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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쉘오리진 님의 서재입니다.

다시쓰는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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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쉘오리진
작품등록일 :
2021.05.12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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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9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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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1쪽

양면28(1부 완)

DUMMY

“어? 아저씨 오랜만에 오시네요? 일 필요하세요?”


“그래, 기왕이면 큰 거로 좀 다오.”


그 말에 접수원은 서류를 뒤적이더니 이윽고 서류 한 장을 들이밀었다.


“그럼 이건 어떠세요? 국토부 의뢴데 해수 구제 요청이에요. 의뢰비는 백 원에 마리당 오십 원, 전리품은 잡은 사람이 임자, 어때요?”


“쯧, 요즘 몸도 예전 같지 않은데.”


머리를 벅벅 긁은 그는 별다른 수가 없다는 듯 손을 내밀었다.


“다오, 서명하게.”


“자, 여기요.”


적당히 이름을 휘갈긴 그는 접수원에게 적당한 십자궁이 있는지 물었다.


“십자궁이요? 근데 보통 사냥꾼분들은 활 쓰시지 않나...?”


“요즘 힘이 좀 달려서 말이다. 여차할 땐 써야지.”


“... 그러면 차라리 다른 안전한 의뢰를 하시는 게 어떠세요? 고라니 사냥 의뢰 같은 것도 있는데”


“막둥이가 학교에 입학했거든.”


“와...! 축하드려요!”


학교에 입학했다는 건 곧 신분 상승의 사다리를 반쯤은 탔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들도 시험을 보고 관료가 되거나 혹은 자신이 바라는 다른 일을 할 수야 있겠지만 애초에 시험에 합격하거나 기업에 들어갈 수 있는 확률 자체가 학교의 학생들이 더 높았으니까. 거기서 똥만 안 싸고 열심히 하면, 적어도 중간은 가면 신분 상승은 거진 확정이었다.


“아직 몸이 멀쩡할 때 벌어야 뒷바라지를 하지. 하여간 십자궁이나 좋은 거로 다오.”


서류를 뒤적이다 창고에 들어간 접수원은 이윽고 커다란 십자궁 하나를 꺼내왔다. 제대로 견착할 수 있는 총기와 같은 개머리판이 달린, 철제 몸체에 무언가 달려 있었다.


“어차피 한 방에 잡아야 하잖아요. 어때요? 이거 진짜 물건이에요.”


혀를 차려는 그를 향해 접수원은 고개를 들이밀고선 은근하게 속삭였다.


“거기다 이거 보통 물건은 아니에요. 이거 무려 군에서 시험하려던 시제품이라고요. 몇 정은 보관되고 몇 정은 각지에 뿌려졌다는데 이건 먼저 사는 분이 임자라구요.”


“그런데 왜 여기에 있다니?”


“비싸서요.”


그 말에 그는 순순히 납득했다. 옻칠이 되어 잘 가공된 개머리판은 ‘나 비싸요’라고 말하는 듯했으며 탄성을 가진 강철 자체도 여간 물건이 아니었다. 거기에 일반적인 활이나 십자궁에 그리고 이 십자궁은 한눈에 봐도 장전하는데 한세월 걸릴 것 같은 비주얼이었다. 그래도 위력이나 이런 건 좋으니까 군에서도 쪼물락거렸겠지만.


“... 이거 화살도 금속이네?”


“강철제라네요.”


그에게는 이 무기가 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안타깝게도 군에서는 대차게 까인 십자궁이지만 사냥꾼에게는 그 단점이 꽤 희석되었다.


우선 장전속도, 군에서는 장전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짧은 시간 안에 화력을 집중적으로 투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사냥꾼은 은밀하게 한 발, 한 발이 중요한 사람들이다. 즉, 이 어차피 한 번 빗나가면 다음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사냥꾼에게는 별 다른 단점이 되지 못한다.


비용 역시 마찬가지. 아바레스트계열의 십자궁에 한 발의 화력!을 강조하다 보니 가끔 목재 화살이 깨지는 경우가 발생했다. 그러니 아예 통짜 강철로 화살을 만든 것인데... 강철은 굉장히 비싼 물건인지라 이걸 소모품으로 쓰고 회수조차 불명확하니 군에서 이걸 썼다간 나라 말아먹기 참 좋았다.


