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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 - 괴물이 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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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야
작품등록일 :
2020.05.11 22:38
최근연재일 :
2021.07.05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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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5,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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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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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고양이' 이야기 -3-

DUMMY

[910년, 3월 24일, 00시 48분, 아르타니아 서부 안노, 6번 뒷골목(첼시)]


낮에 도둑질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뜬눈으로 물건을 빼앗기는 장사꾼들은 그들을 더러 ‘도둑놈’이라고 한다. 여기서부터 도둑놈에게 벌어질 일은 둘 중 하나. 잡히거나, 성공적으로 도망가거나. 하지만 나는 조금 타고났다. 남들과는 다르다. 다름이자, 축복이자, 저주다. 밝은 곳을 볼 수 없는 눈. 하지만 어두운 곳은 또렷하게 볼 수 있는 눈.


“쉿. 쉿!”


다 보여. 지붕 위에서 내려다보면 안 보이는 게 없다. 그들 눈에는 무엇이 보일까. 달빛에 반사되어 미세하게 보이는 세상이 전부겠지. 지금 위치는 3층 건물 위. 조용히 앉아서 두 사람을 바라본다. 아이들이다. 야밤에 검지로 입을 가리면서 살금살금 움직이는 그들. 낮에도 도둑놈이 있다면 밤에도 도둑놈은 있다. 저 아이들은 밤의 도둑놈들이다.


슬슬 내려가야겠어. 늦지 않으려면.


아이들이 털어가려는 건 뻔하다. 금품이나 그런 게 아니다. 바로 식량. 그리고 그런 식량이 가득한 곳은 이 주변에 한 곳 뿐이지. 바로 옆 블록부터 이어지는 안노 중앙시장.






[같은 날, 01시 03분, 아르타니아 서부 안노, 안노 중앙시장(첼시)]


‘안노’의 밤은 내겐 너무 아름답다. 은은하게 빛이 도는 밤이야. 높이 솟아오른 아르타니아식 건축물들. 지붕은 철재고, 벽면은 석재 벽돌. 그런 건물들이 보통 3층까지 솟아오른 곳. 서부는 중부보다 떨어지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발전하고 있다. 회색빛이 도는, 채색이라곤 없는 세상. 가끔 있는 빨간 벽돌 건물만이 눈에 띌 뿐이다.


반면, 시장은 주 재질이 나무다. 골조들은 전부 다 나무. 거기에 오형색색 천막을 씌우면 시장의 모습. 가판대에는 대충 천막이 씌워진 채로 과일이나 고기들이 가려져 있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 천막을 거두고 있다. 지켜보는 건 됐다. 이젠 내 차례다.


등에 메고 있던 석궁을 든다. 볼트를 꽂아 올리고... 하늘을 조준한다. 그리고... 트리거를 당겨 쏜다. 그리고 석궁 볼트는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소리 없이 올라가는 볼트, 그리고 곧이어 터지는 폭죽. 밝게 물드는 주변과 일제히 켜지는 가스등. 내 역할은 끝이다. 눈을 감고, 주머니에서 붕대를 꺼내 눈을 감는다. 세상이 밝아진 이상 내가 설 자리는 없다. 대신 ‘도둑놈’을 처단하는 건 시장 사람들의 몫이 되리라.


“이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아마도 몽둥이를 들고 나온 사람들. 그들이 두 아이에게 내리는 처벌은 어떤 걸까. 볼기를 때릴까. 아니면 벌거벗고 시장 주변을 뛰어다니도록 시킬까. 어떤 처벌이 내려지든 더 이상 내겐 중요하지 않다.


“첼시! 오늘도 고맙구나. 덕분에 우리 시장 사람들이 얼마나 마음이 놓이는지 몰라.”


40대의 걸걸한 목소리. 갈라진 진흙 같은 이 소리는... 맥 아저씨다.


“맥 아저씨!”


맥 아저씨가 내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 느껴진다. 머리카락 한 올마다 온기가 느껴진다. 내 이름은 첼시, 거창한 이명을 붙이자면 ‘안노 중앙시장의 수호자’. 사람들의 해주는 헹가래에 삶의 의미를 느끼는 평범한 아이다.






