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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라 돌아라 강강수월래

왕녀의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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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어스름달
작품등록일 :
2014.12.01 23:43
최근연재일 :
2017.11.24 03:18
연재수 :
417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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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80,019

작성
15.06.10 07:00
조회
2,099
추천
67
글자
11쪽

청혼

DUMMY

쇳덩이끼리 부딪치는 시끄러운 소리가 난 탓인지 대기실 밖으로 기사들이 여럿 모였다. 웅성거림 속에 먼저 온 기사들이 뒤늦게 도착한 동료들에게 상황을 설명해주는 목소리가 들렸다. 방금 전에 발리언트에게 박살난 기사의 이름이 디에고라는 것도 주워들었다.

기사들은 복도 밖을 지나가면서 이쪽 방 안을 기웃거리며 훔쳐보았다. 안 그래도 람켄과 맥스 때문에 불편했던 나는 이들 때문에 더욱 얌전히 앉아 있어야만 했다. 시간이 지나면 들어갈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인원이 줄지를 않는다. 한 무리가 돌아가면 그만큼의 숫자가 다시 와서 수를 유지했다. 조바심에 발을 구르던 중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들은 발리언트가 싸운 소식을 듣고 여기로 오는 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확실히 아니다. 지금 방안을 쳐다보는 기사들은 발리언트가 아닌 메담에게, 보다 정확히는 그의 새 갑옷에 부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아마 디에고도 여왕이 직접 하사했다는 메담의 갑옷을 구경할 목적으로 여기 왔던 건지도 몰랐다.

어쨌든 이는 새로운 구경꾼들이 발리언트의 실력에 대해 모른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가만히 있는 발리언트에게 시비를 걸 녀석들이 또 다시 나올 수 있다는 의미였다. 디에고처럼 노골적으로 모욕하는 얼간이는 없었지만, 개중 싸가지 없는 몇몇은 발리언트와 맥스를 번갈아 보면서 비릿한 미소를 짓고는 했다.

고양이처럼 얌전히 앉아 있던 발리언트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누군가 도화선에 불을 붙여주기를 바라는 눈빛이었다. 또 한 차례 자신의 힘을 증명할 기회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 살벌했던 싸움이 눈앞에서 다시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못 긴장되었다. 그런데 발리언트의 변화를 초조한 눈으로 보고 있는 사람이 나 이외에 한 명 더 있었다.


“존경하는 기사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우레와 같은 소리와 함께 맥스가 벌떡 일어났다. 그는 성큼성큼 문 쪽으로 걸어가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복도 쪽에서 서성거리는 기사들을 향해 외쳤다.

“저희 도련님과 저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오해하시는 것 같은데, 저와 도련님은 절대 그런 사이가 아닙니다. 저희 도련님은 분명 저를 싫어하십니다! 얼마나 저를 괴롭히시는지 아십니까?”

모를 리가 있나. 아저씨 비명이 얼마나 우렁찬데?

“며칠 전만 해도 술을 먹였다고 엄청나게 맞았습니다! 단지 실수였을 뿐인데 말입니다!”

그건 아저씨가 맞을 짓을 한 거야.

“저희 도련님은 절대 남자를 좋아하시는 취향이 아닙니다! 그 증거로 이미 한 여자에게 푹 빠져 있으십니다! 조만간 고백하신다고 합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이 어린 녀석이 벌써부터 짝사랑 중이야? 이 때까지 발리언트는 맥스가 돌발행동을 벌이는 것을 시큰둥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다 이 말을 듣자마자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바보야! 뭘 떠벌이고 있는 거야?!”

이와 같은 발리언트의 반응은 오히려 맥스의 말이 사실임을 시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복도 밖에 모인 기사들은 이제 메담의 갑옷이 아닌, 부끄러움에 얼굴이 창백해진 발리언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야. 발리언트가 지금 몇 살이지? 조숙한데?”

“고백할 거라고? 잘 됐으면 좋겠네.”

그들은 놀리듯 응원의 말을 던지고는 킥킥 거리며 자신의 대기실 쪽으로 각기 흩어졌다. 복도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되자 흡족한 얼굴로 등을 돌린 맥스는 발리언트의 성난 눈빛과 마주하고는 흠칫 놀라며 물었다.

“도련님.... 혹시나 싶어 여쭤보는데..... 비밀이었습니까?”

발리언트는 힘찬 어퍼컷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둘이 맞고 때리는데 집중하는 동안 메담과 나는 놀란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람켄 경이 좋아한다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

나는 작은 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메담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하지만 나는 왠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맥스를 신나게 두들겨 패고 있는 발리언트에게 가만히 물었다.


“혹시 람켄 경이 좋아한다는 사람.... 셀린이에요?”

