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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 - 괴물이 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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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야
작품등록일 :
2020.05.11 22:38
최근연재일 :
2021.07.05 21:55
연재수 :
20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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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03
추천수 :
145
글자수 :
1,045,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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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0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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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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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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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고양이' 이야기 -4-

DUMMY

[?????? (???)]


첼시에게 정말 미안하지만, 이 얘기를 듣고 내가 무엇을 느껴야할까. 그걸 모르겠다. 너는 행복했었다고? 이름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줄 알았다. 네가 시장의 수호자였던 얘기는 별로 궁금하지 않다. 내가 꼬인 성격인걸까? 어둠 속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린다. 물론 네가 낸 소리다. 궁금해서 철창을 똑똑 두드리고는 수화로 묻는다.


‘무슨’, ‘의미’


내 쪽으로 네 숨결이 날아온다. 들숨과 날숨 모두 느껴진다. 하지만 너는 아무 말 없다.


‘첼시?’


네 이름을 써 내리자, 네가 말한다.


“있잖아. 나도 이름이 없었어. 그런데,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어. 이름이란 건 부모가 지어주는 거라고. 그럼 나는 평생 이름이 없는 사람이어야 했잖아. 그래도 나는 ‘첼시’라는 이름이 있어. 거부할 수 있었지만 내가 선택한 이름이야.”


네가 말한다. 이름...에 대한 거였구나. 하지만 내가 궁금한 건 그런 게 아니다. 그래서 맥 아저씨는 어떻게 됐는데? 시장 사람들은 왜 안 나온 건데? 그런 게 궁금하다. 수화를 해본다.


‘맥 아저씨’, ‘시장 사람들’, ‘어떻게?‘


또 이어지는 정적. 그렇게 손가락을 네 번 정도 접었다 폈을 때, 네가 말한다.


“네가 있던 자리에 처음으로 있던 사람은 맥 아저씨였어.”


내가 있던 자리에... 처음으로? 그렇다면... 맥 아저씨도 장애인이었단 거야? 네 말 속에 그런 표현은 없었는데.


“어리둥절한 표정이네. 맥 아저씨는 이곳에서 일주일도 버티지 못했어. 뇌진탕을 입고 말도 제대로 못하시더니 어느 날 죽었어. 시장 사람들에 대해서는 나도 몰라. 언젠가 이곳을 탈출하면 물어볼 생각이고.”


무릎을 굽히고 곰곰이 생각한다. 교훈 같은 걸 얻은 게 아니다. 그저 네가 굉장히 멋있는 사람이라는 것 정도만 생각중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날 동안, 그것이 너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 (???)]


일과이자 인생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어둠 속에서 일어난다. 가면 쓴 남자들이 케이지 입구를 연다. 밖으로 나온다. 그들이 내 목에 철재 구속구를 채운다. 좁은 복도를 걷는다. 그렇게 한참을 걷는다. 황토색의 똑같은 배경. 그렇게 도달한 곳은 붉은 천막과 금빛 의자들이 인상적인 무대. 그리고 중앙에 설치된 유리 상자. 그곳이 종착역이다.


밖에서 노파가 옷을 던져준다. 가슴과 다리 사이만 가려주는 옷. 그걸 입는다. 수치심에 발바닥까지 오는 머리카락으로 몸을 최대한 감싼다. 노파가 구속구를 더 조인다. 머리카락을 들춰내고 네 몸을 보여라. 네. 그리고 눈앞의 어둠이 머리 위에서 내리꽂는 광선으로 변한다. 보이지 않지만 어디에나 존재하는 시선. 그 앞에서 6시간을 가만히 앉아있어야 한다. 일이 끝나면 거꾸로 반복. 어두운 방에 돌아와선 끈적이고 질퍽이는 내 케이지. 그 안으로 들어간다. 일과이자 인생이다.


일과이자 인생. 단순한 단어를 세 번이나 엮은 이유는 정말 그렇기 때문이다. 하루의 일과가 바뀌지 않는다. 입는 옷은 가끔 세척했는지 물 냄새가 나는 걸 빼면 똑같다. 사람의 냄새가 진하게 배었다. 땀일 수도 있고, 눈물일 수도 있다. 아니면 몸에서 나오는 다른 액체거나. 다만, 그걸 제외한다면 나의 인생은 같다. 발걸음도. 그리고 하는 행동도.


