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 푸딩도 능력 생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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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 푸딩도 능력 생겼어
팝콘은 여러 번 내게 물방울을 보였다.
칭찬을 원하는 건가 싶어서 그때마다 쓰다듬고 뭐가 잘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말로도 잘했다고 했는데 원하는 반응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결국 자기 몸만큼 커다란 물방울을 든 채 어깨를 축 늘어뜨리더니, 다시 내 근처로 기어 온 푸딩을 발로 찼다.
거기에 화가 난 푸딩이 팝콘을 삼키려고 한다.
처음에는 당하기만 하던 푸딩도 이제는 조금 커졌다고 반항기에 접어든 모양이다.
피피, 꾸르꾸르, 둘이서 시끄럽다.
"너무 싸우지 마라. 혹시라도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말이 통하지야 않겠지만 가끔은 알아듣는 것 같아서 한마디 하자, 팝콘과 푸딩이 동시에 나를 보았다.
"피피."
"꾸르 꾸르."
둘 다 뭔가 호소하는 모습이 아무래도 상대방이 나쁘다고 이르는 것처럼 보였다.
연년생 아이를 기르면 이런 기분이 될까.
왠지 묘하다.
어쨌든 다른 때와 달리 너무 늦어서 혹시나 싶었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내가 몸을 일으키자 팝콘이 내 얼굴로 가까이 날아왔다.
왠지 진지한 얼굴로 물방울을 다시 내민다.
먹으라는 건가.
어쩌면 아주 맛있는 웅덩이 물을 발견하고 내게 주고 싶어 달려왔는지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입 벌리자 팝콘이 낑낑거리며 물방울을 입가로 날랐다.
물방울은 혀에 닿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평범한 물인 것 같다.
다만 아주 조금 달콤한 느낌이 들었다.
말이 이상하지만, 물에 맛이 있는 게 아니라 느낌이 달콤하다.
어쩌면 이건 단순한 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걸 가지러 다녀온 거구나. 뭔가 좋은 거였나 보네."
내 말에 팝콘이 피피 울면서 팔을 허우적거렸다.
하늘로 올렸다 땅으로 내리고, 다시 손끝을 조금 흔들며 하늘에서 땅으로 팔을 오르락내리락했다.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물방울이 팝콘 보기에 매우 좋고 귀중한 거였다는 사실만은 알았다.
"고맙다."
내 말에 팝콘이 기쁜 듯이 팔딱거렸다.
고맙다는 말은 알아듣는 것 같다.
어쩌면 그런 감정이 전해지는 건지도 모른다.
이 아이들은 말보다 내 감정을 읽는다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꾸...꾸...."
갑자기 푸딩이 작게 소리내기 시작했다.
바라보자, 푸딩의 몸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얘는 또 왜 이러는 걸까.
가만히 보자, 푸딩이 몸을 꾸물꾸물 움직이더니 빛 가루 같은 걸 조금 토해냈다.
물렁물렁한 몸 일부를 손처럼 조금 내밀어 빛 가루를 가지고 내게 기어와 내민다.
먹으라는 것 같다.
대항 의식인가.
팝콘이 화가 난 듯 날아가 푸딩을 발로 찼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소중하게 한두 톨 정도 되는 빛 가루를 감싼 채 나를 기다린다.
이상한 생물한테 사랑받는 것도 피곤하다.
'쥐랑 같은 곳에 있던 건데.'
조금 꺼림칙했지만 팝콘한테 발로 차이면서도 꿋꿋하게 서 있는 걸 보면 싫다고 하기도 어렵다.
어쩔 수 없이 손을 내밀자, 푸딩이 빛 가루를 주는 대신 자기가 손바닥에 올라탔다.
꾸물꾸물 동작은 느리지만 의외로 잽싸다.
팝콘은 이제 아예 푸딩 위에 올라탔다.
목을 조르려는 것처럼 작은 팔로 푸딩을 잡았지만, 오히려 작은 손과 발이 늪처럼 푸딩에게 흡수되고 있었다.
"피피...."
팝콘이 불쌍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도와달라는 모양이다.
하지만 너, 그건 자업자득이지.
팝콘을 푸딩에게서 빼내자 몸단장하는 것처럼 열심히 자기 몸을 털기 시작했다.
푸딩은 팝콘에게 신경 쓰지 않은 채 나를 향해 손을 길게 빼 내밀었다.
달팽이 눈처럼 가늘고 길게 늘어진다.
미안하지만 조금 징그럽다.
푸딩의 손은 내 입가까지 길게 뻗어왔다.
아무래도 먹여주고 싶은 것 같다.
'별걸 다 따라 하려고 하네.'
