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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성자들의 세계 : 심연 파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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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peacetiger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7
최근연재일 :
2024.09.16 14:16
연재수 :
6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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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43,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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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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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급

DUMMY


며칠 후, 헌터 수장령으로 라이텔바흐 대령에게 승진 특령이 내려졌다.

명분이 될 공적은 구 메인 주 지역의 SSS 랭크 헬게이트의 토벌이었다.

그 직후에 이어진 이변 헬게이트 네 기의 토벌 건도 있었으나 이쪽은 상대적으로 악명이 덜했기에 주목을 덜 받았다.


원래라면 진작에 승진했어야 마땅했다.

공적의 총량과 능력으로 보면 전 세대의 헌터 수장들을 능가하는 위인이다.

물론 헌터라는 집단 자체가 정치인도, 정식 군인도 아닌 주제에 정부와 묘한 방식으로 엉켜 있는,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집단인 탓에 적잖이 외부 입김에 휘둘리는 측면은 있었다.

라이텔바흐의 정치적 비상이 번번이 제약을 받는 데는 이런 배경 탓이 있었다.

한 마디로 높으신 정치인들이나, 열 개의 권역들의 수장들이나, 혹은 네 개의 정당의 당원들은 라이텔바흐의 존재감을 매우 아니꼽게 생각했다.

그의 능력이 아직 필요하긴 하므로 맘대로 해하지는 못했으나 그렇다고 그가 힘을 얻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곤란했다.


그러나 이제는 더는 정부 측에서도 라이텔바흐의 발목을 영원토록 잡기는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헌터 수장들이 은근한 압박과 더불어 협상의 카드들을 내밀자 그들도 내심 껄끄러워하면서도 못 이기는 척 한 발 물러섰다.


그렇게 해서 확정된 그의 직위는 협회장.

일반인들의 용어로 표현하면 준장(准將).

길드장의 숫자가 3천여 명인 것에 비해, 협회장의 수는 그 십분의 일인 3백여 명 정도 남짓하다.

관리해야 하는 휘하 헌터들의 수 또한 3천여 명으로 늘어난 셈이다.

더욱이 길드장과 달리 협회장부터는 공식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정치적 영향력의 크기가 급격히 증가한다.

길드장 당시에도 이미 라이텔바흐와 그와 동료들은 활동적으로 여러 일들에 도전해오긴 했다.

하지만 주로 젊음과 패기와 잠재력을 원동력 삼아 이끌어온 모험들이었다.

실질적으로 멀리 날아가며 오래 비행하기에는 위치상 한계가 있었다.

허나 이제 라이텔바흐의 어깨에도 날개가 돋치게 되었다.


“앞으로도 수고해주게.”


그의 은인인 델타 수장이 어깨를 두드리며 축하해주었다.


“더 나은 세상을 이루기 위해 치밀하게 고민하고 헌신하겠습니다.”


라이텔바흐의 대답에 담긴 비전은 단순한 헬게이트 토벌 따위가 아니었다.

그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헬게이트보다도 더 악한 뿌리의 제거, 또한 그 뒤에 이룰 새로운 건설이었다.


“그래, 그대의 꿈과 비전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구먼.”


“아직은 멀었습니다.”


라이텔바흐가 이번에 확보한 힘은 공식 지위만이 아니었다.

그의 비공식적 힘인 경제계와 산업계에 뻗쳐놓은 촉수들, 그것 또한 전반적 정비를 통해 대대적으로 강화되었다.

여러 기업들이 다양한 루트를 통해 그에게 인수되었고 각종 기술 경쟁에서의 우위 확보 및 신기술 점유가 이뤄졌다.

아울러 희소 자원 및 그 공급지의 확보까지도 진척되었다.


또한 최근 정재계의 각종 유력한 인사들 중 라이텔바흐의 첩자들이 줄줄이 진급하거나 경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 가운데는 일부 헌터들도 있었고 헌터들의 동맹자도 있었으며 세계 정부도 전혀 알지 못하는 라이텔바흐의 협력자들도 다수 있었다.