첫날 이후, 노파의 얼굴은 제대로 본 적은 없다. 항상 가면을 쓰고 있다. 노파의 옷은 매일 바뀐다. 아주 펑퍼짐한 드레스일 때도 있다. 반대로 꽉 끼인 보라색 드레스일 때도 있다. 노파의 인생은 매일 바뀌는구나.


그리고 오늘도 역시 같은 일의 반복. 역시나 가면 쓴 남자들이 들어오고, 첼시 너는 다른 일과를 나갔고, 목에 구속구가 채워지고, 그래. 또 걷는 거야.


“마나 스위프트.”


언제부턴가 내 이름이 되었다. 맞아. 하루는 첼시가 물은 적이 있다. 내 이름이 정해진 걸 엿들었다고. 그때, 너는 다시 내게 이름을 물어봤다. 나는 답하지 않았다. 그냥 마나 스위프트가 내 이름이겠거니, 그렇게 살아야지 했다. 너는 그게 내 생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무기력한 발상이라고만 했다. 그래도 상관없어. 어차피 의미 없는 삶인데.


내가 사는 곳과 걷는 곳은 완전히 딴판이다. 차갑고 습한 진흙바닥. 또는 표면이 거친 돌바닥. 그리고 케이지의 철로 만들어진 바닥. 그곳이 내가 사는 곳이자 밟는 곳. 그리고 걷는 곳. 이곳은 부드러운 레드카펫이 복도를 채운다. 상처 가득한 발이 다행이라고 웃는다. 맞아. 나의 발은 웃을 줄 알아.


“스위프트. 지금부터 웃어야지.”


무심코, 노파를 바라본다. 내 등 뒤에서 걸어오는 노파. 오늘은 붉은 드레스, 후프라도 낀 건지 통이 아주 큰 드레스. 그리고 가면에 파인 눈 사이에 보이는 눈동자. 그 눈이 점점 얼음이라고 느껴갈 즈음 깨닫는다. 아, 노파는 자신을 마주보는 아이들을 아주아주 싫어해.


“하. 스위프트. 네가 요즘 덜 맞았구나. 메이슨?”


메이슨이라는 단어가 사람의 이름인지. 아니면 저 채찍의 이름인지. 그런 건 모른다. 하지만 맞으면 아주 아프다는 건 안다. 첫날에 그렇게 맞았듯이. 그리고 나를 때리는 일을 번복한 적이 없다는 것도 당연히 안다.


“부르셨습니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내가 말을 했을까? 응?






[여러 번 맞은 뒤, 무대(???)]


얼굴만 빼고 때린다는 게 노파의 철칙이다. 나를 제외하고도 이곳에 많은 아이들이 있겠지만, 아마도 나와 같은 일을 한다면. 그렇다면 얼굴을 때리진 않을 것이다. 언젠가 메이슨(?)과 노파가 대화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이 아이들’의 얼굴은 상품이다. 한편으론 다행이지만 다른 한 편으론 절망적인 말이다. 얼굴 빼곤 어디를 맞아도 상관없다는 얘기였으니까.


오늘도 등에선 끈적이는 액체가 흘러나온다. 차라리 이게 땀이었으면.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붕대를 몸에 감는 것이 다다. 물론 내 의지로 감는 것도 아니다. 내가 죽으면 안 되니까 가면 쓴 남자들이 감아준다. 죽지 말라고. 죽지만 말라고.


“올라가.”


목의 구속구가 점점 조여지는 것이 느껴진다. 어느새 눈앞에 있던 문이 열려 있다. 붉은 커튼이 주변을 360도 가린다. 저 바깥에는 사람들이 있을 거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 그리고 내가 옷을 입고, 나를 보여주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거다. 천장은 강하게 내리쬐는 빛이. 그리고 바닥은 평범한 나무판자. 가운데에 우뚝 선 유리 상자. 그 안에 널려있는 옷. 오늘은 저 옷을 세탁할 거다. 피가 나기 때문에. 괜찮아. 피를 흘리고, 깨끗한 옷을 입는다면 나름대로 수지가 맞잖아. 그렇지.


