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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쉘오리진 님의 서재입니다.

다시쓰는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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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쉘오리진
작품등록일 :
2021.05.12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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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9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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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면21

DUMMY

그녀, 내은비는 지급된 관복을 입고 궁으로 향했다. 역사적인 첫 출근날, 어엿한 사무관임을 뜻하는 녹색의 관복이 유난히 반짝거렸다. 특히나 첫 출근이라 오늘의 일정은 대략적인 업무의 소개와 면담이 있다는 걸 제외하면 없었기 때문에 갈색 밭 속에서 은비의 녹색 관복은 유달리 밝아 보일 수밖에 없긴 했다.


그러니 여자라는 특수성과 몇 없는(사실상 각 분야 수석들만 입은) 녹색 관복이라는 조합에 온갖 시선이라는 시선은 다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은비는 그런 시선들을 자연스럽게 무시하며 궁으로 들어갔다. 이런 시선은 첫 번째 시험에 붙을 때도, 그리고 떨어졌을 때도, 그 이전에도 받아왔던 것이기 때문에 이제 와서 내색할 필요는 없었다. 결국에 자신은 수석이고 저들은 아니니까(물론 은비는 지금까지도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사실 그것보다는 더 중한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수석 합격자들에게 주어지는 왕과의 독대 시간!


한 분야의 수석 합격자쯤 되면 그래도 상위 0.1% 안에 든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왕과 독대를 해도 아주 이상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별다른 일이 없다는 가정하에 7급의 수석 합격자들은 그 세대를 이끌어 갈 인물 중 한 명이 될 확률이 높았으니까. (참고로 은비가 본 기계공학 분야의 응시자는 총 2,126명이었으며 그중 합격자는 45명이고 은비는 거기서 수석을 차지했다!)


이 시험에 응시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왕이 어떤 사람인지를 대강 잘 알고 있다, 아니 정정하자면 그가 세운 업적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러니 만약 독대 시간에 왕한테 잘못 찍히면 관료 생활이 아니라 정말로 인생이 쫑날 수도 있었다! (물론 지영이 그렇게까지 생각 없이 행동하는 사람인지는 의문이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잘 보이면 인생이 필 수도 있다는 뜻이지. 그리고 은비는 둘 다 원치 않았다. 지금도 관심이라면 이 작은 배가 터지도록 먹고 있었고 왕의 관심까지 받았다간 체할 것 같았으니까! 그래도... 왕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긴 했다.


합격자들이 모여 대강 업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왕을 만날 수 있었다! 물론 아주 짧게 지나가는 시간이긴 했지만 어쨌건 만난 건 만난 거였다. 왕은 삼십 년을 즉위한 사람답지 않게 굉장히 젊었다. 그러니까... 동안이라는 뜻이 아니라 은비에게 오빠가 있었다면 딱 저 정도이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안타깝게도 은비의 위에는 죄다 언니라 정확한 비교는 어려웠지만.


그리고 오후가 되자 은비는 기다리던 왕과 독대를 할 수 있었다. 은비는 교육받은 대로 정중히 묵례하고 자리에 앉았다.(집무실의 공간과 가구 배치를 생각한다면 거기서 무릎을 꿇거나 절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색한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누가 사장실에서 그런 행동을 하겠는가?)


책상 위에는 서류가 적당히 쌓여 있었고 책장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화분 몇 개와 찻잔과 주전자, 물통이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화려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책상과 책장, 의자의 목질과 덮인 천과 가죽을 보면 하나같이 값비싸고 튼튼한 물건인 건 확실해 보였다.


“신기한가?”


“예? 아니, 아닙니다.”


“보통 처음 온 사람들은 대부분 반응이 그렇더군. 하지만 집무실이 화려해 봐야 뭐 한단 말인가? 황금으로 된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본들 업무가 더 잘 되기라도 하겠나.”


