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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라 돌아라 강강수월래

왕녀의 외출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어스름달
작품등록일 :
2014.12.01 23:43
최근연재일 :
2017.11.24 03:18
연재수 :
4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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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80,019

작성
15.07.29 07:00
조회
2,025
추천
49
글자
12쪽

투항의 증거

DUMMY

“바이우스를요?”

나는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메담도 놀라 일그러지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녀석도 바이우스와 호박머핀을 선물해줄 정도의 친분이 있다. 그런 만큼, 바이우스를 향한 벨루거의 적개심이 당혹스러운 모양이었다. 이 같은 메담의 반응은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혹시 이것이 계기가 되어 마음을 바꾸진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

내게 있어 바이우스는 굉장히 특별한 사람이다. 어렸을 적 그와 함께한 기억은 거의 나지 않지만 볼 때마다 항상 뭔가 친근하고 그리운 감정이 느껴졌다. 그래서 벨루거의 말은 방금 전 왕을 죽여야 하는 이유를 설명할 때만큼이나 나를 격분시켰다.

“추첨제 때문에 바이우스를 노린다고요? 그런데 그 분은 추첨제 만든 걸 후회하고 있어요. 이제는 그만큼 나랏일을 열심히 해서 그 누구보다도 평민들을 도우려 하고 있다고요. 지금 사람들이 그를 얼마나 따르는지 알아요?”

그 동안 나는 메리가 되어 성 밖을 나가 사람들의 삶을 내 눈으로 직접 살펴보았다. 그를 통해 바이우스가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귀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왕인 내가 질투를 느낄 만큼 평민들을 그를 찬양하고 있었다.

“더 악독한 귀족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하필 바이우스를 노리는 거죠?”

“아가씨가 말한 대로 바이우스는 평민들을 돕는 거의 유일한 귀족이네. 하지만 우리의 목적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의 부당함을 깨닫는 것일세. 그래서 바이우스가 무엇보다 성가신 장애물이 되는 거야.

그의 노력은 비유하자면 당장의 갈증을 풀어주는 정도밖에 되지 않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어깨위에 짊어진 것들을 벗어던질 생각을 하지 않게 되지. 보다 넓은 관점에서 본다면 그의 알량한 호의가 이 불평등한 구조를 존속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는 셈이지.

게다가 그의 직책은 성장. 윈더민 성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지 않나? 트로피로서의 가치도 충분하지.”

“트로피라고요?”

“과거 할크루는 평민들의 힘으로 세상을 한번 뒤집었었네. 어떻게 그렇게 많은 평민들이 오랜 시간 동안 굳어진 고정관념을 벗어나 귀족들에게 대항할 생각을 했을까? 에콰빌리타스를 세우면서 나는 그 비결을 알아내기 위해 고민했네.

할크루가 그만큼 달변가였을까? 그가 추구하는 이상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 하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다른 것이었네. 아주 간단한 이치지. 할크루가 이기고 있었기 때문이야.

서글플 정도로 현실적인 이유.... 평민들이 귀족들에게 착취당하면서도 미련하게 참고만 있는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일세. 귀족들이 자신들보다 더 강하다고 생각하니까.... 할크루를 따랐던 건 단지 그가 귀족보다 강했기 때문이지. 그래서 우리도 우리의 힘을 증명할 트로피가 필요한 걸세.”

벨루거의 논리는 참으로 일관적이었다. 이들은 보다 많은 사람을 계몽시킨다는 확고한 목적을 지니고 있었고 벨루거는 철두철미하게 이를 추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방식이 왠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평민들에게 호의적인 바이우스마저 제거하려 하다니 너무 목적에 집착한 게 아닌가? 아무리 그들이 사회적 약자요, 억압받는 입장이라지만, 그 사실이 그들로 하여금 도덕적이지 않은 선택을 할 권리까지 부여하지는 않는다.


“자. 이제 자네가 해줄 일이 있네.”

벨루거는 굳은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던 메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들을 설득해 주게.”

화살에 맞은 상처 때문인지 평소처럼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맥스가 씩씩하게 외쳤다.

“아무리 그래도 저는 마음을 바꾸지 않을 겁니다. 도련님에게 돌아가고 싶습니다.”

“이보게. 보다시피 이제 더 이상 자네들에게 뭔가 따로 원하는 것이 있는 게 아니야. 이 친구가 성안의 구조는 모조리 알려줄 테니까. 그런데 왜 지금도 자네들 맘을 돌리려 하는지 알겠는가?”

벨루거는 맥스와 마찬가지로 완고한 표정으로 서 있던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자네들이 정말로 마음에 들어. 이건 정말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말이네. 자네들이 꼭 우리와 함께....”

“잠시 만요.”

메담이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리며 벨루거의 말을 끊었다.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게 있는데.... 메리와 맥스는 투항하지 않은 건가요?”

