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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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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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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0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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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12화 천명으로 가는 길

DUMMY

212화 천명으로 가는 길


본디 개전 초기 청나라에서, 조금 더 정확히는 여러 장수와 의견을 나누고 홍타이지가 내린 결론은 장기전을 각오하는 것이었다.


때가, 적들이 그 힘을 잃고 기세를 잃을 때까지 기다려서 친다.


그것을 포기하고 변하고자 하면 전통적이며 가장 자랑으로 여기는 방식을 취하고자 함과 다르지 않았다.


이러한 의중을 홍타이지는 전혀 숨길 생각이 없는지 의정대신 타타라 잉굴다이와 예친왕 도르곤에게서 떼고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며 대답을 요구했다.


“다른 이들도 생각하는 바가 있다면 기탄없이 논해라. 무엇도 탓하지 않을 것이다.”


홍타이지가 이렇게까지 말했음에도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볼 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두려워서가 아니다.


그들은 타타라 잉굴다이와 도르곤이라는 영웅들을 존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존중에 응하듯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잉굴다이였다.


“단기 결전을 원하십니까?”


잉굴다이가 묻는 말에 홍타이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만주족이 이제까지 취한 방법이며 대청이 자랑하는 승리의 비법이다.”


홍타이지의 말은 사실이었다.


누르하치 이래 만주족이라 칭한 그들은 영원성에서 원숭환이라는 명장에게 그 진격이 막힐 때까지 승승장구했다.


가는 곳마다 이기며 가는 곳마다 얻는다.


싸우면 이기고 얻으니 전쟁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만주족은 대부분 전쟁에서 공격자였고, 침략자였으며, 약탈자였다.


이는 만주족이 가진 한계에도 맞물려 있었다.


온갖 사람을 들이고 온갖 족속을 통 크게 팔기로 받아도 그 숫자는 100만이라는 수에 이르기조차 버거웠다.


언제고 청나라의 전쟁 기조는 같았다.


모든 승리에는 그 흘리는 피가 적어야 한다고 말이다.


이러한 점에서 유목민 제국이라 할 수 있는 그들에게 더 적은 피해로 승리하기 위해 고른 방법은 법은 보통 적의 땅으로 넘어가서 그 땅을 휘젓고 도망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점들을 짚어보면 이번 전쟁은 청나라에 있어서 미지의 전쟁이고 그 전장은 자신들의 전장이며 전장이 아니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번에 정한 방식, 단기 결전을 우선하지 않는다는 방식은 분명히 말해 여러모로 거슬리는 점이 많았다.


다만 이 또한 그만한 득이 있어서 정한 것이었기에 잉굴다이는 갈대같이 의견을 꺾는 것이 아니라 거목처럼 주장하였다.


“한께서 우려하심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시지 않습니까. 때때로 싸우는 것보다는 싸우지 않는 것이 얻을 수 있는 법입니다.”

“그건 안다.”


피해가 적은 것도 중요하고 그 결과를 우선하여 단기전을 추구함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끝에 일단은 승리가 있어야 모든 것이 의미가 있는 법이니 홍타이지는 일전에 승리를 위해 맞지 않고 익숙하지 않은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이제 그 승리를 위해 다시금 뜻을 고치려고 하니, 그는 그 뜻을 바꾸게 된 이유를 입에 담았다.


“분명 알고 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명나라 녀석들은 그 보급이 풍족하고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정친왕 지르가랑이 마주하고 있는 홍승주의 군을 머릿속에 그린 홍타이지는 우려를 담아 물었다.


“혹시 조선에서 양곡을 들인다고 함은 우리를 속이기 위한 기만이 아니었을까?”


저들의 힘을 뺄 수 있겠다고 여기며 완벽하게 이기기 위해 익숙하지 않은 방법을 고르게 된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는 사실을 의심하여 말하니 잉굴다이는 말문이 막히는 걸 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조선에서 들어온 소식은, 그리고 조선에서 벌어지는 일은 영변부에 심어둔 상인들이나 철원에 요토와 팔기를 대신하여 보낸 이들을 통해 여러모로 그들에게 들려오고 있었다.


