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7 날개가 없어 날지 못하면 날개 달린 걸 타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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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7 날개가 없어 날지 못하면 날개 달린 걸 타면 되지
[...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이라고....]
아빠가 그렇게 말했을 때 팝콘의 눈앞에는 갑자기 하늘이 떠올랐다.
동시에 멋진 해결책도 생각났다.
날개가 없어서 날지 못하면 날개 있는 걸 타고 가면 되지!
실제로 팝콘 눈에는 아빠 신부가 날개 달린 것 위에 올라타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앞에서는 팝콘 자신이 가슴을 내밀고 날갯짓해 아빠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피피... 멋지다....
생각하면 할수록 그건 멋진 해결책으로 느껴졌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좋아, 피피!
그렇게 결정했으면 조속히 아빠 신부가 탈 걸 찾아야 한다.
팝콘은 새벽부터 밤까지 아빠 신부가 타기에 적당한 걸 찾아 돌아다녔다.
하지만 이 세상 모든 일은 고난의 연속, 결코 쉽지 않다.
팝콘이 제일 먼저 찾아간 건 날개가 달린 벌레였는데, 눈이 매우 컸다.
팝콘보다 약간 큰 벌레는 기다란 더듬이가 얼굴 옆에서 나오고 발이 여러 개 있었다.
얼굴 뒤에는 큼직한 날개가 두 개 달려 있는데, 동그랗고 화려한 점이 여러 개 찍혀 있다.
그 밑에는 조금 얇은 날개가 숨듯이 있어서 매우 멋지다.
이렇게 멋진 벌레를 타고 날면 분명 아빠 신부도 기뻐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팝콘 마음도 매우 기뻤다.
하지만 벌레는 팝콘이 열심히 설명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나뭇잎에 달라붙은 채 손과 발을 비벼 세수하더니, 팝콘의 설명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훌쩍 날아가 버렸다.
날아가는 벌레의 날개가 화려하고 정말 멋있었던 것이 팝콘의 마음을 많이 슬프게 했다.
저 등에 아빠 신부가 타면 정말 멋질 텐데.
그다음에 찾아간 건 투명한 날개에 기다란 꽁무니를 가진 벌레였다.
먼저 벌레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조금 더 크고, 날개는 햇빛이 통과할 때마다 반짝반짝 예쁘게 빛났다.
아빠 신부가 이걸 타면 분명 아름답겠지.
이 벌레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팝콘은 두 팔을 벌려가며 열심히 사정을 설명했다.
아빠 신부에게 탈것이 필요한 일, 이곳까지 날라 줬으면 좋겠다는 것과 아빠 신부가 매우 예쁜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벌레는 커다란 눈으로 팝콘을 가만히 보다 갑자기 입을 크게 벌렸다.
양옆으로 벌어진 입이, 아니, 이건 턱일까, 아무튼 그게 팝콘을 덥석 물었다.
깜짝 놀라 몸부림쳤지만 벌레는 팝콘을 놓아주지 않은 채 질겅질겅 씹기 시작했다.
간지럽다.
진짜 간지러워!
팝콘은 간지러워 몸을 뒤집으면서도 열심히 나머지를 설명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설명이 끝날 무렵, 벌레는 갑자기 퉤, 팝콘을 뱉어내고 날아가 버렸다.
맛이 없었던 것 같다.
피이....
왠지 우울해졌다.
피피!
아니, 안 돼. 우울해할 틈이 없다.
아빠 신부가 탈 걸 찾아야 해.
팝콘은 조금 생각한 뒤에 날아다니는 쥐를 찾아갔다.
날개는 없지만 이 쥐는 다리와 다리 사이에 탄탄한 피부가 붙어 있다.
그걸 날개처럼 펴서 나무와 나무를 날아다니는 거다.
많이 멋있지는 않지만, 풍성한 꼬리를 가지고 있어서 뒤에서 보면 조금 괜찮다.
그 꼬리와 아빠 신부가 함께 있으면 멋져 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쥐는 벌레들보다 튼튼한 것 같다.
왠지 힘이 느껴졌다.
어쩌면 아빠 신부가 타기에는 이 쥐가 더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벌레들은 팝콘의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는 것 같으니까.
팝콘은 날아다니는 쥐한테 사정을 설명하려고 했다.
벌레를 쫓아다니는 동안 벌써 여러 날이 지났다.
이제 정말로 급하다.
요즘 푸딩은 이상한 빛가루를 내놓기 시작했다.
아빠한테는 그게 굉장히 멋져 보였는지, 자주 푸딩 몸에서 빛가루를 받아 갔다.
이러다 아빠 관심을 모두 푸딩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
그걸 저지하기 위해서라도 큰 업적이 필요하다.
신부를 데려오면 아빠는 분명 팝콘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게 될 거다.
아빠의 신부는 정말 눈이 예쁜 색이니까.
타도, 푸딩!
하지만 날아다니는 쥐는 계속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고, 날지 않을 때는 나무 위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돌아다녔다.
