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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막대 님의 서재입니다.

레날의 기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공포·미스테리

꼵꽭
작품등록일 :
2022.12.31 21:50
최근연재일 :
2023.04.03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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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04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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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2화 - 웬 여자아이가 열 여덟 명의 순례객들을 데려왔다

DUMMY

이곳은 옆동네 대성당에서 성 레바스티오가 성인으로 시성되기 전까지 그저 몇 무리 수사들이 골짜기 근처에 모여앉은 공동체에 불과했다. 시성 이후 골짜기는 하루에 수십명이 지나다니는 주요 길목이 됐고, 수사들이란 척 보기에 금전 따위 멀리 할 것처럼 보이나 잠재적인 사업수완이 상당한 치들이기에 곧장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이해했다. 수십년 안에 수도원은 그 일대에서 영향력이 상당한 거물로 우뚝 성장했고 그 원동력은 자본이었다.


그렇다고 수사들이 저 도시와 시장의 흉폭한 상인이나 고리대금 겸하는 환전꾼마냥 돈 놀이에 적극적이었냐 하면 그것은 또 아니다. 이렇게 저렇게 자잘한 개선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좋은 위치의 장점과 겹쳐서 위세가 상당해진 것뿐이며 시대의 자명한 흐름에 따라 자본과 돈 따위에 가까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변화는 무의식적이고 몇십 년에 걸쳐 천천히 일어났지만, 거기에 몇 번의 은밀한 손길이 작용하지 않았으리라곤 상상하기 어렵겠다.


누군가 그들에게 "이봐 너! 너, 이 수도원을 돈벌이로 쓰고 있지 않느냐?" 라고 묻는다면 그들은 "당치도 않다!" 이리 하겠지만 "그럼 아니란 말이냐?" 되물으면 방금처럼 당당하게 대답하지는 못할 것이다.


초기에 이 수도원의 아버지들, 창립자들이 가장 먼저 한 건 본격적으로 귀족이나 부호들의 후원을 받아 건물을 세우는 일이었다. 인생의 말로에 이르러 죽음 이후에 대해 본격적으로 걱정하기 시작하는 늙은이들, 혹은 방탕한 생활을 이어가던 도중에 어느정도 양심이 남아서 한번 쯤 좋은 일에 돈을 써보려 하는 젊은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아주 많았고, 몇 해 전에 역병이 돌아 부자건 빈자건 많은 사람이 죽어 남은 재산이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돌아갔기 때문에 어느정도 돈을 펑펑 써대는 풍조가 생긴 것도 한 몫을 했다.


그때가 벌서 30년 전인데 아직도 초기 후원자인 라스푸치 가문의 문장이 세겨진 방패가 수도원장실에 우뚝 걸려있고 순례에 대한 사람들의 열정도 줄기는 커녕 늘어났다.


듬직한 건물을 세우고 울타리를 지은 다음에는 소작인들을 불러모아 평수사(사제 서품을 받지 않은 수사) 신분을 주고 그들에게 농지와 장원을 맡겼다. 그런 일상이 얼마간 이어지다가 생활이 풍족해지고 식탁에 생선이 올라오는 날이 많아지며 미사 예배는 화려해지고 도서관 서고에 꽂힌 책들도 척척 늘어나니 평수사들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비록 평수사 신분이지만 우리도 수사인데 허구언 날 흙만 만지고 앉을 수는 없어. 이것 말고도 우린 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고!"




농지 경작은 자발적으로 재산을 헌납하고 수도원에 귀속된 하인들이 주로 하게 됐다.


그리고 남은 인력으로 사업을 시작한다. 사실 기록에 따르면 본관이 으리으리하기 이전부터도 수사들은 이런 영역에 자주 발을 들였던 것으로 보인다. 성지로 넘어가는 골짜기에 터를 잡고 복된 신도들에게 편의를 제공한다는 것이 그들의 공식적인 강령이기는 하다.

당연하게도 하룻밤 묵어 가는 것 자체에는 돈을 받지 않았다. 이 같은 무전취식의 무리들에게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도록 허락하고 단촐한 식사를 제공했다. 다만 더 푸짐하고 따뜻한 식사나 목욕, 간식, 달콤한 음료를 위해선 주머니를 열어야 한다. 친절과 의무는 푹신한 잠자리와 최소한의 식사까지인 것이다.

