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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농곰의 서재입니당

리드리스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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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농곰
작품등록일 :
2018.01.26 10:19
최근연재일 :
2018.09.30 17:30
연재수 :
206 회
조회수 :
67,654
추천수 :
957
글자수 :
1,177,611

작성
18.03.20 00:22
조회
345
추천
5
글자
13쪽

참사 2

DUMMY

“결국 이거에요?!”


그녀가 생각한 방법이란 단순하기 그지없는 것. 적당한 거리에서 땅굴을 파고 들어가자는 것이었다. 그녀가 말했던 내게 도와달라는 말은 쉽게 말하자면 내가 지나가도록 땅굴좀 파주겠니? 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화살맞을 걱정도 없고 들킬일도 없잖니?”


“제기랄.”


“그런말은 쓰면 안 된다고 했잖니?!”


아줌마가 내 상황이 되서 땅굴을 판다면 과연 이런말이 안 나올까 의문인데.


“알겠다구요. 그럼 들어가서 어쩔거에요?”


나는 개미의 수고로움을 온몸으로 느끼며 두더지처럼 땅을 파내며 질문했다. 맨손으로 파내는건 아니었고 철시를 구부러뜨려 곡괭이처럼 쓰고 있었다.


“알아봐야지. 무슨일이 있는지말이야.”


생각이 없다는 말과 이음동의한 소리였다. 땅을 파고있으니 유일하게 좋은점이라고 한다면 춥진 않다는 것 뿐. 백 미터 정도의 거리를 일일이 파내는 작업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몇번이나 지쳐 드러누워도 이상하지 않을테지만 그러질 못했다.

않은게 아니라 못한것이다. 뒤에서 두 손을 꽉 쥐며 힘내라며 신성을 퍼붓느라 체력이 떨어질 수가 없었다.


“아줌··· 누나. 약속하나해요. 혹시라도 위험하면 바로 도망치는거에요. 알겠죠?”


“응?”


들었으면서 왜 못들은 척을 하는걸까?


“위험하면 도망치자구요! 알겠어요?!”


그녀는 방금의 나처럼 떨떠름하게 고개를 주억였지만 도저히 그럴 생각이 없어보인다. 여차하면 들고서라도 도망쳐야지.


‘성 안의 상황이 심했으면 심했지 덜하진 않을 것 같은데.’


착각이 아니라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이 흙냄새를 모두 밀어내고 맡아지는 강렬한 향은 피냄새였다. 땅굴을 파고있는 도중에도 맡아질 정도라면 말 다했지않은가?


“슬슬 올라가도 될 것 같은데···”


나는 직선으로 파는걸 그만두고 대각선으로 조금씩 위쪽으로 파기 시작했다. 아마 이미 영지의 안으로 들어왔을테니까.

시간이 조금 더 지나 마지막으로 흙을 밀어내고 고개만 빼꼼 내밀어 주위를 살폈다. 옷은 흙투성이가 되었고 굴을 파느라 시간이 많이 지나서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달덩이가 둥글게 떠오르기 전에 도착해서 다행이다.


“조심해서 올라와요.”


우리가 땅굴을 파내 올라온곳은 성벽에서 머지 않은 거주지의 뒷마당같은 곳이었는데 시간이 시간인지라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일은 없었다.


“엥? 형아는 누구야?”


없다고 생각했는데 실수했다. 제기랄, 있었군. 들린 목소리와 말투로 들어봐서는 꼬마아이였다.


“쉿!”


나는 재빨리 흙구덩이에서 빠져나와 검지를 세워 입가로 가져다댔다. 조용히하라는 재스쳐에 꼬마아이는 양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았는데, 그게 좀 귀여웠다.


“형은 널 도우러 왔어.”


대충 그렇게 둘러댈즈음 아줌마도 흙구덩이를 짚고 빠져나왔다. 또 발이 엉킬것 같아서 손을 뻗어줬는데 이번엔 뻗은 손이 무안하게도 잘만 나왔다.


“응? 왜 그러니?”


