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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농곰의 서재입니당

리드리스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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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농곰
작품등록일 :
2018.01.26 10:19
최근연재일 :
2018.09.30 17:30
연재수 :
206 회
조회수 :
67,832
추천수 :
957
글자수 :
1,177,611

작성
18.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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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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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1쪽

비루 2

DUMMY

‘기다렸다!’


비루는 사냥꾼처럼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던 때가 온 것이다. 구석에 몰려 모렉 공작의 송곳니가 박혀드는 그 마지막 순간.

사자의 이빨이 자신을 물려고 드는 순간을 기다렸다.

비루는 자신의 역량을 잘 알고 있었다.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모렉 공작에 비할 바는 못 된다는것을 알고 있었다. 5년간의 시간은 분명 그 차이를 좁혀주었다.

개와 사자만큼의 차이가 늑대와 사자만큼의 차이정도로.

그러나 개던 늑대던 결국 사자를 이길 수 없는 법. 비루가 원한건 모렉 공작을 공격할 수 있는 단 한순간이었다. 아직도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늙은 사자를 씹어먹을 수 있는 순간이야말로, 사자가 입을 벌린 순간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이제 끝이다!”


한번 마음을 정한 이상, 모렉 공작의 검에는 망설임이 없다. 그것이야말로 무인의 마음가짐이다. 비루는 이 순간에조차 그의 단호함에 탄복했다.

내려치는 검은 다시 한번 은빛 궤적을 그리며 당장이라도 비루 자신을 세로로 양단할것만 같다.


‘···지금!’


피할곳이 없는 구석에서 저 일격을 피한다는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최소한 사지중 하나는 날아갈만한 최적의 타이밍을 노린 일격. 비루는 그 궤적을 직시하며 오른쪽으로 몸을 최대한 기울였다.


“놈!”


예상치 못한 상황에 모렉 공작의 눈이 크게 뜨였다. 지금 비루가 한 일은 오로지 비루에게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모렉 공작으로써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

사지의 한쪽은 잘려야할만한 상황이었지만, 이미 왼팔이 없는 비루를 스쳐지나가며 애꿎은 벽만을 갈랐다.

키이이잇! 듣기싫은 금속음과 함께 벽이 갈라졌지만 비루가 다친건 아니었다. 그와 동시에 모렉 공작의 어깨가 꿰뚫렸다.


“······!”


비루의 창이 재빠르게 내쏘아졌던 것이다. 옥좌에 앉은 레너 왕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지는걸 보며 비루는 입가를 씰룩였다.


“개새끼한테 물리니까 기분은 좋나?”


“큭! 애송이가!”


“나도 애송이라고 불릴 나이는 진작에 지났는데?”


비루가 모렉 공작의 어깨를 꿰뚫은 창을 채 뽑아내기도 전에 모렉 공작은 자신을 꿰뚫은 창의 창대를 강하게 쥐었다.


“기고만장하는건 거기까지다!”


으스러져라 창대를 잡지만, 물푸레나무로만든 창이 그리 쉽게 꺾일리는 없다. 부들부들 떨리는 그의 팔에서 전해져오는 힘을 느끼며 비루는 다시 한번 이죽인다.


“그럼 어디 그러지 못하게 하시던가!”


퍽!

비루가 창을 놓고 주먹을 뻗었다. 한 손은 검을 쥐고 한 손은 창을 잡고 있던 모렉 공작은 차마 그 공격을 막지 못했고 그 안면을 강하게 후려쳤다. 얼굴이 반대로 돌아간 모렉 공작은 피 섞인 침을 어전의 바닥에 퉤 뱉었다.


“제기랄···”


어전에 첫번째로 침을 뱉은 비루에 이어 두 번째가 모렉 공작이 되는 건가? 레너 왕의 굳은 표정과 구겨진 모렉 공작의 표정을 보자니 기쁨을 감출 길이 없었다.


“······!”


밖이 소란스러워진다.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병사들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그야 그렇겠지. 이렇게까지 소란을 피웠는데 몰려오지 않는다는게 이상하다. 근위병뿐만이 아니라 근위기사들까지 온다면 비루에게는 승산이 없다.

유쾌함 따위는 두 번째로 두고 해야할 일은···


“못 간다!”


