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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 - 괴물이 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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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야
작품등록일 :
2020.05.11 22:38
최근연재일 :
2021.07.05 21:55
연재수 :
20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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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93
추천수 :
145
글자수 :
1,045,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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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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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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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고양이' 이야기 -10-

DUMMY

[911년, 1월 30일, 05시 25분, 아르타니아 동부, 플랙시티, (구)대피소 폐허(아리아)]


담요를 뒤집어썼다. 어른들이 주셨다. 생각했던 대로다. 그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었다. 우리를 구하려고 이곳에 왔다고 했다. 아무 말도 않았다. 아니, 딱 한 마디 했다. 사람을 구해달라고 했다.


그들은 목제 사다리를 가져왔다. 그것을 균열 사이로 넣어, 좁은 틈새 사이로 몇몇 사람들이 내려왔다. 그리고 내 한 마디, 사람을 구해달란 그 말에 수많은 질문이 들어왔다. 산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 어디에 있느냐. 상태는 어떻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답할 시간에 그 사람들을 이끌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너에게로 향했고, 그들이 이끌렸다. 그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장님. 요정 아닙니까? 어째... 머리색도 그렇고...”


편견이란 건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당연히 저런 얘기는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지금은 너를 구해야한다. 아직... 살아있지? 믿고 있어. 너도 날 믿었으면 해.


그 구멍 앞으로 왔다. 네게 들어가는 틈. 위쪽에서 새어나오던 빛은 저 사람들이 내던 빛이었다. 몇몇 짤막한 단어를 들었다. ‘랜턴’, ‘푸스티카산’... 그런 단어들. 푸스티카는 지역이다. 마차에 실려 오던 날, 그쪽 지방 사람이냐는 얘길 들었으니까. 랜턴이 푸스티카산이라는 건 그쪽 지역에서 만들어졌단 뜻일 거다. 놀랍게도 하얀 빛이 나오는 신기한 랜턴.


어른들은 잔해를 파냈다. 내가 먼저 들어가려고 했지만, 누군가가 막았다. 무너질 수도 있으니 조심하란 취지였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했다. 잔해를 파내는 걸 도우고, 뒤이어 몇몇 사람들이 더 온다. 적어도 10명은 넘어 보인다.


구멍이 커지고, 나는 서서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넓어진다. 어른들은 굽히고 들어와야겠지만 그들은 옷을 입고 있다. 장갑도 끼고 있다. 어른들이 낑낑거리는 동안 나는 네 앞으로 향한다. 아까보다 피 웅덩이가 짙게 펼쳐졌다. 피를 조금 만져보니 끈적인다.


“나... 왔어.”


너는 고개를 푹 떨군 채 미동도 없다.


“나... 늦은 거야?”


잠시 뒤를 돌아본다. 어른들이 코를 막는다. 시체를 보면서 당황한 사람들도 있다. “에르디우스톤이시여.” 이런 말을 한 사람도 있다. 저마다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우직하게 내 앞으로 걸어온다.


아저씨다. 수염이 조금 자란 턱선. 금발. 새파란 홍채. 다부진 체격. 건장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든든해 보인다. 옷이 조금 찢어져있는 걸 제외하면 상대적으로 멀쩡해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오른쪽 허리춤에 보이는 칼집.


“이 친구니?”


아저씨의 목소린 아주 둔탁한 저음이다. 신뢰가 간다고 해야 할까. 고개를 끄덕인다. 아저씨도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가 구해주마.”


조용히 뒤로 물러선다. 이후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시야가 흔들렸고, 온 세상이 핏자국이 되었을 뿐이다.






[911년, 2월 6일, 09시 41분, 아르타니아 동부, 마르타, 게르단 사유지, 게르단 대저택(셰일즈)]


꿈을 꿨다. 죽고 환생했는데 하필 바퀴벌레였다. 사람들한테 5000번 정도 밟힌 것 같은데 결국 늙어 죽었다. 그리고 지금 잠에서 깬 거다. 잠? 아니, 잠이 맞나. 요단강이라도 건넌 것 같은데...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건 아이보리색 천장이다. 거기에 커다란 샹들리에가 있고... 등 뒤로는 새하얀 빛이 들어오는 창이 있다. 죽은 게 맞나보다. 잠이나 자자. 근데... 왜 이렇게 허벅지가 땡기지.