하지만 사냥꾼 입장에서는 좀 이야기가 달랐으니... 어차피 한 발이 빗나가면 두 번째 사격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활보다 훨씬 정확하게 조준이 가능하고 장전만 해두면 원하는 때에 사격이 가능한데다가 한 발의 화력이 미치도록 강한 이 십자궁은 그야말로 매력쟁이가 아닐 수 없었다. 화살값? 맹수 하나 잡아다가 가죽 팔면 한동안 화살은 걱정할 필요도 없을 텐데.


그 외의 단점들도 마찬가지. 어차피 대량으로 운용할 것도 아닌지라 생산성의 문제는 아예 해당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비용은 이 강력한 십자궁이 그저 애물단지가 되면서 꽤 싸졌다.


“한 번 쏴 봐도 되냐?”


“그럼요, 제가 쏘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전직 궁병이었던 그가 한 발 쏴보고 느낀 것은...


“이걸 군에서 보급하려 했다고?”


“연구만 했다나 뭐라나요.”


“이걸? 화살 만드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데?”


“그니까 까였죠. 적당히 세야지 이건... 어휴”


구진현의 ‘큰’ 꿈이 담긴 십자궁은 이리저리 까이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는 이 애물단지가 퍽 마음에 든 모양이었지만.


“이거, 내가 사 갈게.”








“이게 내 문젠가?”


“에이, 그게 왜 전하 때문이랍니까? 세상에 이상한 사람 한 둘은 있는 법입니다. 너무 어심에 담아두지 마십시오.”


시원스런 답에도 지영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분명 자신은 그런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 유도한 적도 없고. 하지만 지영이 즉위하고 나서 퍼진 일종의 과학과 기술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아예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는 할 수는 없었다. 특히나 이리 급격하게 변했다면 더더욱.


“흠... 그렇기는 하네만”


그렇다곤 해도 인식의 변화를 더 끌어낼 필요성은 느끼긴 했다. 이 속도라면 기술의 발전을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으니까. 도구로 사용해야 할 기술에 끌려다니는 것처럼 우스운 일은 없었다.


“각 관공서에서 한글 교육을 하고 있었지?”


“예, 원하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글을 배울 수 있게 했습니다.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관공서에서 지원 물품 받거나 여러 가지 일을 할 때 조금씩 글을 배우는 경우도 있지요.”


“글을 배우게 할 때 사상교육을 좀 해야겠어. 어떻게 생각하나?”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면 나쁠 건 없을 겁니다. 문제는 그 내용이겠죠.”


지영은 목을 풀며 말했다.


“그건 이제 자네랑 나랑 교육부랑 힘쓸 부분이지.”


그렇게 한창 사상교육을 위해 토의를 하고 있자니 수석비서관이 다가와 조용히 속삭였다. (비서실장이 공석이거나 같이 회의에 참가하고 있을 때는 수석비서관이 그 역할을 대행한다. 그렇기에 수석비서관 역시 발언권이 강한 편이었다.)


“전하, 공작이 유언을 남기고 있답니다.”


그 말에 지영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지영이 아무런 말도 없이 나가자 수석비서관은 짧게 이유를 설명했다. 그 사이에 양순은 이유를 대강 듣고서 지영을 보좌하러 향했고 회의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머릿속에 다른 잡념이 들어설 새도 없이 숨을 헐떡이며 온 지영이 생각보다 멀쩡해보이는 설차의 모습에 당황하고 있자니 옆의 의사가 그 이유를 넌지시 알려주었다.


“조금 전에 혼절했다가 이제는 좀 괜찮아졌습니다.”


“... 그런가. 알겠다.”


의사가 조용히 물러난 후 지영은 물끄러미 설차를 바라보다 이내 한 마디 내뱉었다.


“진짜 할아범 다 되었군”


“흐흐... 제 나이가 이제 팔순에 가까우니 당연히 그렇겠지요.”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니 멀쩡한 모습에 지영이 약간의 안도를 표하고 있자니 설차가 담담히 찬물을 끼얹었다.


“얼마 남지 않았나이다.”


“... 그런 말 말게나. 육 년 전에도 건강이 안 좋다 해놓고 지금까지 정정하게 살지 않았는가”


“죄스러우나 전하의 바람은 이루어드리기 힘들 것 같습니다.”

“공작!”


“제 몸이기에 제가 잘 압니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이만하면 오래 잘 살지 않았습니까? 팔순에 가깝게 살았으니 천수를 누렸지요.”


“...”


