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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 - 괴물이 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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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야
작품등록일 :
2020.05.11 22:38
최근연재일 :
2021.07.05 21:55
연재수 :
20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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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08
추천수 :
145
글자수 :
1,045,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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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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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고양이' 이야기 -에필로그-

DUMMY

[931년, 12월 24일, 02시 42분, 헤인느 세인트 22번 길, 아론 빌딩 3층, 셰일즈의 집]


“대충 이런 이야기였어. 아리아랑은 그렇게 처음 만난 거야.”


어느 기점부터 시온은 말이 없다. 돌아보니 어느새 소파에 누워 꾸벅꾸벅 졸고 있다. 네 이마에 노크하자, 네가 화들짝 놀라며 일어난다.


“어? 어... 음.”


너는 매우 당황한 표정이다. 침도 조금 흐른 건 알까 모르겠다. 소파 색이 짙어진 걸 보니 조금 묻은 것 같은데.


“다 듣긴 들었어.”


큰일이라도 수습하듯 네가 말한다. 어련하시겠어.


“조금 자둬. 먼길 오느라 피곤했을 텐데.”


너한테 말한다. 피곤할 걸 안다. 아세오에서 이곳까지 마차 타고 오느라 힘 좀 빠졌을 거다. 알지. 조금만 타고 있어도 멀미 나고, 엉덩이가 부서질 것 같거든. 난 몰라도 아리아는 멀미가 조금 있던 편으로 기억한다. 시온은... 모르겠네.


“미안. 근데 정말 다 들었어. 그나저나... 넌 어디서 자게?”


원래 네가 누운 소파가 내가 자던 자리다. 신발 벗고 대충 누워서 자는 정도다. 그런데 당분간은 네게 양보해야 할 것 같다.


“난 원래 바닥에서 자.”


거짓말을 해본다.


“얼굴에 거짓말이라고 써 있는 건 알아?”


네가 말한다. 딱 들켰네.


“그냥 자자. 내일부턴 내가 소파에서 자면 되지. 너 오늘은 힘들었을 거 아냐?”


그냥 맨바닥에 누워버린다. 마룻바닥이 생각보다 거칠다. 카펫이라도 사둘 걸 그랬다. 누가 와서 자고 갈 거라는 생각은 못 했다. 대충 손바닥으로 머리를 받히고 천장을 본다. 잠시 후, 네가 소파에 있던 베개를 내 얼굴에 던진다. 덕분에 눈앞에 시야가 캄캄해져서 뭔가 했다.


“셰일즈. 너 베고 자. 난 베개 안 쓰니까.”


거짓말이 서툴다. 시온 스타시아.






[같은 날, 09시 51분, 헤인느 세인트 22번 길, 아론 빌딩 3층, 셰일즈의 집]


쇳덩이들이 부딪히는 소리. 아침부터 내 집에서 들릴 소린 아니다. 눈을 뜬다. 늘 그렇듯 웅웅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실링팬.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하늘빛. 그리고 허릴 굽혀 소리의 근원지, 주방을 보니까... 시온이 서 있다. 뭔가 요리 중이다. 아리아에게선 볼 수 없었던 숙련된 솜씨로 양파를 썰고 있다.


“일어났나 보네. 셰일즈.”


네가 먼 산 바라보듯 말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일어났지. 그런데 웬 요리? 너 요리 못하지 않았냐?”


내 말에 너는 찡그린 표정으로 날 흘겨보며 말한다.


“아 그러셔? 네가 내 집에서 묵을 땐 너한테 일거리라도 주려고 요리 시킨 거거든? 미안한데. 셰일즈, 나도 혼자 산 게 14년 정도 된다?”


맨날 식당에 나가서 먹을 줄 알았지. 일어나서 네 옆으로 간다.


“뭐. 왜.”


네가 말한다. 너 삐친 표정 진짜 잘 짓는다. 안 어울리게 무게감 있는 목소리로 그러니까 더 웃기다. 그보다... 요리나 볼까. 어...


“아세오에서 자주 가던 식당에서 배웠어. ‘차이파’란 건데 식당 이모 말로는 전통 볶음밥이래.”


차이파? 처음 듣는다. 아세오 요리는 별 관심이 없다. 요리 잡지 같은 걸 보면 대부분 제리아스 요리법들이 가득해서다. 근데, 아세오 요리가 우리집 식재료로 되나? 내가 널 궁금한 표정으로 쳐다봤던 건지, 네가 말한다.


“이럴 줄 알고 캐리어에 향신료를 넣어 왔지.”