[같은 날, 18시 01분, 아르타니아 서부 안노, 안노 중앙시장, 맥의 생선 가게(첼시)]


“그 아이들은 어떻게 됐어요?”


맥 아저씨께 묻는다. 아저씨는 몇 차례 헛기침을 하더니 답한다.


“우리가 뭐. 애들을 때리기라도 하겠니. 과일 두 개 얹어서 혼쭐을 내고 집에 보내줬지.”


“돌아갈 집이 있나봐요?”


어딘가 서글프다.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1년 전부터 시장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 나도 ‘도둑놈’들과 다를 바가 없었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어려서부터 도둑질을 해왔다. 돌아갈 곳 따윈 없었다. 부모도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다만, 어려서부터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시장 음식을 훔쳐 먹었던 게 인생이자 일상이었다. 그리고 그런 나를 구해준 게 바로 시장 사람들이다. 내게 옷을 주고, 밥을 주고, 간소하지만 잘 곳도 만들어줬다. 겨울을 나기는 힘들어도 지금 같은 봄날엔 나름대로 괜찮은 장소. 맥 아저씨의 생선 가게 옆 창고다. 그곳에 ‘미샤’ 아주머니의 실크 이불을 덮고, 대충 잠 든다. 물론 사람들이 시끌벅적한 낮에 말이다.


아저씨는 내 말에 한동안 말이 없으시다가 곧,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신다. 이 손길이 좋다. ‘첼시’라는 이름도 아저씨께서 내게 주신 이름이다. 아저씨께서 애지중지 키우셨던 고양이랑 이름이 같단다. 원조 ‘첼시’는 어느 날 생선을 물고 도망갔는데, 일주일 뒤 내가 나타났다나 뭐라나. 아무튼, 고양이 취급을 받는 건 아니지만 나름대로 시장의 마스코트 취급을 받으면서 살고 있다. 가게 주인들뿐만 아니라 단골 분들도 알아볼 지경이니까.


“그래도 말이다. 첼시. 네게도 이젠 돌아올 곳이 있지 않냐. 너무 속상해하진 말거라.”


매일 밥만 축내기는 그랬다. 시장 사람들과의 활동 시간도 나와는 맞지 않았다. 그래서 몇 달 전부터 밤 시간 한정으로 시장을 지키려고 마음먹었다. ‘한스’ 아저씨가 집에 있던 석궁을 내게 주셨고, ‘하트’ 언니가 폭죽과 볼트를 엮어 신호탄을 만들어주셨다. 새벽에 그랬듯, 밤에 도둑이 오면 시장 한 가운데서 하늘을 향해 쏘아 올린다. 그러면 그걸 기점으로 시장의 모든 가스등이 켜진다. 그리고 범인을 잡기 위해 시장 사람들이 모두 나오는 것이다. 그로부터 열댓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 성공적으로 잡아들였다. 어른들은 보안관에게. 아이들은 집으로. 그래서 사람들이 내게 시장의 영웅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냥 해본 소리예요. 속상하지도 않아요. 전 지금 삶이 행복한걸요?”


그러자 내 양쪽 볼에 거친 손이 닿는다. 물론 맥 아저씨의 손이다. 아저씨는 내 볼을 좌우로 늘린다. 아저씨만의 장난이다. 아저씨는 호쾌하게 웃으면서 말한다.


“이런 복덩이가 어디서 굴러 들어온 거야.”


시장 사람들에게 웃음이 되어준다. 그것이 삶의 목적이다. 낮에는 눈에 붕대를 감고,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인생이지만 괜찮다.






[910년, 3월 26일, 19시 04분, 아르타니아 서부 안노, 안노 중앙시장, 맥의 생선 가게(첼시)]


“첼시, 정리 좀 도와주렴.”


