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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쉘오리진 님의 서재입니다.

다시쓰는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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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쉘오리진
작품등록일 :
2021.05.12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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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6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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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양면27

DUMMY

“상단이 더 먼 곳까지 와주었으면 한다고요.”


“그렇소. 한시가 급한 친구들에게 이곳 해삼시는 너무 멀지.”


그 말에 새로 북해도 도지사로 부임한 이징운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리 교육 때 배웠던 것을 기억한다면 반도의 길이는 대략 1100km 정도 된다고 했었고 한국의 영향력이 미치는 연해도 최북단부터 해삼시까지의 거리는 600~700km 정도라고 했었다.


그 광활한 토지에 한국의 상단이 가는 곳은 고작해야 해삼시까지 전부. 이들이 아무리 말 타고 빨리 달린다지만 그래도 이 넓은 연해도에 상단의 거점이 해삼시에만 있는 건 자신이 봐도 좀 문제가 있어 보이긴 했다.


“음...”


“어려움은 알고 있소. 하지만 우리로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 어떻게 안 되겠소?”


상단 하나가 움직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다 연해도의 인구도 생각보다 꽤 되는 편이라 그들의 수요를 어느 정도는 맞춰 주려면 낙타 몇 마리에 짐 실어서 가는 정도로는 택도 없었다.


철도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도로는 깔려야 했고 도시까지는 아니어도 번창한 마을 정도는 있어야 했다. 그리고 연해도는 넓은 땅이었고 적어도 두 개의 거점은 마련해야 했다.


지형 또한 그다지 좋진 않아서 동쪽은 산이고 서쪽에야 평지 지형이 살짝 있는 수준이라 도로를 깔려면 어지간해서는 서쪽에다가 거점을 만드는 편이 이로웠다. 아니면 항구를 하나 더 만들던가. 그런데 해삼시 북방의 항구는 겨울에 얼어붙을 가능성이 커서 결국엔 도로를 까는 게 나아 보였다.


이 정도 규모의 사업이라면 일개 도지사가 할 수 있는 일을 아득히 넘어섰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일의 필요성과 그 방식에 대해 상세하게 보고를 올리는 것이 고작.


“침옥 어르신은 어디를 생각하고 계십니까.”


“으음... 중앙까지 와주었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힘들겠지. 우선 첫 번째로 이곳은 어떻소?”


침옥 어르신이 짚은 곳은 현재 러시아의 키로프스키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주변에 강도 흐르고 서쪽으로 조금만 가면 거대한 호수도 있지. 평지라서 길을까는 데 크게 어려움도 없을 것이오. 도지사께서도 오시지 않았소이까?”


“인계받을 때 둘러보았지요. 그곳이라면... 그나마 낫겠군요. 그럼 조금 더 자세히 조사한 다음에 보고를 올리긴 하겠지만... 너무 기대는 마십시오. 지금 중앙에서 하는 사업이 굉장히 많습니다. 아예 손 놓고 보지는 않겠지만...”


“정 안되면 채권이라도 발행을 요청할 순 없소? 우리가 조금씩 모아서 보태주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의외의 의견에 이징운은 입을 헤 벌리고 침옥을 바라보았다.


“한국인 다 되셨군요.”


그 말에 침옥은 기꺼운 듯이 껄껄대며 웃었다.








35년.


지영이 이 세상에 온 지도 어언 35년이 지났다.


현대에 살았던 것보다 월등히 많은 시간. 한 번 정해진 정체성은 쉬이 바뀌지 않아 현대의 감각과 기억이 살아있고 스스로가 현대인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이 시대에 아주 훌륭하게 적응했다는 것은 차마 부정할 수가 없었다. 매일 아침, 현대의 기억을 담은 수첩을 보며 복기한다는 것 자체가 이곳에 익숙해졌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그렇다니 다행이군. 조금 더 많은 분뇨를 초석 생산에 써도 되겠어.”