메담의 그 한 마디는 방안의 분위기를 반전시키기에 충분한 파급력을 갖고 있었다. 이 때까지 맥스와 나는 분노하는 자들에게 투항한 메담을 경계하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 자네는 저들이 투항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나?”

벨루거도 우리와 똑같은 생각을 했나보다. 갑자기 불안해졌는지 재차 물어서 확인하려 했다.

“혹시.... 자네가 초에 불을 붙인 건 그 때문이었나.”

“미안해. 아저씨 말대로야.”

메담은 대답을 주저하지도 않고 바로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는다. 가끔 나한테 저럴 땐 정말 열 받았는데.... 벨루거에게 시전 하는 것을 보니 왠지 후련하다. 그는 이제야 모든 걸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돌아보았다.

“어쩐지.... 그래서 너희들이 나를 보고 하나도 반가워하지 않았던 거구나? 내심 서운하게 생각했었는데....”

나는 메담의 말을 듣고 너무도 감격해서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혹시 우리가 걱정돼서 거짓 투항했던 거야? 어디 있는지 찾아보려고?”

“거짓 투항했다고?!!”

벨루거는 격분한 표정으로 메담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리고 이내 석연찮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잘못 봤던 건가? 그 눈빛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는데....”

삽시간에 화제의 중심이 된 메담이 나와 벨루거를 번갈아 보며 대답한다.

“거짓 투항이 아니었어, 아저씨. 얘기를 듣다보니 공감 가는 부분도 많았고... 그 때문에 메리 네가 틀림없이 이쪽에 투항했을 거라 생각했어. 반드시, 무조건 말야. 그래서 나도 투항했던 거야. 그 때만큼은 틀림없는 진심이었어.”

“내가 투항할 거라 생각했다고? 대체 왜 그렇게 생각한 거야?”

나는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왜냐하면.... 메리 너는 남의 밑에 있을 성격이 아니니까. 넌 항상 네가 주도해야만 직성이 풀리잖아?”

뭐? 내가 언제....

“이런 얘기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저도 솔직히 아까 놀랐습니다. 아가씨는 여기 남는다고 하실 줄 알았거든요.”

맥스까지 이렇게 거드니 메담을 뭐라 할 수도 없게 되었다. 이들은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단 말인가?

“아무튼 미안해, 아저씨. 아까는 확실히 진심이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어. 아까 내가 투항했던 건 없던 일로 해주면 안 될까?”

메담은 말로는 부족했는지 입으로 바람을 불어 들고 있던 촛불을 꺼버렸다. 변절한 줄 알았던 메담이 돌아왔다는 사실에 들떠있던 나는 이를 보고 순식간에 불안감에 휩싸였다. 아무래도 저건 너무 도발적인 행동 같은데... 혹시 메담은 벨루거가 마냥 착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하는 걸까?

아니나 다를까 벨루거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얼굴로 우리를 쏘아보고 있었다. 아까 맥스와 나를 죽일지 말지 고민할 때보다 한층 더 섬뜩한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자네는 지금 저 아가씨 때문에 마음을 바꾼다는 말인가? 고작 그런 이유로?”

메담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도 별로 싫지 않지만 나는 메리랑 더 친하거든.”

그래. 메담은 이런 녀석이다. 기사도를 지키려 하면서도 테드와 아이들을 생각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음식을 도둑질하던 녀석. 그에게는 신념이나 철학보다 친분이 있는 사람과의 의리가 먼저였던 것이다.

2대 2의 팽팽한 대립구도가 깨어졌다. 메담도 맥스의 침대 쪽으로 와서 우리와 함께 벨루거를 마주보며 대치한다.

“맥스. 뛸 수 있겠어?”

메담이 속삭이는 목소리로 묻자 맥스가 미안한 얼굴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걷는 것도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둘이 이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벨루거가 은은한 노기가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

“안됐구나, 소년. 한 번 에콰빌리타스에 발을 들인 이상 쉽게 벗어날 수는 없다. 너의 제안은 거절하겠다.”

“정말 미안해, 아저씨. 그러면 어쩔 수 없네.”

메담은 이렇게 답하며 앞으로 한 발짝 내딛었다. 이를 본 나는 메담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대번에 눈치 챘다. 그는 벨루거를 사로잡고 그를 인질삼아 협상을 통해 여기를 빠져나갈 계획이었다.

아무래도 녀석은 나와 비슷한 실수를 하는 것 같다. 벨루거의 나이만 보고 얕잡아 보는 실수 말이다. 내가 보기엔 예전에 나에게 정강이를 걷어차였던, 자타공인 기사단 최약인 메담이 밖에서 복면을 쓴 남자들이 들어오기 전에 그를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그 전에 벨루거를 이길 수 있을 지부터가 의문이다.