아무렇지도 않은 기색으로 옷을 툭툭 털어대는데 난 뻗은 손의 손가락들을 접고 얼굴에 뭐 묻었다는 듯한 표시를 하고 얼버무렸다.


“우, 우릴 도와주러온거야? 형이? 형아가?”


꼬마아이의 눈이 초롱초롱히 빛났다. 어른에게서는 볼 수 없는 순수한 눈. 악의건 선의건 구분하지 않고 계산하지 않는 뭐라 형연하기 힘든 눈빛을 받으며 난 말을 흐렸다.


“그럼! 혹시 무슨 일이 있는지 말해줄 수 있겠니?”


아주 조금 양심에 찔려 대답이 늦었는데 그 사이 아줌마가 먼저 말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한편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이곳엔 사람이 적··· 아니, 없었다.

있는거라곤 코를 찌르는 피냄새 뿐.




***




귀족들이 모조리 모인 어전 회의. 보통 어전회의는 몇몇의 중앙의 영주들을 제외하고는 참여하지 않는게 관례이지만 레너 왕의 대에서는 영주직을 맡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귀족들이 모여있었고 덕분에 그들은 자기 영지로도 돌아가지 못하고 반쯤은 볼모로 잡혀있는 상황. 분위기가 좋을리 없었다.


“전하! 왕국의 볼드 남작령의 연락이 두절되었사옵니다!”


그런 꿀꿀한 분위기를 풍기는 어전의 문을 열고 뛰쳐들어와 머리를 쿵 박으며 병사인지 기사인지 모를 한 남자가 땀을 뻘뻘 흘리며 보고했다. 이러나저러나 회의를 하는 도중에 갑자기 들어온 보고에 모두 어안이 벙벙해 있을때 레너 왕이 되물었다.


“연락이··· 끊겼다라?”


레너 왕의 머릿속에서 두뇌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연락이 두절되다니!”


“그 말이 사실인가?!”


“빨리 말하라! 우린 한가한 몸이 아니라는걸 잊지 말라!”


“다, 다른 영지들은 괜찮은가?!”


수도에 잡혀있는지라 자신의 영지의 상황을 알기 힘든 귀족들은 자연 마음이 급해졌고, 애꿎은 병사만 그들의 채근에 침을 꼴깍 삼키고 답했다.


“···아, 아직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만 남작령의 모든 통로가 막히고, 성문을 굳게 걸어잠그고 그 누구도 들여보내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다가오는 자는 철시를 날려 머리를 터뜨리고 있다고합니다!”


“허어! 그런 미친 일이 있을 수 있나!”


병사의 보고에 그들의 중얼거림이 커졌다. 볼드 남작령이 미쳐버린것인가? 레너 왕은 그들이 더 난리치기전에 손을 들어 모두의 입을 막았다.


“그만.”


엄중한 목소리가 어전을 울렸다. 풋내기같은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젊은 왕은 이미 어전의 주인 그 자체였다. 크로아 공작조차 초개처럼 내쳐버린 철의 피를 지닌 왕에게 그 누가 대들 수 있겠는가?

하물며 볼모처럼 잡혀있는 마당에.


“그래. 정황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는가?”


“그, 그렇사옵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못해 이제는 숫제 가자미처럼 양옆으로 눈치만 살피게 된 병사를 배려하여 레너 왕은 약간의 뜸을 들였다. 물론, 병사는 그 배려가 배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기다린게 아니라 다른 무엇을 했더라도 결과는 같았겠지만.


“허면 자네가 말한 볼드 남작령은···”


병사는 남작령의 연락이 끊겼다고 말했다.

남작령으로 향하는 모든 길과 통로가 막혔다는 소리인즉, 반란이나 역모의 가능성조차 있었다. 가뜩이나 머릿속이 어지러운 레너 왕에게는 결코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그것이···”


병사는 왕과 직접 대면했다는 것에 긴장해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뭘 잘못먹기라도 한 것처럼 새파랗게 질려가고 있다. 일개 병사따위에게 일의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는데도.


‘역시 그 아이랑은 다르군.’


