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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라 돌아라 강강수월래

왕녀의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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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어스름달
작품등록일 :
2014.12.01 23:43
최근연재일 :
2017.11.24 03:18
연재수 :
4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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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80,019

작성
15.07.12 07:00
조회
2,248
추천
48
글자
11쪽

윈더민의 우상

DUMMY

어쩌다보니 바이우스 얘기가 나와 버렸네.... 사실 성장에 대한 말은 꺼내고 싶지 않았다. 하루에 한 번 이상씩 바이우스를 만나고 있지만 나는 그 시간이 몹시 불편하다. 그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얻어맞는 것까지 각오하면서까지 나를 도발하여 내가 처한 상황을 뼈저리게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내게 가장 필요한 조언을 해주었다. 그러나 나는 내 편을 만드는 것을 지레 포기하고 말았다.

이는 순전히 내 성격 때문이다. 메담이나 셀린처럼 착한 녀석들이 아니면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 까다롭고 건방진 성격.... 그 속이 시커먼 작자들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건 도저히 내키지 않는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내가 타협하지 않는 게 정말로 잘못된 일인가? 그들과 어울리려면 필연적으로 나도 그들과 비슷한 성향을 지니게 될 것이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헤니건, 오티즈, 웨버가 왕이 되는 상황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나는 지금까지 페나에서 브란트로서 살아왔다. 바르테인이라는 이름에 대한 소속감이 그다지 크지 않다. 그래서 이 나라가 더 이상 바르테인이 아니게 되어도 상관없었다. 좀 더 솔직한 이야기를 하자면 내가 왕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난 아버지가 누리진 못한 권리를 대신 영위하기 위해 비로소 왕관을 받아들였다. 그 분의 명예에 누를 끼치지 않을 훌륭한 왕이 되는 걸 꿈꿨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훌륭한 왕이란 자기 자신의 욕심보다 나라의 안위를 우선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보다 더 나라를 잘 이끌 사람이 있다면, 물러날 용의가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굉장한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그것이 내 솔직한 생각이다. 그러나 저 세 귀족은 내가 생각하기에 별로 좋은 사람들이 아니다. 아버지가 다스렸어야할 나라를 저들의 손에 맡기고 싶지 않다.

이유야 어쨌든 이번에도 바이우스의 조언을 따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그를 대할 때마다 살얼음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정작 바이우스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나를 대했는데도 말이다. 그는 필요한 최소한의 말만 하고 물러났다. 어쩌면 이것이 원래 바이우스의 성격, 원래 그가 일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차라리 그가 독설을 내뱉던 때가 그리웠다.


여러 가지 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첫 왕녀의 외출을 제대로 하는 데까지 며칠이 걸렸었는데 이후로는 어렵지 않았다. 나는 메리가 되어 성 밖을 종종 드나들었다. 처음의 비밀통로를 찾아다닐 때 세운 목표대로 그 때마다 사람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고 그 뒤에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윈더민 전역에 걸쳐 바이우스의 인기는 엄청났다. 나는 이 사실에 몹시 고무되어 그 이유를 자세히 알아보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0년 동안 바르테인을 다스리셨던 삼촌은 왕위에 오르실 때부터 바이우스를 무척 신뢰하시어 중용하셨다고 한다. 바이우스가 추첨제를 왕에게 제안한 것도 그때의 일이고, 그 결과 성장이면서도 왕성의회와 함께 회의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 같은 특권을 줄 정도로 추첨제의 효과는 엄청났다. 삼촌이 에네버를 함락시키지 못하는 바람에 국가의 위상이 추락하려는 참이었는데 그 갑작스런 생산성의 증가로 바르테인은 최강국의 입지를 지킬 수 있었다.

삼촌 알트론은 무능했다. 귀족들은 이미 그 때부터 저들끼리의 세력다툼에 정신이 없었고, 에네버와 정전협정을 맺은 후로 삼촌은 부쩍 귀족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바이우스는 바르테인의 위기를 미연에 방지한 영웅이었지만 사교성이 부족하여 어느 파벌에도 속하지 않았다. 이에 삼촌은 부담 없이 그에게 성 밖 윈더민 시의 일도 몇 가지 맡기셨다. 당시 윈더민 시를 관리하는 행정관들은 성 안의 귀족들에게 아부하는데 급급하여 자기 일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았다. 그 가운데 괴물처럼 일 잘하는 바이우스가 6월의 소나기처럼 등장했으니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바이우스는 합리적인 정책을 만들어 공정하게 시행했고 이에 시민들은 점차 그를 신뢰하게 되었다. 그러한 가운데 시민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추첨제가 다름 아닌 그의 생각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바이우스의 인기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것이다.