수사들은 모은 돈으로 수도원 울타리 밖에 울타리를 또 두르고 건물을 세웠다. 순례객들을 받는 별관도 이곳에 위치했다. 최근 들어 이곳에 커다란 마구간이 하나 들어섰다. 온갖 종류의 가축이 그곳에 자리를 잡았고, 원장의 새하얀 백마도 이곳에 있다. 마소 대여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말 조랑말 나귀 노새 가격별로 다양하게 빌려주고 다리가 아픈 나머지 아예 분질러버리고 싶은 이들에게 그것은 참을 수 없는 유혹이었다. 소작인들에게 빌려주는 소도 있고 짐꾼 빌려주는 노새며 나귀도 있다. 도둑질을 방지하기 위해 모두 낙인을 찍었다. 바로 옆에 작은 우편소까지 차려놓고는 남의 편지를 전달하러 각지를 떠도는 사람들이 잠시 쉬어가거나 말을 바꿔 탈 수 있도록 했다.

나중엔 아예 도시를 하나 세울지도 모르겠다고, 혹자는 종종 말하곤 하였다. 수사들은 자기들이 직접 장사하는 게 아니라 업자를 불러 자리를 대여시키고 헌금의 형태로 높은 배당금을 챙긴다. 대여 가격은 5만원인데 실제 내는 돈은 7만원이다. 대여자는 이곳에서 말과 2만원짜리 어음을 받는다. 그 말을 타고 방당크로 가서 그곳 수도원 지부 건물에 말과 어음을 돌려주면 그제야 대여자는 자기 돈 2만원을 받는다. 모든 자금을 온전한 자리에 놓았으니 이제 돈놀이하는 대머리 땡중놈들이라고, 마음속으로도 차마 말하지는 못하겠으나 미간을 조금 찌푸린다. 그리고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성인의 유해를 뵈러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돈놀이나 땡중이라고 하여 욱 하실 분도 있을 법하지만 사실 이 자들이 정말로 돈놀이를 하는 건 맞는게 말 대여에는 연체금을 붙이고 수도원 건물을 도시 외딴 구석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놓았기 때문이다. 옛 성인과 성자들이 그렇게 고리대금 하는 짓을 금하였거늘 뭐하는 짓이냐 하시겠지만 이게 또 그렇게 높은 이율은 아니라서 원칙적으론 뭐라 따지는 것도 쪼잔해보이고 그런 것이었다. 거기다 막상 건물이 외곽에 놓인 이유도 생활하는 사람들이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수행하는 걸 돕기 위해서고 실제 그곳의 수사들은 책을 읽거나 옛 성현의 말씀을 필사하거나(요즘은 이런 것도 잘 안 하긴 하지만) 여타 교육시설에 출장을 나가거나 달에 한 번은 고관대작이 방문하여 푸짐한 물고기 만찬을 한 상 즐겁게 즐긴다거나 이것저것 바쁘게 생활하는 와중에 본부에서 한 일을 자기들이 마무리 지어야 하는 이런 것들을 잡무로 여기고 무척 성가시게 생각하고 있던 차이기에, 모든 사람을 비난할 수도 없고 어떤 방향이든 무조건이 없는 상황이다.


요즘은 순례 사업이 갈수록 번창하여 성속(성직과 세속 할 것 없이)의 군주들이 이런 흐름에 자기 손길도 첨가하고 싶어 안달이 난 시기이기도 하다. 세상은 새로운 논리의 탄생을 요구했다.


그들은 이 땅에 참된 종교가 정착하기 이전, 고대에 살았던 현인 마르파리가




"전쟁에는 고리대금이 따른다."




고 했던 말과, 성 와르케가 순례를 전쟁에 빗대어 표현한 것을 교묘하게 엮어 이용했다.




"순례는 한 개인이 공동체에서 떨어져나와, 모자와 배낭을 챙기고, 굳은 의지로 지팡이를 짚고, 시선은 저 하늘을 향하며, 하늘을 나는 새처럼 거침없이, 굳은 두 다리로 버티고 선 채, 흠집없는 의지로 무장한 병사들처럼 목적지를 향해 진군한다. 그 어떤 굶주림이나 맹렬한 추위, 짐승들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언제나 이런 이들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아는 자들은 주님의 적들과 싸울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일반적으로 쟁기를 잡고 불가에 양말을 말리는 농부들보다 더 비천한 신분일지라도 목숨을 건 채 순례에 오른 이들이야말로 주님과 더 가까이 있는 법이다. 같은 길을 이전에 수십번이나 걸었던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런 사람보다 지금 이 순간 고개를 쳐든 채 꿋꿋하게 걸어가는 저 복된 자들이야말로 지금 이 순간 더 주님과 함께하고 영혼은 배불렀다. 신자들이여. 주님의 전쟁에 동참하라! 그대를 그분의 품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죄악과 전투를 벌여라. 그리고 순례길을 걸어라."




