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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 - 괴물이 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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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야
작품등록일 :
2020.05.11 22:38
최근연재일 :
2021.07.05 21:55
연재수 :
20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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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글자수 :
1,045,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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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5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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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고양이' 이야기 -7-

DUMMY

[911년, 1월 29일, 20시 18분, 아르타니아 동부, 플랙시티, 플랙 시장 인신매매촌(루이)]


그야말로 지옥이다. 주변 폐 빌딩에서 잠복하던 중, 아이들의 머리채를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가는 자들을 봤다. 끔찍한 상황에도 모두 입을 열지 않고 기다렸다. 적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금 더 확실한 현장이 필요했다. 또, 그들이 이동하는 경로를 파악하고, 최대한 많은 인원들이 겹쳐있을 때 현장을 덮쳐야 했다. 빠져나가는 놈들이 없도록. 하지만 플랙시티 보안관 ‘브라움’이 참지 못하고 계단으로 뛰어 내려갔다. 시말서보다 먼저 떠오른 것은 범죄자들의 허리춤에 차고 있던 날이 넓적한 칼. 보안관 한명으론 어림도 없었고, 손짓했다. 모두 지금 내려가자고.


“니들이 그러고도 사람 새끼들이야!”


누구의 목소리인지도 모른다. 아비규환. 곤봉에 맞아서 쓰러진 사람. 칼에 찔린 ‘유리’ 관할 보안관. 우리가 습격한 곳은 어느 술집이었고, 술잔과 와인병들이 벌레처럼 하늘을 수놓았다. 사람과 사람이 뒤엉키고, 아마도 비쌀 것 같은 코트들이 넝마가 되어 나뒹굴 무렵, 누군가가 뒷문을 통해 들어왔다. 광대처럼 생긴 가면을 썼고, 갈색 코트 카라 부분이 얼굴까지 감쌀 정도로 꽉 껴입은 사내였다. 그가 총을 쐈다. 세계적으로 ‘화기 개발 금지법’이 시행된 게 오래. 가장 큰 중범죄를 그 사내가 저지르고 있었다. 누군가 그에게 말했다. ‘보스’라고. 그리고 그 보스라는 사람은 자신을 부른 이에게 총을 한 번 더 쐈다. 모두가 정적한 순간, 사내가 말했다.


“하여간 부랑아들은 이래서 안 돼. 말을 아낄 줄 모른다니깐.”


어느새 오른쪽 어깨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브라움’ 보안관. 그가 사내에게 뛰어들었다. 그들이 마룻바닥에서 뒹구는 모습을 모두가 지켜봤다. 결과는 사내의 승리였다. 총이 있는데 달려든 것부터 실수였다.


“브라움!”


제이콥 소장이 소리쳤다. 평소답지 않게 격양된 목소리였다. 당연했다. 브라움 보안관의 턱이 총알에 완전히 박살나버렸으니까.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턱을 뚫고나간 총알이 어디를 향했는가. 종착점은 증기 파이프였다. 그리고 아르타니아의 각 도시에는 증기 파이프가 매설되어 있다. 보일러를 통해 온 국민을 겨울에도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결심. 증기 파이프는 우리나라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모두 도망쳐!”


소리친다. 증기 파이프가 터지면 플랙시티 파이프라인 전체에 연쇄폭발이 일어날 확률이 크다. 최소 플랙시티 지하는 완전히 끝이다. 땅이 뒤엎어질 테니까.


모두에게 후퇴 명령을 내린다. 그때부턴 적, 아군 할 것 없이 모두가 일제히 도망간다. 제이콥 소장은 도망가던 와중에도 한참을 뒤돌아봤다. 브라움 보안관의 시체가 아직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


세상이 느리게 흘러간다는 기분이 든다. 유리 상자 안에서 가면 쓴 사람들을 볼 때는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멍하니 앞만 보고, 입가의 미소만 6시간 유지하면 됐다. 같은 일, 같은 시선. 그리고 앞서나가는 시간. 그리고 지금은? 가슴이 두근거린다.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죽는다는 생각이 머리 안을 뒤덮는다. 그런 지 오래다. 등 뒤에서 쫓아오는 불길. 첼시는 내 팔을 잡고 천천히 오고 있다. 두 눈은 감은 채로.