“말씀대로입니다. 해초 비료가 상상 이상으로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연구소에 몇 가지 의뢰를 더 넣어 비료의 종류를 단일화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합니다. 지금은 온갖 물질을 비료로 쓰고 있으니까요. 비슷한 효능을 내는 비료라면 한 비료로 통일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겁니다.”


규모의 경제라는 말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기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품종 소량생산은 어디까지나 기술력이 뒷받침되는 현대의 미덕, 산업혁명 이전까지... 아니, 산업혁명 이후에도 한동안은 소품종 대량생산이 생산의 미덕이었다.


“그래야지. 땅 파서 비료가 나오는 것보다는 못하지만 바다에서 풀 뜯어다 쓰면 그만큼 만들기도 쉽고 저렴할 것 아닌가.”


“...땅 파서 비료가 나오는 곳이 있습니까?”


지영은 중국 일부 지방과 인도, 칠레 등을 떠올렸으나 이내 고개를 휘휘 저었다.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중국의 초석 산지는 산둥반도에 있었으나 그 위치가 중원 깊은 곳에 있어 빼앗아오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고 인도나 칠레는 가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세상은 넓으니 어딘가에는 있지 않겠나? 내 소박한 바람일세”


“저도 꼭 그랬으면 좋겠군요... 아니지,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왜?”


“언젠가 우리의 적이 될 만한 나라에 있을 수도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런 불안한 변수는 처음부터 없다고 바라는 것이 옳지요.”


“사람 참 못되었군”


그 말에 양순은 ‘네가 할 말이냐?’라는 눈길로 지영을 짜게 바라보았지만 지영은 능청스럽게 받아넘겼다.


“난 언제나 모두를 위해 일했다네”


“아무렴요.”


자기네 신하들은 하나같이 건방지다며 작게 투덜거린 그는 이내 목소리를 낮추고 은근하게 물었다.


“그건 되었고... 그놈 꼬리는 잡았나?”


“예, 잡았습니다.”


“음, 역시 내 직속이야 믿음직스러워.”


“어떻게 할까요?”


지영은 뭘 그런 걸 묻냐는 듯이 답했다.


“친위대랑 감찰부 애들 몇 데리고 가서 싹 잡아 와야지, 뭘 어떡해?”


“알겠습니다.”


“최대한 조용히, 알지? 사람은 팔 하나, 다리 하나 없어도 사니까 괜히 멀쩡히 데려오겠답시고 소란 피우지 말고 살려서만 데려오라고.”


보통 지영은 이런 사안을 말할 때는 최대한 돌려서 말한다. 신하의 역할 중에는 군주 대신 악명을 뒤집어쓰는 역할도 분명 존재하기에 ‘알아서 잘. 깔끔하게 알지? 난 그런 명령 내린 적 없다?’라는 느낌이었다.


그렇기에 장난스러운 말투라도 이렇게 직접 과격한 지시를 내리고 국왕만이 다룰 수 있는 친위대와 감찰부 인력까지 붙여준다는 건 한차례 피바람이 불 수도 있다는 것을 양순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명령을 받드는 것 이외에는.


한국 내에서 가장 강력한 무력집단인 친위대와 일을 은밀하게 처리하는데 이골이 난 감찰부의 협력은 과연 대단했다. 소리소문없이 주동자를 체포하고 관련 자료들을 빠짐없이 챙기며 간략하게나마 현장의 특징을 빠르게 그려 보고서에 첨부하는 과정은 마치 정교한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왕궁 지하감옥에 갇혀있는 몇 명의 인간이었다.


“이보게! 분명 착오가 있을 걸세! 우리는 그저 연구원일 뿐이라니깐!”


“거 시끄럽구만”


그 말에 강흠민은 입을 다물었다. 젊은 목소리에 그다지 진중하지 않은 어투였지만 자신감에 차 있고 간수가 물러나는 걸 보아서는 자신의 목숨줄을 쥔 권력자임이 분명했다.


