했다시피 당신. 죽을거요.”


한센 남작은 비루를 설득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 누가 오더라도 지금처럼 굳은 결의를 다진 사내의 얼굴을 한 사람을 말릴 수는 없을 터.


“아, 거 알고있다니까 그러네! 아무튼! 난 이 길로 가 보려니까 당신도 가라고.”


비루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건물을 빠져나왔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황혼녘이었다. 노을이 떠오른게 참 아름다웠다. 그 황혼사이를 무지개 하나가 다리를 놓고 있고, 노을 사이를 날아가는 새들이 보인다.


“거 참 더럽게 아름답네 그래.”


퉤하고 침을 뱉고 어깨를 빙빙 돌린다. 한쪽밖에 없는 팔로 창을 꽉 쥐었다. 흥 하고 다시 코웃음을 친다. 그 광경조차 비뚤어진 비루의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쁘면 뭐해? 곧 뒈져버릴 나랑 비슷한 꼬라지구만.”


노을이 떠 있을수 있는건 아주 잠시동안이라는 것을 비루는 잘 알고 있다.


작가의말

에르네스 메르셀은 

55화 대주교와 마셸의 대화 중, 대주교가 ‘그 애’ 라고 표현한 사람이 맞습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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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참사 16 18.04.09 602 5 16쪽
79 참사 15 18.04.06 249 5 15쪽
78 참사 14 18.04.05 246 5 11쪽
77 참사 13 18.04.04 262 4 13쪽
76 참사 12 18.04.03 271 5 12쪽
75 참사 11 18.04.02 284 7 13쪽
74 참사 10 18.04.01 260 5 18쪽
73 참사 9 18.03.31 280 5 13쪽
72 참사 8 18.03.28 288 4 13쪽
71 참사 7 18.03.27 306 5 12쪽
70 참사 6 18.03.25 285 6 12쪽
69 참사 5 18.03.23 294 4 15쪽
68 참사 4 18.03.22 324 5 14쪽
67 참사 3 18.03.21 297 4 14쪽
66 참사 2 18.03.20 346 5 13쪽
65 참사 18.03.19 322 4 16쪽
64 비루 3 18.03.16 295 4 12쪽
63 비루 2 18.03.15 301 4 11쪽
62 비루 18.03.14 292 5 14쪽
» 에르네스 메르셀 2 18.03.13 315 5 12쪽
60 에르네스 메르셀 18.03.12 332 6 12쪽
59 5년 후 3 18.03.09 336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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