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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자드킹 님의 서재입니다.

WG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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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리자드킹
작품등록일 :
2009.08.16 09:43
최근연재일 :
2009.08.16 09:43
연재수 :
8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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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40
추천수 :
192
글자수 :
330,864

작성
09.04.26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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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WGRS - 제 8장(13)

DUMMY

나는 칼처럼 날카로운 햇빛을 화살 처럼 쏘아대고 있는 하늘을 쳐다보며 태양을 향해 에너지파를 발사하면 혹시 부서지지 않을까 하는 막장 스토리라도 생각하고 손을 모아볼 생각을 하는데, 아리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저기로 가자."

내 옷깃을 잡아당기며 가리킨 곳은 나무 한 그루가 아름드리 그늘을 지우고 있는 벤치였다. 곳곳엔, 장막을 쳐서 그늘을 만들거나 이런 벤치들에 자릴 잡고 저마다 둥지를 틀고 있는 무리들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그곳으로 갔다.

아리야와 나란히 벤치에 앉았다. 어디보자, 컨텐츠가 어떻게 되더라.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기억을 뒤집어 교장의 훈화 연설 다음에 진행될 종목을 떠올려보았다. 개인 달리기가 떠오른다. 그 다음이 청백 계주인데, 은근히 나도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경쟁심이 가득한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별로 빠르지도 않으면서 뭘 그렇게 달리고 싶어지는지 알 수가 없다.

"다른 녀석들은?"

여름을 알리는 약간은 습기가 서린 따뜻한 바람을 얼굴로 맞으며 물었다. 아리야는 흩으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미젠다는 달리기에 나간다고 날뛰는 중일걸. 아마 청백 계주 땐 나라랑 같이 나갈 것 같아."

흐응, 그럴 것도 같았는데 정말 나가네.

미젠다라면 스포츠 만능이니 말이 필요없는 수준이다. 척 보기에도 그렇고 내가 보기에도 그러하며 이제껏 지켜봐서 알아낸 사실도 그러하다. 체고에라도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긴 한데, 뭐, 여기가 더 나을지도.

달리기에 나간다면, 메달 하나 정돈 걸고 오겠지?

"글쎄. 미젠다와 만만한 녀석이 하나 있긴 있어."

아니, 누구야?

"음, 엘리샤야. 이제까지 미젠다랑 운동회때마다 달리기로 승부를 겨룬 건 걔밖에 없어."

호오.

나는 팔짱을 끼고 나란히 달리는 두 여자를 떠올렸다. 도저히 상상이 안 가는 건 아니지만 글쎄, 잘 모르겠다.

전체 종목은 그룹 별 대회를 비롯해 단체 파이 던지기라는 웃음밖에 안 나오는 이름의 경기가 있긴 한데, 그때까진 여유롭게 벤치에 앉아 다른 녀석들이 하는 것들을 구경할 수가 있으니, 조금은 편하다 할 수 있겠다. 이 뙤약볕에 땀을 뻘뻘 흘리며 이곳저곳으로 뛰어다니는 건 별로 사양하겠다.

이윽고 개인 달리기가 시작될 모양인지 학교 부지 안에 설치된 임시 운동장 내의 트레일에 선수들이 자세를 취하는 모션을 하고 있었다. 주위의 구경꾼들도 나와 같은 심정인지 여유로운 얼굴로 흥미로움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두 여자를 발견하고 몸을 움찔 떨었다. 정말로 있네?

미젠다와 엘리샤였다. 야성적이고 동물적인 매력이 넘치는 황색 피부의 미젠다는 반바지에 반팔의 체육복 차림이었고 옆에 서있는 엘리샤는 긴급 작전에 투입 직전인 특수 부대처럼 매우 긴장한 얼굴로 진지하게 트레일 라인을 쳐다보고 있었다. 미젠다와 비교되는 것은 엘리샤의 하얀 피부였다. 둘 다 매력적인 피부를…

"어딜 쳐다보는 거야?"

난데없이 찔러들어오는 아리야의 목소리에 나는 헙 입을 다물었다. 무슨 소리야?

"내가 모를 줄 알지? 해벌쭉 해서는."

으으음.

헛기침으로 겨우 무마한 다음 팔짱을 끼고 엘리샤를 따라 진지한 얼굴을 해주었다. 자자, 제대로 보자.