입을 벌리자 푸딩이 내 입술을 더듬거리며 빛 가루를 안으로 던졌다.
빛 가루는 금세 몸에 흡수된 것 같다.
어라?
"...."
오늘 저녁은 스튜가 맛있었고, 나도 모르게 조금 많이 먹었다.
요즘 밭일이 익숙해지면서 몸이 적응한 탓도 있었을 거다.
몸이 힘들면 밥도 많이 먹기 힘들다.
배가 가득 차 더부룩한 느낌이 있었는데 푸딩이 준 빛 가루가 몸에 흡수되는 순간 편안해진 것 같다.
활명수 하나 먹은 듯한 기분이었다.
"대단하구나, 너. 소화제를 만들 수 있게 됐니?"
진짜 대단하다.
이대로 발전하면 다른 약도 만들 수 있게 되는 거 아닐까.
의학이 발달하지 않은 이 세상에서 평민이 받을 수 있는 치료는 약초가 대부분이다.
이런 개척마을에서는 더더군다나 다른 방법이 없었다.
만일 푸딩이 약을 만들 수 있다면 정말 기쁜 일이 될 거다.
내가 기뻐하자 푸딩도 그걸 느낀 것 같다.
푸르푸르 춤추듯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피... 피피...."
팝콘은 절망한 것처럼 내 손바닥 위에 엎어졌다.
졌다 포즈인 것 같다.
비통한 것처럼 동글동글한 솜털 몸을 비틀며 운다.
그냥 놔두면 이대로 밤새워 울 것 같은 분위기다.
어쩔 수 없네.
"너도 대단한 거야. 솔직히 여기 음식이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는데 네 덕분에 정말 맛있게 먹으니까."
"핏? 피피피!"
팝콘은 단순하다.
내가 조금 칭찬하자 이내 머리를 치켜들고 가슴을 내밀었다.
그 바로 옆에서 푸딩도 흉내 내 물렁한 몸을 흔들흔들 내민다.
왠지 재미있어 웃자 두 아이는 모두 기쁜 듯 부산하게 몸을 흔들며 움직였다.
팝콘도 돌아왔으니 이제 다시 모닥불로 갈까.
몸을 돌리는데 팝콘이 손가락을 잡았다.
"피피... 피피피...."
내 손가락을 더듬이처럼 작은 손으로 꽉 움켜쥔 채 어디론가 데려가려고 한다.
새싹한테 가려는 건가, 아니면 이 물방울이 있는 곳으로?
그렇게 생각해 이끄는 대로 잠시 따라갔지만, 팝콘은 밭을 지나 점점 마을에서 멀어졌다.
"안 돼. 더 멀리 가면 짐승한테 습격당해서 죽을 거야."
"피?"
팝콘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정령한테 어둠은 무섭지 않은 공간이지만 인간에게는 위험하다.
내가 아무리 정령이나 괴상한 마물에게 사랑받는 체질이라 해도 이 세상 모든 것이 그렇게 친화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정령과 달리 나는 먹지 않으면 죽고 다치면 피 흘리는 인간이니까.
팝콘은 몇 번 나를 더 끌어당겼지만 내가 움직이지 않자 당황한 것 같다.
피피 울면서 어둠을 가리키고 뭔가 말했지만, 미안해, 아직 죽고 싶지는 않다.
"내 꿈은 말이다. 좋은 여자 만나서 어머니 아버지처럼 행복한 가정을 꾸미는 거야. 아이도 여러 명 낳아 기르면서 부부가 둘이 조용히 늙어가는 거지."
죽을 것 같은 상황은 가급적 피하고 싶다.
아무도 없는 어둠 속이라 그런지 말이 술술 나왔다.
나는 영웅처럼 살기보다는 가늘고 길게 범부로 사는 게 인생의 목표다.
"그러니까 되도록 위험은 피하고 싶어. 그 물이 아무리 좋은 거라도 말이야. 미안하다."
"... 피... 피피피피!"
팝콘이 왠지 내 말을 듣고 더욱 요란하게 울면서 팔을 추켜올렸다.
좋았어, 가자, 그런 뜻인 것 같다.
왜 그런 반응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이 녀석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뭐가 됐든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슬슬 아이들 공부 시간이 되었다.
"돌아가자."
내가 몸을 돌려 걷자, 팝콘과 푸딩이 요란하게 피피 꾸르꾸르 울면서 따라왔다.
이 녀석들, 의외로 말이 많다.
시끄럽네.
팝콘이 없을 때는 종종 나비가 여러 마리 날아온다.
지구의 것과 전체적인 모습은 비슷한데 이 세상 나비는 미세한 부분에서 조금 다르다.