다시 보니... 그러게. 못보던 양념들이 선반 위에 있다. 주로 빨간 가루들. 고춧가루인가? 뭔가 주홍빛도 나고. 무튼 더 캐묻진 않는다. 폼을 보니 그럭저럭 괜찮은 자세로 요리한다. 너도 내가 없는 게 편할 거다. 아니, 덜 부담스럽겠지. 가뜩이나 네 정수리를 턱으로 내리찍고 싶은 충동이 계속 들거든.


“뭐, 잘 부탁해.”


시온이 살짝 눈웃음을 지어 보인다.






[같은 날, 10시 22분, 아르타니아, 헤인느 세인트, 카페 에드워드(셰일즈)]


“에드워드, 오랜만.”


페인트칠 없는 나무 재질의 벽. 옻칠만 하여 고풍스러운 분위기. 원목 테이블. 이 카페의 분위기다. 카페 사장 에드워드에게 손을 흔든다. 그는 붉은 빛이 도는 머리카락을 찰랑이더니 내 쪽으로 돌아본다. 눈가를 찡그리며 날 보다가 안경을 고쳐 쓰고서야 알아본다.


“어? 마틴 변호사님이네. 오랜만에 뵙네요.”


‘카페 에드워드’ 본인 이름을 따서 카페를 차린 사장. 예전에 땅문제로 논의를 하러 왔었는데, 그 일을 해결해준 뒤론 공짜 커피를 얻어 먹고 있다. 요즘은 좀 뜸하게 방문했지만...


원래 그 녀석네가 운영하는 카페에 데려가려고 했다. 그 녀석들은 시온을 모르니까. 그리고 곧 시온은 그들을 알게 될 테니 미리 소개라도 해줄 겸 그러려 했다. 그런데 이 녀석들. 어디 여행이라도 간 건지 말도 없이 사라졌다. 이곳에서 세 블록 쯤 떨어진 곳에 있는 ‘카페 OS’ 통나무 문에 달린 문고리엔 ‘휴가’라는 짤막한 펫말이 달려 있었다.


하여간 안 어울리게 둘이 사이는 좋더라.


“요즘은 옆에 OS쪽에 가지 않았어요? 옛 친구분들이 운영한다고 해서 그러려니 했었는데.”


에드워드 사장이 묻는다. 자리에 앉아서 메뉴를 고르는데 심취하던 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시온이 대신 답한다.


“아, 그 카페는 오늘 휴업이래요.”


메뉴는... 제리아스 동쪽 섬 원두로 최대한 깊게 추출한 커피. 융드립으로 주문해야겠다. 고개를 들어올리니 에드워드 사장은 자기 수염을 매만지고 있다. 무언가 생각하듯 시선은 위쪽을 향해 있다.


“아무래도 명절이 멀지 않아서 그런가 보군요.”


아직도 옆 카페를 의식하고 있었나. 아무튼 시온에게 묻는다.


“넌 뭐 시킬 거야. 난 정했는데.”


너는 메뉴판을 무슨 처음 보는 글자라도 보는 사람처럼 가까이 들여다 본다. 공용어 모르나? 아니, 알 텐데. 설마 커피를 모르는 건...


“메뉴 봐도 뭔지 모르겠다.”


촌놈. 메뉴판을 뺏는다. 녀석이 신음하지만 무시하고 주문을 하기로 한다. 이럴 땐 그냥 달달한 거 아무거나 먹이는 게 맞다. 우유에 카카오 가루를 타고 시럽이나 왕창 넣어주면 좋아하겠지. 에드워드에게 손짓한다. 그가 다가온다. 내가 이것저것 메뉴를 말하는 동안, 시온은 무슨 외계어라도 듣는 사람처럼 동공에 지진을 일으킨다.


“나도 할 수 있었는데...”


아쉬운 듯 한탄하는 너.


“여긴 내가 쏠게. 아침 식사는 잘 먹었으니 돈은 됐어.”


그래도 예상 외로 시온이 만든 아침 식사는 대단했다. 처음에는 뭔 맛인지 이상한 향이 나서 싫었는데, 먹다 보니 중독되는 맛이다. 게다가 양파랑 파도 그렇게 태우지 않고 요리한 게 신기했다. 이유야 간단하다. 나랑 함께 있던 사람들은 모두 요리를 더럽게 못했거든. 아리아도 그렇고. 나탈리아 누나도 그렇고. 세라도 썩 별로였고.


“잘 먹었다니 다행이네. 그래도 혼자 산 게 몇 년인데 내공이 어디 가진 않지.”


물 끓이는 소리. 커피 갈리는 소리. 터져나오는 커피 향. 그리고 몇 없는 사람들. 혼자 온 사람이 대부분이고, 같이 온 사람은 비즈니스로 온 듯하다. 커피가 준비될동안 너의 질문이나 듣기로 한다. 아무래도 어제 하루종일 떠들던 건 나였으니까.


