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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 - 괴물이 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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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야
작품등록일 :
2020.05.11 22:38
최근연재일 :
2021.07.05 21:55
연재수 :
20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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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45,763

작성
20.05.21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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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쉬어가는 이야기 -1-

DUMMY

[931년, 12월 24일, 00시 20분, 헤인느 세인트 22번 길, 아론 빌딩 3층, 셰일즈의 집]


“첼시라. 흔한 이름은 아닌 것 같네.”


야밤, 시온은 마치 자기 집처럼 편하게 앉아서 말한다. 식탁 앞, 의자에 앉아 멍하니 천장만 보고 있다.


“흔한 이름은 아니지.”


이 집, 한 4년 전 쯤에 구한 집이다. 사무소에서 숙식을 해결했었는데 영, 사람 냄새가 꼬인다. 의뢰인들한테 굳이 그런 냄새를 맡게 할 이유도 없다. 변호사 짓 하면서 모은 돈도 있고. 그래서 구한 집이다. 방도 2개에 좁아터진 집이지만 뭐. 살만하다. 적어도 어디 짚단 구석에 숨어서 벼룩들을 털어내며 자진 않아도 되니까.


“근데, 마치 네가 겪은 일처럼 얘기하네? 그거 전부 아리아가 겪은 일 아니야?”


주전자에 수돗물을 받는다. 그리고 벽난로 앞에 앉는다. 며칠 전에 사온 땔감을 넣고, 정제 석탄에 성냥불을 붙인다. 그리고 난로 안에 고이 놓는다. 곧 불이 붙겠지. 원래라면 잘 안 쓰는 물건인데, 시온 녀석이 방 안에서도 목도리를 두르고 있는 게 영 불편하다. 물도 끓여야하고.


“아리아랑 지낸 게 몇 년이다. 들을 얘기 못 들을 얘기 다 들었지.


대충 답한다. 아리아도 헛소리를 자주 하는 편이었다. 녀석이 말한 것 중에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거짓인지도 모른다. 첼시라는 사람 자체가 아예 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래도 녀석이 진지하게 했던 얘기니까 그러려니 하고 얘기해주는 거다.


“참 변한 게 없는 것 같으면서도 많이 변했어. 사람이 유해졌다고 해야 하나?”


고개를 돌려 너를 본다. 유해졌다고? 내가? 그럴 리가. 고작 벽난로 때우는 거로 그러는 거라면 유감이네. 난 원래 친절했거든. 너는 지금 목도리를 풀어 방구석에 던진다. 입고 있던 코트도 벗어 의자에 대충 걸친다. 조끼에 목티. 아주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온 거구만.


“아무튼, 그 얘기는 전혀 몰랐어. 아마 타카모리 씨도 모르실 거야. 인신매매장... 너희 둘이 그런 곳에서 살았을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


담배 땡기네. 아니다. 슬슬 줄여야지. 벽난로에서 슬슬 불붙는 소리가 난다. 거실 창문을 연다. 달그락거리면서 힘겹게 열리는 창문. 바깥은 여전히 빛 공해로 눈이 아프다. 시설 관리하는 새끼들이 없나. 이 동네 사람들은 빛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다.


“아리아가 이따금 이상한 행동을 보인 것도 그때 일 때문일 거야.”


넌지시 말한다. 창문 밖으로. 하지만 시온도 들었을 거다. 그렇게 작게 얘기하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녀석은 구태여 묻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말로 환기한다.


“그보다, 다시 생각해봐도 방 진짜 좁다. 돈 좀 많이 벌어놓지 않았어?”


네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말한다. 돈? 벌어놨었다. 아리아 녀석은 내가 방탕하게 다 썼을 거라고 생각하던데 어림도 없는 소리. 나가야 할 곳을 제외하면 마땅히 돈 쓸 곳도 없었다. 가끔 옷을 사거나 수선하거나 타카모리, 그 아줌마한테 무기 수리를 보낼 때 빼고는 말이다. 지금도 은행에 있다. 다만...


“변호사 일로 번 돈만 쓰고 있어. 그때 번 돈은 손대기가 싫어서.”