지극히 상식적인 말이라 은비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은 안 했지만, 이 가구들 역시 황금 못지않게 비싼 것 같았다. 책상이나 책장은 어떠한 뒤틀림도 없이 견고하고 중후하게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은은한 향마저 풍기고 있었다. 거기에 옻칠 또한 굉장히 섬세하게 되어 있다는 걸 은비 같은 문외한도 자세히 들여다보니 느낄 수 있었다.


“우선 수석 합격을 축하하네.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인데”


“감사합니다, 전하.”


“이번 시험에서의 문제들이 어땠는가? 내 듣기로 욕을 많이 먹었다던데”


그 말에 은비는 자신이 머금고 있던 녹차를 집무실로 내뱉어 온 집무실에 싱그러운 녹색 향기를 가득 채우는 참사를 낼 뻔했다. 지영은 즐겁다는 듯이 싱글싱글 미소지으며 은비를 보고 있었고 은비는 어떤 말을 해야 무난하게 넘어갈지 그 어떠한 때보다 맹렬히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그 공백의 시간이야말로 대답이었는지 지영은 낄낄 웃으며 차를 홀짝였다.


“아마 오만 생각을 했을 것이야. 덕분에 이번 시험에서는 창의적인 답이 굉장히 많이 나왔지. 수험생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이런 결과가 굉장히 기껍다네. 왜인 줄 알겠나, 수석?”


방금 전의 말이 그저 농담이었다면 지금의 질문은 진지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저 웃던 눈이 지금은 왜인지 웃으면서 자신을 꿰뚫어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앞으로의 기술은... 책에 없기 때문입니까...?”


장고 끝에 내놓은 답에 지영의 표정은 애매했다.


“흐음...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닐세. 미래의 기술은 책만으로는 알 수 없기는 하지. 하지만 그게 의미하는 게 무엇이겠나? 이젠 우리 앞에 있는 게 없다는 소리라네.”


그 충격적인 발언에 은비는 입을 헤 하고 벌렸다. 지영의 그 말은 ‘이제 우리가 기계공학 분야에서 제일 앞섰다는 것을 확신한다!’와 같은 뜻이었다. 심지어 옆에 저 거대한 당나라가 있는데도!


사실 2등이 되는 법은 쉽다. 국가나 단체의 총력을 기울여 1등이 남긴 발자취를 맹렬히 쫓으면 그만이다. 이미 1등이 가장 효율적인 길을 만들어 놓았기에 거기에 집중적인 투자를 할 수만 있다면 2등은 누구나 될 수 있다.


하지만 1등은 다르다. 앞에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바른길을 찾아서 나아가야 한다. 그러니 온갖 시도를 하고 온갖 실패를 해 가며 사방팔방으로 걷는 것이다. 한 시대를 이끌었던 영국도, 현대를 이끄는 미국도, 자세히 알아보면 뭐 이딴 걸 만들었지? 라고 생각할 만한 물건들이 뒤져도 뒤져도 나온다. 다 어디가 정답인지를 들쑤셔 보다가 나온 부산물들이다. 아니면 일부 괴짜의 작품이거나.


“그래서 수석의 답안을 보고 하루빨리 수석을 만나고 싶었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수석의 답안이 기계공학의 미래를 보여준다 생각했거든.”


은비는 점점 규모가 커지는 이야기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거기에 지영은 추가로 한국의 미래를 위한 일곱 개의 큰 축이라며 ‘언어, 경제, 강철, 화약, 기계, 선박, 화학’을 운운했다. 어쩌다 보니 자신이 일곱 개의 큰 축 중 하나의 미래를 제시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누구도 나에게 말하지 않았지. 인생을 먼저 걸어본 자로서 조언하자면 생각만 하는 것과 말을 하는 것과 행동에 옮기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네”


온기가 사라져가는 찻잔에 든 차를 한 번에 들이킨 뒤 왕은 자신에게 한 장의 서류를 내밀었다. 뭔가 하고 확인했던 은비는 눈을 끔뻑이고는 몇 번 비빈 뒤 다시 확인했다.