그건 그 아이가 특별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때는 왕자일 뿐이었기 때문일까? 레너 왕은 전혀 쓸데없는 생각이라며 머리를 흔들어 지웠다.

그러자 병사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바로 그, 볼드 남작령이 맞습니다! 브라헴 자유무역도시와 국경을 맞닿고 있는 그 영지가 맞습니다!”


“허면!”


귀족 하나가 앞으로 나왔다. 그의 얼굴도 병사의 얼굴처럼 허옇게 질려있었다. 유난히 걱정이 많은 성격인 네우스 백작이었다.


“네우스 백작령은 어떻게 되었는가?! 나의, 나의 영지는 어떻게되었느냐는 말일세!”


“여, 연락이 두절되어 있는건 볼드 남작령뿐입니다!”


그제서야 몇몇 귀족들이 안심했다. 자기네들이 설레발을 쳤단걸 인정하고 각자의 목소리가 줄어들자 레너 왕은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에 빠졌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일을 벌였을까? 볼드 남작이 그런일을 할 위인이던가?’


절대 아니다. 간이 배밖으로 나와서 죽고싶다고 광고하는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군.’


레너 왕은 깨달았다.

이것이 악마신봉자들이 자신에게 보내는 경고라는 것을 말이다. 지금은 남작령 하나를 점령하고 있을 뿐이지만 과연 이후에도 그럴까?


‘재밌게되었어.’


레너 왕은 턱을 괴고 있던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씰룩이는 입가를 타인에게 보이고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행동을 눈치챈건 이 어전에서 모렉 공작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일단···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겠군. 자네는 더 보고가 되는 즉시 우리에게 알리게.”


“알겠습니다!”


거수경례를 하고 자신은 처음부터 나가고 싶었다는듯이 망설이지 않고 병사는 어전을 나갔다. 한겨울에 어울리게끔 싸해진 어전에서 레너 왕은 귀족들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 각 영지의 영주들은 영지로 돌아가 각자의 방위에 주의를 기울여야할 것이오. 또한 네우스 백작과 안도레스 후작, 그리고 뮬덴 후작은 일천 이상의 사병을 볼드 남작령 근처로 보내주시오.”


“충!”


이제 자기네 영지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쁨이 역력한 그들과는 다르게 폭풍이 불어닥치기 시작했단걸 본능적으로 느낀 레너 왕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




“언데드에요.”


피냄새와 함께 짙은 어둠의 기운이 느껴지자 나는 꼬마아이의 몸을 내 옷으로 감싸며 숙이려 했지만 아줌마가 선수를 쳐서 꼬마아이를 감싸안았다. 성기사는 아니지만, 당장이라도 성기사로 활동할 수 있는 나였다. 오히려 여기까지 와서 이제서야 알 수 있었다는게 의문이었다.


‘그리고 아줌마도 말이야. 성자라는 사람이 몰랐을리가 없을텐데···’


정말 수상해지기 시작한 상황에 나는 가늘게 눈을 좁혔다.


‘저쪽으로 가요.’


나는 턱짓과 눈빛으로 아줌마에게 신호를 보냈고 아줌마는 다행히도 내 신호를 알아들었는지 같은 방향으로 이동했다.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는만큼 실수로 소리라도 내지 않는다면 괜찮겠지.


“읍!”


꼬마아이는 당황한듯 싶었지만 이 영지에 사는 녀석인만큼 언데드에게 들켜서 안된다는 정도는 알고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갈곳이 마땅치 않아 내가 망설이고 있자 꼬마아이가 할 말이 있는듯 아줌마의 손을 잡아끌었다.


“이쪽!”


들켜서 운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운이 좋았던 모양이다. 꼬마아이는 우릴 어느 방향으로 이끌었고 나와 아줌마는 꼬마아이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완전히 해가 떨어질무렵 우리는 꼬마아이의 집으로 생각되는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허름하네.’