다른 녀석들도 저마다의 특징을 과시하고 있었다. 어떤 녀석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우락부락한 근육질을 과시하고 있었고 긴 다리에 잘 빠진 허우대를 가진 녀석도 있었으며 여자라고 보기 힘든 덩치가 큰 여자도 있었다. 다들 잘 뛰게 생겼다.

여자 달리기가 이 정도면 남자 달리기는 어떻게 되는 거냐? 생각하기도 싫다.

저 중에서 가장 나은 건 당연히 엘리샤와 미젠다였다만, 마저 감상을 하기도 전에 심판이 권총을 발사했고 여자들은 총알같이 뛰어나가 내 시야를 벗어났고 나는 얼른 그 뒤를 눈으로 쫓기 위해 급히 고개를 돌려야했다.

"이야, 잘 뛰는데?"

내가 조용히 감상을 내뱉는 사이에 미젠다와 엘리샤는 다른 여자들을 모두 제치고 선두로 나섰다. 주변에선 이 둘의 독주를 예상하고 있었다는듯 환호와 야유를 뿜어댔고 뒤쳐진 다른 선수들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불만에 서린 얼굴들이었는데, 뭐 별로 상관없다. 너희들이 못 뛰는 걸 뭘 탓하겠냐. 나처럼 여기 가만히 앉아있든가.

강 건너 불구경이란 이런 건가.

나는 피식 웃으며 두 여자의 쟁쟁한 달리기 솜씨를 구경했고 마침내 미젠다가 1등, 엘리샤가 2등을 하는 걸 지켜볼 수 있었다. 굉장합니다요.

엘리샤는 매우 아깝다는 얼굴로 팔을 휘두르고 있었다. 위로라도 해줘야 할려나. 매년 이러는 것 같은데.

툭.

그때 어깨에서 깃털같은 무게가 느껴졌다. 너무나 가볍고 톡 치는 느낌에 나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리야의 머리가 보였다. 그녀는 잠의 마수에 사로잡힌 상태였다. 꾸벅꾸벅 졸던 모양이었는지 가볍게 닫힌 눈과 입은 매혹적이었고 숨을 내쉬는 코에선 잠자는 사람만이 내는 특유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으음, 이걸 어쩌지.

드라마나 영화라든가, 소설이라든가 만화가 이 세상에 버젓이 존재하며 나란 아주 약간은 특이하면서도 오디너리한 인간도 여기에서 살고 있는데 굳이 해보지 않을 이유는 뭐가 있겠는가? 아직 내가 너무나 멍청하고 우유부단하여 이리저리 허둥대고 있긴 하지만 그 초석 정도는 마련해도 좋겠지.

나는 그렇게 쓸데없는 소리를 연신 지껄여댄 후에 졸고 있는 아리야의 머리를 내 무릎 위로 옮겼다. 아리야는 잠결에 으음, 입을 우물거리며 움찔거렸으나 곧 편안한 얼굴이 되었다. 양산이라도 있었음 좋았겠지만 나무가 대신 해주고 있으니 그걸로 만족할까.

이렇게 되면 미젠다와 엘리샤에게 찾아가 각자에게 어울리는 축사와 위로를 던지긴 힘든데 이를 어쩌나.

어찌해야 고민하는데 남자 개인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에드워드가 보이긴 했지만 나는 저 녀석의 1등을 믿고 있었다. 저 녀석도 스포츠 정돈 거뜬히 넘길 것 같거든.

이 상태에서 내가 벤치를 탈출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였고 미젠다를 비롯한 다른 녀석들과 운동회 뒤풀이를 하게 된 것은 꽤나 시간이 지난 뒤였고 난 여기에 앉아 아리야를 조용히 지켜보는 것 밖에 별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나저나, 너무나 평화로운 걸. 저격수라든가 자객이라든가 그런 건 전혀 보이지 않고 그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에드워드와 이준수가 잘 해주고 있는 걸까.

아니면 다 거짓말일까.

차라리 다 거짓말이라면 이 상태로 시간 동결이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다. 나는 아리야의 잠든 얼굴을 쳐다본 뒤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다. 맑기만 하다.

천천히 고개를 내리자 트레일을 지나 도착선을 뛰어넘는 에드워드의 모습이 포착됐고 1등이라는 것을 아는데 별로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너무나 평화롭다. 기분은 매우 쾌청이고 날씨도 쾌청이다. 향긋한 꽃내음마저 코에서 느껴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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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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