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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라 돌아라 강강수월래

왕녀의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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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어스름달
작품등록일 :
2014.12.01 23:43
최근연재일 :
2017.11.24 03:18
연재수 :
4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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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80,019

작성
15.06.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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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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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글자
12쪽

정과 동

DUMMY

기사들 간의 결투는 예전부터 다른 어느 것과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인기 있는 구경거리였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일정이 진행된 수호기사 선발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법 많은 사람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윈더민 시내에까지는 소식이 퍼지지 않았을 시간이니, 경기를 관람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왕성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었다. 메담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귀족과 평민 가릴 것 없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싸움에 진 메담을 비웃었다. 마치 그가 지기만을 기다렸던 것처럼 즉각적인 반응이었다. 경기장 입구에 서서 메담을 기다리던 나는 그 꼴들을 보니 부아가 치밀어 참을 수 없었다. 꿈안개의 손잡이를 잡고 내 목소리를 여왕의 환영에게 전달했다.

“모두 정숙하라! 감히 누가 신성한 기사들의 결투에 야유를 보내는가!?”

크루거도 속으로 벼르고 있었는지 여왕 휘렌델의 명을 받자마자 성난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왁자지껄 떠들던 무리들은 무안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메담에게 조소가 담긴 시선이 쏟아지는 것까지는 여왕 휘렌델도 도저히 어찌 할 수가 없었다.

싸움에 진 메담이 평상시처럼 멋쩍게 웃는 얼굴로 터벅터벅 걸어온다. 그 미소가 더 이상 인자해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어딘가 텅 비고 쓸쓸한 웃음 같다. 이렇게 남들에게 무시당하고 조롱 받는 게 달가울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이 녀석은 내가 상상도 초월할 수 없는 수모를 견디고 있었고, 저 미소는 그 힘겨운 저항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나는 허무하게 지고 돌아온 메담을 극진히 보살폈다. 어느 정도였냐면, 하녀들이 나를 보살필 때만큼 정성을 다했다. 투구를 내 손으로 직접 벗겨주고, 메담의 입에 컵을 직접 대어 물을 먹여주었다. 그리고 수건으로 이마에 흥건한 땀을 닦아주었다.

메담은 이렇게 귀족으로서 대우받는 것이 매우 낯설고 부담스러운 것 같았다. 아까도 물을 건네주었지만 그 때는 방안에서 푹 쉬고 있던 터라 지금과 같은 감흥이 없었던 것이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얼굴로 나를 물리치려 했다.

“괜찮아, 메리. 나 혼자 할 수 있어.”

“가만히 있어, 임마.”

나도 모르게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나왔다. 여기에 위축된 메담은 가만히 서서 내가 하는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러다 잠시 후 의아한 얼굴로 조용히 물었다.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이는데.... 내가 뭔가 실수한 게 있어?”

“그래. 경기에서 진 거....”

나는 왠지 그 말이 그의 패배를 책망하는 것 같아 얼른 정정했다.

“네가 실력이 다른 기사만 못한 건 어쩔 수 없지. 미안해.... 그냥 사람들이 널 비웃는 걸 보니까 속이 상해서 그래.”

지금 내가 정성을 다해 보살펴 주는 것이 메담에게는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었던 것 같다. 시간이 갈수록 녀석의 표정이 점점 변해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어느 순간 메담은 그 실없는 미소를 완전히 거두고 있었다.

“잘할 수 있었는데....”

녀석의 씁쓸한 중얼거림을 듣고 나는 내심 놀랐다. 지금까지 내가 파악한 메담이라는 녀석은 진 걸 분하게 여길 사람이 아니었다. 최소한 방금 전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잔뜩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그는 여왕 휘렌델이 선물한, 번쩍거리는 갑옷을 내려 보면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갑옷이 너무 새 거였던 것 같아. 움직이는데 좀 뻑뻑하더라.”

