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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자드킹 님의 서재입니다.

WG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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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리자드킹
작품등록일 :
2009.08.16 09:43
최근연재일 :
2009.08.16 09:43
연재수 :
8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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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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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30,864

작성
09.06.20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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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WGRS - 제 8장(26)

DUMMY

"뭐하다 온 거야?"

훌쩍이 아리야의 방으로 돌아와보니 다들 쓰러진 채 널브러져 있었고 아리야만이 조용히 의자에 앉아 날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소리없이 문을 닫은 뒤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손에 술병을 든 채 뭐라고 중얼대는 미젠다를 살짝 넘고 내 발목을 약하게 스치는 나라의 손도 넘어 아리야에게 갔다. 아리야는 취기가 도는 얼굴로 헤롱거리고 있었다. 뭐, 뭔가 매력 덩어리가 되어 나를 현혹시키는 듯한 마력이 발산하고 있는 걸. 하지만 거기에 내가 움찔하여 발딱하는 그런 파렴치한이 아니란 것은 나 스스로도 잘 알고 있고 뭐, 잘은 모르겠지만 다들 알고 있을 거다. 그럴 것이다.

약간 벌그레한 홍조로 눈을 깜빡이는 아리야. 살짝 시계를 보니 심야가 다 되간다. 생각보다 이야기가 길었던 모양이다. 애초에 이 정도 시간은 각오하고 노는 것이겠지만.

"잠깐 이야기 좀 하고 왔어."

아리야의 손에 잡혀있던 술병을 낚아채어 맞은편에 내려놓고 대답했다. 아리야는 내가 술병을 빼앗자 손에 힘이 빠진 듯 축 늘어져 loll 상태가 되었다.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고 남아있던 파이를 입에 던져 넣었다.

"누구랑?"

힘없이 묻는 아리야. 친절히 대답해주었다.

"이준수랑. 그 건방진 학생 회장 녀석이 따로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말이야."

이렇게만 말해두어도 별로 상관은 없겠지. 나보다 정보력의 수준에 있어서 월등히 높은 수준에 있는 아리야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너, 짜증나."

혀가 꼬일듯 말듯 비몽사몽해 말한다. 난 하하, 맥빠진 웃음소리를 냈다.

"왜?"

장난스럽게 그렇게 물었다.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기도 하고 말이다. 여동생이 있어서 잘 아는 점인데, 여자가 무심코 흘리는 말도 놓쳐서는 안 된다. 안 그러면 나중에 후회하게 된다. 그 후환이 두렵기 때문에 재깍재깍 반응하게 대비하자.

"이야기라면… 나중에 할 수도 있잖아. 왜 하필 오늘 같은 날에…"

"오늘 같은 날에?"

"그래… 나랑 같이 있어야… 되는 거 아니었어?"

그런 규칙이라도 정해놨었나.

"멍청이. 바보 말미잘."

어어, 이런. 욕먹었네.

"조, 좋아한다는 마, 말을 했으면… 채, 책임을 져야지!"

손에 술병이라도 있었으면 쿵, 소리라도 났을 것이다. 아리야는 손모양을 바닥에 휘저으며 여전히 혀가 꼬인 목소리로 호소하듯 따져들었다. 나는 할 말을 잃고 내 손가락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아아, 계속해서 귀에 딱지가 듣도록 듣고 있는 말이다. 책임을 지라고. 부자들의 입버릇이냐. 난 솔직히 말해서 별로 잘못한 것이 없는데 말이다. 내 기억 창고를 이잡듯 뒤져도 잘 모르겠다. 엘리샤와 김현지는… 잘 모르겠다만 이거 무슨….

"아니!"

나는 그만 머리가 어지러워진 나머지 크게 소리치고 말았다. 그 바람에 바닥에 뒹구는 몇몇이 신음을 내뱉긴 했지만 일어나진 않았다 아리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응시하고 있었다. 응?

정리하자면 나라는 녀석은 벌써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 소리도 꽤나 한 것 같은데, 결국 처음부터 나는 아리야를…

거기까지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관없겠지. 다른 여자들도 추가로 도형을 그려준다면 그 당사자는 분명히 기쁘긴 기쁠 것이다. 기분이 나쁘다면 분명 그 녀석은 다혈질에 고독형이다. 하지만 난 고독형이 아니고 이것저것 두루 상식을 갖춘 일반인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무엇인가. 책임을 다할 것? 최선을 다할 것? 그런 건 아니다. 그런 게 아니라고.

"아리야, 잠깐 나갈까? 바람이라도 쐬러."

내가 그렇게 말하는 동시에 아리야의 몸이 책상에 엎어졌다.

"어…?"

의문형 부호를 내뱉었지만 아리야는 반응이 없었다. 곤한 숨소리만이 그녀가 잠들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거 참.

머리를 긁적인다음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 엎어진 채 반응이 없다. 다 엎어져 잠이나 자는 건가.

"그러니까 안심하고 자라고."

나는 잠든 아리야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주었다.

"하고 싶은 말은 그거였어. 그래."

