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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성자들의 세계 : 심연 파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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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tiger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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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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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2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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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폰 학살자

DUMMY



동남아 해안 다섯 도시에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헬게이트.


하나하나가 도시의 절반을 삼킬 거대한 권역을 생성하는 상급 헬게이트였다.

더욱이 그 중 셋은 어비씨언을 생성해내는 것들이었다.

유닛들의 평균 파워는 중상급 레벨 이상.

그리고 단순 사역마를 제외한 전투형 유닛의 수효는 각각 다섯 자리 수 단위에 이르렀다.


“군대는 속수무책으로 썰린 모양이야.”


“과연, 기대했던 바 이상으로 무능하군.”


부길드장에게서 보고를 전해들은 라이텔바흐는 호버크래프트형 헌터용 제트기에 탑승한 채 바다와 대륙을 가로질렀다.


“휴가를 마치자마자 연속 근무라니, 거창한 환영 인사로군.”


부길드장 젠센의 보고에 따르면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현재 어비씨언을 만들어내는 던전에는 각각 스무 명으로 이뤄진 팀이 투입됐다.

한 개의 던전에는 길드장급 두 명이 출정하였다.

아무래도 그쪽의 규모가 가장 크기도 하고 어비씨언도 까다로운 탓이었다.


“가장 버거운 쪽부터 처리하고 가도록 하지.”


필리핀 세부 시에 도착한 라이텔바흐는 도시의 삼분의 일 가량이 시커먼 흑암의 구체 속에 잠식된 것을 보고 혀를 찼다.

사방에는 쓰러진 정규군과 경찰들의 시체가 즐비해 있었다.

권역에 갇히지 않은 시민들의 대다수는 대피했거나 검역소로 끌려간 상태였다.


“라이텔바흐 벤 키르헤른스트 대령?”


살아남은 채 경계선 너머에서 보초를 서던 감시병들은 그의 등장에 놀랐다.

그들은 맹수 앞의 강아지들처럼 꼬리를 내린 채 수그렸다.

라이텔바흐는 그들을 한심한 종자 바라보듯 흘겨보았다.


“걸리적거리니까 당장 비켜.”


라이텔바흐는 전투 슈트와 배틀 코트를 활성화시켰다.

영락없는 맹렬한 히어로의 자태.

그는 한 손에는 긴 장창을 든 채 다른 한 손에는 총기를 들었다.


{별도의 웨폰 박스 지원은 필요 없겠습니까, 주인님?}


호버크래프트에 탑재된 인공지능 비서가 질문하였다.


“빠르게 정리하려면 있는 게 좋겠지만, 딱히 오늘은 신속하고 싶지 않군.”


라이텔바흐는 솔직히 말해서 정의의 용사와는 약간 거리가 있었다.

그를 정의하는 가장 좋은 표현은 다크히어로.

악과 싸우기는 하나 자신의 목적과 계획을 위해 싸우는 자.

고로 그는 필요에 따라 악의 움직임을 자신의 계획대로 제어하기도 했다.

단순히 맹수를 잡기만 하는 사냥꾼이 아니라 맹수를 원하는 곳으로 몰아붙여서 맹수로 하여금 자신이 바라는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오늘 등장한 헬게이트들은 하필 공교롭게도 그가 미리 예측한 지대에 발생했다.

헌터들이 아무리 영리해도 그런 점쟁이 수준의 예측은 해낼 수 없었다.

오로지 정치 역학과 지정학의 달인인 라이텔바흐에게만 허락된 예보.


게다가 묘하게도 이 다섯 좌표는 아시아 전체를 통틀어 ‘네오나치즘’이 가장 활성화된 지역이었다.

제4제국 창건을 원하는 열성파의 극렬 지지세력이 모인 텃밭이랄까.

하필 또 공교로운 점은, 과격파들과 무관한 보통의 시민들은 모종의 방법을 통해서 남들보다 먼저 재난 경보를 받았고 대부분 무사히 탈출했다는 점이었다.


“최대한 성과를 내보지.”


라이텔바흐의 장창이 공중을 가로질렀다.

거대한 궤적이 그려지며 검격이 진동의 형태로 색채를 띤 채 하늘을 양단했다.

빛의 형태를 띤 검격은 헬게이트의 침식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그저 아지랑이가 되어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은 채 흩어졌다.

그러나 헬게이트에게 잡아먹힌 공간으로 진격할 때는 강렬한 섬광이 되었다.