유리 상자 안에 들어선다. 바닥까지 유리다. 유리라 그런지 매끈하고 차갑다. 희미하게 반사되어 보이는 내 모습. 머리카락이 하늘색이다. 눈 색도 밝은 하늘색. 특징은 이것뿐이다. 더 세세하게 묘사할 것도 없다. 그냥 아이다. 다리가 긴 노파의 허리 쯤 닿는 키. 그 정도 되는 그냥 아이. 모든 아이들은 어릴 때 이렇게 사는 걸까. 노파도 어릴 때 이렇게 자랐을까. 내가 더 견딜 수 있을까. 모든 것이 의문이다.


옷을 입는다. 미세한 마찰이 상처를 자극한다. 상처가 벌어지고 피가 뿜어져 나올 것만 같다. 참는다. 참아야 해. 안 그러면 또 맞을지도 몰라. 신음소리조차 내지 마. 아니... 아. 어차피...


입을 부위도 별로 없다. 투피스도 아니고 원피스다. 가슴과 사타구니만 가려졌고, 느껴야할 온도는 따뜻하다. 느껴지는 온도는 차갑다. 어제와 오늘은 같다. 오늘과 내일도 같다.


“여러분, 오늘도 방문해주셔서 감사해요. 우리 시장은 최상급의 품질을 위해 매일같이 애쓰고 있다는 점 알아주길 바랍니다.”


품질. 나의 건강이 아니라 기이한 겉모습.


“늘 시작은 우리 시장의 마스코트입니다.”


시장. 사람을 파는 시장. 마스코트. 한 아이.


“역시나 소개드립니다. 마나 스위프트 양입니다.”


마나 스위프트. 주인님이 지어준 내 이름.


활짝 열리는 커튼. 그 밖은 언제 어디서나 근처에 있는 어둠. 가끔 보이는 반사광은 쌍안경. 나를 더 자세하게 관찰하기 위해서 보는. 나는 무대의 무용수다. 하지만 환호성을 지르는 이는 없다. 적막이 가득한 기이한 무대. 나는 웃는다.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억지 미소로. 나는... 마나 스위프트...다.






[언제인진 모르겠고 아무튼, 좆같은 밀실(셰일즈)]


“어디서 이런 망나니 같은 놈이 나온 건지 원.”


늙은 여우가 지껄인다. 그런 말을 지껄일 거면 채찍으로 때리지나 말지. 이미 한 3천 번은 넘게 때려놓고 이제 와서? 웃기시네. 양팔에 수갑, 양 발목에 족쇄. 그리고 목에 구속구. 그 모든 게 나를 구속한지 벌써 몇 주는 지났다. 이따금씩 가면 쓴 아저씨들이 풀어줄 때가 있는데, 그때가 유일하게 뭔가를 먹을 때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출처 모를 물방울이나 굴러다니는 쥐새끼, 바퀴벌레 같은 거. 그거라도 먹어야 살 수 있다. 죽을 생각 따윈 없어. 지금으로선 이 좆같은 곳을 빨리 나가는 게 유일한 삶의 목적이다.


늙은 여우에게 침을 뱉는다. 피가 섞인 침이다. 여우의 콧등에 튀었는데, 굳은 표정으로 품속에서 수건을 꺼내고는, 피를 훔친다. 그러고는 경멸스런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본다.


“마틴. 네 얼굴값을 하렴. 그게 아니었다면 넌 벌써 쥐새끼들 밥이 되었을 테니.”


여우가 나간다. 망할 노파. 날 이딴 곳에 가둬놓고 뭐가 좋다고. 게다가 이상한 이름까지 붙였다. 마틴 헨리? 그게 내 이름이라고? 웃기시네. 내 이름은 셰일즈다. 누가 붙여줬는지 기억 따윈 나지 않지만 그래도 그게 내 이름이다. 이곳을 탈출하면... 날 낳아준 놈들한테도 한방 먹여줘야 하고. 아무튼 할 게 많다. 그보다, 열쇠. 늙은 여우가 갖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 철창 바깥을 자세히 살펴보면, 내가 못 나가도록 지키는 사람이 한 명 있다. ‘메이슨’이라던가? 아무튼, 그 아재의 엉덩이 부근에 열쇠가 걸려있는 걸 봤다. 어떻게든 저 열쇠를 뺏어야한다. 다음번에 족쇄를 푸는 날. 그날이 내가 이곳을 나가는 날이 될 거다.


