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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쉘오리진 님의 서재입니다.

다시쓰는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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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쉘오리진
작품등록일 :
2021.05.12 19:01
최근연재일 :
2024.12.04 08:17
연재수 :
359 회
조회수 :
190,419
추천수 :
3,010
글자수 :
1,787,373

작성
21.05.12 19:03
조회
9,408
추천
51
글자
11쪽

나는 코딱지를 파기 싫었다.

DUMMY

꼴꼴꼴


투명한 유리잔에 맑은 액체가 채워진다.


"햐! 이것봐라! 이게 진짜루 잇흘이지! 진쨔..."


"지영아, 너 취했다. 그만 마시고 들어가 응?"


나는 눈앞의 맑은 액체를 한번에 목으로 넘겼다. 특유의 씁쓸함이 나를 자극했지만 그 자극이 오히려 좋았다


"시른뒈에요? 지영이는 말안드뤄!"


"야..."


"......"


나도 안다. 걱정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근데 어쩌라고. 이거라도 안 마시면 미칠 것만 같은걸.


"지영아... 내가 아는 교수님이 있는데... 진짜 좋으신 분이야. 너... 다시 복귀할 생각 없냐? 내가 잘 말씀드려놨으니까..."


나는 조용히 눈을 들어 녀석의 눈을 마주보았다.


나랑 14년째 함께해 온 한결도 변함없는 저 눈빛, 저 눈빛이 참 좋다.


그리고 너무나 고마웠다. 반병신이 된 나를 위해 저렇게까지 해주다니.


"미안... 너도 알잖아, 내가 무슨 취급을 받았는지"


"지영아... 이번엔 다를거야. 내가 진짜 사정 다 설명했어. 꼭 만나자고 하시더라"


"야! 넌 왜 그걸 네 맘대로!"


아닌데


"니가 뭔데 그걸 말해! 왜 좀 잘나가니까 만만하냐?"


이게 아니야


"씨발... 내가 반병신 되니까 존나 우습지? 개새끼..."


아니라고!


"... 민감한 일이란 거 알아. 하지만..."


"꺼져, 씨발"


...진짜... 이게 아닌데... 난 뭘 하는 걸까.


난 조용히 담배 하나를 입에 물었다.


돗대였지만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연기가 눈 앞을 가려 기분만 나빠졌다.


눈 앞을 가리운 연기가 마치 내 앞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띵동


내 낡은 스마트폰의 알림이 울린다.


액정이 갈라지고 표면 이곳저곳이 금이 간 스마트폰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이놈은 침침한 빛을 내뿜으며 한 줄의 글귀를 뱉어냈다.


이지영 보호자님, 입원비가 많이 밀렸습니다....


"이런 씨이... 발"


나는 욕설을 토해내면서도 낡은 지갑을 열었지만 그곳에는 퇴계 이황 세 분만이 조용히 주무시고 계실 뿐이었다.


진짜... 답도 없다.


어지간한 문제는 내 앞에서 모두 답이 나왔었다.


그 어떤 어려운 문제라도 책상 앞에서 나를 갈아넣다 보면 답이 얼추 보였었다.


인간관계도 딱히 이상없이 잘 돌아갔었고.


소설을 쓸 때도 적어도 나는 재밌었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정말이지 답이 보이지 않았다.


답이 없는 문제라면... 풀지 않는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어두컴컴한 한강의 차가운 물은 그렇게 한 사람을 삼킨채로 답이 없었다.



***



"............야!"


뭐지


"..............어나!"


뭐라고... 이미 죽은 사람한테


"언제까지 퍼 자기만 할 거야! 일! 어! 나! 라! 고!'


빠악!!!


두개골을 뒤흔드는 강력한 충격, 그리고 그에 수렴하는 깊은 빡침을 느낀 나는 원하는 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주었다.


그리고 내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바보같은 소리가 튀어나왔다.


".......에?"


그건 결코 눈 앞에 팔짱을 낀 여자가 미치도록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팔짱 때문에 안 그래도 커보이는 그녀의 가슴이 더욱 도드라져서도 아니다.


쫙 뻗은 백옥같은 기럭지에 감탄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내가 어떻게 보고 있는 거지?