물론 모든 사람이 이런 논리를 받아들인 건 아니지만 세상에 돈이 많아지다보니 이런저런 이해관계에 의해 어느정도는 일설로 자리잡았다.






자 이제 방금 전 이 수도원에 들어온 그 순례객들에 대하여 말을 해야겠다. 이중에 아주 이질적인 존재가 하나 껴있지만 본인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비천하지 않고 고귀하지도 않은 혈통을 가진 사람들인데 하나같이 교구 사제들에게 여비와 장려금을 받고 왔다. 그 돈으로 자크 수사에게 하루 치 숙박비(말했듯이 신원증명서만 있다면 숙박과 음식은 무료다. 다만 이들이 지불한 것은 목욕탕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와 뽀송뽀송한 옷, 더 훌륭한 서비스를 위한 값이었다) 를 지불하고 이제 안락함에 몸 기대는 이 사람들은 처음부터 동참했던 지인들을 제외하면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들이 떠나온 집들은 각자 멀리 떨어져 있었고 오는 길도 달랐던 것이다. 숲과 들판에 뿔뿔이 흩어져있던 이 사람들이 어떤 우연의 일치가 있었길레 함께 이곳의 문을 두드릴 수 있었을까?


탕에 들어간 사람들은 이제 맘편히 이야기를 나누며 방당크 순례를 마치고 나면 무엇을 할 것인지 의논하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도시가 벽을 뚫고 밖으로 나갔지만 자크 수사는 참견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아까 그 소녀와 할 일이 남아있다.


이곳은 수도원인지라 세속의 목욕탕처럼 이것저것 들여와서 잡동사니를 파는 행위는 하지 않는다. 자크 수사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무엇인지는 분명히 해둔 것이다. 물론 성 레바스티오 모양을 햔 기념 벳지는 어디서든 아주 잘 팔렸다. 방금 목욕탕에서도 네 개나 팔렸고 내일 그들이 수도원을 떠날 때까지 더 팔릴 예정이다. 다른 곳보다 3할 정도 비싼 가격으로 파는 데도 잘 팔려서 수사들은 4할로 올려야 할지 말지 진지한 논의를 거듭하는 중이었다. 물론 원장이 4할로 하자 말만 하면 냉큼 받을 준비가 되어있다.

거기다 간단한 음료나 다과도 주문을 받아 팔았다. 욕탕 한쪽 벽에 메뉴판이 흔들거린다. 간단한 과일이며 굽거나 튀긴 과자에다 심지어 꿀 살살 바른 치즈케이크도 나온다.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여탕에서 한 여자가 목욕을 마치고 지금 막 일어났다. 머리에서 흐른 물이 등으로 뚝뚝 떨어졌다.




"좀 더 얘기하지 않고."


"얘야, 고생도 많았는데 쉬다 가지 그러니."




허나 만류는 거기까지다. 사실 이 치들은 그녀가 자기와 같은 여자라는 사실이 꽤나 의외스러워 약간 멀리하고 있었다. 어색한 시선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짧은 머리카락에 고정됐다. 여자라 해도 짧고 남자라 해도 짧은데 거의 까까머리였던 것이다.


'분명 뭔가 사연이 있거나 정신이 온전치 않은 게 아닐까.'


그녀는 예의 있게 거절할 뿐이었다. 꼼꼼히 물기를 닦고 밖으로 나왔다.

별관에는 욕탕과 숙소만 있고 식당은 건물이 따로 있었다. 갓 놓여나온 봄이라 낮은 잡초가 깔린 길에 노란 햇빛이 들고 엄지만한 나비가 들꽃으로 날았다. 풀들은 밟으면 촉촉하였다. 봄날 급식소 앞에서 줄을 서는 기분은 참 묘했다. 튀기듯이 볶은 양파의 끈적한 단내가 훅 끼쳐온다. 그러면서도 산 위 골짜기에 있는 위치라 부는 바람이 조금 쌀쌀하였던 것이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니 하얀 김 모락 오르며 밥 하는 열기로 무덥다. 빵 굽는 냄새는 아찔하였다.