별로 불만을 품는건 아니지만 그런 감상이 나도 모르게 들었다. 그냥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움막인데 움막이 또 상태가 좋은게 아니었는데 비가 내리면 다 새어들어올것 같이 천장은 내려앉아있었고 이곳 저곳에 구멍이 숭숭 뚫려 여름철에는 좋겠다 싶었다.

문제는 지금이 겨울이란거지만.


“들어와요.”


꼬마아이는 우릴 이끌어 움막 안으로 들여보냈고, 비좁은 움막에 두 사람과 꼬마아이 한명이 들어앉아 꽉 차버릴 정도였지만 느껴지던 언데드의 기척은 제법 멀리 떨어져있었다. 아무래도 우릴 발견하지 못한것 같았다.


“그래. 이제 좀 알려주겠어?”


난 털썩 앉으며 아이에게 말했다. 그러자 꼬마아이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침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끄덕거리고 우리에게 일의 전말을 알리기 시작했다


“으응···. 그러니까, 그러니까! 일곱밤 전이었어.”




***




어린아이의 설명이니만큼 알아듣기 힘들고 설명이 부족한 부분이 많았지만, 얘기를 정리해보자면 이거였다.


‘갑자기 일주일 전에 영주가 미쳤다.’


영주가 모종의 요인으로 죽었다고 한다. 당연 영지내의 분위기는 흉흉해졌고, 아들이 없어 다음 영주를 맡을 사람을 구하고 있는데 갑작스레 자식이라는 자가 영주직을 맡았고, 그 이후부터 이 꼬라지가 되었다고한다.

사람들은 갑작스레 픽픽 죽어나가고 시체가 되서 일어나기 시작했다라는게 아이의 말이었다.


‘그럼···’


진짜 진상이 어떨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아무래도 그 아들이라는 영주의 짓이 거의 확실해보였다. 나는 슬쩍 아줌마를 쳐다보았는데 의외로 차분한 기색이었다.


“알겠어. 혹시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됐어?”


물론 눈치없게 그렇게 묻지는 않았다. 애초에 이 시간에 부모가 돌아오지 않았고 집의 상태가 이 따위라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을 물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아이가 힘든것과는 별개로 영지 하나가 마비될 정도의 사태를 단 둘이서 해결할 수 있을리가 만무했다. 최선의 방법은 주변 영지로 가서 도움을 요청하는것이었다.


“어떻게 하죠?”


물론 이 같은 사실은 아줌마도 느끼고 있을 터. 나는 아줌마에게 이제 상황을 파악했고 위험할것 같으니까 빠져나가자고 돌려서 말했다.


“그랬구나. 힘들었겠어. 하지만 걱정말렴! 이제 여길 구해주러 우리가 왔으니까!”


평소에 찾지도 않는 신이 이 순간만큼은 정말로 간절해진다.

오, 듀란드시여.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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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참사 16 18.04.09 601 5 16쪽
79 참사 15 18.04.06 249 5 15쪽
78 참사 14 18.04.05 246 5 11쪽
77 참사 13 18.04.04 261 4 13쪽
76 참사 12 18.04.03 270 5 12쪽
75 참사 11 18.04.02 284 7 13쪽
74 참사 10 18.04.01 260 5 18쪽
73 참사 9 18.03.31 280 5 13쪽
72 참사 8 18.03.28 287 4 13쪽
71 참사 7 18.03.27 306 5 12쪽
70 참사 6 18.03.25 285 6 12쪽
69 참사 5 18.03.23 294 4 15쪽
68 참사 4 18.03.22 323 5 14쪽
67 참사 3 18.03.21 297 4 14쪽
» 참사 2 18.03.20 346 5 13쪽
65 참사 18.03.19 322 4 16쪽
64 비루 3 18.03.16 294 4 12쪽
63 비루 2 18.03.15 301 4 11쪽
62 비루 18.03.14 292 5 14쪽
61 에르네스 메르셀 2 18.03.13 314 5 12쪽
60 에르네스 메르셀 18.03.12 331 6 12쪽
59 5년 후 3 18.03.09 336 6 13쪽
58 5년 후 2 18.03.08 320 4 14쪽
57 5년 후 18.03.07 347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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