보통 죽은 사람도 보고 일어나서 행동할 수가 있나? 이건 좀 신선한데


나는 내 가설을 실험해 보기 위해 손을 뻗어 그녀의 가슴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그녀는 볼을 붉게 물들이며 손을 치켜들었다.


"읏... 이 미친 변태새끼야!!!"


쫘악!


음... 부드럽다. 그리고 졸라게 아프다. 근데... 살아있는 거랑 큰 차이가 없는데?


이렇게 되면 기독교의 천국과 지옥이 얼추 맞아떨어지는 게 아닐까?


그리고 내가 감히 예상컨데 난 지금 천국에 있다.


"우으... 어째서 이런 변태가 걸려들어온 거야..."


왜, 난 좋은데


"씨잉... 다시 교체해버려야겠어"


...? 원래 산 사람이랑 죽은 사람이랑 로테이션을 돌리나?


내가 내 나름대로 진지한 고민을 이어가려는 찰나 그녀가 날 불렀다.


"변태!"


"...나?"


"그래! 너! 빨리 이리루 와!"


음, 원하신다면야.


나는 아까 오른손의 흐뭇한 감촉을 되새기며 그녀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잠깐, 오른손이라고?


나는 멍하니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쥐었다, 폈다,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오른손은 원래 내 손이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내가 기억하는 둔탁하고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이 아니었다.


"빨리 안 와!"


몰캉


"진짜다... 부드러워"


"읏... 우으... 이런 미친놈아!!!!"


아까와는 비교하기 힘든 충격이 내 뇌를 강타했다.


꼴사납게 지면에 떨구어졌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씨발... 이거 뭐야..."


내 오른팔이 멀쩡했다.


2년전 교통사고로 완전히 으깨져서 잘라낸 후 장착한 조잡한 인공 팔이 아니었다.


진짜, 내 피와 살이 흐르는 내 팔이었다.


"엄마..."


나도 모르게 내 눈에서 물방울이 주르르 흘러나왔다.


"변태주제에 뭘 잘했다고 울어!!"


옆에서 어이없다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굳이 신경쓰지 않았다.


진짜 내 팔을 되찾았다는 기쁨만이 내 온 몸을 지배했으니까.


...잠깐만, 나 진짜 바본가.


죽어서 팔을 되찾았어. 근데 뭐 어쩌라고?


살아서였으면 달랐겠지. 하지만 죽으면 끝이잖아.


진짜 살아서도 죽어서도 답이 없는 놈이구나 나는.


"하... 원래 죽은 놈은 다 이런가"


"근데 아까부터... 너 누구야?"


그러고보니 궁금하네. 저거 누굴까? 신일까?


"후우... 진짜... 난 디아나, 너의 심판관이다."


음... 진짜 천국과 지옥인가.


"그리고 넌 지옥행이지"


음... 진짜 지옥인가.


...어?


"그게 뭔 소리야, 지옥이라니? 나 나름 열심히 살았어"


아무리 그래도 지옥은 가고싶지 않아 항변해 보았지만 그녀의 답은 서릿발보다도 냉엄했다.


"너, 자살했잖아."


"............"


"그것만으로도 이미 지옥행 확정이야."


싫다. 하지만 옳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도망쳤으니까, 아무것도 못 할것 같아서 비겁하게 도망쳤으니까.


... 그녀의 말대로, 나는 이미 그것만으로도 죄인이었다.


"하지만 쓰레기, 넌 운이 좋아"


변태에서 쓰레긴가... 새삼 놀랍지도 않다. 그것보다는 그 다음 말이 기다려졌다.


"너한텐 선택의 기회가 있으니까."


선택의 기회...


아직 나에게 남은 기회가 있다고?


그녀는 정말 싫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만약 네가 원한다면...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게 해 줄게"


새로운 곳...?


뭘까, 뭐 소설에서만 보던 환생, 이세계 뭐 그런건가?


근데... 아니 근데 솔직히요.


"해서 뭣하는데?"


"뭐?"


"아니, 맞잖아. 어차피 지옥행인데 선택지가 있는 거라며. 그럼 뭐 천국이겠지, 근데 그게 중요해???"