무료 급식도 내가 생각해낸 건데, 성 밖의 사람들은 바이우스가 담당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그의 공으로 생각했다. 왠지 약이 올라 나는 지나가다 말고 몇 번인가 모르는 사람들의 대화에 끼어들어 그건 휘렌델 여왕이 시킨 일이라고 강변하기도 했다.

“아아. 그랬지.”

대개의 경우 이런 반응이었다. 사람들은 여왕 휘렌델에 대해서는 별로 말을 하지 않았다. 엄청난 욕을 먹고 있었던 할아버지에 비하면 그래도 나은 건가? 이따금 내가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될 때는 대부분 국방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였다. 다섯 번째 수호 기사로 발리언트를 넣어줄 때 크루거가 걱정하던 것이 바로 이런 점이었나? 내가 자신들을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지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다.

“연약한 여자가 어떻게 이 나라를 지킬 수 있겠어? 바르테인은 강철거인 정원의 한가운데에 있는데.... 이제 다 틀렸어. 포위되어 도망칠 곳도 없네....”

뒤에서 내 욕하는 자식들은 이렇게 내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성급한 결론을 이끌어냈다. 연약해? 내 발차기에 맞은 다음에도 저딴 헛소리가 나올지 궁금하네.

“이봐. 언제는 왕이 전쟁을 했나? 국경을 지키는 건 영주들이야. 그리고 지금까지 누가 쳐들어왔다는 소문 들은 적 있나?”

역시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논리적 근거를 토대로 주장을 펼쳐나갔다. 그리고 대체로 얼굴도 더 잘생겼다.

“겨우 한 달도 안 지났어. 앞으로의 일은 두고 봐야 아는 거라고. 만약에 소샤이트군이 윈더민 외성을 포위했다고 생각해봐. 그 땐 어떻게 할 거야? 여자가 이끄는 군대가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듣고 보니 그러네. 나는 전쟁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는데 정말 어쩌지? 건국왕 윌리엄은 대단한 전략가라 기상천외한 용병술로 강철거인의 정원에서 가장 거대한 왕국을 세웠는데.... 잠깐? 생각해 보니 가정이 너무 극단적이네. 외성이 포위되었으면 거의 진 거 아냐? 내가 아니라 윌리엄이 왕이라 해도 절망적인 상황이잖아?

“자네 걱정처럼 아무 것도 못하고 당할 것 같진 않아.”

모두들 이 말을 할 때면 거의 모두가 킥킥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라울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마차 창문으로 뛰어 내리는 왕을 본 적 있나?”

“아, 그렇군? 큭큭큭...!”

그 웃음은 얼토당토않은 논리로 나를 깎아내리던 쪽으로도 전염되었다. 난 이에 기분나쁘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비웃는 게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 재미있어서 웃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웃는 게 좋았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메리로 도피생활을 하는 가운데에도 내가 끝까지 놓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왕궁기사단장을 결정하지 않은 것이다. 바이우스의 다른 충고는 지킬 수 없었으니 이것만은 반드시 지키고자 한 것이다.

기사단장의 후보인 두 기사는 서로 사이가 좋은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을 지지하는 오티즈와 웨버는 상대방을 견제하고 경계했다. 즉 크루거와 앤디는 왕성의회가 두 개의 파벌로 나뉜 것과 전혀 관계가 없었다. 그들 중 누가 기사단장이 되느냐에 왕성의회를 통일시킬 실질적인 왕이 결정된다는 사실도 물론 알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왜 오티즈와 웨버는 기사단장 선정으로 승부를 내려 한 걸까? 나는 이를 알아내려고 애썼지만 아무런 근거도 찾을 수가 없었다. 단지 가장 먼저 찾아온 양자택일의 상황이라 그런 걸까? 어쩌면.... 그들은 그저 상대방의 말에 반대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한 번 호기심으로 스피어와 람켄이 함께 있을 때 그들에게 두 후보 중에 누구를 지지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크루거 경이 더 믿음직해.”

메담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가 단지 엄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야. 지금처럼 존경을 받는 건 남다른 책임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지. 예전에 그와 함께 경계 근무를 설 일이 있었어. 우리 분대는 외성의 제 3망루를 지키기로 되어 있었지. 그런데 막상 가보니까 망루가 호우로 무너져 있었어. 지휘관이 지시한 임무를 수행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단 말야. 크루거 경은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이 올 때 중심을 잘 잡아줘. 그 자리에서 역할을 나누어 일부는 망루를 고치고 일부는 경계를 서게 한 뒤 보고하러 갔어. 그가 우리에게 명령을 내리는 건 그 책임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하기 위해서야. 그가 이끌어 준다면 우리는 고민할 필요가 없고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면 돼.”

“나는 바로 그 점 때문에 크루거 경보다 앤디 경이 더 낫다고 보는데....”

발리언트가 메담의 말에 반박했다.