이 시기면 순례도 막바지라 농부들은 밭을 돌보러 돌아간다. 작년 가을에 심었던 것들을 갈무리하고 시장과 도시에 내다 파는 것이다. 농촌이 바빠지면 덩달아 도시도 바빠지고 사람들은 그 흐름에 자연스레 끌려간다. 영주들은 곡식이 흔하여 값이 싸지는 틈을 타 뭔가 장난질을 꾸미겠다. 부자의 순례를 대신 봐주는 이들도 더 바빠질 것이다. 도시의 빈민들은 구걸에 힘쓰겠고 누구는 상한 음식을 먹어 배탈이 많이 나겠다. 죽음도 많고 태어나는 아기도 많고 찝찝한 나날이라 범죄율이 올라가면 자연스레 시청과 법정과 교회가 바빠지고 온 나라가 다 시끄럽다. 만인이 바쁜 시기에 신도 잠시 눈을 쉬었다. 벌써부터 그를 예감한 듯이 묘한 흥분과 긴장이 시선 하나하나에, 몸을 틀면 옷주름에 생기는 그늘 하나하나에 다 담겨있는 듯 하고 철새가 빼액 우는 날이면 다들 그 방향으로 고개를 퍼뜩 들었다.


점심 메뉴는 스튜와 양파버섯볶음에 딱딱한 빵, 약간의 잼, 말린 무화과였다. 이것이 수도원이다. 검소한 듯 풍족하다.

적당한 데 앉아서 스튜와 빵을 먹는데 맞은편에 누가 끙 소리를 내며 앉았다. 랑캉탱의 자크였다. 그녀가 먹는 그릇에 바삭하게 튀긴 생선을 얹어주었다.




"많이 먹어야지." 그리고 뭐 하나를 더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이것도, 자."




빨간 야생 딸기 한 줌. 그제야 여인은 조금 웃으며 딸기를 입안에 털어넣는다. 밥과 과일을 다같이 꼭꼭 씹어먹는다. 방금 전까지 지글거리던 생선을 숟가락으로 들어 손끝으로 잡고 조심조심 뜯어먹었다. 내장도 머리도 빠짐없이. 적당한 소금기가 좋았다.




"씻을 거면 좀 제대로 씻지, 임마." 자크 수사는 거친 손가락으로 그녀의 머리에 붙은 먼지를 떼어 주려다가 멈췄다. "너 흰머리도 나냐?"


"아, 그래요? 몰랐네."


"니가 나이가 몇인데 벌써 이런 게 나."




자크 수사는 잘 먹는 모습을 멀찍이서 보다가 품에서 지갑을 꺼냈다. 동전이 짤랑거린다.




"몇명이더라. 열 여덟이지? 열 여덟... 자, 십팔만 원. 빨리 받어."


잽싸게 주머니에 넣었다. 자크 수사가 말했다.


"요즘 은이 내리고 금이 오른다더라. 여기에선."




그 말에 여자는 처음으로 숟가락을 멈췄다가 다시 먹었다.




"저 사람들이 말을 타고 갈 것 같냐?"


"말은 해두긴 했는데, 글쎄요. 분위기 봐선 아닌 것 같던데."


"그래도 몸이 약한 사람은 나귀 정돈 타고 갈 거 아냐."


"그런 사람은 없었어요."


"야이 녀석아 네가 바람을 넣어 줘야지. 그래야 사람들이 좀 더 편하게 갈 것 아니냐."


"아이 진짜 수사님, 밥 먹는데."




자기 집의 주인이나 다름 없었던 자크는 껄껄 웃다가 몸을 앞으로 숙였다.




"그래도 네가 한 번 더 분위기를 넣어주지 그래, 응? 그러면서 벳지도 사고, 간식도 이것저것 시키고, 응? 잘 된다면 공짜로 조랑말을 태워 줄 수도 있고....."




시큰둥한 입술은 밥만 열심히 잘 먹었다.




"저 다 들켰어요. 바람잡인 거."


"아, 그래?" 자크 수사는 아쉽게 입맛을 쩝 다셨다. "다음은 어디로 가게."