그 섬광은 마치 공간 그 자체를 베듯 거침없이 나아갔다.

이윽고 벽이 무너져내리듯 흑색 공간과 통상 공간의 격벽이 와르르 해체되었다.


라이텔바흐는 몸을 직접 던전 안으로 투신하였다.

던전 안에 들어가자마자 그의 몸은 무중력 공간을 만난 듯 급속히 가속되었다.

그는 공기를 디딤돌로 삼아 여러 차례 도약하였다.

몇 번 지나지 않아 그는 헬게이트가 보이는 심장부에까지 당도했다.


“잡 유닛들은 그런대로 정리한 모양이군.”


진격해온 경로를 돌아보니 어비씨언들의 시체가 산처럼 널려 있었다.


“문제는 상급 공격수들인가?”


뱀 형태의 괴물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히드라처럼 머리가 최소 백 개 이상 달린 것들이었는데 뱀 머리 하나의 굵기가 족히 사람 몸뚱이의 다섯 배는 되었다.

길이는 가장 짧은 것만 해도 100m 이상.

더욱이 어떠한 개체들은 지네처럼 수많은 다리를 보유하였다.

보아하니 고무줄처럼 머리의 굵기와 길이도 마음대로 조절 가능한 듯했다.


“신작을 좀 시험해봐야겠군.”


라이텔바흐는 자신이 ‘블랙스미스’로서 최근 제작한 총기류를 꺼냈다.

물질로 된 탄환을 쏘는 포가 아닌, 입자를 방출하는 기기였다.

정확히는 어비쓰론을 흡수하여 성질을 변환한 뒤 다시 방출하는 무기였다.


위이이이이이잉.


헬게이트로부터 만들어졌던 어비쓰론과 어비씨언들의 체내에 있던 입자들이 진공 청소기에 흡수되듯 라이텔바흐의 총기 속으로 빨려갔다.


{변환 프로세스를 시작하겠습니다.}


라이텔바흐의 뇌리에 결합된 ‘특수 세포’가 시스템 화면창을 만들어냈다.

그는 뇌파를 통해서 화면 창 위에 명령어를 빠르게 입력하였다.


{입자 타입을 알파에서 시그마로 변환}

{밀도 압축 작업 개시}


이윽고 총기를 쥔 라이텔바흐의 손에서 안티-게이팅 에너지가 흘러들었다.

그는 복잡한 조작을 시행하여 섬세하게 흡수된 어비쓰론을 재가공했다.


‘헌터의 본질은 본래 전사가 아닌, 의사.’


단순 전투력만으로는 그저 가장 강한 특수 요원을 웃도는 수준이다.

무시무시한 전략 병기들이 즐비한 이 세상 속에서 기껏해야 그런 전력으로는 경쟁력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헌터가 진정 빛을 발하는 필드는 물리계가 아닌 헬게이트.

그리고 헬게이트는 물리 세계 그 자체를 침식하는 마계의 질병이다.

고로 헌터의 사명은 ‘서전(surgeon)’ 혹은 ‘피지션(physician)’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모름지기 서전과 피지션은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정교하고 섬세하게 지식과 예술과 과학적 사고와 손재주를 운용하는 자.

헌터는 정확히 그 상위호환이었다.


‘병의 병리학적 기전만 이해하고 그 구성식을 깨우치면, 진을 무너뜨리기란 간단한 법이지.’


변환을 마친 어비쓰론들이 압축 탄환이 되어 연발되었다.

수천 발의 총탄이 어비씨언들의 몸 속에 그대로 꽂혀 박혔다.

몇 초 지나지 않아 그것들은 침식형 붕괴 병기가 되어 어비씨언들을 안에서부터 무너뜨려 흙덩어리로 바꿔버렸다.


-끼에에에에엑!

-꾸에에에엑!

-끼야아아아악!


수천 마리의 괴물뱀들이 능지처참의 과정을 거쳐 공중분해되었다.


파죽지세로 모든 상위 유닛들을 부순 라이텔바흐.

그는 길드장 둘이서 가까스로 보스와 대치하고 있는 현장으로 유유이 걸어갔다.


“조심해, 라이텔바흐.”


싸움터에 있던 로빈슨 길드장이 외쳤다.


“코드네임 티폰, 저 괴물은 최소 AAA 랭크에서 S- 랭크에 육박한다.”