“앞에 계단이 있을 거야.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거. 없어?”


아니, 있다. 앞은 어둠, 뒤는 지옥 불. 점점 천장을 연기가 뒤덮는다. 계속해서 쿵쾅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발소리가 아니다.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다. 그리고 그 연기가 오른쪽 위로 올라간다. 계단이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적어도 오른쪽에 빈 공간이 있다는 뜻일 거다.


맨발이라 그런지 점점 피로하다. 가끔 돌부리를 밟을 때면 걸음을 멈추고 싶다. 잠시 발바닥을 들어 올려 보면 시뻘겋게 자국이 남아 있다. 아니, 이런 거에 신경 쓸 때가 아니야. 올라가야 해. 첼시와 함께 바깥으로.


계단을 밟는다. 한 계단, 두 계단. 올라갈수록 검은 연기가 자욱해진다. 본능이 말한다. 저걸 마시면 죽는다. 점점 허리를 숙인다. 아니, 잠깐. 너도 숙여야해. 잠깐 멈춰 서서 붙잡힌 손을 살며시 밀어낸다. 그리고 네 허리를 조금 구부린다.


“허리 굽히라고? 천장이 많이 낮아?”


긍정의 동작을 보여줄 시간은 없다. 무작정 네 손을 다시 잡고, 이끌기 시작한다. 하지만... 점점 메스꺼워. 토할 것 같아. 보이는 연기가 전부가 아닐까? 마치 연기에서 투명한 손이 나와 내 목을 옥죄는 것 같아. 첼시. 넌... 괜찮아?


“젠장. 연기였구나. 이래서...”


너도 상황을 안 것 같다. 비좁은 계단에 잠시 멈춰서 앉는다. 돌바닥에 맞닿은 엉덩이가... 뜨거울 줄 알았는데 차갑다.


“앞으로 더 갈 수 있을 것 같아?”


고민된다. 더 갈 수 있을까? 앞에 탈출구는 있을까? 그런 게 있다면 벌써 보였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늘어져서 내 머리카락을 쭉 타고 내려온다. 바닥까지 적셔간다.


“안 될 것 같구나. 그렇지?”


붙잡은 손을 뗀다. 자유로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모르겠어. 나 진짜 모르겠다고. 첼시. 너는... 멍하니 앉는다. 허공을 응시한 채 너털웃음을 짓는다.


“여기까지... 일까.”


힘없이 네가 내뱉은 한 마디. 그런데... 그 말과 함께 다시 들리는 커다란 폭발음. 가까운 곳이야. 폭음에 귀를 막는다. 하지만 소리에 형체라도 있는 걸까. 투명한 주먹이 가슴을 때린 것 같다. 그런 타격감이 느껴진다. 너도 느낀 건지 일단 귀를 막는다. 좁은 곳이라 그럴까. 소리가 더욱 메아리친다.


“얘. 울어?”


계단 아래쪽이 점점 밝아진다. 불길이 다가온단 뜻이겠지. 그보다, 네가 물었다. 우냐고? 이런 상황에서 울어야 해? 그런데, 네 얼굴을 보니 네 눈가가 투명하게 반짝인다. 마치 별을 담은 것 같다. 그리고 그 투명함이 한 줄이 되어 네 턱선을 타고 떨어진다. 곧 물방울이 되어 바닥에 검은 자국을 수놓는다.


“난 울어.”


생각이, 느낌이, 마음이. 어쨌든 셋 중 하나가 어정쩡하다. 그러니까... 어떻게 느껴야 할까. 원래 이렇게 죽는 게 당연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든다. 물론 이성은 말한다. ‘그럴 리가 없잖아.’ 근데 그런 개념을 갖기엔 아직까지 세상을 너무 모르는 것 같다.


“다음 생이 있으면 적어도 지금보단 낫겠지?”