"아직은 모르겠네요. 일단 끝내고 돌아가서 남은 돈을 다 받고 그다음에는 뭐. 그냥 쉴 수도 있고. 여기 또 올지 모르고."


"그러냐? 가다가 정해지면 여기 편지 써. 내가 그쪽에 미리 말해둘 테니까."




자크 수사는 다시 끙 하고 일어났다. 그리고 뭔가 떠올랐다는 듯이 입을 아, 벌리고 허리에 손을 짚은 채 천천히 몸을 돌렸다.




"아 참, 밥 다 먹고 원장실로 와라. 네가 할 일이 좀 있다."




두 눈이 마주쳤다. 한숨과 끙 소리가 났다.


그런 말을 하는 수사의 이마는 나이 마흔을 넘어가며 깊게 페이고 그 사이사이에 근심과 회한의 지옥이라도 들어있는 듯 한데, 아마 저곳을 훑으면 손톱에 비명 지르는 때가 오롯이 긁혀나올 것이다.


저 말을 끝으로 멋쩍은지 훌쩍 가버렸다. 그게 본론이라는 걸 아는 에카는 다시 밥만 먹었다.




처음 순례객들이 몰려왔을 때, 이 둘이 잠시 눈빛을 교환한 장면을 여러분은 기억하고 계실 것이다. 그때로 잠시 돌아가보자. 마지막 순서인 그녀가 내미는 증서를 보고 그날따라 잠이 부족하여 눈이 침침하던 자크 수사는 처음에 이런 생각을 했다.


'롱퐁투앙의 미라벨라 마쿠지 부인. 36세. 영혼의 더 높은 고양을 위해 순례중이시고. 근데 왠 꼬마애가 맨 발로 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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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3화 - 네 사람을 기억하라 23.04.03 18 0 14쪽
24 22화 - 게헨나 땅에 노을이 지고 불구왕자가 목소리를 높혔다 23.04.01 26 0 18쪽
23 21화 - 무당 사는 동굴에 귀인이 찾아왔다 23.03.28 16 0 15쪽
22 20화 - 메센나 왕비가 장 마피 왕자를 꾸짖는다 23.03.26 15 0 15쪽
21 19화 - 백벽에서 온 기사 23.03.25 21 0 15쪽
20 18화 - 늑대원숭이가 심상치 않은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 23.03.20 22 0 17쪽
19 17화 - 백벽전사의 칼에는 사자가 있었다 23.03.10 21 0 15쪽
18 16화 - 왕궁에서 전령이 왔다 23.03.05 23 0 16쪽
17 15화 - 불구왕자는 왕궁의 소식을 듣고 앞잡이 여자는 끌려갔다 23.03.03 30 0 15쪽
16 14화 - 이 주 전에 집 떠난 청년들이 놀라운 것을 잡아왔다 23.03.03 20 0 19쪽
15 13화 - 대리 순례 갔다가 돌아온 무당이 늪주인을 만났다 23.02.28 23 0 17쪽
14 12화 - 늑대원숭이 감방 23.02.23 26 0 17쪽
13 11화 - 메센나와 장 마피 왕자가 앓아누운 존 왕을 찾아간다 23.02.21 28 0 15쪽
12 10화 - 사내가 깨어났다 23.02.19 22 0 18쪽
11 9화 - 굿판이 벌어졌다 23.02.12 23 0 16쪽
10 8화 - 옛 신을 만나고 제령은 시작된다 23.02.09 29 0 22쪽
9 7화 - 원장은 신성한 법열에 빠지고 불목하니가 황자 얘기를 꺼냈다 23.02.02 27 0 21쪽
8 6화 - 새 신과 옛 신 모두에게 기도를 드리고 원장을 뵈었다 23.01.28 27 0 16쪽
7 5화 - 장 보듬 왕자 23.01.12 24 0 18쪽
6 4화 - 메센나 왕비가 병든 남편을 찾았다 23.01.08 37 0 18쪽
5 3화 - 랑캉탱의 자크는 에카에게 꺼림칙한 일을 시키려 한다 23.01.06 32 0 15쪽
» 2화 - 웬 여자아이가 열 여덟 명의 순례객들을 데려왔다 23.01.04 30 0 16쪽
3 1화 - 방당크 순례자들, 클라르코 수도원 23.01.02 45 0 11쪽
2 프롤로그2 23.01.01 62 0 17쪽
1 프롤로그1 22.12.31 9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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