나는 아직도 네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그때 같이 벌어놨던 돈은 손도 안 댄 채로. 네가 돌아오면, 같이 제리아스로 넘어가서 바닷가 마을에 집을 짓고 살려고. 여전히 그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은근 로맨티스트야. 아닌 척하면서.”


네가 비아냥거린다. 창문을 닫고, 널 돌아본다. 턱을 받치고, 네가 날 보고 있다. 그보다 땅바닥에 다리가 안 닿는 거... 보면 볼수록 웃기네. 웃음을 참지 못하고 조금 터져나온다. 그러자 네가 새빨개진 얼굴로 화낸다.


“뭐! 우리나라 의자는 다 내 키에 맞거든?”


아 그러셔. 편협적인 시각 납셨네. 그냥 내가 높은 의자를 샀을 뿐인데. 재밌어. 시온. 헛기침하며 입을 가리는 너. 아까까지 추워하던 네 모습은 어디가고 손으로 부채질을 한다. 왜. 부끄러웠나? 뭐 어때서. 키 작을 수도 있지.


시온은 뾰로통한 표정으로 의자에서 일어난다. 난 수돗물 받았던 주전자를 벽난로 안에 놓는다. 물론 생불에 놓진 않고 장작 위에 설치된 철망에 올려놓는다. 물 좀 끓이고 차나 한 잔 끓여줘야겠다. 커피를 먹기엔 너무 밤이고. 물론 찻잎에도 어느 정도 카페인이 함유되었다는 게 푸스티카 과학자들의 의견이지만...


“너, 또 쓸데없는 생각했지?”


하,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널 쳐다본다. 그러자 너는 눈을 반쯤 감고 음흉하게 웃으면서 말한다.


“보나마나 뭐. 넌 커피 좋아하잖아. 그래서 커피 타주려고 했는데 시간이 늦었고, 저기 찬장에 찻잎이나 달여서 줄까 했겠지. 그런데 생각해보니 몇 년 전 학술저널에서 나왔듯, 찻잎에도 잠을 쫓아내는 성분이 들어있고. 그런 생각했겠지. 그렇지?”


“와, 존나 디테일하다. 너.”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습관이란 게 이런 건가? 나이 먹고 욕 좀 줄이려고 했다. 괜한 노파심 때문이었다. 혹여나 변호사일 하다가 욕이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그런데 습관이란 건 버릴 수가 없다. 아무튼, 어떻게 이렇게 디테일하게 알아챈 거야. 이 녀석 눈치 없기로 유명한 놈이었던 것 같은데.


“나도 벌써 나이가 스물일곱이야. 눈치 볼 때도 됐지.”


네가 난로 앞, 탁자에 걸터앉아 얘기한다. 그럴 거면 탁자 옆에 소파에 앉아서 말하던가. 굳이. 그보다 엄청 늙은이처럼 얘기하네. 너나 나나 아직 20대 후반인데.


“넌 결혼 안하냐?”


문득 너한테 궁금해서 묻는다. 보통은 스물 중반엔 결혼하잖아. 못해도 지금 나이엔 할 거고. 그게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아닌가? 아, 생각해보니 출신지가 달라서 문화가 다를 수도 있겠다. 너는 아세오 사람이고, 나는 어째됐든 이 나라 출신이니까. 그런데 온갖 의문이 들었을 즈음, 네가 선수쳐서 말한다.


“아세오에선 보통 스물이면 결혼 준비하지. 근데 나는 모르겠어. 결혼 생각이 없네.”


너는 먼 산이라도 바라보듯 타오르는 불길을 보다가 일어난다. 그리고 가죽소파에 가서 대충 눕는다. 가죽 부스러기가 충격에 조금씩 떨어진다. 버려야하나. 그보다.


“왜?”