눈을 다시 뜬다. 오른손을 들어올린다. 손가락이 4개다. 원래 사람 손가락이 4개인가? 가운데 손가락에 붕대가 싸인 걸 보면... 몰라. 그랬나보지 뭐. 다른 손도 들어올린다. 여긴 또 5개다. 재밌네. 재밌어. 언밸런스한 사람이라니.


그리고 하반신에서 느껴지는 움직임. 그리고 부스럭거리는 소리. 허리를 들어 올릴까 했는데 찢어지게 아프다. 시발. 뭐야 이거. 고개를 움직여서 하반신을 내려다본다. 새빨간 실크 이불이 있고... 어디서 많이 본 녀석이 엎드려 있다. 침대 왼쪽에 의자를 두고 거기에 앉은 모양이다. 그대로 내 왼쪽 허벅지에 엎드려서 자고 있다. 거의 이불 절반을 녀석의 하늘색 머리카락이 뒤덮고 있다.


“야.”


묵묵부답. 뭐야. 내가 아니라 이 녀석이 죽었나? 왼손 검지를 녀석의 머리카락에 댄다. 생기는 느껴지는데... 움직이지 않는다. 몇 시지? 햇빛을 본 지 너무 오래돼서 가늠이 안 된다.


그냥 눕는다. 어떻게든 됐나보다. 산 게 맞겠지. 그런데 잠시 후,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다. 잠시 답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했는데 문이 알아서 열린다. 밖에서... 웬 은쟁반이랑 찻잔이 보이더니 이내, 사람의 얼굴이 툭 튀어나온다.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여자다. 한 20대 후반? 검은색에 소매가 펑퍼짐한 원피스. 그리고 프릴이 눈에 띄는 하얀색 드레스를 껴입은 외양. 그러니까... 하녀?


“어... 어...”


저 여자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멀뚱멀뚱 서 있다. 하늘색 머리 녀석을 보다가 나를 보다가 한 수십 번을 반복한다. 그러다 밖으로 나가고, 문이 쾅 닫힌다. 뭐야? 그리고 잠시 후, 문이 활짝 열리더니... 한 세 사람 정도가 뛰어 들어온다.


“너... 너... 일어난 거야?”


금발머리 벽안에 턱선이 날카롭고 마치... 여우? 아니면 고양이를 반반 섞은 것 같이 생긴 여자애. 그리고 똑같은 머리색과 홍채 색에 지하에서 내가 그토록 찾고 있었던 몸매의 아저씨.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얀 셔츠에 검은색 양복을 차려입은 흑발 남자.


“몸은? 괜찮은 거 맞아? 너 거의 죽을 뻔했단 말이야. 의사 선생님이 앞으로 한 달 간은 못 일어날 수도 있다고 했는데...”


아. 확실히 알겠다. 바퀴벌레 꿈은 헛된 게 아니었다. 내 영혼이 바퀴벌레처럼 몸에서 떠나가질 못한다는, 그런 의미였나 보다.






[같은 날, 10시 10분, 아르타니아 동부, 마르타, 게르단 사유지, 게르단 대저택(셰일즈)]


지금 방 안에는 금발 여자애. 나. 그리고 하늘색 머리 여자애만 있다. 함께 들어왔던 두 사람은 뭔... 의사를 부르러 간댔나. 어쨌든 그런 것 같다. 하늘색 머리 여자애는 그 소란에도 여전히 자고 있다. 잠이 많은 건가? 참 대단하네.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지 마. 아리아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너 살려야 한다고 며칠 밤을 샜는데.”


내가 무슨 눈빛으로 쳐다봤는데. 아니 그보다. 초면인데. 너 되게 싸가지 없다? 아무튼. 이 하늘색 머리 여자애 이름은 아리아인가 보다. 아리아? 무슨 뜻이지. 어쨌든 흔한 이름일 것만 같다. 금발 여자애는 안 어울리는 주황색 드레스를 입고 있다. 정확히는 노란 원피스에 주황색 드레스를 입은 모양인데 영 안 어울린다. 머리색까지 포함해서 너무 누렇게 보인다고 해야 하나? 게다가 녀석이 말할 때마다 우측 위에 송곳니가 굉장히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덧니 때문에 무슨 드라큘라 이빨을 이식한 것만 같다.