그들은 그들 배후의 책략가인 이 헌터의 조언에 힘입어 승승장구 중이었다.


“이제 반격은 겨우 시작입니다.”


델타는 은연 중 두려움을 느꼈다.

라이텔바흐는 다른 헌터들과 다르다.

싸움이나 안티-게이팅 파워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바라보는 시야나 미래를 구축하는 감각, 그리고 시대를 읽는 영웅으로서의 능력도 격이 다르다.

기껏해야 세계 정부의 부조리를 뒤집어 엎으려는 여타 헌터들과 달리 라이텔바흐는 그 너머를 바라보고 있으리라.

이제 곧 네 수장들의 집권이 끝나고 라이텔바흐 중심의 체계로 이양되는 것 또한 시간 문제이거늘.

그 뒤에 찾아올 시대가 어떤 모습이 될지 기대가 되면서도 무서웠다.


‘이 아이라면 세계 정부의 무리들도, 헬게이트들도, 심지어 그 배후의 무형의 권세마저도 자신의 장기말처럼 여기며 꼭두각시 놀이를 이어나가겠지.’


라이텔바흐는 과연 괴물이 될 것인가.

델타는 여기에 한 술 더 얹어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나는 라이텔바흐가 괴물이 되기를 두려워하고 경계하는가.

아니면 은연 중에 그 모습을 바라보기를 기대하고 있는가.

저 자신도 스스로의 의중에 대해 확답을 규정하기 어려웠다.




*


라이텔바흐가 진급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다른 협회장들과의 협상이었다.

길드장 당시에는 다른 길드장들과 주로 비공식적 방법으로 제한적인 화상 토의를 나누었다면 이제는 공식 오프라인 회의가 가능해졌다.

비공식 회의 때는 갖가지 도발적이고 공격적인 전략들까지 제한없이 구상하였다면 이제는 좀 더 공적이고 규격화된 방식으로 의제들을 논의할 의무가 주어졌다.

라이텔바흐는 삼백여 명이 둘러 앉은 거대한 원탁 내에 자신을 위해 마련된 자리에 당당히 앉았다.


“건의드릴 요청 사항이 있습니다.”


비록 모인 이들 중에서 가장 후배이긴 했으나 존재감과 카리스마만은 모두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사실상 라이텔바흐는 이 자리에서도 우두머리요 짐승 무리의 두목이었다.

그는 아마도 그런 본질을 타고 태어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면역자들을 활용하는 우리의 대(對)-헬게이트, 대-독재 체제 대응 전술, 여러분께서 인계받아 잘 응용 중이라는 보고를 상부로부터 받았습니다.”


잠시 회의석이 술렁였다.

현재로서 ‘면역자’들을 관리하는 기관은 헌터 협회 단위의 조직들이다.

일개 길드장 급 미만으로는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면역자 관리에 필요한 권력과 인적 자원을 확보하기 어렵다.

반대로 당회장이나 총회장 급에서 대대적인 행동을 보이면 세계 정부 측에서 의심의 눈초리를 기울일 위험성이 있다.

고로 여태껏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 1만여 명의 면역자들은 각기 권역을 관할하는 협회장들의 지시 하에 몰래 감시되고 관리되어 왔다.


“하지만 그 알고리즘을 처음 구축하고 창안한 건 모두가 알다시피 저입니다. 기억하시리라 믿습니다.”


면역자들의 주거와 활동 범위를 마음껏 모니터링할 수 있는 것은 헌터들 입장에서는 상당한 이점이요 고지였다.

그들의 행동 패턴을 실시간으로 기록함으로써 헌터계는 헬게이트들의 발생, 변화, 진화, 소멸 등의 현상을 거시적 수준 뿐 아니라 미시적 수준에서까지 정확하게 예측하는 데 꼭 필요한 마지막 퍼즐들을 확보하였다.