뭐, 이 자식아? 기껏 생각해서 사줬더니.... 고맙다는 말은 한 번도 안 했으면서.... 휘렌델로서는 매우 화나고 억울한 상황이었지만 그 감정을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

“수고했어.”

지금은 녀석에게 힘을 줄 말만 하고 싶다.


선발전에서 탈락한 메담과 나는 지금까지 함께한 의리 때문인지 자연히 시합을 앞둔 발리언트와 맥스와 합류했다. 이렇게 된 이상 녀석의 건승을 빌어줄 생각이었는데 발리언트는 메담을 보자마자 차가운 말부터 내뱉었다.

“네 실력이 이 정도인 줄 알았으면 굳이 여기 참전하란 말도 안 했을 거야.”

원래대로였으면 실없이 웃으며 이 말을 받아넘겼을 메담이었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그저 굳은 얼굴로 못들은 척했다.

발리언트도 그 한 마디에 그쳤을 뿐, 더 메담을 긁거나 하진 않았다. 그는 다가올 시합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여러 가지 의미가 담긴 선발전이라 대합실에서는 잠시 동요했었지만 기본적으로 발리언트는 냉정하고 침착한 성격이었다. 자신의 이름이 호명될 때까지 초조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경기장 안으로 들어갈 때의 걸음걸이는 긴장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힘차지도 않았다. 평상시와 똑같았다.

관객들은 메담이 입장할 때와 마찬가지로 경기장에 들어서는 발리언트에게 모멸적인 눈으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발리언트가 첫 번째 상대인 스콧을 간단히 제압하자 그들의 시선은 서서히 바뀌어 갔다. 2회전에 출전할 때는 그의 분전을 응원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그리고 이 꼬마 기사는 또 다시 승리를 거둠으로써 그들의 성원에 보답했다.

승리를 거둘 때마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기사들이 발리언트를 대하는 태도가 사뭇 달라져갔다. 시야가 마주칠 때마다 먼저 인사를 해오는 건 물론이고, 간혹 실없는 농담을 던지며 말을 걸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승승장구하던 발리언트는 마침내 대진표에서 예고된 대로 벨포트와 맞서게 되었다. 네 명의 수호 기사를 선출하는 오늘 경합의 준결승이라 할 수 있는 8강에서 말이다. 지금까지의 경기를 모두 관전한 사람이라면 가장 기대할 수밖에 없는 대결이었다. 압도적인 실력으로 상대를 제압해온, 가장 눈에 띄는 두 명의 기사들이 바로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벨포트는 정말 대단한 기사였다. 그의 경기를 보면서 나는 선배 기사들이 그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수호기사 선발전에 지원한 기사들은 대부분 무보직 기사들이었는데, 그 중에서 그의 실력은 단연 돋보였다.

그의 검술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고요함이었다. 가만히 서서 상대가 달려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일순 검을 뻗어 허점을 찔러댄다. 마치 상대를 가르치려는 것 같은 그 여유롭고 고상한 태도가 벨포트의 건방진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발리언트는 벨포트의 검술과 정반대로 매우 동적인 검술을 구사했다. 아무래도 다른 기사들보다 완력이 밀리다 보니 검에 몸무게를 실어 공격에 묵직함을 더해야 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발리언트는 원심력, 회전력 등 가능한 모든 동력을 다 동원했으며 검을 휘두를 때마다 그 조그만 몸도 함께 이리저리 튀어 다녔다.

서로 정반대의 검술을 구사하는 두 기사는 마침내 경기장 위에서 마주 보았다. 결투를 시작하기에 앞서 벨포트가 입술을 움직이며 뭔가를 말한다. 다른 사람 귀에는 그 작은 소리가 안 들리겠지만 내게는 꿈안개가 있었다. 정령검은 두 사람이 하는 말을 내 귀에 그대로 전달해 주었다.