네가 한 말 중 최고로 암울한 목소리. 다음 생? 죽으면 다시 태어나는 걸까. 그렇다면 나도 다시 태어나보고 싶다. 네 말마따나 평범하게. 부모님이란 존재 아래에서 밥을 먹고, 일을 하고, 공부하면서 그렇게. 그게 나을 것 같아서가 아니다. 겪어보지 못해서 경험해보고 싶다.


“아니, 다음 생이 없더라도 난 ‘에르디우스톤’님의 인도에 따라 가이아 산 위로 갈 거야. 그래서 말인데. 가기 전에 네 이름 좀 듣고 가고 싶어.”


에르디우스톤은 누구야? 가이아 산은 어디고. 그리고 너는...


“있잖아. 나도 알고 있었어. 시장 사람들한테 나는 이용당할 처지라는 거. 그리고 그들이 맥 아저씨를 싫어했어. 맥 아저씨는 시장 활성화를 위해 사람들에게 큰돈을 빌려줬대. 그걸 갚을 시기가... 아저씨가 그렇게 되기 다음날이었거든.”


너는 무릎을 감싸 안고 얘기한다. 첼시. 그 얘기. 시장 사람들이 어떤지 모른다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그게 너무 큰돈이라. 못 갚잖아. 두려워서 맥 아저씨 음식에 독약이라도 탔을 거야. 그리고 그 돈의 존재를 아는 내가 보안소에서 입이라도 뻥끗하면... 아저씨를 죽인 의미가 없잖아. 그래서 나도 팔아넘긴 거고.”


그런데... 그 얘기를 지금 왜 하는 거야? 첼시.


“있잖아. 맥 아저씨가 내 이름을 지어주고, 시장 사람들도 그 이름으로 불렀어. 근데 난 그 이름이 처음엔 의심이 가더라고. 이렇게 부여받은 게 내 이름이 맞는지. 그런 의문.”


그리고 첼시 너는... 내 위치를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지. 내 무릎에 머리를 기대어 눕는다.


“너도 그럴 거야. 그래서 얘기하지 않겠지. 그런데 전에도 말했잖아. 지금도 그런 생각이지만 네 이름이 아니어도 상관없어. 누가 지어주지 않아도 상관없어. 이름을 지어줘서 그 사람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야. 너라는 사람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거고, 이름을 선택하는 거지.”


네가 이렇게 어려운 말을 한 적이 몇 번이나 있을까. 너와 함께했던 시간동안 그런 적은 없는 것 같아. 그리고... 이름.


늘 생각했다. ‘아리아’란 이름은 누구의 이름일까. 8살은 누구의 나이일까. 본능이 내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항상. 하지만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던 것 같다. 나의 것이 아니라거나... 그런 생각도 있긴 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다른 거다. 내 존재가 저런 걸 가질 수 있을까. 의미가 있을까. 그래도 첼시. 지금은 비로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비록 네가 볼 수 없는 환경이지만 그래도... 네 상처투성이 손을 만지고. 네 손가락을 굽혀.


“와... 똑똑한 걸? 이건 상상도 못 했는데.”


네가 내 손을 볼 수 없다면, 내가 네 손을 굽히면 돼. 그렇지? 천천히 굽히자. A니까 왼손 엄지. 오른손은 모두 접은 상태. A... A...인데... 이건... 무슨 소리...?






[??????(???)]


“첼시. 첼시...”


말을 할 수 없었던 게 아니야.


“첼시... 이건 무슨 감정이야?”


무슨 감정인지도 알아. 아니, 난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어. 모른척했을 뿐이야.


“아... 미안하다는 감정이구나.”


감정은 알아. 이걸 느끼는 이유를 모르겠을 뿐이야.


“첼시... 미안해.”


무너진 계단. 아니, 지반. 아래층이 또 있었다. 나는 그곳에 있다. 무릎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 멍 자국이 다리가득 메웠다. 얼굴은 생채기로 가득하고 어깨는 철근에 베인 건지 피가 흐른다. 나는 그럼에도 살아있다. 그리고 첼시 너는?


다 무너진 벽돌 틈새로 네 오른쪽 손이 나와 있다. 네 다리는 다른 쪽에 삐져나왔다. 네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단지 틈새로 붉은 액체가 흘러내린다.