아마 세계 정부는 그 예측 알고리즘이 어떤 이론과 어떤 관측 기술로 운용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할 테니 면역자들의 존재의의도 알지 못하겠지.


허나 라이텔바흐의 말대로 그 예측 알고리즘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특허를 내어 발명해낸 그의 아이디어였다.

실질적인 실행이야 헌터 협회들의 권력이 필요하니 직접 시행하지는 못하고 대행자들에게 인계해주긴 했지만, 엄연히 이 분야의 석학은 라이텔바흐다.

더욱이 면역자들의 행동 패턴을 방정식에 넣어 최종 시뮬레이션을 완성하는 계산 작업도 지금껏 항상 라이텔바흐가 수행해왔다.

다른 헌터들이 한 일이라고는 엄밀히 말해서 보조 연산에 불과했다.

연산에 필요한 이터널 셀의 질 자체에서부터 격이 다른 이유였다.


헌터 협회장들은 라이텔바흐의 주장에 그런대로 동의하였다.


“그대가 원하는 바를 말씀해주시오.”


“우리는 그대가 제안하는대로 동의하겠소.”


일이 순탄하게 흘러가자 라이텔바흐는 느긋하게 미소를 머금었다.


“당신들에게 그리 부담스러운 제안은 아닙니다. 도리어 번거로운 이중 업무를 덜어드리고 싶군요.”


그는 프리젠테이션용 홀로그램 화면을 원탁 한 가운데에 불러들였다.

사람들은 그 내용을 읽고는 눈을 반짝였다.


“현재 각 협회에서 담당하는 면역자들, 그들과의 교류 및 접촉, 주거지 이주 및 이민 알선, 그들의 물리적 보호 및 정보 차원의 안보 프로세스, 그 모든 프로젝트들을 하나로 통합하고자 합니다.”


“그 말인즉.”


“그렇습니다. 이 시각부로 확인된 현존 면역자 전부를 제 관할 특수 기관 통제 하에 인계받고자 합니다.”


저 인간, 무슨 의도일까?

협회장들은 의아해했다.


사실 그들로서는 반가운 제안이었다.

면역자들을 관리하는 일은 기업 운영, 정계 로비, 무기 개발 및 산업 투자, 학계 활동 및 연구, 혹은 주업인 헬게이트 토벌 및 인명 구조와 달리 두드러지게 어떠한 열매나 성과를 맛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세계 정부 몰래 수행해야 하는 작업이라 부담을 부담대로 막대한데, 막상 자신들 스스로는 그 요긴함을 충분히 활용하지도 못하는 자원들이다.

실상 많은 협회장들이 면역자 관리를 무급으로 보모 노릇을 하는 것과 같이 여기며 매너리즘을 느껴가던 차였다.

그런 때에 이 프로젝트의 원 고안자가 총대를 전부 매고 부담을 가져간다?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헌데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라면 라이텔바흐의 의도였다.

그들보다 머리가 몇 배에서 몇십 배는 더 뛰어난 인간이니 뭔가 큰 그림을 그리거나 복잡한 술책을 구상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혹시 세계 정부와의 대립이나 갈등과 관련된 일은 아닐까?


라이텔바흐는 협회장들이 무리 없이 의견을 수용할 수 있도록 여러 공식적 근거들을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찬찬히 설명했다.

전부 합리적이고 그럴 듯한 주장들이었으며 데이터들 또한 여실히 그의 타당성을 뒷받침해주었다.

다만, 제시된 그 표면적인 이유들만이 속내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심증적으로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라이텔바흐의 강한 영향력과 존재감에 대적하기에는 협회장들의 태생적 패기가 부족했다.

이 자리의 80% 이상이 S급 헌터 이상임에도 불구하고 유일무이한 EX 랭크 헌터의 거대한 위압감에 견디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몇 번의 토의와 협상 후 그의 건의는 큰 저항 없이 승인되었다.