날아다니는 쥐는 욕심쟁이인 모양이다.
양 볼이 불룩하게 나올 정도로 입 속에 열매를 잔뜩 넣고 있었다.
팝콘은 계속 날아다니는 쥐를 쫓아다녔지만, 이 쥐는 너무 바빠서 팝콘의 이야기를 들어줄 시간이 없었다.
잠시도 쉬지 않는다.
결국 팝콘은 이 날아다니는 쥐를 포기하기로 했다.
그 뒤에는 밭에서 자주 보는 새와 똑같이 생긴 새를 찾아갔다.
날개, 하면 새지.
처음부터 벌레가 아니라 새를 찾아올 걸 그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빠가 참새라고 이름 붙인 새는 팝콘을 보자마자 달려들어 쪼기 시작했다.
피피피피!
하지 마! 하지 말라구!
팝콘의 몸이 새 때문에 이리저리 구겨진다.
이것 때문에 팝콘은 새한테 오기가 싫었다.
새는 팝콘을 보면 자꾸만 쪼거나 먹으려고 하니까.
잠시 실랑이를 하고 도망치다 다시 쪼이면서, 팝콘은 간신히 설명을 마쳤다.
"피피?"
어때, 해줄래?
팝콘이 물어보자, 새는 꿀꺽 팝콘을 먹어버렸다.
역시 새는 나쁘다.
팝콘은 잠시 새 몸속에 있다 똥과 함께 밖으로 떨어졌다.
냄새!
못된 새 같으니라구.
그 뒤에도 몇 번 다른 새한테 말을 걸었지만 제대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새는 없었다.
그때 문득 까마귀가 생각났다.
아빠 신부의 집에는 반짝거리는 것이 매우 많다.
까마귀는 반짝거리는 걸 좋아하니까 어쩌면 함께 가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해서 날아가려고 하다 팝콘은 깜짝 놀랐다.
피피?
여기는 어디?
팝콘은 생전 처음 와보는 낯선 숲에 서 있었다.
"피...."
어쩌지.
큰일 났다.
팝콘은 집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아니, 길을.
* * *
한동안은 거의 매일 왕궁에 불려 갔지만 며칠 전부터 마그리트는 왕궁에 가지 않는다.
오지 않아도 좋다는 말을 들었다.
집으로 오는 교사의 발길도 끊어졌다.
다른 건 몰라도 예절 교사만은 지금까지 계속 곁에 붙어 그녀의 예의범절을 체크하고 있었다.
먹고 걷고 앉는 모든 동작을 지켜보며 왕족이 되기에 올바른 행동인지 확인했는데, 그 선생이 오지 않는다.
어제부터는 문 여는 시종 외에 경비병이 방 밖에 서서 지키고 있다.
식사도 방에서 하도록 명령받았다.
아직 아무 말도 듣지 못했지만 마그리트가 처분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마그리트는 창으로 가 먼 하늘을 보았다.
지금 그녀가 누리는 유일한 자유는 창밖을 보는 것이다.
맑은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그녀의 마음과는 정반대다.
'정령님.'
정령이 오지 않게 된 지 여러 날이 되었다.
이제 다시는 보지 못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애절해졌다.
정령만이 마음의 버팀목이었는데.
마그리트는 손이 떨리는 깨닫고 주먹을 꽉 쥐었다.
겁먹지 마.
두려워하지 마.
그렇게 매일 자기에게 말하지만 쉽지 않다.
마그리트는 눈을 감고 정령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를 데려가려고 하던 정령의 행동이 떠오르자 두려움이 조금 가셨다.
잠시 그렇게 있는데 집사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후작께서 부르십니다."
돌아보는 마그리트의 몸이 긴장으로 뻣뻣해졌다.
"왕궁에서 사자가 왔으니 거기에 맞는 치장을 하십시오."
왕자가 보낸 건지, 왕의 사자인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굳이 말하지 않은 걸 보면 명목상으로는 왕자가 보낸 사람일 것이다.
집사장은 말을 마친 뒤 나가고 곧바로 시녀가 들어왔다.
서둘러 옷을 바꿔 입고 옅은 화장을 한다.
시녀가 옷에 맞는 레이스를 꺼내 목과 가슴 주위에 고정했다.
마지막으로 목걸이와 귀걸이 등의 장식품을 꺼내 장착하고 나가자 집사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집사장의 뒤를 따라 걸으면서 마그리트는 천천히 심호흡했다.
심장이 지금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두근거렸다.
응접실에 도착하자 후작과 왕궁의 사자는 앉지도 않은 채 서 있었다.
후작의 얼굴은 잔뜩 굳어진 반면 사자는 웃는 얼굴이다.
'저 사람은....'
가끔 왕자와 대화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왕자를 받드는 게 아니라 조언하는 게 주된 일인 것처럼 보였다.
왕자의 측근이 아니라 왕의 사람일 것이다.
'역시....'
왕이 짠 함정이구나.