어차피 돌아가지도 못하잖아. 나한테 의미가 있는 건 내가 살던 세상의 가족과 친구들밖에 없는데.


"너 진짜 구제불능의 쓰레기구나"


"말 함부로 놀리지 마, 뭘 안다고 입을 그리 터냐?"


그녀같은 사람 수백을 만났다.


날 잘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내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건 이제 지긋지긋하다.


"하... 엄마는 왜 이런 녀석을 골라다 준 거야..."


골라다 주었다... 라. 그럼 내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는 거겠지? 도대체 뭘까.


궁금했다. 과연 신이 내가 필요할까?


계속 틱틱대고는 있지만 그녀의 행동은 나를 사용하려는 그것의 행동이었다.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겠지.


"후... 야, 한 번만 말할테니 잘 들어"


"..."


"첫 번째는 지옥을 가서 죗값을 치르는 거고 두 번째는 내 제안을 받아들이는 거지."


"........."


내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쯧... 일만 아니면 너같은 거랑 얽힐 일도 없을 텐데 말이야."


"..."


"... 그래서 그 일이 뭐지?"


"간단해. 그 형량을 대체하는 업무를 너한테 줄 거야."


음...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난 회사에 취직조차 해본 적 없는 몸인걸.


"내가 이번에 새롭게 행성을 배정받았는데..."


"...예?"


아니, 도시를 배정받은 것도 아니고 행성이요? 진짜 신이기는 신인가...


"행성을 배정받았다고. 행성 몰라?"


아니... 아니까 이러지.


"여튼... 그 행성의 나라를 다스리게 될 거야. 그 나라를 최대한 키워 신을 믿게 하면 되는 일이지"


"... 이런... 미친..."


"그럼 지옥 가던가."


그건 또 싫은데.


신의 힘은 신을 믿는 신도들에 의해 정해진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이 여신이 나한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말이 된다.


...아니, 잠깐.


"근데, 궁금한게 있는데. 너 신이라며? 그럼 네가 하면 되는 거 아냐?"


"하? 그게 뭔 개떡같은 소리야? 신이라고 막 관여할 수 있는게 아니라고?"


아...


"관여할 순 있지만 거기엔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필요해. 생각해 봐. 신이 인간세상에 뭐든지 개입한다면 인간이 왜 노력하며 살겠어?"


그건 그렇지.


"그래서 나보고 나라를 다스려라?"


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내가 리더 역할을 해본 거라곤 학교에서 반장 역할이나 군대에서 소대장 역할을 해본 것 밖에는 없다.


"왜, 싫으면 지옥 가라니까? 이런 기회가 쉽게 오는게 아니야. 그리고 잘만 되면 대가도 확실하게 치러줄게"


"... 대가?"


"소원 1회 정도면 되려나? 어디보자... 네가 원하는 건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거나 혹은 부활이겠지?"


".......!"


"네 가정사 정돈 대충 파악했어. 확실히 뭐 안타깝긴 하네."


그게... 그냥 안타깝다라는 말로 끝날 일이던가.


"근데 그게 네가 쓰레기 짓을 한 거랑은 별개잖아?"


"..."


"여튼... 잘만 되면 되돌릴 수 있다고. 적어도 그런 기회는 가질 수 있는거지."


"만약 지옥에 간다고 하면?"


"말로 설명하기 싫은 처벌을 받을 거야."


"예를 들자면?"


디아나는 잠시 생각하다 이윽고 소름이 끼친다는 듯이 부르르 떨며 말했다.


"온몸이 불타면서 코딱지 5,000톤 파서 바치는 게 형벌인 사람을 봤어. 아마... 몇 달 전이었는데"


뭐야, 그거. 무서워.


"저... 열심히 할게요."


"진작에 그랬음 좀 좋아? 그래도 약간의 도우미 정도는 넣어놨으니 안심하라구!"


... 안 되는데.


"뭐... 잘 해봐"


그 말을 끝으로 내 몸 주위를 빛이 감쌌다.


작가의말

지옥이 괜히 지옥이 아닌가 봅니다...


초보작가 몽쉘입니다!

모자란 작품이지만 재밌게 봐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주3회 연재, 완결까지 쭉 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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