인계 선행 절차가 진행되었고 도장 및 서류 사인이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법률 서류 및 공식, 비공식 서약을 모두 수합한 라이텔바흐는 각종 데이터 키를 그들에게서 건네받았다.

아마 한 달 안에 실질적인 관할 임무 이전도 마무리될 것이다.


‘흥미롭군.’


시시해빠진 세계 정부 따위나, 헬게이트들처럼 뻔히 읽히는 존재들과 달리, 면역자들은 여러모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미지의 변수였다.

라이텔바흐는 그자들을 통해 어떤 식으로 미래의 열쇠를 발굴해야 할지 깊이 숙고했다.

그의 동물적 직감과 기계적 연산력은 분명한 촉을 한 방향으로 느끼고 있었다.


‘플레먼 에이비슨, 그리고 그의 세 친구들, 그리고 면역자들까지······, 내 예측마저도 벗어난 연쇄 반응인가. 이것이 도약이 될지 위기가 될지, 보다 신중하게 관측해봐야겠군.’


두 가지 기대감이 들었다.


하나는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으로 라이텔바흐에게는 대단히 낯선 것이었다.

평생을 실험체로서 고문받으며 고통스레 힘을 키워왔던 그에게 있어서 친구들과 함께 하는 평범한 생활이란 낯설면서도 큰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헌터를 포함하여 어느 누구도 믿지 못한채 늘 자신을 격리의 감옥 속에 가둔 채 외로이 지내왔던 이전 생활의 틀을 깨트릴 기회를 얻었다.


다른 한 기대는 다소 괴물적인 것으로 라이텔바흐에게 매우 친숙한 것이었다.

인간의 궤를 벗어난 그의 마음은, 이 친분이라는 기회마저도, 그리고 면역자들과 이변 현상이라는 변수마저도, 거국적인 미래를 자신의 뜻대로 재조정하기 위한 한 자루의 붓으로 고려하는 중이었다.

인류의 궤적을 뒤바꿀 그림을 그릴 한 자루의 붓.

플레먼과 친구들은 자신의 호기심과 흥미를 충족시켜줄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의 ‘특별함’의 본질을 발견하고픈 충동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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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악몽의 추억 24.09.16 3 0 14쪽
59 출항 24.09.14 7 0 14쪽
» 진급 24.09.13 8 0 12쪽
57 기대와 불안 24.09.07 9 0 14쪽
56 제안 24.09.03 9 0 15쪽
55 교활한 광전사 (2) 24.08.30 9 0 13쪽
54 교활한 광전사 (1) 24.08.29 8 0 13쪽
53 조우 24.08.25 8 0 17쪽
52 레기온 24.08.22 10 0 16쪽
51 다중심연융합체 24.08.17 9 0 11쪽
50 극강 장벽 24.08.15 10 0 11쪽
49 이변 (2) 24.08.12 8 0 13쪽
48 이변 (1) 24.08.10 10 0 12쪽
47 마무리 단계 24.08.07 9 0 12쪽
46 독립운동가 24.08.04 10 1 12쪽
45 예측력의 한계 24.07.31 10 0 12쪽
44 에일린 (2) 24.07.28 10 0 13쪽
43 에일린 (1) 24.07.25 12 0 11쪽
42 재난 예보 작전 (3) 24.07.22 14 0 13쪽
41 재난 예보 작전 (2) 24.07.17 11 0 13쪽
40 재난 예보 작전 (1) 24.07.17 14 0 12쪽
39 퇴각 24.07.05 15 0 14쪽
38 정부군 대 헌터군 (3) 24.07.02 14 0 15쪽
37 정부군 대 헌터군 (2) 24.06.29 13 0 12쪽
36 정부군 대 헌터군 (1) 24.06.27 13 0 13쪽
35 뒷통수 24.06.24 12 0 12쪽
34 최후 일격 24.06.22 12 0 11쪽
33 지하 던전 6층 24.06.19 13 0 13쪽
32 지하 던전 5층 (3) 24.06.17 1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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