“자기 몸 아니랍시고 아주 이리저리 뜯고 별 지랄을 다 했더만. 흠... 그래, 그 몸으로 혀가 반만 남아있어도 말이 제대로 나오는지를 밝히고 싶지 않으면 닥치게나”


“...”


지영은 철창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책자를 팔락였다. 철창 안에서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었기에 지영은 무시하고 제 할 말만 했다.


“자네의 자료는 아주 인상 깊게 읽어보았네. 반역자”


“반, 반역자라니요!”


“사형수를 빼돌려 지정된 목적 이외에 사용했다는 게 어떤 뜻으로 받아들여지는지 모르지 않잖나?”


지영은 인체 실험에 관한 이야기를 피했다.


분명 도덕적으로는 토악질이 나올 만큼 끔찍한 짓임을 알고 있다.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바퀴벌레 소굴을 보는 것처럼 본능적인 거부감과 혐오감이 뇌를 지배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기엔 지영이 아는 인권이라는 개념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고대, 중세의 형벌이 얼마나 끔찍했는가, 고문은 잔인했고 고문받은 사람들은 처참하게 망가졌다. 높은 권력자의 죽음에 산 사람 몇십, 몇백이 같이 땅에 묻혔고 잠깐의 여흥에 사람의 목숨은 파리처럼 사라졌다. 여기에서 강흠민이 저지른 인체 실험을 도의적으로 질타해봐야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었다. 아무리 잘 쳐 봐야 반역죄에 더하는 양념 정도가 고작이지 않을까.


그리고 혹여나 이 사건이 외부로 공개되더라도 ‘인체 실험 사건’보다는 ‘반란 모의’로 알려지는 것이 편했다. 지영과 한국 정부에 대한 지지는 압도적, 그러니 반란 모의로 사건을 만들면 높은 지지도에 의해 아무런 탈 없이 묻고 넘어갈 수 있지만, 인체 실험은 아무래도 어감부터가 거부감이 들지 않은가.


무엇보다 저 사건을 무마할 만한 확실한 패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거기에 죄질을 떠나서 자료의 질 자체는 이 시대에서 볼 수 없는 양질의 것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의학 수준이 확 뛰겠지. 근데 이걸 인체 실험 사건과 엮어버리면 사용하기 좀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었다.


강흠민으로서는 억울한 일이었기에 최선을 다해 항변했으나 그 말이 지영의 귀에 닿을 리 없었다. 이미 괜찮은 계획은 머릿속에 섰고 그걸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이성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그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을 필요 없었다.


지영은 몸을 한 번 풀고는 간수에게 넌지시 말했다.


“저거 입 막게. 괜히 시끄러우면 곤란하잖나”


“알겠습니다.”


어차피 죽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영은 자신과 관련 없는 시체에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에 대한 관심을 지웠다.


사실 그것보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강흠민을 대신해 논문을 쓴 작자들. 이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지난번처럼 쓸어버리기엔 문제가 컸다. 그들 하나하나가 양산이 힘든 고급인력인 것도 있고 반역죄로 엮어버리면 문제가 이상해지는 게 강흠민의 반역과 그들이 대신 작성한 논문에 대한 반역죄 사이에 인과가 어색해지다 못해 수상해진다.


“비서실장”


“예, 전하.”


“... 관련된 이들은 법대로 처벌하도록”


“알겠습니다.”


양순은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피를 봐야 좋을 게 없었다. 이번 사건은 소수의 반란 모의로 끝나는 게 가장 여파가 작았다.


“그리고 이 자료는...”


“파기합니까?”


“미쳤나? 이만한 건 어디서도 못 얻어. 육군부 장관에게 말해서 육군 의무관 기록으로 세탁해. 전선에서 자연스럽게 얻은 것처럼. 곧 퇴역하는 의무관 이름 빌려서 종합적인 보고서를 작성하면 되겠군. 깔끔히 처리하게.”


작가의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돌아오자마자 소설에서 누군가가 가는군요 ㄷㄷ;;;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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