가령 명나라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양곡을 사가기로 했고 그 양곡이 자신들에게 온 것보다 질은 떨어질지라도 그 양은 비슷하여 바다를 건넜다는 사실도 말이다.


또한 조선에서는 이러한 일을 물으면 편든다는 인식을 주기 싫은 모양인지 그리 감추지 않아 확인도 쉬웠다.


그러니 조선에서 명나라로 양곡이 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명나라에서 정녕 부족하여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청나라에서 이 사실을 알고 오판하길 바라며 행한 기만인지 묻는다면 잉굴다이는 그걸 딱 잘라서 아니라고 할 수 없었다.


가능성이라는 말은 그만큼 위험했다.


“명나라에서 속였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조금 상대를 높게 보아주어도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상관입니까?”


잉굴다이가 입을 닫고 고민하고 있자니 대신하듯 도르곤이 나섰다.


“상관이 없을 리가 있나. 괜한 소모를 한 셈이고 저들의 기세를 올리게 해준 셈이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하지 않다고 단호히 말한 도르곤은 곧바로 그 논지를 보충하는 말을 이었다.


“명나라가 전에도 이러했다면 모를까, 이제야 이만한 군을 일으키며 막대한 재원을 바탕으로 필승의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허면 왜 전에는 하지 않았습니까?”


왜 전에는 하지 않았는가.


그 물음에 홍타이지는 금세 그 답을 깨달았다.


“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 아니, 하기 어렵기 때문인가? 지금은 저렇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 않음과 하지 못함은 그 차이가 크다.


한편으로 하지 않음에도 이유는 있는 법이니 홍타이지는 제가 깨달은 것을 마저 늘어놓았다.


“이것은 명나라로서도 최선이자 모든 힘을 짜낸 전쟁, 그렇게 보아도 무방하겠구나.”

“그렇습니다. 저들은 본래 천명을 쥔 자로서 그 마지막 불꽃을 피운다고 하면 이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만한 상대가 아니면 이상합니다.”

“그래, 천명을 쥐는 일이 쉬울 리가 없지. 내가 어리석고 안일했어.”


중얼거리며 자신을 다독인 홍타이지는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러나 저들이 그 한계에 달하기 전에 심양에 도달하면 곤란하다. 이에 대한 대책은 생각한 바가 있느냐?”

“물론입니다. 다만 한께 그전에 용단을 청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용단이라. 무엇이 필요하지?”


도르곤이 자신만만하게 이르니 홍타이지는 믿음직하다 여기며 무엇이든 해줄 생각으로 물었다.


그러나 이어진 말에 홍타이지는 ‘무엇이든’이라는 점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전쟁에서 싸우는 방식은 크게 둘이니, 심양을 내어주는 걸 고려하는 방식이 있으며 심양은 반드시 지키는 방식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하나를 한께서 골라주시길 청합니다.”


심양을 내어준다.


농담으로도 꺼내기 어려운 말이었다.


“예, 예친왕 전하!”


그 놀람이 어찌나 심한지 잉굴다이 역시 당황하여 소리 지를 정도였다.


만주족의 심장이자 긍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심양은 이들에게 있어서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한 심양을 내어주는 방식이라니, 그렇게 되면 벌어질 일들을 생각하니 잉굴다이는 눈앞이 아찔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그렇게 되면 이미 대청은 무너지고 말겁니다. 대청이 아닌 청이며, 옛 금나라 시절 일을 되풀이할 것이 분명합니다.”

“······어째서? 심양을 내주고 이긴다면 천명은 온전히 우리 것이다. 심양과 척박한 땅을 대가로 풍요로운 중원을 온전히 손에 쥘 수도 있는 일이지.”


홍타이지가 잠시 주저하다가 그 연유를 물으니 잉굴다이는 사색이 되어서 외쳤다.


