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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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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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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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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23화 천하가 여기에 있다

DUMMY

223화 천하가 여기에 있다


“시발.”


낙양 수비대 병졸 이양은 배급으로 나온 밥을 보고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저 더운 날에 태어나 양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양은 그 대충 지은 이름처럼 사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배부르게 먹으면 족하고 잠을 잘 자면 족하다.


덕분에 모은 돈도 많지 않아 아직 장가도 들지 못했으나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아직 그런 것이 신경 쓰일 나이는 아닌데다가 낙양은 다른 곳에 비하면 상당히 풍족하다.


농민들은 고생하나 병졸인 그와 동료들은 그 풍족함을 편린이나마 맛보니 불만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옛말이 되어 그 맛보던 편린이 여름날 아침 안개와 같이 사라지니 불만이 나날이 솟아났다.


“또 사 먹어야 하나?”


배급은 배곯지 않을 정도로는 나오나 그것으로 턱없이 부족하여 이양은 못마땅한 얼굴로 옷소매를 매만졌다.


직접 먹을 것을 구해서 그 부족함을 채우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벌써 며칠이고 그러니 손끝에 느껴지는 감촉은 영 부실했다.


“이러다가 굶어 죽겠네.”

“그러게 말이다.”


이양이 하는 말에 동료 하나가 맞장구를 치더니 슬쩍 낙양 바깥으로 시선을 주며 물었다.


“쟤들이 많이 먹을까, 우리가 많이 먹을까?”

“글쎄다.”


전이라면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이양을 포함한 낙양 병사들이 잘 먹는다, 그렇게 말이다.


하지만 며칠 동안 보아온 것들을 떠올리니 이제 이양은 그 말을 확신할 수 없었다.


“저기 또 한무리 온다.”

“······한 세 달만 더 기다라면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배는 늘어나겠는데.”

“그러게 말이다. 그 지경이면 우리도 나가서 밥이나 달라고 할까?”


농이 섞인 물음에 이양은 피식 웃었다.


“그래, 굶어 죽을 지경이 되면 그런 거라도 생각해두자고. 설마하니 손들고 나간 놈에게 식은밥 한 덩이 안 주겠냐. 아직 싸우지도 않았잖아?”



***



“병사들이 해이해지고 있습니다.”

“끄응.”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저들이 반란군이라는 것도 잊고 나가서 어울리려고 들지도 모릅니다.”

“미치겠군.”


휘하 지휘관들이 연달아 이르는 말에 낙양 수비대 대장은 이마를 짚었다.


걱정이 무색하게 바깥에 모여든 반란군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물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있는 건 아니었다.


진영을 꾸리고, 경계를 세우고, 사방에 사람을 움직였다.


분명히 그 모든 행동은 이쪽을 적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직접 전투는 벌이지 않으니 나날이 긴장이 느슨해지고 있었다.


당장 어제는 복왕 주상순이 그를 불러서 이르길, 혹시 싸우러 온 게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는데 오해한 것은 아닌지 넌지시 물었을 정도였다.


‘빌어먹을, 저만한 규모에 그 수장은 감히 왕을 자처하는 놈이 오해는 개뿔.’


주상순에게 쌍욕을 뱉지 않고 살살 달래서 넘겼다는 점에서 수비대 대장은 자신의 인성이 옛 성현에 비할 수 있지 않을까 잠시 생각했다.


아니, 그 정도면 성품으로는 솔직히 옛 신선이나 석가보다 낫지 않은가 싶었다.


“후. 병사들 불만 다독이고 기강 잡아.”


잠시 든 생각을 작은 호흡 고름과 함께 옆으로 치우고 원론적인 이야기를 입에 담았다.


원론적이라고 말하면 고리타분하여 쓸모가 없이 들리나 사실 어설픈 기책보다야 훨씬 나은 대책이며 견고하고 훌륭한 대책이라 할 수 있었다.


말을 전하러 왔던 이들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수비대 대장은 손을 휘휘 저었다.


“이만들 가봐. 무슨 일 있으면 다시 오고.”


사람들을 모두 물리고 홀로 남은 수비대 대장은 골똘히 생각하더니 자신 없는 얼굴로 말을 내었다.


“양곡이 아니라면 조금 정도는 베풀어주시지 않을까?”


그 자신 없는 얼굴에 맞게 흩어지는 소리는 어떠한 확신도 주지 못하고 그대로 허공으로 흩어졌다.



***



“이야, 오늘도 사람이 늘었네?”


취사 담당으로 일하게 된 장오는 어제보다 늘어난 줄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솥은 그가 담당하는 것만 있는 게 아니건만 하루하루 줄 서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절로 감탄이 나왔다.


다만 그 감탄이 꼭 좋은 방향인가 하면 그런 것은 아니니, 그 감탄에는 다소 씁쓸함도 섞여 있었다.


‘우리 같은 사람이 세상에 이리도 많나.’