네 손을 접는다. 왼손은 상상만 한 채로.

왼손 엄지. 오른손은 모두 접은 상태. A

왼손 중지. 오른손 중지. R... 욕 아니야. 첼시.

왼손 약지. 오른손 엄지. I

왼손 엄지. 오른쪽은 없음. A

내 이름은 아리아야. 첼시. 첼시? 왜 대답이 없어. 왜.


네 손을 들어올린다. 하지만 맥없이 툭 떨어진다. 잠깐 바닥에 닿았다가 근육의 탄성 때문인지 다시 위로 튀어 오른다. 아니, 신경이 아직 살아있는 걸 수도. 첼시. 내 말 들려? 살아있으면 얘기 좀 해봐. 나... 나 말할 수 있어. 내 목소리. 너한테 들려준 적 없잖아. 첼시.


사람이 정말 쉽게 죽는구나. 바로 앞에 있던 사람. 네가 고작 나와 몇 cm 떨어져 있었다고. 넌 죽고 난 살아? 세상은 정말 불공평해. 너는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었는데. 사실 다 들었어. 네가 빵을 어떻게 받아왔는지. 네가 그렇게 싫어하던 행위를 하면서까지 귀족들한테 얻어온 거. 알아. 그리고 나한테까지 그걸 하려던 사람이 있었잖아. 그것도 네가 대신해서 내겐 영향이 없었다는 것도. 모두 다 알고 있었어. 복도를 걸어가면서. 자는 척하면서. 네 혼잣말을 못 듣는척하면서. 다... 들었어. 첼시. 그렇게 힘들었던 네가 살아야하는데 왜 내가 살아있는 거야. 왜...?


네가 몇 분 전에 말했었다. ‘얘. 울어?’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먼지 맛과 피 맛이 같이 난다. 그리고 짠맛이 나는 어느 액체 맛도. 함께 나기 시작한다. 너는 그걸 눈물이라고 했어.




작가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openobserver


작가의말

언제쯤 밝은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요. 이입해서 쓰다보면 저도 우울해지는 것 같아요.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는 ‘고양이’ 이야기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풀어갈 것 같아요.


읽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을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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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마귀' 이야기 -3- +2 20.06.02 54 3 14쪽
24 '마귀' 이야기 -2- 20.06.01 52 2 13쪽
23 '마귀' 이야기 -1- +2 20.05.30 60 3 14쪽
22 '고양이' 이야기 -에필로그- 20.05.29 52 2 10쪽
21 '고양이' 이야기 -10- 20.05.28 42 2 9쪽
20 '고양이' 이야기 -9- 20.05.27 35 2 13쪽
19 '고양이' 이야기 -8- 20.05.26 39 2 13쪽
» '고양이' 이야기 -7- 20.05.25 38 2 12쪽
17 '고양이' 이야기 -6- 20.05.23 39 2 13쪽
16 '고양이' 이야기 -5- 20.05.22 49 2 16쪽
15 쉬어가는 이야기 -1- +1 20.05.21 67 3 10쪽
14 '고양이' 이야기 -4- 20.05.20 44 2 13쪽
13 '고양이' 이야기 -3- 20.05.19 40 1 10쪽
12 '고양이' 이야기 -2- 20.05.18 41 1 14쪽
11 '고양이' 이야기 -1- 20.05.16 57 2 15쪽
10 '찢어진 종이' 이야기 -2- 20.05.15 50 2 12쪽
9 '찢어진 종이' 이야기 -1- 20.05.14 48 2 13쪽
8 '너와 나' 이야기 -에필로그- 20.05.14 47 2 7쪽
7 '너와 나' 이야기 -6- 20.05.13 51 2 19쪽
6 '너와 나' 이야기 -5- 20.05.13 54 3 13쪽
5 '너와 나' 이야기 -4- 20.05.12 56 2 13쪽
4 '너와 나' 이야기 -3- 20.05.12 65 3 10쪽
3 '너와 나' 이야기 -2- 20.05.12 84 7 11쪽
2 '너와 나' 이야기 -1- 20.05.11 157 7 12쪽
1 시작하기 전 이야기 +2 20.05.11 541 1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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