결혼 생각이 없다라. 인기 많을 것 같은데. 시온은 아리아와 닮았다. 머리색이 다른 거랑 (키 차이가 제일 심하지만)키 차이만 빼면 얼굴형도 비슷하다. 눈이 엄청나게 커다란 것도 그렇고. 아리아가 아세오 사람이냐는 질문을 받은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아리아가 유명인이 되었을 때 남자들한테 엄청 인기가 많았다는 점. 너라면 누구라도 쉽게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 뭐 운명의 사랑을 기다린다거나 그런 건가?


“글쎄, 모르겠어. 그냥 생각이 없는데 이유가 필요해?”


네가 소파를 짚고 잠깐 일어난다. 그리고 말한다. 신기한 게, 묘하게 설득된다. 하긴, 하기 싫다는데 이유가 필요한가.


“셰일즈, 그러는 너야말로 결혼... 생각은 있어?”


너 되게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눈이 왜 그렇게 반짝이냐? 아무튼 생각은 있지. 생각도 있고 사람도 정해져있고. 그리고 그 사람은 세상에 없는 것 같고.


“있겠지 뭐. 누군지도 뻔하고. 멍청한 질문이었네.”


네가 말하고는 자기 이마를 탁 치고 다시 눕는다. 엄청 비꼬는 말투다. 뭐라고 해야 할까. 타카모리 아줌마가 떠오른다고 해야 하나.


“재미없어.”


네가 눈을 감으며 다시 말한다. 너 아니어도 모든 사람들한테 한 번 씩은 들어봤다. 그래서 그런지 별 타격도 없다.


슬슬 물 끓는 소리가 들린다. 벽난로 우측 위에 걸린 두꺼운 장갑을 낀다. 그리고 난로 안에 손을 들이밀어, 주전자를 꺼낸다. 보글보글거리는 소리. 네 앞에 있는 탁자에 아무 책이나 내려놓는다. 하필 법 공부할 때 보던 ‘귄트 데 비숑’의 ‘변호사법개론’이다. 벌써 언제 적 얘기야. 책표지엔 주전자에 그을린 자국이 까맣게 나 있다. 한두 번 놓은 게 아니란 뜻이겠지.


주방에서 머그잔 두 개를 가져온다. 네 앞에 놓으니까 네가 알아서 먹으려고... 한다. 그러다 덜 식은 주전자 손잡이를 잘못 잡고 비명을 지른다. 그러게 조심 좀 하지. 조심성 없는 거 하곤 누구 씨랑 판박이야.


“뭘 봐. 찬물이나 가져다 줘. 손 데인 거 안 보여?”


네. 네. 주방에 가서 냄비에 물을 떠온다. 잠깐 손가락을 담가본다. 차갑네. 충분하겠다.


“짜증나. 진짜.”


그러시겠지. 본인의 안일함에 한 없이 짜증내렴.


“아무튼 못한 얘기나 마저 해봐. 할 얘기 많지 않아?”


그야 그렇다. 풀어야 할 이야기는 차고 넘친다. 인신매매장도 그렇고 세라 이야기, 누나 이야기 등등.


“동부 플랙시티에서 벌어진 인신매매장 사건... 수면 위로 떠오르진 못했어. 이유는 나중에 자세히 설명할 거다만 어쨌든 국격 실추에 해당하는 사건이었으니까. 노예는 암암리에 존재하는 걸 인정하지만, 인신매매는 거의 세계적으로 금지하는 거잖아. 게다가 플랙시티의 인신매매장 규모가 자그마한 것도 아니었고.”


인신매매장의 규모는 우리 생각보다 컸다. 나중에 게르단 아저씨께 들은 거지만, 약 100명의 아이들이 그곳에서 살아야했다고 하니까. 그리고 나도, 아리아도 그 중 하나였다. 아마 그 첼시라는 사람도. 고작해야 한 6명 갇혀있을 줄 알았는데. 하긴, 그 폭발사고로 플랙시티 자체가 망해버린 걸 생각하면... 그럴만하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니까...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내가 말하자, 네가 귀를 기울인다. 고개를 조금 떨구고, 은빛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작가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openobser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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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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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9 정원교
    작성일
    20.05.21 23:18
    No. 1

    추천, 작가님을 제 방으로 초대합니다. 자주 찾아와 추천할 수 있도록 놀로와 주세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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