건물 두 개를 합친 크기의 용 같이 생긴 괴수가 라이텔바흐와 마주하였다.

본능적으로 호적수를 알아본 티폰은 움찔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헌터 다섯이 부상을 당해서 실려갔어. 길드장급으로도 버티는 게 고작이야.”


“성가시게 생기긴 했군.”


라이텔바흐는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은 채 찬찬히 괴수를 품평하였다.


-크아아아아아!


티폰은 거대한 손을 라이텔바흐에게 뻗었다.

다섯 쌍씩 존재하는 커다란 팔이 급격한 팽창 과정을 거쳤다.

라이텔바흐는 유유이 공중 축지법을 사용하여 괴물의 움직임을 농락하였다.

헌터를 놓친 티폰의 팔이 닿는 지대마다 거대한 크레이터가 만들어졌다.


“스펙 자체는 S- 라고 해도 손색이 없군. 하지만 경험이 부족해.”


만약에 오래 살아남았더라면 위협적인 상대가 되었으리라.

실제로 과거에는 수개월 이상 장기 생존을 통해 진화한 개체가 여럿 있었다.

허나 그들의 대부분은 1세대, 2세대, 3세대 헌터들에 의해 토벌되었다.

현존하는 보스 어비씨언 중 라이텔바흐에게 일대일로 위협이 될만한 개체는 존재하기 어려웠다.


라이텔바흐의 창은 그의 명령어를 인식하고 형태 변화를 개시했다.

한쪽 날은 변형되어 길고 거대한 대검으로 변화하였다.

다른 쪽은 긴 채찍의 형태로 변환되었다.

채찍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가 공중 부양을 하며 자율적으로 움직이듯 손날의 움직임 없이도 뱀처럼 꿈틀거리며 현란한 춤사위를 그렸다.


이어지는 티폰과 라이텔바흐의 정면 교전.

위협을 느낀 티폰은 팔의 개수를 오십 쌍으로 불린 후 몸집도 팽창시켰다.

몸을 덮던 단단한 비늘은 특수 경화 과정을 거쳐 다이아몬드처럼 되었다.

어비씨언의 출력이 급증하자 길드장들과 보조 인원 열 명은 뒤로 후퇴하였다.


“라이텔바흐 길드장에게 방해가 안 되도록 물러나자.”


전력을 다해 싸우면 어찌저찌 길드장들도 일대일로 티폰을 잡을 수는 있으리라.

하지만 그 과정에서 동료들의 피해가 생기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압도적인 전력차로 찍어누를 수 있는 고수에게 맡기는 편이 안전하다는 판단이 섰다.


“전술이나 전략, 다대일 공략에도 능한 녀석이지만, 혼자 싸우고 싶어할 때는 걸리적거리지 않게 해주는 편이 도움이 되겠지.”



이윽고 기습적으로 연결되는 라이텔바흐의 반격.

창에 한 쪽 끝에 달린 대검이 금강석 비늘을 찢고 티폰의 어깻죽지에 꽂혔다.


-크아아아악!


연달아 춤사위를 그리는 황금빛 채찍.

채찍은 맹렬히 궤적을 그리며 티폰의 팔 스무 쌍을 칭칭 감아 결박하였다.


‘메스로 절삭한 다음.’


대검이 어깨에서부터 몸통을 가로지르며 커다란 궤적을 그었다.

내장이 훤히 드러났고 뼈와 살이 갈라졌다.


‘보비(Bovie)로 지진다.’


채찍에서 작은 채찍의 가지들이 뻗어나왔다.

그것들은 촘촘한 수술용 봉합사 마냥 갈라진 상처 틈으로 파고들었다.


곧 채찍을 따라 흘러드는 강렬한 전격의 홍수.

번개가 사방을 수놓았다.


“조금 더 고통스러워하도록.”


절규하는 괴물의 팔과 다리를 팽팽히 조이는 라이텔바흐의 채찍, ‘보비’.

그것은 맹렬한 번개를 쏟아내며 전격으로 괴물의 연한 살갗을 파고 들었다.

비늘과 비늘 사이의 약한 부위를 정확하게 비집고 들어가며 살을 양단했다.


촤아아아아악.


절반 이상의 팔과 다리가 각각 열 토막 씩 잘려 바닥에 떨어졌다.

잘린 부위로 다시금 파고드는 채찍의 작은 가지들.