“저기, ‘밀타’님. 요즈음 보안관들이 이 인근을 들쑤시고 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괜찮으실까요?”


바깥에서 누군가 웅성거린다. 보안관들이 들쑤신다고? 무슨 뜻이지?


“내버려둬. 근 5년간 아무 일도 없었잖아. 들키더라도 뒷돈 좀 챙겨주면 될 일이야. 그리고 저 녀석 관리나 똑바로 해. 저번에 탈출시도 하려던 거. 잊지 않았겠지?”


그래도 말이다. 저런 말 들으면 은근히 가슴이 떨린다. 아니, 철렁거린다고 해야하나? 괜히 언급돼서. 그래서 그렇다. 역겨운 인간들.


“그보다, 마나 스위프트에게 신청자가 들어왔습니다.”


마나 스위프트? 유감이네. 신청자가 들어왔으면 너도 끝장이겠구만. 그런데 늙은이의 반응이 달갑지 않은 말이라도 들은 사람처럼 찝찝하다.


“그 녀석에게 신청한 녀석들은 다 무시하라고 했을 텐데? 벙어리인거 들키면 주가 떨어지는 건 순식간이야. 생각이 있니?”


늙은이의 다 갈라진 벽돌 같은 목소리. 그런데, 벙어리라고? 그런 녀석한테 신청자라니. 이해할 수가 없다. 하기야, 나한테 들어오는 신청자들도 전부 거절하고 있다는데 뭐. 어딘가 특별한 녀석이어서 그렇겠지.


“아무튼, 무시해. 그 녀석이 벌어다주는 수입 덕분에 전보다 규모가 2배는 커질 것 같으니까.”


“그게... 제 선에서 거절하기엔 너무 큰돈이라...”


노파와 남자의 목소리. 곧이어 멀어진다. 뭔가 말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울린다. 어두운 지하실, 천장의 갈라진 틈 사이로 오렌지색 빛만이 가끔 내려온다. 언제쯤 나갈 수 있을까.


어깨를 타고 떨어지는 핏물. 상처도 지겹다. 저 인간... 아니, 저 쓰레기들은 사람 얼굴만 빼면 어디든지 다 때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망할 자식들. 엿이나 먹으라지. 한숨 자야겠다.




작가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openobser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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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마귀' 이야기 -2- 20.06.01 52 2 13쪽
23 '마귀' 이야기 -1- +2 20.05.30 60 3 14쪽
22 '고양이' 이야기 -에필로그- 20.05.29 52 2 10쪽
21 '고양이' 이야기 -10- 20.05.28 42 2 9쪽
20 '고양이' 이야기 -9- 20.05.27 36 2 13쪽
19 '고양이' 이야기 -8- 20.05.26 39 2 13쪽
18 '고양이' 이야기 -7- 20.05.25 38 2 12쪽
17 '고양이' 이야기 -6- 20.05.23 39 2 13쪽
16 '고양이' 이야기 -5- 20.05.22 49 2 16쪽
15 쉬어가는 이야기 -1- +1 20.05.21 67 3 10쪽
» '고양이' 이야기 -4- 20.05.20 45 2 13쪽
13 '고양이' 이야기 -3- 20.05.19 40 1 10쪽
12 '고양이' 이야기 -2- 20.05.18 42 1 14쪽
11 '고양이' 이야기 -1- 20.05.16 57 2 15쪽
10 '찢어진 종이' 이야기 -2- 20.05.15 50 2 12쪽
9 '찢어진 종이' 이야기 -1- 20.05.14 49 2 13쪽
8 '너와 나' 이야기 -에필로그- 20.05.14 47 2 7쪽
7 '너와 나' 이야기 -6- 20.05.13 51 2 19쪽
6 '너와 나' 이야기 -5- 20.05.13 55 3 13쪽
5 '너와 나' 이야기 -4- 20.05.12 57 2 13쪽
4 '너와 나' 이야기 -3- 20.05.12 65 3 10쪽
3 '너와 나' 이야기 -2- 20.05.12 84 7 11쪽
2 '너와 나' 이야기 -1- 20.05.11 157 7 12쪽
1 시작하기 전 이야기 +2 20.05.11 541 1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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