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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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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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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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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22화 바라는 것은

DUMMY

222화 바라는 것은


이자성은 단순히 운 좋은 도적이 아니다.


물론 그 출신은 도적이며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이렇게 다시 세력을 모아 명나라를 위협하고 있으니 운도 좋은 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고작 그런 말로 이자성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했다.


만약 그러했다면 진즉에 장헌충이나 나여재의 휘하에 들어가서 편하게 지냈을 것이다.


아니면 시골에 몇몇 뜻이 맞는 녀석들과 함께 자리 잡아 두목 노릇 하며 좋을 대로 여생을 보내거나 말이다.


그러나 이자성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누군가를 골라서 밑에 들어가거나 숨지 않았다.


대신 그는 틈왕을 자칭하며 자신을 높이고 끈질기게 살아남아서 기회를 노렸다.


그 마음에 응하듯 사람들은 그를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기대하고 있다는 듯이 전과 달리 그저 먹고살기 팍팍한 이들이 아니라 나름대로 높은 뜻을 품은 이들이, 우금성과 이암과 같은 서생들이 그를 찾아 섬기기를 희망했다.


그렇게 사람을 모으고 기다리던 중에 나서서 작은 마을부터 해서 하나하나 사람을 돕고 베풀었다.


그때마다 이자성은 자신에게 들리는 감사함을, 고마움이 가득 담긴 말을 들었다.


단순한 입에 발린 아첨이 아니라, 사람들이 진심으로 감정을 담아서 칭송하는 말에는 짜릿함이 있었다.


또한 사람이 점차 그를 따르니 그 숫자는 급격히 불어났다.


그것이 또 이자성에게는 각별한 감상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이제 낙양을 마주하고 있는 이자성은 자신을 확실히 알았다.


가슴속 깊은 곳에 그가 죽기 전에는, 아니 죽는다고 한들 꺼트릴 수 없는 열망이 있음을 말이다.


그러한 열망을 품은 이자성이 낙양을 보며 가장 먼저 명령한 것은 바로 진지 꾸리기와 식사 준비였다.


“급할 거 없다! 일단 먹고 쉬어야 뭐든 하는 법이지! 다들 푸짐하게 먹고, 누군가 찾아오면 박대하지 말고 나눠줘라!”

“예, 장군!”

“물론입니다!”


이자성이 내린 호령에 사람들은 기세 좋게 달려가서 적당한 자리에 막사를 세우고 돌을 모았다.


이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 위에 하나둘 솥이 올라가더니 그 솥을 데우기 위해 피운 연기가 하늘을 향했다.


“낙양에 있는 병사들은 수가 많고 그 수준도 정예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밥 짓는 연기가 올라오는 걸 가만히 보던 이자성에게 넌지시 말을 건넨 사람이 있으니 그는 우금성이었다.


그 말에 이자성은 멀리 낙양에 시선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이 근방에서 가장 탐욕스러운 놈이라고 들었는데, 의외로 제 것 지키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는 모양이군.”

“글쎄요, 그저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에 불과하니 칭찬할 일은 아니라 봅니다.”

“결과적으로? 선생, 그게 무슨 말입니까?”


결과적으로 좋은 병사가 있다.


이 말은 다시 말해 본래 병사를 모은 목적은 다른 데 있다는 뜻이었기에 이자성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얼굴로 물었다.


민란을 일으킨 도적이라고 하나 그 생이 치열하여 전장을 구른 이자성이다.


그런 이자성이 보기에 병사가 필요한 이유가 힘을 쓰기 위함 외에 무엇이 있는가 싶어서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한 물음에 우금성은 이해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장식입니다. 자신을 돋보이기 위한 장식 말입니다.”

“장식? 강병이 장식이라니, 그 무슨?”

“평화로운 때에, 혹은 다른 왕이나 황제가 찾아오면 보이게 되지 않습니까.”

“병사들이 문 앞에 놓은 석상과 다르지 않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절에 있는 사천왕상과 같다고?”


그나마 기억에 있는 것과 비슷한 것을 대어 물으니 우금성은 웃었다.


“하하, 적당한 비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천왕상이라, 딱 맞습니다그려.”

“그런 이들이 강병이라. 세상은 참 모를 일입니다.”

“그렇지요.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이렇게 편하게 자리하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우금성은 사방에 있는 아군을, 그들을 따르는 백성들을 보며 말을 덧붙였다.


“석상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천지가 개벽하여 상제가 명하기라도 하지 않으면 말입니다.”



***



“저, 전하. 바깥에 도적이 수만, 어쩌면 십만도 훌쩍 넘을 거 같다고 합니다.”

“······푸훗!? 시, 십만!?”


사람이 많은 중국 땅이라고 하나 십만은 뉘 집 개 이름이 아니다.


어제만 해도 숭정제의 명령을 전해 듣고도 그저 생각 없이 그 후에 대규모 사냥이나 할 궁리나 하던 복왕 주상순이다.


갑자기 들이닥친 수만의 도적, 아니 십만에 달하는 도적은 농담 같지 않은 농담이었다.


