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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라 돌아라 강강수월래

왕녀의 외출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어스름달
작품등록일 :
2014.12.01 23:43
최근연재일 :
2017.11.24 03:18
연재수 :
4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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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2,302
추천수 :
14,829
글자수 :
1,880,019

작성
15.06.09 07:00
조회
2,161
추천
63
글자
9쪽

무서운 꼬마

DUMMY

수호 기사 선발전에 지원한 참가자들은 대기실로 이동되었다. 선발전이 벌어지는 동안 메담의 보조를 해주기로 결심한 나는 그를 따라나섰다. 페나에도 기사들이 있었고, 그들이 서로 무예를 겨루는 경기장도 있었다. 페나에서 보았던, 기사들이 한데 모이는 커다란 대기실을 생각하고 있던 나는 기사들 각자에게 독방이 제공되는 것에 생소함을 느꼈다. 새삼 수도 왕성의 호화스러움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복도를 지나칠 때 나는 저 멀리 꿈안개가 만들어낸 환영이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저게 환영이라는 걸 알고 있는 나조차 순간적으로 착각할 만큼 자연스러웠다. 꽤 잘 만들었네.... 햇빛에 의한 반사광까지 세밀하게 재현되었다. 이는 모든 각도에서 볼 수 있는 시야를 지닌 정령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뭐야? 똑바로 보고 다녀!”

어떤 건방진 기사놈이 나와 부딪칠 뻔하자 한 마디 쏟아내면서 지나갔다. 그러나 나는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었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나 자신은 저기 위에 앉아 있는 휘렌델의 환영과 똑같은 옷을 입고 있다. 그런데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저 환영과 내가 상반된 입장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내가 나를 보는 기분은 뭔가 이상했다. 이런 독특한 경험을 해볼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기사단장의 망토를 두르고 앉아 있는 휘렌델 바르테인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이 호화로운 왕성에 잘 어울리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 사실이 왠지 낯설다. 저 금빛 왕관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는 건 내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목표다. 휘렌델이 제법 왕답게 보이는 이 현상은 내가 조금이나마 그 목표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의미일까.

“으앗?”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던 나는 코 앞까지 다가온 메담의 얼굴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메담은 미안한 기색도 없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 얼굴을 뜯어보았다. 아까의 경험 때문에 오금이 저린 나는 메담의 저 꿰뚫어보는 재능이라는 것이 꿈안개의 생각만큼 대단한 것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었다.

“역시 닮았어.”

메담은 단상위의 환영과 나를 번갈아 보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내가 바로 여왕 휘렌델일 거라는 생각은 못하는 모양이었다. 환영과 나를 동시에 목격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함부로 그런 말 하지 마. 너 혼자만 큰일 나는 게 아니라 나까지 잡혀갈 수 있단 말야.”

눈을 부라리며 불퉁거리자 메담은 더 이상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러나 속으로는 그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


메담과 나는 배정받은 대기실에 도착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방 안에는 발리언트와 맥스가 서 있었다. 람켄 역시 방을 배정받았을 텐데 왜 여기에 있는 걸까? 나는 내심 못마땅했다. 그들이 보고 있는 자리에서는 하녀 메리가 기사 메담을 편하게 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너희들도 방을 받지 않았어?”

메담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나 보다. 그의 물음에 발리언트와 맥스가 동시에 대답했다.

“일단 등록은 해두었지만 메담 너라면 도망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도련님께서 저와 단둘이 한 방에 있으면 그 망측한 소문이 더 퍼질지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어쩐지 맥스가 또 발리언트에게 엉덩이를 걷어차이고 있네?

“실은 메담 경이 또 도망칠까봐 감시하러 왔습니다!”

맥스가 정정했다. ....그렇다는데 믿어주자. 어쨌든 이렇게 된 이상 그들을 쫓아낼 수도 없게 되었다. 그래서 대진표가 나올 때까지 방에서 함께 기다리기로 했다.

발리언트는 나이에 맞지 않게 말수도 적고 얌전한 녀석이었다. 메담의 새 갑옷을 본 맥스가 호들갑을 떨며 난리를 피우는데도 퉁명스러운 얼굴로 무시할 뿐이었다. 눈매도 사납게 생긴 것이 보고 있노라면 고양이가 생각났다.

“어이? 너희들 여기까지 와서 연애질이냐?”

그리고 이 작은 고양이는 지나가던 기사가 던진 말에 곧바로 반응하여 발톱을 세웠다.

“지금 뭐라고 했어?”

아까 나를 향해 지었던 싸늘한 표정이다. 어린애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당찬 표정에 순간적으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 기사는 기가 차다는 얼굴로 방 안으로 들어오며 험악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한테 성질내는 거야? 이 어린 자식이.... 저 헐렁한 놈한테 이겼다고 해서 네 놈이 기사라고 생각해?”

발리언트가 다른 누구의 방도 아닌 메담의 대기실에 온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았다. 기사단 최하위인 메담과의 결투에서 이겨 정식 기사가 된 견습생. 기사들이 이 어린 애를 자신들과 동등하게 여길 리가 없었다. 출신성분 때문에 겉도는 메담과 발리언트는 사실 같은 처지였던 것이다. 그 억지스러운 소문이 악의적으로 빨리 퍼진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덤벼라. 내가 기사라는 걸 실력으로 증명해주마.”

발리언트는 주저 없이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복도에 있는 기사를 향해 그 짧은 팔을 뻗고는 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그러자 그 기사는 기가 차다는 얼굴로 어깨에 잔뜩 힘을 주며 성큼성큼 방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원칙적으로 넌 아직도 견습생이야! 알아?!”