‘최소 후작위를 보장할 것, 3년간 특진시켜 최소 관리관에 임명할 것, 성과급으로 금 오천만 원을 지급할 것, 그 외의 예물로 비단, 보석 등등...을 지급할 것.’


“수석 자네는 처음으로 그걸 말로 옮겼지. 그것도 내가 직접 확인하는 답지에 직접. 그 발상과 용기, 실행력에 내 한 번의 기회를 주겠네. 내가 제시하는 요구조건을 달성하게. 달성만 한다면 거기에 적혀 있는 보상을 주지. 원한다면 더 줄 수도 있고.”


은비가 당황하며 답을 못하고 있자 지영은 못을 박았다.


“기회는 한순간에 왔다가 환상처럼 사라지지.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건 극히 일부뿐일세. 지금, 여기에서 결정하게. 기회를 잡을 것인지, 아니면 평범을 택하고 기약 없이 기회를 기다릴 것인지.”


“하겠씁! 끄엑...혀...”


은비는 기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가보자는 심정에서 요구사항도 듣지 않고 그냥 질렀다. 그리고 이런 특별한 기회가 솔직히 언제 오겠는가? 대부분의 사람은 평생 오지 않을 것이다. 이런 기회가 온 것 자체가 특별했고 더 특별해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 대가로 몇 분간 혀를 입안에서 대굴대굴 굴려야 하긴 했지만, 이 정도면 싼 것 아닌가.


“흐흐, 좋은 자세일세. 그럼 내 산하의 연구동을 하나 내어주겠네. 거기서 연구를 시작하게. 인원을 빠릿한 놈들로 몇 추려 보낼 테니 수석이 알아서 뽑고. 물자 등의 지원은 내가 우선권을 써줄 테니 재무부에 가서 타내면 될 것이야. 그리고 반년에 한 번씩은 내게 진행 상황을 보고하게. 나도 일이 어찌 돌아가야 하는지는 알아야지.”


은비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얼마 뒤 서른 명 규모의 ‘삶은 만두 연구동’이 정식 출범했다.





“하아... 그래, 해군도 새 전투함을 연구할 때가 되긴 했지.”


지영은 한숨을 쉬며 ‘신형 전투함과 호위함 개발 계획’에 도장을 쾅 찍었다. 지금 해군이 사용하고 있는 전투함과 호위함은 15년 전의 물건이었다. 지금까지 써먹은 시간만큼 앞으로 써먹을 수 있기는 했지만, 그것이 구형이라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했다. 심지어 해군 인원들은 ‘신형 수송함이 우리 전투함보다 좋다’라는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를 하고는 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그 말은 사실이었다.)


한국은 그간 해양에 많은 투자를 했고 기존의 ‘부산-연해도-산둥-규슈-인천’ 쪽만 왕복하면 그만이었던 과거와는 다르게 지금은 거기에 ‘유구, 북해도’가 추가되었다. 그리고 일부 함대는 유구의 밑까지 정찰하기도 했다. 기존의 전투함들은 끽해야 부산에서 규슈를 가는 정도의 항해능력에 그쳤기 때문에 연해도나 부산에서 북해도로 가거나 제주에서 유구로 가는 항해길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리고 어차피 해군용 신무기가 개발되고 있으니 전면적인 교체는 불가피한 일이었고 퇴역과 동시에 민간용으로 개수해 민간에 뿌려버릴 예정이었다. 이전에 긁어모았던 구형 배들은 슬슬 수명이 다 되어가고 있었기에 그들을 대체할 무언가가 필요했고 적어도 수명이 15~20년은 남은 저 배들은 그 목적에 적합했다.


“장관도 알다시피 국방과학연구소하고 협력하면 되네. 거기서 신무기가 만들어지고 있으니 그걸 사용할 수 있게 설계해야겠지.”


“걱정 마십시오, 이미 많은 부분에서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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