지금까지 추측이었던 것이 현실로 다가온다.
사자는 의례적인 인사를 한 뒤 빙긋 웃었다.
"이틀 뒤 성녀를 공식적으로 소개하는 연회가 열립니다. 마그리트 아가씨는 왕자 전하의 약혼녀로서 참석하십시오. 왕자 전하께서 그날 입을 의상과 보석을 보내셨습니다."
사자가 말하자 뒤에 서 있던 남자들이 앞으로 나왔다.
그들의 손에는 화려한 상자가 들려 있었다.
큰 상자는 의상, 작은 건 아마 보석일 것이다.
무슨 말을 들을까 잔뜩 긴장하던 마그리트는 일순 멍해졌다.
마그리트는 사자의 눈을 가만히 보았다.
용건은 진짜 연회 참석에 관한 것뿐인 모양이다.
사자는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마그리트는 감사 인사를 하며 말끝에 물었다.
"... 왕자 전하께서는 그날 저를 에스코트하십니까, 아니면 성녀를?"
"그 건으로 왕자 전하의 전언이 있습니다. 마그리트 양을 에스코트하는 게 당연하지만 성녀가 처음 선보이는 자리이니 조금만 이해해 줬으면 하신다고요."
약혼자가 있다면 입장만큼은 그 사람과 하는 게 사교계의 암묵적인 룰이다.
아무리 성녀가 중요한 인물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정 에스코트할 사람이 필요하다면 다른 왕자도 있었을 것이다.
왕자의 에스코트를 성녀가 받는다니, 역시 평범한 연회가 아니다.
아무래도 왕은 사람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마그리트를 단죄할 생각인 것 같다.
마그리트는 표정이 변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후작은 사자와 할 말이 있다면서 그녀를 나가게 했다.
방으로 돌아가 잠시 기다렸지만 의상과 보석이 오지 않았다.
어떤 옷인지 알아야 화장이나 다른 액세서리를 정할 수 있다.
마그리트가 종을 울리자 시녀가 안으로 들어왔다.
"연회에 입고 갈 의상이 늦네. 서둘러 이방으로 옮겨 달라고 집사장에게 전해줘."
"알겠습니다."
시녀는 새침한 얼굴로 대답하고 나갔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 종을 울리자 시녀가 한참 뒤에 들어왔다.
"죄송하지만 의상은 수선할 곳이 있어 연회장에 가기 전에 가져온다고 합니다."
"...."
드레스의 품이나 다른 부위를 수선하는 건 보통 드레스를 입은 상태에서 확인한 뒤에 한다.
입지도 않은 상태에서 수선한다니, 그건 눈에 뻔히 보이는 변명이었다.
마그리트는 시녀를 내보내고 눈을 감았다.
'옷에 뭔가 세공이 되어 있구나.'
뭔지 모르지만 그녀를 옭아맬 함정일 것이다.
후작이 그걸 모를 리 없는데 협조하는 걸 보면 마그리트를 버리고 가문을 살리기로 한 거겠지.
손발을 묶인 채 캄캄한 동굴 속에 던져진 느낌이었다.
감은 눈꺼풀 뒤로 작고 귀여운 정령의 모습이 깜박 빛났다.
'정령님.'
부디 내게 두려움을 이길 힘을 주세요.
마그리트는 두 손을 꽉 잡았다.
* * *
조금 있으면 해가 진다.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빠 얼굴이 떠오르자 팝콘의 마음은 더욱 급해졌다.
정말 곤란해졌다.
"피피피피피!"
누구 없어요!
팝콘은 크게 외쳤다.
여러 번 외치는 동안 흰 새와 커다란 개, 뿔 달린 곰, 하얗고 거대한 지렁이가 팝콘을 찾아왔다.
"피피피! 피피피피!"
팝콘이 집으로 가는 길을 물어봤지만 아무도 아빠가 있는 집을 알지 못했다.
그저 팝콘을 먹거나 뿔 위에 올려놓고 숲을 돌아다니거나 한 번 본 뒤 그냥 가버렸다.
그러는 동안 팝콘은 점점 더 낯선 곳으로 들어간 것 같다.
정신을 차려보니 주위는 한 번도 오지 않은, 전혀 모르는 곳이었다.
물론 원래도 처음 보는 곳이었지만.
"피피피!"
팝콘은 도와달라고 더 큰 소리로 울었다.
어쩌면 지난번처럼 푸딩이 듣고 찾아와 줄지도 모른다.
팝콘은 푸딩한테 들리도록 더 큰 소리로 울었다.
피피피피피피피피!
그때 어디에선가 작은 소리가 들렸다.
"... 삐... 삐이... 삐...."
피피?
왠지 누군가가 울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팝콘처럼 길을 잃어버린 걸까.
아무래도 신경이 쓰인다.
팝콘은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향해 날아갔다.
한참 날아가자 커다란 나무 사이 땅바닥에서 작은 새가 열심히 날갯짓하는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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