어쩌면 예전, 이자성이 오기 전보다 더 힘든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


적어도 그 시절 자신은 고작 한 끼를 위해서 마을을 버리고 반란군에 접할 생각은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마을을 떠나서 그들이 살던 곳은 그나마 나았음을 몇 번이고 본 장오는 그가 가장 불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뻐할 정도로 속이 없진 않았다.


“줄 서! 줄 서라고!”

“거기 너, 새치기하지 마! 얼굴 기억했다!”

“다 먹을 만큼 있다! 그러니까 서두르지 마라!”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던 장오를 깨운 것은 같은 마을 출신 사람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사람들을 세우는 소리였다.


그 소리에 정신이 든 장오는 가장 앞에 있는 사람에게 밥을 내어주며 웃었다.


“맛있게들 먹으라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벌써 몇 번이고 며칠이고 반복된 말이나 들을 때마다 가슴에 울리고 감정이 요동하게 하는 말에 장오는 애써 얼굴을 딱딱하게 하며 일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문득 줄이 거의 줄었다고 생각한 순간 장오의 눈에 사방에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여기도 사람, 저기도 사람.


그 숫자를 모으면 얼마나 될지 배움이 적은 장오로서는 세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람이었다.


그걸 본 장오는 무심코 생각했다.


천하가 여기에 있다고 말이다.



***



“내 경험상 슬슬 한번은 부딪치는 게 정상이고 정석이오만.”

“쉽게 지지는 않으나 이기기도 쉽지 않을 겁니다. 낙양성은 생각보다 방비가 튼튼합니다.”


이자성이 넌지시 묻는 말에 이암이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단호함에 이자성은 소리 없이 입맛을 다시더니 슬쩍 방향을 바꾸어 말을 이었다.


“우리는 그렇다 치고, 저놈들이 나온다는 것도 걱정해야 합니다.”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려면 진작에 나와야 했습니다.”

“이 선생께서는 저들이 늦었다, 이 말씀이시오?”

“장군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확신이 담긴 대답에 이자성은 묘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낙양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저만하면 내가 생각할 때는 충분한데?”


진심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이 말하는 이자성을 향해 이암은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장군이라면 분명 그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이렇게 모인 수십만의 오합지졸, 다 병사도 아니니 정예병이라면 얼마든지 깨부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렇소이다.”


한번 실패했다고는 하지만 전에도 수만에 이르는 반란군을 이끌었던 이자성이다.


싸움의 기본은 물론이고 숫자가 생각보다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 역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저들이 작정하고 나오면 나와 용맹한 형제들이 막을 겁니다. 하지만 진형은 반괴, 손실은 물론이고 흩어지는 건 더 크겠지.”


머릿속에서 금세 전황을 그려본 이자성은 이맛살을 찌푸리더니 이내에 고개를 흔들었다.


“이기려면 독전대라도 두고 강요하는 수밖에 없어. 심지어 그래도 승산은 반반, 양날의 검이기까지 하지.”

“장군께서 상황을 잘 알고 계시니 다행입니다.”

“다행이라. 내가 독전대를 세우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도 잘 알고 계시니 아주 좋습니다.”


이암은 그렇게 말하더니 지도를 가져와서 낙양을 짚었다.


“낙양에서 우리를 경계한다. 그리하여 틀어박히고 북경이든 남경이든 그 구원을 요청할 겁니다. 나와서 싸운다? 복왕이 그렇게 용맹했다면 명나라가 이 모양이 아니었거나 일찍 죽었을 겁니다.”

“돼지 새끼 같은 놈이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

“하하, 참으로 그렇습니다. 저는 멀찍이서 한 번 보았는데, 실로 그 말이 어울리는 풍채고 인상이었습니다.”


이자성이 덤덤하게 말하니 이암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아시겠지만, 식량을 얻고자 오는 이들이 모두 우리에게 합류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 끼를 해결하고 나면 그대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썩 마음에 드는 일은 아니지만, 이 선생도 그렇고 우 선생도 그렇고 당장은 강요하지 않는 게 좋다고 하니 두고 보고 있지요.”

“진언 들어주심을 감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암이 고개를 숙여 예의를 차리니 이자성은 다소 불편한 얼굴로 헛기침했다.


“험험, 함께 먼 길을 갈 동지요 형제가 아닙니까. 선생께서 그러시면 불편합니다.”

“상하는 분명하여야 하며 작은 것도 확실해야 하는 법입니다.”


기분 나쁜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백성들이 칭송하는 말과는 다른 간질임이 있었다.


그러나 마냥 헤벌레하며 좋아할 수 없었던 이자성은 어색한 얼굴로 눈알을 굴리며 다른 말을 내었다.


“우 선생은 어디에 가셨길래 아직 돌아오시지 않는 겁니까?”

“우금성 그 친구는 낙양에 갔습니다.”

“······예? 어디요?”


그저 화제를 돌리려고 물은 말에 생각지 못한 대답이 돌아오니 이자성은 당황하여 되물었다.