“콜록, 콜록. 무슨 도적이 그리도 많다는 말이냐!  북경에서 도망친 것은 수천에 불과하다고 들었다! 네놈, 설마 잘못 본 것은 아니겠지?”


먹던 과일에 사레가 들려 몇 번이고 기침을 토한 주상순이 다그치니 저도 놀라서 한달음에 달려왔던 낙양 수비대 대장은 고개를 더욱 조아리며 말했다.


“어, 어느 안전이라고 함부로 말을 내겠습니까. 분명 북경에서 말한 오랑캐 도적은 그러하나, 바깥에 있는 것은 명나라 사람들이 분명하니 전에 흩어졌던 반란군으로 보입니다.”

“반란군? 고작 그런 놈들이 십만이나 다시 모였다고?”


당황하여 되묻는 말에는 믿기 힘들다는 감정이 반, 거짓이길 바라는 기대가 반 담겨있었다.


수비대 대장은 그러한 기색을 쉬이 읽었으나 여기서 섣불리 위하는 말을 한답시고 사실을 없는 일이라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되면 늦던 빠르던 기다리는 건 죽음뿐이니 그는 떨리는 음성으로 본 것을 입에 담았다. 


“그 숫자가 많고 막사나 오르는 연기도 적지 않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고 하면 저들의 숫자는 아마 이십만에 이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십만!”


그만한 숫자가 진짜로 낙양 바깥에 있다면 이는 주상순이 근래, 아니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을 따져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큰 위기였다.


무엇보다도 주상순은 낙양에 있는 병사가 아무리 많아도 이십만에는 이르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부, 북경에 구원을 요청해라. 다, 당장!”


다급히 구원을 청하는 전령을 보낼 것을 채근하던 주상순은 바로 며칠 전에 북경에서 병사를 보내라고 했던 걸 기억했다.


‘오긴 오겠지? 그, 그렇지만 혹여 늦으면······.’


북경이, 황상이 주상순 자신을 버릴 리 없다는 믿음은 확고하게 있었다.


그러나 다른 걱정이 들었다.


‘황상께서 나를 버리진 않으실 거야. 암, 그렇고말고. 내 황위 계승도 그렇고 얼마나 위하며 힘썼던가. 하지만 당장 북방 오랑캐들을 상대하는 자들을 돌려서 오기까지 시간이 충분할까?’


당장 북방에서 대군이 움직이고 있는데 다시 바깥에 있는 이십만을 상대하기 위한 그만한 정병을 내어주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릴 게 분명했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니 주상순은 거의 반사적으로 입을 열어서 명령하고 있었다.


“남경, 남경에도 사자를 보내라!”

“남경에 말입니까?”

“황상께서는 공사가 다망하시다! 이런 작은 일, 북경보다는 남경에서 나섬이 더 나을 수도 있어!”

“허, 허면 북경에는 보내지 말까요?”


남경이 맡기에 더 적당하다는 말에 되물으니 주상순은 죽일듯이 노려보며 대답했다.


“네놈은 머리도 귀도 장식이냐! 내가 분명 ‘남경에도’라고 했지 언제 ‘북경이 아니라 남경에’라고 했느냐!”

“죄, 죄송합니다!”


모자란 놈이 그대로 머리를 숙여 사죄의 말을 꺼냈으나 주상순은 한번 요동한 기분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걸 느끼며 입술을 오물거렸다.


한참을 그러고 있던 주상순은 그 기분을 달래기 위해 이것저것 물었다.


“막을 수 있나?”

“나가 싸우지 않고 방비에 굳건하면 양곡이 충분하니 지원이 오기까지는 충분히 버틸 것입니다.”

“얼마나 있지? 양곡 말이다.”

“낙양 사람 전부가 먹어도 서너 달은 너끈히-.”


서너 달은 여유롭게 버틸 것이다.


그 말을 미처 마치기도 전에 주상순은 말을 자르며 외쳤다.


“고작 서너 달!? 고작 그런 걸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남경이든 북경이든 오가는 데만 날이 제법 걸리지 않느냐!”


버럭 성을 낸 주상순은 그 두툼한 손가락 끝을 잘근거리더니 돌연 밝은 얼굴이 되었다.


“그래, 부족하면 아끼면 될 일이지.”


아끼면 된다.


그 말에 수비대 대장은 곧이어 나올 말을 예상하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양곡을 배급하고 반만 먹게 해라. 그러면 적어도 여섯 달, 길면 아홉 달도 버티겠지?”


그렇게 하면 버티기는 한다.


버티기야 하지만 그래서야 버틴다는 목적을 제하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될 것이라는 걸 잘 알았기에 수비대 대장은 심하게 갈등했다.


더 좋은 방법이 있으니 그것을 하자고 할 것인지 말 것인지로 크게 고민하던 그는 눈알을 굴리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삼켰다.


‘버티기에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그냥 전하께서 창고를 조금만 열어주시면 몇 달이 아니라 3년도 버틸 수 있습니다.’

“그러합니다. 복왕 전하의 재지는 과연 천하제일이십니다.”