발리언트는 그 기사가 발을 딛는 순간 재빨리 검집을 뻗어 그의 다리를 걸었다. 그 직후 왼발을 축으로 크게 돌았다. 그 기사의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린 순간, 갑옷을 입은 발리언트의 등이 회전으로 얻은 추진력을 힘껏 받은 상태에서 그의 가슴을 강타했다.

쾅!

나는 그 기사가 고통에 찬 무거운 숨소리를 토해낸 다음에야 발리언트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음을 깨달았다. 상대가 검을 뽑지 않은 이상 기사라면 똑같은 조건에서 싸움에 응해야 한다. 하지만 발리언트는 저 기사에 비해 턱없이 어리고 작았다. 평범한 육탄전으로는 상대가 될 수 없다. 만일 주먹으로 때렸다면, 혹은 발로 찼다면 저런 묵직한 충격은 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몸 전체를 무기로 사용한 것이다.

“이 쥐새끼 같은 놈이!”

발리언트에게 일격을 허용했단 사실에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남자가 검을 뽑았다. 그러자 발리언트 역시 차가운 눈빛을 흘리며 검을 뽑았다. 이제 양쪽 모두 치명적인 무기를 소유하게 되었다. 그 말은 육탄전을 할 때는 공격 면에서 상당히 제한적이었던 발리언트가 상대와 대등한 입장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캉! 캉! 캉!

갑옷과 검이 번개처럼 번쩍이며 부딪치는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발리언트의 검술은 굉장히 역동적이었다. 팔로만 검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몸까지 던졌다. 이 녀석 보통이 아니다. 어른들과 대등하게 싸우기 위해 자신의 몸무게를 십분 활용하는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그래서 상대 기사도 발리언트의 공격을 가벼이 막아내지 못했다.

“그만해. 발리언트.”

메담의 목소리가 들린 후에야 나는 발리언트의 검이 그 기사의 목을 꿰뚫기 직전에 멈춰있는 것을 발견했다. 발리언트를 얕보았던 기사도 그의 차가운 눈빛에서 죽음의 공포를 느꼈는지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건 정식 결투가 아니잖아. 목숨을 빼앗을 수는 없어.”

발리언트는 메담이 하는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 기사를 향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 내가 누군지 말해봐.”

“기, 기사다...! 넌 기사야!”

기사가 허둥지둥 대답했다. 그 위풍당당했던 기세는 이미 온데간데 없었다.

“맥스는 나의....?”

“충성스러운 종자일 뿐, 전혀 이상한 관계가 아니야.”

“틀렸어. ‘멍청한 종자’가 정답이다.”

맥스가 서운해서 한 소리 한 것 같았지만 내게는 그 말을 들을 여유가 없었다. 발리언트가 힘을 주어 기사의 목을 감싼 갑옷 틈으로 검을 밀어 넣었기 때문이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는데 다행히 검은 곧 멈추었다. 도로 뽑았을 때 검 끝에는 약간의 피가 묻어 있었다.

“또 한 번 연애 어쩌고 하는 소릴 지껄여봐. 그 때는 여기서 끝나지 않을 거야.”

뒤에서 보고 있는 나도 섬뜩해지는 목소리였다. 그 기사는 완전히 공포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발리언트가 검을 내려놓자 그대로 방 밖을 나가 달아나 버렸다.

발리언트는 상황이 정리되자마자 우리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사실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시 다소곳하게 팔짱을 끼고 의자 위에 앉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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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발리언트 : 그런데 휘렌델은 어떻게 저 동작들을 다 설명하는 거지? 평범한 사람한테 저렇게 간파당할 정도로 내가 느리진 않을 텐데....

메담 : 일단 이 소설의 화자 역할이라 어쩔 수 없이 상황을 설명한 거지. 실제로 저 동작이 눈 앞에 펼쳐졌을 때는 그냥 빠르다는 느낌만 받았을 걸?

맥스 : 그게 아닙니다! 휘렌델은 평범한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전적을 보면 격투기 쪽에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 틀림 없습니다!

휘렌델 : 그런데 너희들.... 내 본명을 말하고 있네? 그 말은 여기서는 내가 여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단 뜻이잖아? 근데 왜 반말하니? ^^

셋 :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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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두 개의 초 +8 15.07.24 2,166 52 15쪽
81 촛불 의식 +4 15.07.23 2,163 49 13쪽
80 동화를 싫어하는 자 +10 15.07.21 2,003 49 9쪽
79 에콰빌리타스 +4 15.07.20 2,134 52 9쪽
78 응급처치 +6 15.07.19 2,121 51 11쪽
77 미끼 작전 +12 15.07.17 2,015 57 18쪽
76 호박 머핀 +6 15.07.16 2,092 63 12쪽
75 첫 번째 대장 +12 15.07.14 2,235 54 11쪽
74 윈더민의 우상 +8 15.07.12 2,248 48 11쪽
73 흘러가는 나날 +8 15.07.10 2,353 79 11쪽
72 시행착오 +6 15.07.09 2,335 66 16쪽
71 합동 훈련 +8 15.07.07 2,128 5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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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후회할 짓 +10 15.07.02 2,252 67 10쪽
66 순서 +10 15.06.22 2,617 78 14쪽
65 세 번째 계급 +10 15.06.20 2,245 56 16쪽
64 열세 살의 고백 +6 15.06.18 2,071 61 18쪽
63 승자와 패자 +4 15.06.17 2,291 74 11쪽
62 정과 동 +4 15.06.16 1,889 60 12쪽
61 발리언트의 소원 +2 15.06.12 2,088 60 13쪽
60 청혼 +6 15.06.10 2,099 67 11쪽
» 무서운 꼬마 +8 15.06.09 2,162 63 9쪽
58 벨포트의 정령검 +4 15.06.06 2,757 65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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