모렉 공작은 더욱 강하게 창대를 쥐었다. 비루는 힘을 주어 창을 뽑으려했지만 어깨에 박힌채로 창은 뽑히지 않았다. 모렉 공작도 비루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이 창이 뽑히는 순간, 모렉 공작에게로 한번 더 날아들것을.


“놔. 놔!”


서로 창을 쥐고 힘싸움을 한다. 비루는 발길질을 하며 모렉 공작을 밀어내려했지만 결국 창을 포기하는건 자신일수밖에 없었다.

한 손에 쥐어져있는 검을 모렉 공작이 휘두르려 했으니까.


“제기랄!”


이번엔 비루가 욕을 뱉었다. 한쪽밖에 없는 팔로 이득을 봤지만, 한쪽밖에 없는 팔 때문에 끝장을 내지 못했다.

서로 물고 물리는 상황에서 이제 다시 우위를 점한건 모렉 공작이었다.

다쳤지만 모렉 공작에게는 무기가 있었고 병사들은 몰려올테니 시간 또한 그의 편이었다. 반면에 비루는 다치지 않았더라도 애초부터 한 팔이 없고, 시간은 그의 적이다.


“꺼져라. 들개야!”


비루는 이를 악물었다. 지금이라도 내뺀다면 도망칠 수 있다.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 근위병과 근위기사는 쫒아오겠지만 그 정도는 얼마든지 따돌릴 자신이 있었다. 그치만···


‘이런 기회가 또 오긴하겠냐고!’


레너 왕에게 다시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올까? 전국에 수배령이 내리고 얼굴을 숨긴채 살아가게되면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오겠는가.

맨주먹이라도 강체술을 익히지 못한 왕을 죽이는데는 문제가 없다!


‘젠장!’


그러나 비루는 포기했다. 자신의 목숨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레너 왕에게 붙어있는 ‘무언가’의 존재를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십중팔구 실패할거다.’


도대체 뭐가 붙어있는지는 모르지만 레너 왕을 맨주먹으로 때려죽이면 모렉 공작의 검이 자신을 갈라버리겠지. 만약 그 맨주먹을 레너 왕에 붙어있는 ‘무언가’가 고기방패처럼 한 번이라도 막는다면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다.

비루는 당장 내빼기로했다.


“그 창은 선물로 주지!”


빠지지않게 창을 쥐고있던 모렉 공작은 눈을 크게 뜨고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아아악!”


비루가 창대끝을 주먹으로 강하게 쳤기때문이었다. 당연히 창은 망치가 못을 박는것처럼 모렉 공작의 상처를 비집고 들어가 더욱 깊게 박히게되었다. 비루를 공격하려던 모렉 공작의 검은 자연스레 허공을 갈랐다.

모렉 공작이 잠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 비루는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기다리고 있으라고. 왕! 네 목은··· 내가 뜯을거니까.”


누구라도 기가 질릴법한 맹수의 경고를 레너 왕은 옥좌위에서 받아들였다.


“기다리고 있겠네. 물론,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을테지만.”


조금도 위축되지 않은 기색. 비루는 재빨리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가 점이되어 사라지고 한발 늦게 근위병들이 도착하자 레너 왕은 짧게 한숨을 쉬었다.


“전하! 다치신곳은 없으십니까!”


“물러나라.”


짧은 손짓과 함께 근위병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나 두번 묻지 않고 거수로 경례했다.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왕의 명을 어기지 않도록, 왕은 그렇게 자신의 병사들을 ‘길들여두었다.’


“무, 물러나겠습니다!”


모렉 공작이 다쳤음을 보고도 두말하지 않고 물러나는 근위병들. 그들은 재빨리 어전의 앞에 쓰러진 두 근위병을 부축하고 왕의 시야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들조차 사라지자 레너 왕은 다시 한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왜 그랬소?”


왜 그랬소라고 레너 왕은 모렉 공작에게 묻는다.


“큭! 무, 무엇이 말입니까?”


“···난 바보가 아니라오.”


레너 왕은 손가락 끝으로 팔걸이를 톡톡 건드렸다. 레너 왕이 생각에 빠졌을 때에 보이는 모습이었다.


“나는 분명 무술과 이능같은것에 문외한이오. 그러나 두 눈으로 뻔히 보고도 모를 정도로 멍청이는 아니오.”