“크루거 경이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지휘관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어쨌거나 아랫사람과 소통을 거의 안하잖아? 반면 앤디 경은 항상 아랫사람과 비전을 공유하시지. 같은 상황이었다면 앤디 경은 왜 망루를 지켜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을 거야. 그러면 앤디 경이 보고하러 갔을 때 돌발 상황이 발생해도 아랫사람들끼리 스스로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겠지.”

앤디와 크루거에 대해서는 합의점을 찾지 못한 두 사람이었지만 다른 의견에 대해서는 생각이 일치했다.

“노드 경이 계셨다면 당연히 노드 경이지.”

“노드 경은 나의 최종 목표야. 바르테인 최강의 기사. 아니 현시대 최강의 기사. 지휘관으로서도 최고였어. 앤디 경과 크루거 경의 장점을 합친 분이셨지.”

노드가 정말 대단하긴 대단하나 보다. 문득 반나절 쯤 지나 수염이 거뭇거뭇 올라온 얼굴이 보고 싶어진다. 지금쯤 어베레드에 도착했겠지. 잘 싸우고 있을까? 아무쪼록 무사히 돌아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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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노드 : 오랜만입니다. 다들 저를 잊은 건 아니겠죠?

크루거 : 너무 오랫동안 안나오셨습니다. 이제는 잊혀질 때도 됐죠.

노드 : 큭 ㅠㅠ

앤디 : 크루거 경도 안심할 때가 아닙니다. 비중이 없어서 반쯤 잊혀졌을 겁니다.

크루거 : 헉 ㅠㅠ

앤디 :  저는 그래도 제 정령검이 주인공과 친해서 가끔가다 이름이 나오는데....

휘렌델 : 요즘에는 앤디의 정령검이 아니라 쫑알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앤디 : 윽 ㅠ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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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8

  • 작성자
    Personacon 二月
    작성일
    15.07.12 08:13
    No. 1

    노드가 기사단장이 되었으면 좋았을텐데요!
    그리고 본인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대개 얼굴이 더 잘생겼다니! 주관적인 맛과 멋이 있어 재밌네요. ㅎㅎ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5.07.12 22:22
    No. 2

    세상에 공정한 사람이란 있을 수 없죠 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8 짜장곱배기
    작성일
    15.07.12 09:20
    No. 3

    노드와 비교당한다치면 앤디와 크루거도 부담이 크겠네요 ㅎㅎ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5.07.12 22:25
    No. 4

    노드가 설정상 완벽한 리더긴 하지만
    앤디와 크루거도 나름 이상적인 리더상들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지금 노드처럼 되는 것을 목표로
    정진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8 메틸아민
    작성일
    15.07.12 13:24
    No. 5

    저도 휘렌델을 지지합니다. 그렇다면...^^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5.07.12 22:25
    No. 6

    메틸님은 여자분이시니 휘렌델이 이쁘게 봐주겠네요 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8 바다해미
    작성일
    15.07.13 00:51
    No. 7

    휘렌델 화이팅ㅜㅜ 맨날 속앓이만 하고있네요.. 에휴 제가볼땐 어린앤데.. 쩝.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5.07.13 22:32
    No. 8

    어리고 실수도 많지만
    명군의 자질도 많이 엿보이죠.
    아마 스펜서도 그런 면을 보고 휘렌델에게
    투자를 했을 겁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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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가설 +8 15.08.01 1,989 49 15쪽
86 외부 요인 +4 15.07.31 2,021 45 15쪽
85 투항의 증거 +8 15.07.29 2,025 49 12쪽
84 헛된 희망의 상징 +6 15.07.28 2,063 60 11쪽
83 첫 눈 +9 15.07.26 2,081 52 18쪽
82 두 개의 초 +8 15.07.24 2,166 52 15쪽
81 촛불 의식 +4 15.07.23 2,163 49 13쪽
80 동화를 싫어하는 자 +10 15.07.21 2,003 49 9쪽
79 에콰빌리타스 +4 15.07.20 2,134 52 9쪽
78 응급처치 +6 15.07.19 2,122 51 11쪽
77 미끼 작전 +12 15.07.17 2,015 57 18쪽
76 호박 머핀 +6 15.07.16 2,092 63 12쪽
75 첫 번째 대장 +12 15.07.14 2,235 54 11쪽
» 윈더민의 우상 +8 15.07.12 2,249 48 11쪽
73 흘러가는 나날 +8 15.07.10 2,354 79 11쪽
72 시행착오 +6 15.07.09 2,335 66 16쪽
71 합동 훈련 +8 15.07.07 2,128 58 9쪽
70 선물 +14 15.07.06 2,307 55 12쪽
69 감당 +12 15.07.04 2,342 61 11쪽
68 최선의 선택 +6 15.07.03 2,248 68 12쪽
67 후회할 짓 +10 15.07.02 2,252 6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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