“만주족은 일이 그렇게 흘러도 그대로 따르며 의심치 않습니다. 하지만 몽골이나 한인들과 같이 세가 있음을 보고 따랐던 이들은 의구심을 품을 것입니다. 당장 명나라를 흔들기 위해 북경 주변을 쓸다시피 하였음을 기억하여주십쇼.”


전에 청나라에서 노리고 하였던 일을 논하니 홍타이지의 얼굴에 잠시 수심이 스쳤다.


그러나 그도 잠시, 그는 의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잉굴다이가 하는 말이 옳다. 심양은 포기하지 않는다.”

“알겠습니다.”


홍타이지가 고하는 말에 도르곤은 예상 이상으로 시원스럽게 말을 받았다.


그에 홍타이지는 본래부터 그 노림이 심양을 포기하지 않게 하는 것에 있음을 깨닫고 잠시 그를 보았다.


‘지금은 아니다.’


도르곤에게서 시선을 거둔 홍타이지는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방침은 바꾸지 않는다. 심양은 포기하지 않는다. 이 두 가지를 새기고 잠시 쉬도록 하겠다.”



***



“무엇을 노리고 있느냐?”

“작게는 이번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고, 크게는 당연히 대청이 중원에 바로 서는 것입니다.”


잠시 자리를 물리고 따로 도르곤을 물러 물으니 그는 거침없이 대답을 돌려주었다.


그 기세 높고 당당한 대답에 흡족함도 잠시, 홍타이지는 심각한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말이 과했다. 사람들은 너를 이상하게 여기고 때로는 두려워할 것이다.”

“제가 제위에 욕심을 가지고 있다면 모를까, 그런 일은 오히려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호오.”


홍타이지가 앉은 자리에 관심이 없음을 표명하는 말임과 동시에 그 나름대로 의도가 있었음을 드러내는 말이었다.


“네가 야심이 있는 건 알았지만 그 방향성을 듣는 것은 처음이구나.”

“위에 서는 것만이 역사에 남아 칭송받는 길이 아님을 알았을 뿐입니다. 또한 먼저 간 자가 위하는 마음으로 제게 말하니 어찌 그것을 외면하겠습니까.”


전자는 모르나 후자는 무슨 이야기인지 홍타이지도 얼추 알 거 같았다.


“호오거, 그 녀석이 남긴 말 때문이냐?”

“그렇습니다.”

“하하, 못난 아비에게는 과분한 장자였다. 내 사사로이 욕심으로 그 자리를 확고하게 하지 않은 것이 미안할 정도야.”


홍타이지가 슬픈 기색을 드러내며 그리 말했으나 도르곤은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분명 홍타이지는 영웅이고 황제라는 자리에 걸맞는 능력이 있다.


명군인가 암군인가를 따지면 확실하게 명군이라 칭하지 암군이라 할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허나 그 후계 정함에는 미진한 정도가 아니라 암군과 같은 면이 있으니 도르곤은 지금 과연 호오거가 살아있었다면 같은 말을 들을 수 있었을까 의심스러웠다.


‘아니, 이런 것은 나중이다.’


죽은 자는 기려지고 아름답게 추억한다.


그러니 죽은 자는 그것으로 족할지 모르나 살아있는 사람들은 그에 대한 것으로 세월을 죽일 수 없었다.


“심양을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포기한다고 하면 무엇이 달라지지?”

“형제들이 덜 죽습니다.”

“······그렇구나.”


홍타이지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하듯 손짓했다.


“가봐라. 그리고 다시 모일 때에 와서 네가 생각한 것을 논해라. 시간은 넉넉하니 잉굴다이나 다른 녀석들과 논해도 좋다.”

“허면 한 가지만 작은 청을 드리고 싶습니다.”

“무엇이지?”

“한 사람을 따로 세워 위험하게 하고자 합니다.”


한 사람을 위험하게 한다는 말에 홍타이지의 눈썹이 휘었다가 이내에 펴졌다.