“······.”


“···공작이 진심을 보였다면 이럴리가 없겠지. 그게 아니라면 내가 공작을 과대평가했던것이오?”


“그렇습니까?”


모렉 공작은 어깨에 박힌 창을 거칠게 뽑았다. 피가 튀었지만 전혀 상관하지 않는 기색이다.


“왜 그랬냐··· 이런건 묻지 않겠소. 뻔해보이는구려.”


이미 모렉 공작이 말했지 않은가. 비루가 아깝다고 말이다. 그래서 모렉 공작은 애초부터 비루를 놓아줄 심산이었던 것이다. 적당히 상처입히고 도주하게하려고 했지만 개를 상대한다 생각했으나 상대가 늑대였다.

손을 뻗어 한대 치려고 했는데 그 손이 물린것이다.


“알고계시니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동정심따위는 아닙니다.”


동정심을 가지기에 모렉 공작은 살인의 경험이 너무 많았고, 늙었다.


“그렇다고해서 놓아주면 안 되는 것이었소. 늑대는 결코 사냥감을 포기하는법이 없지. 저 붉은 숲의 검은 늑대 무리를 보면 아는 일일텐데···”


“물론 알고있습니다.”


“그걸 생각하고서도 놓아줄만큼 그가 아까웠던거요?”


레너 왕의 물음에 모렉 공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자신의 약점을 활용할 줄 아는 노련함. 적에게 굴하지 않는 강함. 그리고 그 실력··· 죽이기엔 아까웠던게 사실입니다.”


모렉 공작은 잠시 어깨를 잡았다. 관통상은 결코 가벼운게 아니니만큼 모렉 공작과 같은 늙은 나이에 이런 상처는 뼈아프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그 송곳니가 우리를 향할지라도··· 왕이여. 결국 그는 악마신봉자들과도 한 하늘을 질 수 없으니 결국 우리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급조한 변명처럼 들리는 말이지만 레너 왕은 곰곰히 생각하며 애꿎은 팔걸이만 두드렸다. 한참이 지나고 황혼이 지고 어둠이 내려앉을 즈음, 레너 왕이 입을 열었다.


“돌아가서 상처를 돌보시오.”


모렉 공작은 목례하며 고개를 숙였다. 몸을 돌아 어전을 나가려는 그의 귓전으로 레너 왕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두 번은 용납하지 않겠소. 다시 한번 그가 이빨을 드러낸다면···”


모렉 공작은 두말하지 않고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퉁퉁 두드렸다.


“이 손으로 숨통을 끊어놓겠나이다.”


“···알겠소.”


이제 어전을 나서려는데,


“아. 그건 그렇고 한센 남작··· 그 자를 잡아 꿇려야겠소. 적당한 자가 있소?”


“한센 남작···”


결국 그 애송이 일을 벌였군. 모렉 공작은 혀를 찼다.


“그 애송이가 그래도 능력은 있지요. 겁이 많은것이 쥐새끼를 닮았습니다. 작정하고 숨으면 쉽게 잡지는 못할겁니다.”


겁이 많은 자는 신중하기도 하다. 쉽게 꼬리를 잡진 못하리라.


“···흐음.”


레너 왕은 조용히 계산하기 시작했다. 누가 가야 한센 남작을 잡을 수 있을까? 비루는 누가 억누를 수 있을까? 비루를 어떻게 더 이용할 수 있을까? 한센 남작을 잡는게 중요할까 비루를 이용하는게 중요할까?

여러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엉키기 시작했다. 모렉 공작은 레너 왕의 상념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조용히 그리고 조심히 물러났다.

어전에는 마침내 레너 왕이 혼자 남았고, 새벽이 밝기까지 그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작가의말

추천,조회,선작,코멘트 언제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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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참사 11 18.04.02 286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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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참사 4 18.03.22 325 5 14쪽
67 참사 3 18.03.21 299 4 14쪽
66 참사 2 18.03.20 348 5 13쪽
65 참사 18.03.19 323 4 16쪽
64 비루 3 18.03.16 295 4 12쪽
» 비루 2 18.03.15 302 4 11쪽
62 비루 18.03.14 292 5 14쪽
61 에르네스 메르셀 2 18.03.13 316 5 12쪽
60 에르네스 메르셀 18.03.12 332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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