“너의 경기를 모두 지켜봤다. 그 동안 얕보아서 미안하군, 발리언트. 너를 어엿한 한 사람의 기사로 생각하고 진심으로 상대해주겠다.”

저 봐. 은연 중 자신을 상대방보다 위에 놓고 있다. 발리언트도 지금까지의 상대와는 달리 꽤 상기된 표정으로 대답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야. 너와는 꼭 한 번 겨뤄보고 싶었어, 벨포트. 하지만 이런 부담스러운 자리는 원치 않았는데....”

“진정한 기사라면 결투에 임할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는 법이다. 발리언트. 검술은 충분하지만 기사도에선 아직 멀었구나.”

발리언트가 수호 기사 선발전에 지원한 건 셀린에게 고백할 용기를 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벨포트는 단지 발리언트가 핑계를 대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벨포트의 말을 모욕으로 생각했는지 발리언트가 먼저 번개같이 몸을 던지며 전력으로 검을 휘둘렀다. 벨포트가 검을 들어 막자 쇳덩이끼리 부딪히며 챙! 하는 소리가 났다.

땅에 착지한 발리언트의 표정이 일순간 어두워진다. 그도 벨포트 정도 되는 실력자가 첫 번째 일격에 쓰러질 거라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막힐 걸 예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발리언트가 나름 고민 끝에 실행에 옮긴 공격이 이렇게까지 효과가 없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발리언트의 온몬을 던진 공격에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은 벨포트는 짐짓 여유를 부리며 말을 이었다.

“너는 이번에 네 실력을 증명했다. 앞으로 모든 기사들은 전과 같지 않은 태도로 널 대할 것이다. 하지만 검술만으로는 부족해. 너는 네가 얼마나 기사다운 정신을 가지고 있는지 증명할 필요가 있다.”

"기사도?"

"이제 저 가짜 기사와 어울리는 건 그만두어라. 너를 위해 하는 말이다. 진정한 기사라면 저 기사로서 기본도 안 된 메담과 어울릴 이유가 없을 것이다."

벨포트의 목소리에는 메담에 대한 경멸과 증오가 그대로 묻어나왔다. 발리언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확실히 메담의 실력만큼은 기사로서 실격일지도 몰라.”

“놈은 평민 출신이다. 근본부터 우리와 다르지.”

두 싸가지가 메담을 헐뜯는 것을 들으며 나는 점점 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데 갑자기 발리언트가 고개를 흔들었다.

“벨포트. 나는 어제 정식 기사가 되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처음 접하는 훈련 투성이였지. 그런 나에게 먼저 와서 이것저것 알려준 사람이 바로 메담이었어. 그리고 내가 아는 바로 기사도란 한 번 신세를 진 사람에게 등을 돌리지 않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후에야 나는 깨달았다. 이제 다른 기사들은 발리언트를 동료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람켄은 그들을 제쳐두고 아직까지 메담과 함께 행동하고 있다. 기대했던 것에 못 미쳤던 메담의 실력에 실망한 것과는 별개로 의리는 끝까지 지키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걱정해서 한 말인데 어쩔 수 없군. 가짜 기사와 사이좋게 패배의 쓴 맛을 느껴봐라.”

벨포트는 발리언트가 메담을 두둔하고 나오자 꽤 약이 올랐나 보다. 언제나 상대가 먼저 공격해오기를 기다렸던 그가 이번에는 먼저 발리언트의 가슴팍에 검을 찔러갔다.

발리언트의 첫 번째 공격이 벨포트의 자세조차 흐트러뜨리지 못한 것과 달리, 발리언트는 벨포트의 공격을 몸을 틀어 피하느라 크게 휘청거렸다. 벨포트는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재빨리 검을 거두고 두 번째 공격으로 몸통을 노린다. 발리언트는 그야말로 아슬아슬하게 그 공격을 피했다. 그러나 어느새 벨포트는 세 번째 찌르기를 뻗고 있었다.

