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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 - 괴물이 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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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야
작품등록일 :
2020.05.11 22:38
최근연재일 :
2021.07.05 21:55
연재수 :
204 회
조회수 :
8,409
추천수 :
145
글자수 :
1,045,763

작성
20.05.14 23:00
조회
47
추천
2
글자
7쪽

'너와 나' 이야기 -에필로그-

DUMMY

[???년, ??월 ??일, ??시 ??분, 아르타니아 서쪽 평원, 앱솔 광장(아리아)]


“일어나자마자 늦었다는 건 직감할 수 있었어. 해가 중천인데 그게 설마 9시겠나 싶었지. 그런데 너는 자리에 없었지. 나는 내 코트에 파묻혀서 곤히 잠들어 있었고. 솔직히 당황했어. 어제 겪은 모든 일들이 전부 꿈이었나 싶을 정도였거든. 그래서 마음 편하게 놓고 더 잘까 싶었어. 그런데 내 발치에 네 단검이 놓여 있는 걸 보고 깨달았지. 그게 꿈이 아니었다는 걸.”


셰일즈는 나를 업은 채 걷고 있다. 앞을 바라보고 나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너의 얼굴을 빤히 보고 있다는 것 쯤은 진작에 눈치 채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너와 내가 아직까지 눈을 맞추는 일은 없다.


“여러가지 생각이 들더라고. 그 단검이 대체 무슨 의미인지 말이야. 혹시 혼자서 떠나겠다는 의미는 아니지 노심초사해서 원. 어쨌든 급한 마음에 내려갔더니 그... 뭐냐... 머저리들이 네 명 정도 있더라. 너한테 헛소리하던 녀석처럼 말만 번지르르해서 처리하는 데 오래 걸리진 않았어.”


샤카도. 나시카도. 모두 네가 들고 있다. 하기야 너는 허리춤에 검집 채로 차고 다니니 상관이 없었지만 나는 아니다. 실수로 가속기가 켜지면 일이 많이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것 역시 너의 허리춤에 박혀 있었지만 걱정은 없다. 이제 나시카는 외형 빼곤 평범한 칼에 불과하다.


“그 후에 너를 찾아 돌아다녔지. 뜬금없이 총소리가 울려서 가봤더니 당연하다는 듯이 네가 있더라고. 너 또 미쳐서 날뛴 건 알아?”


너는 양 팔을 들어 올려 손짓한다. 능글맞은 제스처는 너의 습관. 평소대로라면 말릴 생각이 없다. 다만 일단 네 팔이 내 지지대였다. 덕분에 마치 원숭이가 나무 기둥에 달라 붙듯 양, 다리로 네 허리를 옥죄어야 했다. 너도 아차 싶었던 것인지 바로 내 엉덩이를 받친다. 서로 추한 모습을 보이자, 드디어 너와 얼굴을 마주한다. 내가 웃자 너는 얼굴을 홱 하고 돌려버린다.


“어찌 됐든. 그... 뭐냐.”


네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한다. 왼쪽 뺨을 살짝 대어 본다. 네 얼굴이 갓 찐 감자처럼 뜨겁다. 때고 보니 이번엔 뺨이 홍시처럼 붉다. 무심코 웃음이 터져나오자, 네가 당황한다. 너는 무언가 얘기하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네 입을 막는다. 말 자체를 못하게 하려고 틀어막은 것도 아니다. 손만 갖다 댔을 정도였는데, 너는 자연스레 입을 닫는다. 원래 눈치가 빠른 편이었으니까.


사실, 네가 어떻게 나를 찾았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 이외의 이야기도 썩 중요하진 않다. 중요한 건 너와 내가 지금 함께 있다는 것. 꿈 속에서가 아닌 현실에서.


“그래서 누가 더 예뻤는데?”


문득 든 충동에 한 장난이다. 그런데 셰일즈는 허한 얼굴로 쳐다보더니 웬일로 크게 웃으며 답한다.


“그야, 객관적으로 볼 때 그 여자가 훨 낫더라고.”


“나는 객관적인 말을 듣고 싶었던 게 아니야. 셰일즈. 지극히 주관적인 네 의견이 궁금했던 거지.”


네가 지지대를 푼다. 이번엔 실수가 아니다. 이제 그만 내려오란 뜻이다. 네 뜻대로 내려온다. 그리고 두 발로 선다.


“주관적인 의견이라.”


너는 멀뚱히 서서 고민한다. 네 앞으로 다가가도 너는 하늘만 쳐다볼 뿐 아무런 답도 하지 않는다.


“고민할 거리 정도나 되는 거야?”


거짓으로 신경질적이게 묻자, 너는 고개는 든 채로 눈동자만 내린다. 문득 붕어가 떠오른다.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지만 참는다. 그리고 네가 답한다.


“내 주관적인 의견이 필요해?”


역질문. 너의 주관적인 의견이 필요한 대답이냐고? 글쎄.


“내 생각 정도는 너도 꿰차고 있을 거 아니야. 내 입으로 말하기도 뭐 한데. 좀 봐주면 안될까.”


네 말에 꿀밤 한대로 답한다. 네가 다시 말한다.


“너나 나나. 제대로 미친 것 같아. 전쟁터 한복판에서,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을 두고 누가 더 예쁘냐고 묻는 너나, 그걸 고민하고 있는 나나.”