“친왕도 박탈했다. 그런 일이 정녕 필요하다고 보느냐?”

“사지에 들어가는 일로 가장 잘 어울리는 건 달리 없습니다. 단순히 그러한 죄질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성정이 그러하니 그렇습니다.”

“성정, 성정이라. 그래, 네 말이 틀리지 않다.”


벌판을 뛰어야 하는 말을 우리에 그저 가두기만 하면 살이 찌고 늘어지던가 그 부자유함에 날뛰던가 둘 중 하나다.


“마음대로 해라. 다만 두 가지 조건이 있다.”

“말씀하소서.”

“녀석에게 반드시 그것이 죽을 수 있는 자리임을 일러라. 그리고 그 자리가 사석은 되지 않게 하라.”


반드시 죽어야 하는 자리로는 내몰지 말라는 말에 도르곤은 곧바로 입을 열어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맹세컨대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좋다.”

“감사합니다. 한께서 믿어주셨으니 저는 천명으로 가는 길을 열어 보답하겠습니다.”


천명으로 가는 길.


귀에 들어오는 순간 자극하여 그 감미로움과 유혹이 느껴지는 말에 홍타이지는 가벼이 웃었다.


“기대하겠다.”


작가의말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kkatnip님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후원하신 기대에 응해 더욱 좋은 글을 쓰도록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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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240화 이가 없는 입술 +2 23.06.02 374 22 13쪽
240 239화 정할 수 없는 괴로움 +2 23.06.01 370 23 15쪽
239 238화 거기서 거기다 +1 23.05.31 363 26 13쪽
238 237화 사람의 생각은 +1 23.05.30 377 25 15쪽
237 236화 한 해로 한 해를 감당치 못하면 그 다음을 기약하기 어렵다 23.05.29 371 24 13쪽
236 235화 원숭이와 너구리 +4 23.05.28 389 24 16쪽
235 234화 동향 사람 +2 23.05.27 364 21 14쪽
234 233화 조선에 정년은 없다 +3 23.05.26 380 22 13쪽
233 232화 표명은 그 자체로 힘이 있다 +1 23.05.25 351 25 15쪽
232 231화 남는 자의 고민 +2 23.05.24 355 21 13쪽
231 230화 머무는 객, 떠나는 객 23.05.23 376 19 12쪽
230 229화 어렵다고 하여 멈출 수는 없다 +1 23.05.22 380 18 14쪽
229 228화 소문은 자극적이다 23.05.21 382 20 15쪽
228 227화 복록의 약조 +2 23.05.20 365 21 18쪽
227 226화 불은 모든 것을 태우고서야 잦아든다 +2 23.05.19 366 19 13쪽
226 225화 불씨는 작다 +4 23.05.18 374 20 16쪽
225 224화 장작을 모으는 법 +1 23.05.17 387 16 15쪽
224 223화 천하가 여기에 있다 +2 23.05.16 397 19 11쪽
223 222화 바라는 것은 23.05.15 397 23 12쪽
222 221화 배부른 사람은 모른다 +1 23.05.14 405 21 13쪽
221 220화 선택이 가능하다면 사람은 고른다 +2 23.05.13 408 20 13쪽
220 219화 전쟁은 도박이다 +1 23.05.12 447 21 12쪽
219 218화 타협과 양보는 때때로 일방적이다 +2 23.05.11 432 22 13쪽
218 217화 청개구리 +1 23.05.10 420 17 13쪽
217 216화 의심은 아래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1 23.05.09 431 18 13쪽
216 215화 일을 미루면 이자가 붙는다 +1 23.05.08 423 23 15쪽
215 214화 전쟁과 정치는 한 몸이다 +2 23.05.07 465 18 12쪽
214 213화 양동 +3 23.05.06 456 20 13쪽
» 212화 천명으로 가는 길 +1 23.05.05 446 22 12쪽
212 211화 도박은 없다 +2 23.05.04 434 1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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