맥 아저씨가 말한다. 평소라면 도와달라고 할리가 없는데. 이상한 느낌을 뒤로하고 창고 밖으로 나온다. 오후 7시가 지나고, 슬슬 어두워지는 게 느껴진다. 붕대를 살짝 풀어본다. 눈을 뜨자, 강렬하게 다가오는 빛들. 하지만 조금 빛에 익숙해지자, 세상이 괜찮게 보인다. 그러니까, 정말이지 끔찍하게 밝지만 그래도 볼 수 있을 정도.


“네! 아저씨!”


크게 소리 내어 말한다. 아저씨 들으라고. 그리고 천막을 천천히 치기 시작한다. 잠에서 깬지 얼마 안돼서 힘들다. 정신이 반쯤 나간 것 같아. 몽롱하달까. 아닌가? 배가 아픈 건가. 편두통? 복통? 뭐가 뭔지 모르겠어.


“어디 아프니? 첼시.”


아저씨가... 걱정스런 눈으로 쳐다본다.


“아녜요. 갑자기 눈에 빛이 들어와서 그런지 조금 어지러울 뿐이에요.”


수염을 어루만지며, 아저씨는 조금 고민한다. 나를 쉬게 둬야할 거라는 결론을 내릴 거다. 내가 아는 아저씨라면 말이다.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아저씨는 내 손을 잡더니 창고로 들어갔다.


“힘들면 쉬거라. 오늘은 내가 경계를 서야겠구나.”


괜찮을까. 하기야 아저씨는 시장 내에서 자경단장도 하셨으니까 상관없을 거다.






[같은 날, 23시 44분, 아르타니아 서부 안노, 안노 5번가(첼시)]


상관없을 거다. 그 말을 후회중이다. 너무나도 후회중이야. 맥 아저씨를 수레에 싣고 시장 바깥까지 나왔다. 아저씨가 어딘가 몸이 안 좋다. 밖에서 털썩하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밖에 나가서 살펴봤다. 아저씨의 눈꺼풀을 들어 올려 살펴봤지만 초점이 없었다.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살려주세요. 아저씨를 살려주세요! 하지만 시장 사람들은 이미 모두 집으로 돌아갔나 보다. 맞아, 신호탄이 있어. 그 생각에 창고에서 석궁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하늘 높이 쏘아 올렸다. 폭죽이 터지고, 내 눈을 몇 초간 멀게 했다. 다시 시야가 돌아오면 늘 그랬듯, 사람들이 서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다시 시야가 돌아와도, 누가 나오는 일은 없었다.


어째서일까. 왜 아무도 나오지 않은 거지? 시간대가 너무 늦어서? 그럴 리가. 이틀 전에는 새벽에도 다들 나오셨잖아. 어째서야. 수레에 실린 맥 아저씨는 숨을 가쁘게 몰아쉰다. 허리가 뒤틀리시고, 숨을 헐떡이신다. 곧 죽을 사람처럼.


그렇게 한참을 갔다. 11번가의 ‘한스 의원’이 목적지였다. 그런데 수레바퀴가 삐걱거리더니 우지끈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아저씨도, 내 허리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아저씨의 머리가 바닥에 처박히고, 나는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왔어. 아저씨 머리에서 피가 흘러. 아, 아저씨. 아니죠? 이거 다 꿈이죠? 라고 스스로 생각해.


그러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였어. 챙이 넓은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검은 코트로 온몸을 가린 남자들이. 살려달라고, 살려달라고 그렇게 빌었어. 무릎을 꿇고 양손을 빌면서. 그 사람들은 서로 마주보더니 내게 손을 내밀었어. 그땐 왜 무시했을까. 그 사람들이 서로 희죽거리며 웃었는데, 나를 보며 냉소한 미소를 보여줬는데. 나는 그게 도움의 손길이라고 생각했어. 그렇게 아저씨와 나는 마차에 실렸어. 철근으로 둘러싸인 마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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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너와 나' 이야기 -5- 20.05.13 55 3 13쪽
5 '너와 나' 이야기 -4- 20.05.12 57 2 13쪽
4 '너와 나' 이야기 -3- 20.05.12 66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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