여기에 생각이 이른 나도 앞으로 한 발 내딛었다. 여차하면 메담을 도와야 한다. 눈빛으로 신호를 보내 메담에게 내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자 메담도 눈빛으로 내 말에 답변해온다. 내 눈이 잘못된 건가? 자기 혼자 처리할 테니 가만히 있으라는 뜻 같은데.... 이윽고 메담이 제대로 싸우기 위해 치렁치렁한 겉옷을 걷었을 때 나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어....?”

한 번 발을 들인 이상 쉽게 벗어날 수 없다는 벨루거의 말이 비로소 이해되는 순간이다. 메담의 팔꿈치에는 분노하는 자들 중 남자들이 촛불의식 내내 보여주었던, 성난 눈모양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분노하는 자들이 같은 곳에 같은 문신을 하는 목적은 명백하다. 벨루거는 철두철미하고 조심성이 많은 성격이라, 내부인의 배신을 미연에 방지할 장치를 준비한 것이다. 저 문신이 바로 한 번 에콰빌리타스에 가담했던 자들이 등을 돌리지 못하게 만드는 장치였다. 즉 메담은 언제 어느 때라도 익명의 제보에 의해 폭도로 몰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속으로 한탄했다. 메담은 어쩌자고 저 돌이킬 수 없는 낙인을 몸에 새긴 걸까? 조금만 생각하니 답이 나온다. 문신이라는 건 귀족들 사이에 유행하는, 상류층의 문화다. 기사단 내에서 줄곧 따돌림 당해온 메담이 그 지워지지 않는 그림에 대해 잘 모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거리를 재며 벨루거를 향해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던 메담은 내가 놀라서 낸 소리에 고개를 돌아보았다. 그 때문일까? 벨루거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 채고 말았다.

“맹랑한 녀석들이구나. 감히 나를 기만하려 하다니....”

뒤늦게 메담과 내가 돌아봤지만 이미 늦었다. 벨루거는 외부로 이어지는 유일한 통로, 방문 앞에 서 있었다. 그 손잡이를 손에 꼭 쥔 채 말이다.

“아무래도 너희의 마음을 돌리기는 틀린 것 같구나. 좋아. 너희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이제는 너희가 그 선택에 따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할 차례겠지.”

벨루거는 이렇게 말한 후에 밖으로 나가면서 방문을 닫아버렸다. 쾅 하는 소음이 텅 빈 방안에 울려 펴지면서 을씨년스러운 느낌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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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으음 오늘은 너무 피곤합니다 ㅠ

날씨가 너무 더워서 집중이 잘 안되네요 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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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가설 +8 15.08.01 1,989 49 15쪽
86 외부 요인 +4 15.07.31 2,021 45 15쪽
» 투항의 증거 +8 15.07.29 2,026 49 12쪽
84 헛된 희망의 상징 +6 15.07.28 2,063 60 11쪽
83 첫 눈 +9 15.07.26 2,081 52 18쪽
82 두 개의 초 +8 15.07.24 2,166 52 15쪽
81 촛불 의식 +4 15.07.23 2,163 49 13쪽
80 동화를 싫어하는 자 +10 15.07.21 2,003 49 9쪽
79 에콰빌리타스 +4 15.07.20 2,134 52 9쪽
78 응급처치 +6 15.07.19 2,122 51 11쪽
77 미끼 작전 +12 15.07.17 2,015 57 18쪽
76 호박 머핀 +6 15.07.16 2,092 63 12쪽
75 첫 번째 대장 +12 15.07.14 2,235 54 11쪽
74 윈더민의 우상 +8 15.07.12 2,249 48 11쪽
73 흘러가는 나날 +8 15.07.10 2,354 79 11쪽
72 시행착오 +6 15.07.09 2,336 66 16쪽
71 합동 훈련 +8 15.07.07 2,129 58 9쪽
70 선물 +14 15.07.06 2,307 55 12쪽
69 감당 +12 15.07.04 2,343 61 11쪽
68 최선의 선택 +6 15.07.03 2,248 68 12쪽
67 후회할 짓 +10 15.07.02 2,252 67 10쪽
66 순서 +10 15.06.22 2,617 78 14쪽
65 세 번째 계급 +10 15.06.20 2,246 56 16쪽
64 열세 살의 고백 +6 15.06.18 2,071 61 18쪽
63 승자와 패자 +4 15.06.17 2,291 74 11쪽
62 정과 동 +4 15.06.16 1,890 60 12쪽
61 발리언트의 소원 +2 15.06.12 2,088 60 13쪽
60 청혼 +6 15.06.10 2,099 67 11쪽
59 무서운 꼬마 +8 15.06.09 2,162 63 9쪽
58 벨포트의 정령검 +4 15.06.06 2,757 65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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