티폰의 육체로 푸른색과 황금빛 번개의 바다가 다시 우겨넣어졌다.

용의 세포는 갈기갈기 찢어졌고 화형식의 연기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한 순간에 오체불만족 뱀으로 전락해버린 티폰.

분노한 그것은 최후의 발악으로 몸을 최대한으로 팽창시켰다.

건물들을 미니어처로 보이게 할 괴랄한 몸집의 뱀이 아가리를 열었다.

검은 화염이 압축되어 만들어진 화포가 도심을 가로질렀다.


이어서 헬게이트가 생존 본능에 이끌린 것인지 티폰의 등과 결합했다.

검은 구체 형태의 헬게이트가 순식간에 형태를 바꾸어 세 쌍의 날개가 되었다.

날개에서 스며든 한량없는 에너지가 티폰의 몸에 과부하를 걸었다.

폭주한 괴수는 라이텔바흐를 향해 혼신을 다해 브레스를 내뿜었다.


그러나 막상 라이텔바흐의 몸 근처에 닿는 순간, 브레스는 열 가닥으로 갈라져 궤적이 비틀어진 뒤 라이텔바흐의 뒤편으로 옮겨졌다.

헌터의 몸에는 상처조차 없었다.

물리적으로 막아낸 것이 아니었다.


“흑색 파동과 어비쓰론 입자를 동시에 사용한다라, 나쁘진 않은 전략이야. 과연 헬게이트들끼리도 네트워크가 있는 모양이군. 진화 능력이 상당하단 말이지.”


하지만 상대를 잘못 고른 티폰.

조금 전 라이텔바흐가 맨손으로 사용한 그 기묘한 힘.

에너지 크기와 무관하게 상성으로 흑파 상대로는 우위를 점하는 능력이었다.


“그만 여기까지만 하자.”


보비를 쥔 라이텔바흐.

대검 곧 메스는 작살이 되어 괴물의 심장을 향해 투척되었다.

길이가 급격히 늘어난 메스는 그대로 티폰의 가슴과 날개형 헬게이트를 한꺼번에 꿰뚫었다.

이어서 보비를 통해 메스 쪽으로 라이텔바흐의 안티-게이팅 파워가 주입되었다.


콰아아아앙!


가루가 되어 흩어진 어비씨언과 헬게이트.

빛이 다시 드리워지며 어둠의 장막이 해체되었다.



헌터들과 군인들이 부랴부랴 뒷수습을 하는 동안,

라이텔바흐는 멍하니 티폰의 잔해를 바라보며 잡생각에 잠겼다.


‘집에는 안전히 잘 돌아갔으려나?’


싸움이 여유로웠는지 엉뚱한 생각이 든 라이텔바흐.

그 면역자들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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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악몽의 추억 NEW 13시간 전 2 0 14쪽
59 출항 24.09.14 7 0 14쪽
58 진급 24.09.13 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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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교활한 광전사 (2) 24.08.30 9 0 13쪽
54 교활한 광전사 (1) 24.08.29 8 0 13쪽
53 조우 24.08.25 8 0 17쪽
52 레기온 24.08.22 9 0 16쪽
51 다중심연융합체 24.08.17 9 0 11쪽
50 극강 장벽 24.08.15 10 0 11쪽
49 이변 (2) 24.08.12 8 0 13쪽
48 이변 (1) 24.08.10 9 0 12쪽
47 마무리 단계 24.08.07 9 0 12쪽
46 독립운동가 24.08.04 9 1 12쪽
45 예측력의 한계 24.07.31 10 0 12쪽
44 에일린 (2) 24.07.28 10 0 13쪽
43 에일린 (1) 24.07.25 12 0 11쪽
42 재난 예보 작전 (3) 24.07.22 14 0 13쪽
41 재난 예보 작전 (2) 24.07.17 11 0 13쪽
40 재난 예보 작전 (1) 24.07.17 13 0 12쪽
39 퇴각 24.07.05 15 0 14쪽
38 정부군 대 헌터군 (3) 24.07.02 14 0 15쪽
37 정부군 대 헌터군 (2) 24.06.29 13 0 12쪽
36 정부군 대 헌터군 (1) 24.06.27 13 0 13쪽
35 뒷통수 24.06.24 12 0 12쪽
34 최후 일격 24.06.22 12 0 11쪽
33 지하 던전 6층 24.06.19 12 0 13쪽
32 지하 던전 5층 (3) 24.06.17 1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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