이건 정말로 막연한 추측이었다. 처음 만난 날을 되돌아보면 저 꼬맹이가 계속 타박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셀린을 풀어주려 했단 말이지. 별의별 핑계로 셀린을 계속 방으로 부르는 것도 뭔가 이상하고.

“지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발리언트가 퉁명스러운 얼굴로 나를 보며 일갈했다. 역시 아닌가? 하긴 귀족인 람켄이 셀린 같은 하녀를 마음에 둘 리가 없지. 게다가 나이 차이도 9살이나 되니까.....

“이건 제가 말한 거 아닙니다! 저 아가씨 스스로 맞힌 겁니다!”

....라고 생각할 때 발리언트보다 약간 늦게 맥스가 외쳤다. 순간 발리언트의 얼굴이 사과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세상에... 귀까지 새빨개졌다. 뭐야? 내가 맞힌 거야? 정말로 셀린이었어? 갈팡질팡하던 내게 발리언트가 확신을 주었다.

“마, 말하지 마! 셀린에게 말하면 너 가만 안 둘 거야!”

아까 디에고란 기사에게 냉정하게 엄포를 놓을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자신이 더 절박한 쪽이 되자 발리언트는 성급한 어린애가 되어버렸다. 일단 여기서는 그러겠다고 대답해야겠다.

“알겠습니다. 람켄 경. 말하지 않겠습니다.”

“진.... 진짜야! 말하면 안 돼? 꼭이야!”

그러다 울겠다. 발리언트는 얼마나 당황했는지 그 중대한 사실을 간접적으로 누설한 맥스를 때릴 생각도 못하고 있다.


람켄의 마음을 사로잡은 소녀가 셀린이라니 생각하면 정말 신기한 일이다. 일단 람켄은 기사고 셀린은 하녀이다. 나이도 셀린이 아홉 살이나 더 많다. 그리고 솔직히 셀린은 선이 엷은 인상이라 눈에 확 띄게 예쁜 얼굴은 아니었다.

그래서 발리언트가 더 대견하다. 이 녀석 나이도 어린 주제에 여자를 보는 눈은 정확하다. 사실 셀린은 같은 여자 입장에서 보면 정말 좋은 애였다. 성실하고 성격도 좋고 여성스럽다. 내가 남자였어도 무조건 셀린을 선택할 것 같다. 발리언트는 셀린의 이런 면들을 용케 발견한 걸까? 어쩌면 나이가 어린 까닭에 엄마나 큰 누나처럼 다정하고 상냥한 셀린에게 끌렸을 지도 모르겠다.

“도련님!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습니다! 누군가 셀린에게 이 사실을 발설하기 전에 도련님이 먼저 고백하는 겁니다!”

맥스가 난데없이 소리쳤다. 그러자 발리언트가 그제야 성난 눈으로 그를 쏘아보며 매섭게 외쳤다.

“원래는 정식으로 기사가 된 그 날 하려고 했어. 그런데 네 녀석이 우유에 술을 타는 바람에 정신을 잃었잖아!”

“으윽. 죄송합니다!”

발리언트는 화를 가라앉히려는 듯 우유를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그의 비밀을 알게 되니 저 우유를 마시는 습관도 얼른 커서 셀린과의 나이차를 줄이려는 몸부림으로 보였다.


“....그러니까 반드시 수호기사가 되어야 하는 거야. 이번에 수호기사가 된다면 그 때 고백할 거야.”

발리언트의 말에 맥스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되물었다.

“그런데 수호기사가 되시는 게 고백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나는 발리언트의 심정을 대충 알 것 같았다. 아직 어린 그에겐 이성에게 고백하는 것이 굉장히 부끄럽고 두려운 일일 것이다. 그래서 정식기사가 되거나 수호기사가 됨으로써 얻는 성취감, 자신감으로부터 고백에 필요한 용기를 끌어낼 생각인 것 같다. 그러나 맥스의 말도 틀리지만은 않았다. 발리언트가 수호기사인지 아닌지는 셀린의 입장에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다. 어차피 귀족이라는 점은 똑같으니 말이다.

어린 람켄은 자신의 마음을 설명하는 것이 서툴러서 맥스의 말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뾰로통한 얼굴로 맥스를 무시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자 맥스가 답답하다는 얼굴로 발리언트를 다그쳤다.

“원래 남자가 이렇게 겁내고 우물쭈물 하면 될 일도 안 되는 법입니다! 자고로 여자는 용기 있는 남자를 좋아합니다!”

“....정말?”

뭐.... 용기 없는 남자보다는 낫지. 그런데 발리언트 녀석.... 지금 저 맥스의 말에 설득되고 있는 것 같네?