발리언트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반짝거린다. 생각해보면 벨포트가 처음으로 선제공격을 하는 것처럼, 공처럼 여기저기 튀어 다니면서 공격 일변도로 경기를 끝내왔던 발리언트가 수비하는 입장이 된 것도 처음이었다. 그래서 벨포트는 발리언트의 방어 수법에 대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발리언트는 정말로 균형을 잃었던 것이 아니었다. 휘청거리던 그의 발걸음은 벨포트를 속이기 위한 장치인 동시에, 그가 준비한 공격을 위한 도움닫기였다. 그 준비된 공격이란 바로 벨포트의 세 번째 공격을 피하는 것과 동시에 검을 뻗는 역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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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굉장히 오랜만에 올리는 새 글입니다.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3일 연속으로 약속이 잡히는 바람에.... ^^; 


벨포트 : 사실 나는 지금까지 등장한 남자 캐릭터 중에서 가장 미남인데.... 왜 그 사실은 언급되지 않는 걸까?

휘렌델 : 대신 재수없다는 말은 잊지 않고 꼬박꼬박 해주고 있어 ^^

벨포트 : ㅠ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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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48 바다해미
    작성일
    15.06.16 20:13
    No. 1

    와 굉장히 역동적으로 움직인다는게 느껴지네요ㄷㄷ 그보다 메담을 위해서라도 꼬마기사님이 이겨주었음좋겠는데 말이죠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5.06.16 21:54
    No. 2

    오늘 결과가 나올 거예요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8 메틸아민
    작성일
    15.06.16 20:54
    No. 3

    잘봤습니다.
    그런데 간이역은 이번주에 연재 안되나요?
    건우와 지은이 다음이야기 일주일이나 기다렸는데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5.06.16 21:55
    No. 4

    저도 쓰고 싶어서 일주일이나 기다렸습니다 ㅠㅠ
    아우.... 생각해둔 대사와 장면들이 많은데
    냉동실에 넣어두었음 좋겠네요 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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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헛된 희망의 상징 +6 15.07.28 2,063 60 11쪽
83 첫 눈 +9 15.07.26 2,081 52 18쪽
82 두 개의 초 +8 15.07.24 2,166 52 15쪽
81 촛불 의식 +4 15.07.23 2,163 49 13쪽
80 동화를 싫어하는 자 +10 15.07.21 2,003 49 9쪽
79 에콰빌리타스 +4 15.07.20 2,134 52 9쪽
78 응급처치 +6 15.07.19 2,122 51 11쪽
77 미끼 작전 +12 15.07.17 2,015 57 18쪽
76 호박 머핀 +6 15.07.16 2,092 63 12쪽
75 첫 번째 대장 +12 15.07.14 2,235 54 11쪽
74 윈더민의 우상 +8 15.07.12 2,249 48 11쪽
73 흘러가는 나날 +8 15.07.10 2,354 79 11쪽
72 시행착오 +6 15.07.09 2,335 66 16쪽
71 합동 훈련 +8 15.07.07 2,128 58 9쪽
70 선물 +14 15.07.06 2,307 55 12쪽
69 감당 +12 15.07.04 2,342 61 11쪽
68 최선의 선택 +6 15.07.03 2,248 68 12쪽
67 후회할 짓 +10 15.07.02 2,252 67 10쪽
66 순서 +10 15.06.22 2,617 78 14쪽
65 세 번째 계급 +10 15.06.20 2,246 56 16쪽
64 열세 살의 고백 +6 15.06.18 2,071 61 18쪽
63 승자와 패자 +4 15.06.17 2,291 74 11쪽
» 정과 동 +4 15.06.16 1,890 60 12쪽
61 발리언트의 소원 +2 15.06.12 2,088 60 13쪽
60 청혼 +6 15.06.10 2,099 67 11쪽
59 무서운 꼬마 +8 15.06.09 2,162 63 9쪽
58 벨포트의 정령검 +4 15.06.06 2,757 65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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