네 말에 덧붙여서 말한다.


“맞아. 너도, 나도 정말 미친 것 같아.”


어쩌면 너도 나와 같은 환상을 겪지 않았을까. 셰일즈.






[??월 ??일, ??시 ??분, 아르타니아 서쪽 평원, 앱솔 광장(구스타프)]


“비가 내려요. 당신도 보이나요? 정말이지... 행복한 밤이에요.”


한낮. 핏비가 내린다. 이 미친 악마는 제정신이 아니다. 씨발. 도대체 뭐하는 괴물이지? 현란한 검술은 그저 춤사위다. 실전에서 강한 검술이 좋다는 건, 카낙스가 몸으로 입증했다. 그 잘난 워든들도 이렇게 싸우진 않는다. 그런데 저 여자는 지금 춤을 춘다. 검술이 춤사위처럼 보인다는 게 아니다. 칼날의 선혈을 혓바닥으로 살며시 인도한다. 그리고 이즈의 목에서 뿜여져나오는 피를 6살 꼬마가 빗놀이를 하듯 맞고 있다. 여자는 제자리에서 풀린 눈으로 한바퀴 돌며, 온 몸을 피로 적신다. 바닥엔 브래들리와 프라이드가 이미 지옥에. 아니. 지옥은 이곳인가?


“어머. 당신... 살아 있네요?”


이 미친 여자는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왜 이런 여자가 워든이지? 이런 쓰레기. 저질 도살자가 이 나라를 지탱했다고? 나도 애국심은 없다. 하지만 없던 애국심마저 만들어내는 엿 같은 짓거리들. 이 여자가 모두 해내고 있다. 시체 능욕하다 뒤져버린 그 흑교회 꼬맹이보다 더 악랄하게.


“여기 와서 같이 봐요. 즐겁지 않나요? 이 까마귀, 머리랑 몸이 따로 놀잖아요?”


내가 몇 명을 죽여 왔던가. 두 손가락으로 셀 수 없다. 그건 아직까지 살아 계신 아나톨리아 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 앞에 서 있는 이 괴물은


너무 많이 죽였다.


저렇게 순수하게 웃으면서.


그것이 우리 같이 인생 망한 놈들에게 불현듯 기회를 심어준다.


“응?”


뭘 위해서. 아르타니아와 제리아스 국민을 그렇게 많이 죽인 거지? 애초에 어떻게 죽인거지? 몇 천, 몇 만. 몇 십만의 사람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인가?


“이리 와. 까마귀야. 난 가지 않을 거야. 어서. 이리로 와.”


그 순간은 파파샤 님도. 나도. 같은 마음이다. 우리는 살인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 죄가 된다. 그리고 그걸 조금이라도 속죄하고 이 나라에 봉사할 일은 저 여자를 죽이는 방법 뿐이다.


검을 곧게 잡는다. 검신을 여자에게로. 45도 각도로 세운다.


“나, 심심해.”


건드리면 안돼. 이성이 말한다. 하지만 이 위협을 내버려두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나갈지.


저 여자는 꽃이다. 아름다운 독초. 세상을 멸망시키고도 남을 힘을 지닌 꽃.


꽃을 뽑아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죽기 전에.




작가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openobser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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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마귀' 이야기 -3- +2 20.06.02 54 3 14쪽
24 '마귀' 이야기 -2- 20.06.01 52 2 13쪽
23 '마귀' 이야기 -1- +2 20.05.30 61 3 14쪽
22 '고양이' 이야기 -에필로그- 20.05.29 53 2 10쪽
21 '고양이' 이야기 -10- 20.05.28 42 2 9쪽
20 '고양이' 이야기 -9- 20.05.27 36 2 13쪽
19 '고양이' 이야기 -8- 20.05.26 39 2 13쪽
18 '고양이' 이야기 -7- 20.05.25 38 2 12쪽
17 '고양이' 이야기 -6- 20.05.23 39 2 13쪽
16 '고양이' 이야기 -5- 20.05.22 49 2 16쪽
15 쉬어가는 이야기 -1- +1 20.05.21 67 3 10쪽
14 '고양이' 이야기 -4- 20.05.20 45 2 13쪽
13 '고양이' 이야기 -3- 20.05.19 41 1 10쪽
12 '고양이' 이야기 -2- 20.05.18 42 1 14쪽
11 '고양이' 이야기 -1- 20.05.16 57 2 15쪽
10 '찢어진 종이' 이야기 -2- 20.05.15 51 2 12쪽
9 '찢어진 종이' 이야기 -1- 20.05.14 49 2 13쪽
» '너와 나' 이야기 -에필로그- 20.05.14 48 2 7쪽
7 '너와 나' 이야기 -6- 20.05.13 51 2 19쪽
6 '너와 나' 이야기 -5- 20.05.13 55 3 13쪽
5 '너와 나' 이야기 -4- 20.05.12 57 2 13쪽
4 '너와 나' 이야기 -3- 20.05.12 66 3 10쪽
3 '너와 나' 이야기 -2- 20.05.12 84 7 11쪽
2 '너와 나' 이야기 -1- 20.05.11 157 7 12쪽
1 시작하기 전 이야기 +2 20.05.11 541 1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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