조용히 중얼거렸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하나같이 모두 아리야와 엮여 베이고 엎어지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허둥거린 것 투성이지만 충분히 내 자신에 대해 칭찬도 할 수 있었고 얻은 거라면 얻은 것이 있어 성과라는 말도 내붙일 수 있었다. 이렇듯, 세월이란 녀석도 많이 지나갔다고 할 수 있겠다. 아니, 실로 그리 많이 지난 것은 아니다. 불과 2~3달 만에 일어난 일들이니까. 난 벌써 몇 년은 지난 줄 알았다만 그건 내 착각이겠지. 지금은 5월을 넘어 6월. 이 사이에도 물론 많은 일들이 있었다. 정은을 만나 두런두런 이야길 나누며 주먹을 불끈 쥐고 같이 화를 내기도 하며 울상을 짓기도 하며 어느새 그녀와는 안면이 생겨버렸고 엘리샤와 김현지에게 이런저런 일로 불려 진땀을 뻘뻘 흘려야했고 무엇보다 힘든 것은…

"이 카드를 얻은 것에 대해 뭐라고 해야 하나."

나는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작은 크기의 분홍빛 카드를 노려보았다. 이 카드 덕분에 아리야에게 시달리고 있다. 거의 매일 말이다. 어이, 좀 자제해 달라고. 이 카드를 어떻게 처분하는 것도 두려워지잖아.

"뭐, 고통스럽다거나 짜증난다거나 그런 건 아니야. 그저 조금 피곤하다고 해야 할까. 좀 자제가 필요할 것 같은데."

태평함이 조금 섞인 목소리로 난 그렇게 중얼거렸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맑기만 하다. 오늘도 비는 오지 않는 건가. 비라도 오면 어떻게 변명을 대어 돌파구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진호! 나왔어!"

저만치서 목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와 동시에 내 품에 파묻힌 것은-

"아이쿠, 정은. 달려들 필요는 없다니까."

내가 여동생을 보는 시선으로 정은을 안은 채 핀잔을 주었지만 정은에겐 이미 소용 없는 말이 되었다. 정은은 나에게 붙잡힌 채 밝은 미소를 얼굴에 내걸었다.

"요즘 진호가 아니면 이런 데 나오지도 않아, 나는."

그게 대답이냐.

"응!"

어휴. 나는 한숨을 내쉬고 건너편을 보았다. 엘리샤와 아리야가 걸어오고 있었다. 엘리샤는 입을 비죽 내밀고 곁눈질로 날 훔쳐보고 있었고 아리야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손을 휘두르고 있었다. 응?

"이 변태 똥개! 발정 났어?!"

이봐, 이봐. 얜 애라고. 이상한 생각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가 아니라 애초에 없다고.

"흥이다. 저 언니는 괜히 질투 나서 저러는 거야."

내 목을 팔로 휘감으며 정은을 아리야에게 혀를 내밀었다. 아리야는 크윽, 분한듯 주먹을 쥔다. 뭐가 분한거지.

"모르겠나요?"

뒤에서 들려온 여유로운 목소리. 준수였다. 하여간 이 녀석도 잘 보면 약방의 감초라니까.

"아리야 씨는 아직 14살 남짓이랍니다. 경쟁심을 느낄만도 하지요. 게다가 당신의 취향이 워낙… 쿠쿡."

야, 안 닥쳐?

라고 다그치고 싶었지만 어린 정은 앞이라 입은 움직이지 않고 눈빛으로만 윽박지른 뒤 정은을 땅에 내려놓았다.

"쓸데없는 소린 하지 말고 빨리 안내나 제대로 해줘. 이번엔 또 뭐야?"

나는 분홍빛 카드를 이준수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이준수는 후훗 웃었다.

"이번엔 오폐라 하우스입니다. '황금의 예술의 전당' 제 1공연과 제 2공연을 감상하실 겁니다."

"도대체 그런 건 왜 봐야 하는데?"

"글쎄요. 확실한 건 제가 여기 사회자 및 안내자라는 겁니다만."

"그건 알고 있어."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엘리샤와 아리야를 보며 나는 손을 내저었다. 준수는 꾸벅 몸을 숙이고 문을 열어주었다.

"곧 공연이 시작하니 실내에선 정숙해주십시오."

오냐.

아리야가 내 옆구리를 세게 움켜잡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나는 안으로 향했다. 제 1의 귀빈석인 2층 로비에 자릴 잡고 편안히 의자에 몸을 밀착했다. 옆으로 세 여자가, 아니 소녀가 나란히 앉았다. 정은과 아리야는 묘한 분위기를 구사하고 있었고 엘리샤는 엘리샤대로 빙하시대였다. 아이고, 무서워라. 나는 꿀꺽 위기의 침을 삼키고 정면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걸까.

제 1공연의 막이 올라가고 있었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남녀가 나와 목청을 가다듬고 있었고 앞엔 지휘자가 어슬렁대고 있다. 난 벌써 오래 전 일 같은 약 3주일 전을 떠올렸다. 그때, 정은과 만난 곳은 인적이 별로 없는 카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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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끝나갑니다. 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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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GRS - 제 8장(26) +5 09.06.20 331 2 9쪽
79 WGRS - 제 8장(25) +4 09.06.17 367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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