“그래서. 넌 이름이 뭔데?”


녀석이 묻는다. 뭐라고 해야 하지. 고양이가 애옹거리는 높은 목소리. 그보다 내 이름? 그걸 왜 궁금해 하지. 내가 뭘 믿고 너희들한테 말해야해?


“몰라도 돼.”


내뱉는다. 알아서 뭐하게. 그러자 녀석은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내 볼을 꼬집기 시작한다.


“아이 씨. 뭔데?”


눈도 반쯤 감은 채로 나를 노려보는 녀석.


“뭐긴 뭐야. 너 왜 이렇게 싸가지가 없어?”


피차일반이네. 너도 어지간히 싸가지 없거든? 그래도 말로 내뱉진 않는다. 그냥 손을 치워내고 창밖만 본다. 정원... 인가? 꽃들이 가득하네. 무슨 돌계단도 보이고. 숲을 지나서 멀리 도시도 보인다.


“난 세라야. 세라 게르단. 불편하면 게르단이라고 불러.”


녀석이 자포자기한 듯, 낙심한 목소리로 말한다. 갑자기 헛웃음이 나오네. 당연한 거 아닌가?


“불편하니까 게르단이라고 부를게.”


녀석 이마에 핏줄이 선 게 느껴진다.


“너... 진짜 악질이구나. 아리아는 왜 너 같은 애를...”


“유감이네. 왜 나 같은 악질을 살려주셨을까?”


게르단은 어이없는 표정을 보이고선 밖으로 나간다. 아니, 나가기 전에 한 마디 한다.


“나한테 싸가지 없게 구는 건 이해해. 그런데 아리아한테도 그랬다간 그땐 가만히 안 있을 거야.”


손을 살짝 흔들어준다. 여유롭게 웃어주면서. 녀석은 잠깐 날 보더니, 문을 쾅 닫고 나가버린다. 유감이네. 나 같은 걸 왜 살렸냐. 너는. 그래도 말이다.


“고맙다.”


상도덕은 있어야지. 사람이 말이야.




작가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openobserver


작가의말

길고 긴 고양이 이야기를 마쳐요. 이제 에필로그를 써야겠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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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마귀' 이야기 -3- +2 20.06.02 54 3 14쪽
24 '마귀' 이야기 -2- 20.06.01 51 2 13쪽
23 '마귀' 이야기 -1- +2 20.05.30 60 3 14쪽
22 '고양이' 이야기 -에필로그- 20.05.29 52 2 10쪽
» '고양이' 이야기 -10- 20.05.28 42 2 9쪽
20 '고양이' 이야기 -9- 20.05.27 35 2 13쪽
19 '고양이' 이야기 -8- 20.05.26 39 2 13쪽
18 '고양이' 이야기 -7- 20.05.25 37 2 12쪽
17 '고양이' 이야기 -6- 20.05.23 38 2 13쪽
16 '고양이' 이야기 -5- 20.05.22 49 2 16쪽
15 쉬어가는 이야기 -1- +1 20.05.21 67 3 10쪽
14 '고양이' 이야기 -4- 20.05.20 44 2 13쪽
13 '고양이' 이야기 -3- 20.05.19 40 1 10쪽
12 '고양이' 이야기 -2- 20.05.18 41 1 14쪽
11 '고양이' 이야기 -1- 20.05.16 57 2 15쪽
10 '찢어진 종이' 이야기 -2- 20.05.15 50 2 12쪽
9 '찢어진 종이' 이야기 -1- 20.05.14 48 2 13쪽
8 '너와 나' 이야기 -에필로그- 20.05.14 47 2 7쪽
7 '너와 나' 이야기 -6- 20.05.13 51 2 19쪽
6 '너와 나' 이야기 -5- 20.05.13 54 3 13쪽
5 '너와 나' 이야기 -4- 20.05.12 56 2 13쪽
4 '너와 나' 이야기 -3- 20.05.12 65 3 10쪽
3 '너와 나' 이야기 -2- 20.05.12 84 7 11쪽
2 '너와 나' 이야기 -1- 20.05.11 157 7 12쪽
1 시작하기 전 이야기 +2 20.05.11 540 1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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