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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자드킹 님의 서재입니다.

WG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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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리자드킹
작품등록일 :
2009.08.16 09:43
최근연재일 :
2009.08.16 09:43
연재수 :
8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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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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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글자수 :
330,864

작성
09.06.04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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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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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WGRS - 제 8장(21)

DUMMY

"꽤나 당하긴 했지만 적들도 소규모로 진행해준 덕분에 일은 이 정도에서 그친 듯 합니다. 진호 군도 대단하더군요. 그렇게 잘 싸울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으흠."

나는 후루룩, 미지근한 물을 마시고 신음했다. 보건 선생은 빙긋 웃고서 말을 이었다.

"자세한 이야기와 이 일의 내막은 곧 알게 될 테니 제가 굳이 여기서 설명하진 않겠습니다. 그나저나, 저 여자도 꽤나 우리를 얕본 것 같습니다. 상황이 맞물려서 이렇게 되긴 했지만 둘이서 아리야 양을 납치하려 했다니, 아니면 진호 군이 얕보인 건가요."

"크윽."

입술을 깨물었다. 내 무지. 내 무지 때문에 아리야가 위험에 빠질 뻔 했다고. 이게 말이나 될 소리냐. 젠장.

"자신을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번엔 확실히 적들도 머리를 썼으니까요."

"이 여자가 아군인 척 하고 들어온 걸 보니 말이야. 확실히 내가 얕보인 것 같은데."

보건 선생은 연신 웃기만 했다. 옆에 앉은 독침 남자가 들고 있던 컵을 입으로 가져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길게 기른 머리를 상투를 튼 것도 아니고 뒤로 묶은 것이 꼭 여자 같았지만 이상하게 어울리는 녀석이었다.

그리고 온 몸이 꽁꽁 묶인 여자가 그 옆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몸은 보건 선생이 좀 두드린 덕분에 먼지 투성이에 많이 헝클어진 상태였고 가면은 벗겨졌다. 얼굴은 생각보다 미녀였다만, 별로 놀라지는 않았다. 아니, 놀라고 싶지 않았다. 나를 속인 녀석이라고.

저 여자에게 속았다는 사실이 저 여자를 밉게 보이도록 작용한지도 모르겠다만, 결국엔 내 자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리야는 내 옆에 딱 붙어 아직도 긴장한 얼굴로 앉아있었다. 싸우는 도중 무심코 고백과 이어지는 말을 내뱉긴 했지만 아직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기엔 뭔가 상황이 좀 그렇다. 수많은 역경과 부당한 상황들 속에서 나는 얼마나 아리야에게 내 마음을 어필하려고 노력했는가. 방해도 있었고 나를 혼란에 빠트리려는 두 여자도 있었지만 모두 이겨냈다(?). 뭐, 이 점에선 저 꽁꽁 묶인 여자에게 감사해야겠지. 네가 쳐들어온 덕분에 그런 말을 내뱉게 되었으니까.

"자, 여긴 제가 정리할테니, 진호 군과 아리야는 행사장으로 돌아가주세요."

무슨 소리야. 이렇게 쓰러져 있는 인간들이 널려있는데다가 아직 덜 정리된 거 아니었어?

"뭐,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만 진호 군은 여기 있을 필요가 없으니까요. 일단 돌아가면 모든 사정을 알 수 있을 겁니다. 후훗."

보건 선생은 낮은 웃음 소리를 흘리며 물을 홀짝였다.

"그, 그래. 돌아가자. 여긴 기분 나빠."

아리야는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로 전쟁이 끝나고 난 전장을 둘러보며 내 팔 소매를 잡아당겼다. 후, 뭐, 그래. 어쩔 수 없지. 궁금한 것들도 많고 뭔가 볼일을 보고 덜 닦은 기분이지만 상관 없겠지. 보건 선생의 말대로 돌아가면 다 알 수 있으려나.

"그런데 넌, 어째서 여기서 같이 물을 마시고 있는 거야?"

조용히 앉아 있던 독침 남자에게 갑작스레 질문을 던지자 그는 마시고 있던 물 컵을 내려놓고 나긋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 남자와는 뭔가 말이 잘 통하더군."

응?