예를 들면 나비가 날갯짓할 때 가끔 빛 가루 같은 게 떨어진다든가, 더듬이가 유난히 반짝거린다든가, 곤충 팔다리 치고는 조금 이상하게 생겼다든가.
가장 특이한 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나 한정이지만.
아이들이나 마을 사람들이 와도 나비는 그쪽으로 가지 않았다.
나에게만 날아온다.
지금까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나비가 날아온다고 해도 그저 내 주위를 빙빙 돌거나 가끔 머리에 앉을 뿐이고 일에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아무래도 정령 나무인지 뭔지가 불러온 것 같으니 곤충이 달라붙는 건 특이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마물이라는 슬라임조차 내게 친화적이니까.
그렇지만 시간이 많이 흘러도 아이들은 나비를 잡으려고 하지 않았다.
나비에는 신경쓰지 않는다.
슬슬 그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 세상 나비가 대부분 이런 모습이라 특이하지 않은가 보다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그런 게 아닐 것 같다.
아이들은 그 흔한 두더지를 보고도 환호성을 지르며 쫓아다니니까.
물론 두더지는 먹을 식량이 되니까 그러는 거긴 한데.
오늘도 팝콘은 새벽부터 어디론가 가버리고 푸딩은 다른 밭에서 일하는 중이다.
절묘하게 그 틈을 노리고 온 것처럼 또 나비가 무리 지어 우리 밭에 날아왔다.
다른 밭은 아직 싹이 나오려면 먼 것 같은데 대강 만든 우리 밭에는 잡초처럼 싹이 올라와 있었다.
잘 보면 나비들이 우리 밭을 돌아다니며 곳곳에서 빛을 뿌리고 있었다.
조금은 둔감한 나도 이쯤 되면 이 나비들이 평범한 생물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아니, 내가 둔감한 게 아니야.
단지 지구와 이 세계는 당연히 다른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시키는 잡일 때문에 매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오늘은 우리 밭에 볼일이 있는 모양이다.
아이들이 몰려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여기가 약초가 가장 많대요."
"지난번에 여기서 캔 약초는 끝내줬대요."
"그러니까 여기서 약초 캐라고 했어요."
아이들이 이구동성 외쳤다.
아이들은 때때로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가끔은 촌장님, 마법사 아저씨다.
오늘은 상처에 쓰이는 약초를 캐는 게 임무라고 한다.
아이들 손에는 쑥처럼 생긴 풀이 견본으로 들려 있었다.
이전에 본 것이다.
처음에는 쑥인가 싶었지만 냄새가 다르다.
아예 다른 풀인 모양이다.
"오늘도 수고하는구나."
내 말에 아이들이 눈을 반짝 빛냈다.
아이들은 열심히 일한다고 말하면 기뻐한다.
"그런데 얘들아, 혹시 너희들 눈에 나비 보이니?"
"나비요?"
"어디에요?"
"나비 없는데."
아이들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바로 너희 앞에, 내 주위에서 날아다니고 있잖니."
그렇게 말하자 아이들 눈이 동그래졌다.
역시 이건 나비가 아닌 것 같다.
"아무것도 안 보여요."
"정령님인가!"
"투명 날개 슬라임?"
"슬라임 나비 공동체!"
아이들이 내 주위를 돌며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손을 뻗거나 안녕하세요, 라고 소리쳤다.
"정령님! 나도 푸딩처럼 멋진 슬라임 주세요."
"나는 사마귀 갖고 싶어요."
"뭐든지 씹어먹는 늑대 슬라임이 필요해요."
아이들이 허공을 향해 외쳤다.
미안하지만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거든.
나비들이 웃는 것처럼 날개를 떨며 내 주위를 날아다녔다.
몇몇은 내 주위를 빙빙 도는 아이들 머리에 살짝 앉았다.
어쩌면 이것도 마물, 아니면 정령인가.
풀을 잘 자라게 하는 걸 보면 정령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어째서 꼭 팝콘과 푸딩이 없을 때만 올까.
팝콘은 정령이니 친구일 텐데.
'혹시 팝콘이 내 몸에서 나온 거라 따돌림당하는 건가.'
만일 그렇다면 불쌍하다.
안 그래도 친구가 없다 보니 사회성이 모자라 푸딩과 매일 싸우는데.
그런데 푸딩만 있을 때도 오지 않는 건 왜야.
'설마 푸딩이 정령을 잡아먹는 건....'
가끔 푸딩한테 먹히는 팝콘의 모습이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이마가 찌푸려졌다.
아니, 설마....
어제 푸딩이 준 빛 가루가 설마하니 정령이 죽고 남은 잔재는 아니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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