환갑잔치가 괜히 있겠는가. 전근대에 온갖 위험을 비껴가 60까지 사는 것은 충분히 축하받을 일이었기에 잔치를 크게 벌인 것이다. 하물며 일흔일곱의 나이까지 살았으니 현대를 기준으로 해도 그리 모자라게 산 것은 아니었다.


“난... 나는... 아직 공작이 필요하네”


“은퇴한 지 오래인 노구가 무에 필요하시답니까? 전하의 곁에는 훌륭한 신하들이 많습니다.”


설차는 따뜻한 눈길로 지영을 바라보다 이내 입을 열었다.


“무례하다 생각지 않으신다면... 노신의 마지막 충언을 들어 주시렵니까?”


“... 당장 내일 가는 것도 아니잖나”


“하하하... 전하, 그때 노신이 제정신이라는 보장이 없지 않습니까. 죽음은 사람을 솔직하게도 해준다지만 미치게도 하는 법입니다. 할 말이 있으면 멀쩡할 때 하고 가야지요.”


자신의 죽음이 머지않은 사람이 하는 말치고는 너무 담담했기에 지영은 목 안이 콱 막히는 느낌을 애써 무시하고 간신히 입을 열었다.


“... 경청하겠네...”


“이전에... 이제 기억조차 가물한 제 청년 때였더랍니다. 그때 제 딸아이가 무에 그리 급한지 세상을 떴지요. 아시지 않습니까? 지금이야 좀 나아졌다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은 아무런 말 없이 훌쩍 세상을 등진다는 것을요.”


전보다는 나아졌다지만 아직도 한국의 신생아 열 명 중 한두 명은 꼬박꼬박 죽어 나갔다.


“그때의 심정은 감히 말로 표현하지 못하겠나이다. 제 모친상 때도, 부친상 때도 저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것만 같았더이다. 하지만 보십시오. 하늘은 푸르고 땅은 여전히 우리를 부드럽게 품어주지 않습니까? 제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 줄로만 알고 주저앉아 있는 것을 제 어린 딸아이가, 부친이, 모친이 원하겠습니까? 그것이야말로 부모와 자식의 도리를 저버리는 짓입니다.”


설차는 손바닥 안의 온기와 미세한 떨림을 느끼며 부드러이 미소지었다.


“그러니 전하, 한 사람과의 작별에 너무 감정을 쏟지 마소서. 이 재주 없는 노신은 중원의 공자도, 맹자도 혹은 성인도 아니지만, 감히 생각컨데 망자를 기리는 데에는 사흘을 슬퍼하고 그의 업적을 기리며 스스로의 삶에 충실하고 기일에 그를 추억하는 것이면 족합니다.”


지영은 멍하니 설차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아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자신은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어야 하는 것에 대한 걱정이 반쯤은 씻겨 내려간 느낌이었다.


“... 고맙네. 공작의 말을 잊지 않겠네”


“흐흐, 그러시다면 눈물이나 좀 그치고 말씀하시지요.”


“... 내 감동 돌려내게”


“나중에 유품 속에서 찾아보십시오. 제가 잘 보관해 두겠나이다.”


그 말에 지영은 피식 웃었다. 아까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언제나와 같은 분위기로 돌아왔다.


아마 인생도 마찬가지겠지. 아무리 슬프고 지쳐도 충실히 살다가 보면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의 삶으로 돌아오리라.


작가의말

자... 이렇게 1부가 끝났습니다.
사실 계속 이어가려면 이어갈 순 있는데 그렇게 되면 이 소설은 도대체 어디까지 길어질지 참... 주인공 와서 화약 만들기까지 대강 200화 정도 걸렸는데 이걸 시간대 스킵 없이 화약 대량생산의 빌드업을 하면... 음... 어... 예. 물론 앞으로 빌드업을 안 할수는 없지만 소설 내용 '빌드업'이 전부인것도 좀.

그런 이유로 1부는 여기서 마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생각한 대로 마감이 된 것 같아요. 한 세대의 마무리와 함께 1부의 마무리가 같이 되었다 생각합니다.

2부는 곧바로 연재됩니다. 본래의 계획은 기말고사 전에 1부를 모두 끝내고 시험 보고 며칠 쉬었다 2부를 연재하려 했는데 기말고사 한 1~2주 전부터 연재주기가 느려진 덕분에 이렇게 되었네요;;;

2부라 해도 특별히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시간대야 좀 건너뛰겠지만 하던대로 그대로 연재할 예정이니까요. 그냥 제 나름의 틀 구분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니 독자 여러분, 한 이틀, 길면 사흘 후에 다시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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