"나도 물을 아주 좋아한다네. 물은 만병통치약과도 같은 것. 불로초와 필적하는 것이지."

하이고, 여기 물 신봉자가 하나 더 나왔군. 나는 어이 없다는 한숨을 내쉬고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모르게 아리야의 손을 잡고 일어섰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얼굴이 화끈거렸으니까. 모른 척 하고 있자.

"아, 아리야."

덕분에 말은 흔들렸다.

"이제 가볼까."

"응? 그, 그래."

아리야도 왠지 모르게 긴장 탄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아직 의문이 가득 남아있는 상황을 뒤로 한 채 파이 던지기가 한창 진행 중일 학교 부지를 향해 걸어갔다. 아, 정신이 하나도 없네. 척, 이마에 손을 짚었다. 가면은 벗어던진 덕분에 살결의 감촉이 느껴진다. 앞으로 싸울 때 가면을 지참하는 것은 어떨까 자그맣게 생각했다.




한창 대회가 펼쳐지고 있을 거라고 예상하며 부지에 도착한 우리는 완전 무아지경의 세계를 볼 수 있었다. 모든 인간들이 서로 파이를 던지고 그것들을 뒤집어 쓴 채 웃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뭐, 저들은 충분히 즐거울 것이다. 나도 그 속에 섞여있는다면 그렇게 느낄지 모르겠다. 하지만 제 3자의 입장에 처해버린 이상, 저 모습들은 가히 전쟁터였고 이상하게 보이기엔 충분했다. 이런.

이 작은 아리야가 저 속에 있었다면 견딜 가능성은 제로다. 안 되겠어. 경기가 끝날 때가지 어디, 가까운 곳에 숨어있어야겠다. 또 습격을 당할 가능성은 차치해두더라도 저 파이 전쟁에 휘말리는 것도 나름대로 위험해 보이니까.

적이 다시 나타나리라고는 믿지 않지만 말이지. 나는 아리야의 손을 여전히 잡은 채 행사장의 측면 천막 쪽으로 향했다. 거기는 학교 구석 벤치보다는 안전할 것이다.

그렇게 안정성을 추구하며 행사 위원들이 모여 앉은, 적어도 파이로부터는 안전한 좌석 뒤쪽에 쭈그리고 앉는데,

"짝, 짝, 짝, 짝."

규칙성이 느껴지는 느린 템포의 박수 소리.

나는 흠칫 놀라며 몸을 떨었다. 그건 아리야도 마찬가지였지만.

"아주 대단합니다."

싱긋 웃고 있는 교장의 면상이 보였다. 기생 오라비 면상이 싱글벙글이다. 표정 관리라는 말이 필요한 순간이 지금이라고 추정되었다. 교장이라는 작자를 이렇게 만났는데 왜 이리 기분이 오묘한거지? 뭐라고 해야 하나... 좀, 그렇다. 어정쩡하다고 해야 하나, 왠지 모르게 화가 솟구치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교장은 아예 몸을 돌리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양 옆에 앉아있던 양복을 빼입은 교사로 추정되는 남자 둘도 따라서 일어났다.

"아주 대단해요. 원래 계획과 완벽해졌습니다."

계획? 내 눈썹이 꿈틀거렸다. 순간 아리야의 어깨에 올린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는 것을 깨달은 것도 그때였다. 미안.

"이걸로 완벽해졌다는 겁니다. 완벽 추구. 얼마나 완벽한가요?"

이건 또 뭐하는 작자야? 나는 이 녀석을 확 차버릴까, 생각 하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솔직히 몸에 기력이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거냐고 소리치기엔 변명 거리가 꽤나 많았다. 지친 몸을 강제로 움직인 건 그렇다 치고, 오늘은 너무나 고생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침대가 눈앞에 나타난다면 당장 누워버릴 자신도 있다.

"뭐가 완벽한데?"

적절하게 질문을 던져주었다. 아리야에게도 필요한 의문일 것이다. 초면인데도, 말은 험하게 나갔다. 그래도 교장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두 팔을 벌리고는 밝게 웃었다.

"이번 사태로 사냥개의 주인을 잡을 수 있게 됐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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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도 거의 마지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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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WGRS - 제 8장(6) +5 09.04.02 377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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