그 모습에 이암은 즐거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낙양에 갔습니다. 그 친구가 이제 장군께서 하신 일을 바탕으로 낙양을 흔들 것입니다.”



***



“고생이 많으십니다.”

“어라? 오 씨, 어쩐 일로 이리 두둑해?”

“헤헤, 씀씀이 좋은 서생이 한 분 지나가셔서요.”

“이야, 그거 부럽네. 누구는 밥도 줄어서 고민인데 말이야.”


병졸은 안면이 있는 사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서 쪽문을 슬쩍 열었다.


“알겠지만, 수레는 작은 거 하나만이야.”

“물론입죠.”

“저녁에 나오나?”

“예, 그렇습니다.”


몇몇 말을 더 물은 병졸은 하품을 길게 하더니 손짓으로 귀찮다는 얼굴로 오 씨를 통과시켰다.


“쯧, 포위 당한 것도 아니고 왜 이런 귀찮은 일을 시킨데. 그냥 전처럼 적당히 얼굴 보고 통과하게 하면 좋은데 말이야.”


낙양은 근방 최대의 도시니 멀리서 필요한 것을 사고팔기 위해 찾는 이들이 아주 끊이지는 않았다.


하물며 반란군은 그가 있는 쪽이 아니라 반대쪽에만 자리 잡고 있으니 이런 절차가 왜 필요한지 병졸은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의문도 잠시, 병졸은 오늘 생긴 부가 수입으로 무엇을 할지 행복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가 통과하게 한 수레에 누가 숨어있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



끼익


“이제 나오셔도 됩니다.”


사람이 잘 오지 않는 골목에 수레를 세운 오 씨가 말하니 수레 천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낙양 한번 들어오기 어렵구만.”


넉살 좋게 수레에서 내린 이, 우금성은 사방을 주의 깊게 살피고는 오 씨에게 주머니를 내밀었다.


“고생하였소. 나가는 길은 알아서 찾도록 하지.”

“가, 감사합니다.”


굶주린 식구들이 먹을 양곡을 내어주고 돈도 주니 오 씨는 진정으로 감사함을 느끼며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인 후에야 자리를 떠났다.


멀어져 가는 오 씨에게 손을 흔들어 준 우금성은 차분히 걸음을 옮겼다.


“어디, 송헌책 그 친구는 아니지만 도참 좀 부려볼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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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240화 이가 없는 입술 +2 23.06.02 374 22 13쪽
240 239화 정할 수 없는 괴로움 +2 23.06.01 370 23 15쪽
239 238화 거기서 거기다 +1 23.05.31 362 26 13쪽
238 237화 사람의 생각은 +1 23.05.30 376 25 15쪽
237 236화 한 해로 한 해를 감당치 못하면 그 다음을 기약하기 어렵다 23.05.29 371 24 13쪽
236 235화 원숭이와 너구리 +4 23.05.28 389 24 16쪽
235 234화 동향 사람 +2 23.05.27 364 21 14쪽
234 233화 조선에 정년은 없다 +3 23.05.26 379 22 13쪽
233 232화 표명은 그 자체로 힘이 있다 +1 23.05.25 351 25 15쪽
232 231화 남는 자의 고민 +2 23.05.24 354 21 13쪽
231 230화 머무는 객, 떠나는 객 23.05.23 376 19 12쪽
230 229화 어렵다고 하여 멈출 수는 없다 +1 23.05.22 379 18 14쪽
229 228화 소문은 자극적이다 23.05.21 381 20 15쪽
228 227화 복록의 약조 +2 23.05.20 365 21 18쪽
227 226화 불은 모든 것을 태우고서야 잦아든다 +2 23.05.19 366 19 13쪽
226 225화 불씨는 작다 +4 23.05.18 374 20 16쪽
225 224화 장작을 모으는 법 +1 23.05.17 387 16 15쪽
» 223화 천하가 여기에 있다 +2 23.05.16 397 19 11쪽
223 222화 바라는 것은 23.05.15 397 23 12쪽
222 221화 배부른 사람은 모른다 +1 23.05.14 405 21 13쪽
221 220화 선택이 가능하다면 사람은 고른다 +2 23.05.13 408 20 13쪽
220 219화 전쟁은 도박이다 +1 23.05.12 447 21 12쪽
219 218화 타협과 양보는 때때로 일방적이다 +2 23.05.11 432 22 13쪽
218 217화 청개구리 +1 23.05.10 419 17 13쪽
217 216화 의심은 아래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1 23.05.09 431 18 13쪽
216 215화 일을 미루면 이자가 붙는다 +1 23.05.08 423 23 15쪽
215 214화 전쟁과 정치는 한 몸이다 +2 23.05.07 464 18 12쪽
214 213화 양동 +3 23.05.06 456 20 13쪽
213 212화 천명으로 가는 길 +1 23.05.05 445 22 12쪽
212 211화 도박은 없다 +2 23.05.04 434 1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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