그런데 막상 질문할 시간이 되자, 뜬금 없는 질문이 들어온다.


“그런데 너, 옛날에는 더 싸가지가 없었구나.”


뭐라고 답하기도 애매하다. 애초에 질문인가? 틀린 말은 아니다. 주변 사람들이 그러듯 내가 순해진 편이기도 하다. 자각이 될 정도로 변화가 크다. 옛날의 나는... 세상만사를 부정한 것 같다. 믿음이 없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면 더 아픈 게 사람이니까. 아프기 싫어서 그랬던 것 같다. 고개를 끄덕인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그래도 지금이 더 나아. 욕도 줄었고.”


욕이 줄어든 게 칭찬인가.


“그런데 너. 그러면 그... 게르단? 그 집에 입양된 거야?”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나탈리아 씨? 그분이 너랑 아리아를 처음부터 입양해서 키운 줄 알았지.”


나탈리아 누나. 네가 굳이 씨라는 말을 붙인 건 그때 일 때문일 것 같다. 내가 아세오로 처음 간 날, 너와 누나가 서로 왕창 싸웠다고 들었다. 물론 말싸움은 아니고 진짜로 총, 칼 들고 말이다. 그땐 왜 그렇게 싸웠더라. 뭐... 지금 나올 이야기는 아니고.


인생 중 오랜 시간을 세라 집에서 보냈다. 그와 비슷하게 나탈리아 누나와 함께 보냈다. 커피가 나올 때까지면... 심심풀이로 누나 얘기나 잠깐 해줄까.


“누나 얘기도 할 건 많아. 어쩌면 게르단 가에서 지냈던 일보다 더.”


너는 어떤 얘기를 듣고 싶을까. 시온 스타시아. 그래도... 흐름 깨지지 않게 이 얘긴 해두는 게 낫겠지.






[911년, 2월 21일, 16시 20분, 아르타니아 중부, 중앙 재판소, 제3 법정(셰일즈)]


“저 새낄 처넣어야 된다고!”


검사가 소리친다. 법정보안관들이 일제히 막아선다. 죄인의 이름은 익숙하면서도 먼 듯한 그 이름.


‘밀타 발로사’ 누구냐고? 누구긴. 우릴 엿먹인 여자. 틈만 나면 사람들 살갗을 채찍으로 찢어놓는 마귀. 아리아는 덜덜 떨고 있다. 맹수와 만난 한 마리 토끼처럼. 세라는 주먹을 꽉 쥐고, 그 세기 만큼 이를 꽉 문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것처럼.


나는? 고민 중이다. 어떻게 해야 저 마녀를 찢어 죽일 수 있을지.


“증인은 앞으로 나오시오.”


재판관이 말한다. 이제 우리 차례다.




작가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openobserver


작가의말

길고 어두웠던 고양이 이야기를 끝내요. 이제부턴 지하 밖으로 나와 아르타니아의 모습을 보여드릴까 해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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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마귀' 이야기 -1- +2 20.05.30 61 3 14쪽
» '고양이' 이야기 -에필로그- 20.05.29 53 2 10쪽
21 '고양이' 이야기 -10- 20.05.28 42 2 9쪽
20 '고양이' 이야기 -9- 20.05.27 36 2 13쪽
19 '고양이' 이야기 -8- 20.05.26 39 2 13쪽
18 '고양이' 이야기 -7- 20.05.25 38 2 12쪽
17 '고양이' 이야기 -6- 20.05.23 39 2 13쪽
16 '고양이' 이야기 -5- 20.05.22 49 2 16쪽
15 쉬어가는 이야기 -1- +1 20.05.21 67 3 10쪽
14 '고양이' 이야기 -4- 20.05.20 45 2 13쪽
13 '고양이' 이야기 -3- 20.05.19 41 1 10쪽
12 '고양이' 이야기 -2- 20.05.18 42 1 14쪽
11 '고양이' 이야기 -1- 20.05.16 57 2 15쪽
10 '찢어진 종이' 이야기 -2- 20.05.15 51 2 12쪽
9 '찢어진 종이' 이야기 -1- 20.05.14 49 2 13쪽
8 '너와 나' 이야기 -에필로그- 20.05.14 47 2 7쪽
7 '너와 나' 이야기 -6- 20.05.13 51 2 19쪽
6 '너와 나' 이야기 -5- 20.05.13 55 3 13쪽
5 '너와 나' 이야기 -4- 20.05.12 57 2 13쪽
4 '너와 나' 이야기 -3- 20.05.12 66 3 10쪽
3 '너와 나' 이야기 -2- 20.05.12 84 7 11쪽
2 '너와 나' 이야기 -1- 20.05.11 157 7 12쪽
1 시작하기 전 이야기 +2 20.05.11 541 1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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