“제가 몸소 증명하겠습니다! 도련님은 제가 하는 거 보고 그대로 따라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맥스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때까지만 해도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르는 채, 맥스의 일거수일투족도 놓치지 않으려 하는 발리언트만 보고 있었다.

“이쁜 아가씨!”

나는 맥스가 부르는 소리에 그를 돌아보았다. 맥스는 당당하게 가슴을 쭉 펴고 말했다.

“저와 사귑시다! 결혼합시다!”


.....

.......

여왕 휘렌델 바르테인. 18세.

청혼을 받았다.

하하하....

“사실 처음 봤을 때부터 무진장 이쁘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눈에 반했습니다! 저도 평소에 도련님한테 많이 혼납니다! 아가씨도 혼나고 있는 거 보고 천생연분이라 생각했습니다!”

맥스는 떠들어 댔다. 메담은 놀라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내 얼굴을 보고 있다. 발리언트는 초조한 얼굴로 내가 무슨 대답을 할 지 살펴보고 있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대답을 아직 안했구나. 너무 어이가 없어서....

“싫어요.”

“헉!”

맥스의 입술 사이로 고통스러운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나는 그가 또 청혼할까봐 너무 두려워서 한 번 더 확실하게 못을 박았다.

“싫다고요!”

순간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맥스의 몸이 줄어들었다. 이 아저씨는 덩치에 맞지 않게 울먹이는 눈으로 내게서 등을 돌려 람켄 쪽을 향했다.

“도련님.... 저 차였습니다!”

아까 호언장담한 것이 무색할 만큼 불쌍하게 들리는 한 마디였다. 맥스에게 한 수 배우려 집중하고 있던 발리언트는 그의 괴로운 눈물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도 맥스와 같은 신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자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힌 것이다.

“저리가, 멍청아! 부정 타!”

발리언트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안아 달라고 오는 맥스를 외면해 버렸다. 혼자 울고 있는 맥스를 보고 있자니 왠지 미안해졌다.

“자꾸 절 아가씨라고 부르는데 제 본명은 알고 계세요? 그것도 모르는 사람이랑 어떻게 결혼하겠어요?”

적어도 거절당한 이유라도 명확히 밝히려는 의도였는데 아무래도 저 아저씨는 내 뜻을 잘못 이해한 것 같다.

“이름을 알면 결혼해 주는 겁니까?”

“아니요.”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제 울어도 소용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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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벨포트 : 어서 와. 나는 벨포트. 휘렌델을 좋아하는 남자 1호지. 물론 누구처럼 아직 차이지는 않았지만 말야. 후하하.

맥스 : 그래도 저는 누구처럼 비호감으로 찍히지는 않았습니다!

벨포트 : 크....! (부들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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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6

  • 작성자
    Lv.48 바다해미
    작성일
    15.06.10 07:17
    No. 1

    만담ㅋㅋㅋㅋㅋ
    아 근데 휘렌델 하녀모습에 반하다니 ㅋㅋㅋ 소설이 개그 콤비때문에 점점 웃겨짐ㅋㅋㅋ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5.06.10 22:55
    No. 2

    대놓고 웃기려고 만든 캐릭터입니다. 맥스는 ㅎㅎ
    앗, 근데 람켄도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운동좀하자
    작성일
    15.06.10 08:12
    No. 3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5.06.10 22:55
    No. 4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작성자
    Lv.28 짜장곱배기
    작성일
    15.06.10 10:22
    No. 5

    맥스가 무려 프로포즈를 했네요 ㅎㅎ
    메담이 아직 캐릭터가 좀 흐릿해보인달까? 강대한 무력과 매력을 지닌 먼치킨급 캐릭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뭐랄까.. 자기가 주인공인 에피소드에서도 좀 뭍히네요 휘렌델과 같이 나와서 그렇긴하지만요 ㅎㅎ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5.06.10 22:56
    No. 6

    메담은 자타공인 기사단 최약의 인물입니다.
    많은 걸 기대하시면 안 됩니다 ^^;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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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미끼 작전 +12 15.07.17 2,015 57 18쪽
76 호박 머핀 +6 15.07.16 2,092 63 12쪽
75 첫 번째 대장 +12 15.07.14 2,235 54 11쪽
74 윈더민의 우상 +8 15.07.12 2,249 4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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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합동 훈련 +8 15.07.07 2,129 5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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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최선의 선택 +6 15.07.03 2,248 6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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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세 번째 계급 +10 15.06.20 2,246 56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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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승자와 패자 +4 15.06.17 2,291 74 11쪽
62 정과 동 +4 15.06.16 1,890 60 12쪽
61 발리언트의 소원 +2 15.06.12 2,088 60 13쪽
» 청혼 +6 15.06.10 2,100 6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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