삼킨 말을 대신하여 나온 것은 그 주먹구구식 대책을 칭송하는 말이었다.


그 말에 주상순은 한껏 만족스러운 얼굴로 손을 저었다.


“흐하하하! 내가 좀 잘나긴 했지. 하지만 천하제일이라니, 좀 과하구나. 천하제일은 황상이시다.”

“예, 소인이 부족하여 말이 부족하였습니다. 전하께서는 황상에 비견될 정도로 대단하십니다.”

“큼, 알면 되었다.”


겸연쩍은 듯이 잘 보이지 않는 목을 손으로 매만진 주상순은 돌연 성질이 나는 걸 느끼며 소리를 질렀다.


“아니, 알았다는 놈이 왜 아직도 여기에 있어! 어서 나가서 일해!”



***



이자성이 이끄는 반란군은 그 숫자가 십만을 훌쩍 넘기고 있으니 실로 그 위용이 대단했다.


그러나 그 실체를 들여다보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는 걸 금세 알 수 있었다.


여성과 어린아이 그리고 노인이 포함된 것도 모자라 그 수가 반절에 이르는 게 이자성의 반란군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 위용은 한번 싸우는 순간 그대로 무너질 허상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건 이자성이나 우금성, 이암과 같은 반란군 지도층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숫자는 많이 봐서 한 3만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적구만.”


이암이 꺼낸 말에 이자성은 아무런 감정도 담지 않고 중얼거렸다.


마치 인원수 따위 그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하는 듯한 어조였다.


“적지요. 하지만 적들은 우리를 십만이 넘는 대군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숫자는 계속 늘어날 것입니다.”


이암이 하는 말에 우금성이 한마디 보태니 이자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낙양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저들이 과연 나오겠습니까?”

“나와도 좋고 나오지 않아도 좋습니다.”

“시간은 우리의 편이니 말입니다.”


두 사람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니 이자성은 고민하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 두 분이 말씀하시는 계획의 요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저들보다 우리가 더 빨리 지치고 굶주릴까 걱정이 드오.”

“그것도 계산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이쪽에서 공성하는 일도 포함해서 한번 찌르고 물러나기까지는 충분할 거 같습니다.”

“실패를 가정한 일이다?”


이암이 하는 말에 썩 마음에 차지 않는지 이자성이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그 물음에 이암은 웃으며 말을 건넸다.


“장군께서는 열 번 성공하고 도적으로 남는 것, 아홉 번 실패하고 한 번 성공하여 천자가 되는 것. 어느 쪽이 좋으십니까?”

“이거 참. 선생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이 사람이 대답할 도리가 없지 않습니까.”


장난스럽게 말하며 고개를 흔든 이자성은 눈에 진지함을 보이며 나직이 말을 덧붙였다.


“당연히 두 번째가 좋지요.”


작가의말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kkatnip님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후원하신 기대에 응해 더욱 좋은 글을 쓰도록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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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240화 이가 없는 입술 +2 23.06.02 374 22 13쪽
240 239화 정할 수 없는 괴로움 +2 23.06.01 370 23 15쪽
239 238화 거기서 거기다 +1 23.05.31 362 26 13쪽
238 237화 사람의 생각은 +1 23.05.30 376 25 15쪽
237 236화 한 해로 한 해를 감당치 못하면 그 다음을 기약하기 어렵다 23.05.29 371 24 13쪽
236 235화 원숭이와 너구리 +4 23.05.28 389 24 16쪽
235 234화 동향 사람 +2 23.05.27 364 21 14쪽
234 233화 조선에 정년은 없다 +3 23.05.26 379 22 13쪽
233 232화 표명은 그 자체로 힘이 있다 +1 23.05.25 351 25 15쪽
232 231화 남는 자의 고민 +2 23.05.24 354 21 13쪽
231 230화 머무는 객, 떠나는 객 23.05.23 376 19 12쪽
230 229화 어렵다고 하여 멈출 수는 없다 +1 23.05.22 379 18 14쪽
229 228화 소문은 자극적이다 23.05.21 381 20 15쪽
228 227화 복록의 약조 +2 23.05.20 365 21 18쪽
227 226화 불은 모든 것을 태우고서야 잦아든다 +2 23.05.19 366 19 13쪽
226 225화 불씨는 작다 +4 23.05.18 374 20 16쪽
225 224화 장작을 모으는 법 +1 23.05.17 387 16 15쪽
224 223화 천하가 여기에 있다 +2 23.05.16 396 19 11쪽
» 222화 바라는 것은 23.05.15 397 23 12쪽
222 221화 배부른 사람은 모른다 +1 23.05.14 405 21 13쪽
221 220화 선택이 가능하다면 사람은 고른다 +2 23.05.13 408 20 13쪽
220 219화 전쟁은 도박이다 +1 23.05.12 446 21 12쪽
219 218화 타협과 양보는 때때로 일방적이다 +2 23.05.11 432 22 13쪽
218 217화 청개구리 +1 23.05.10 419 17 13쪽
217 216화 의심은 아래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1 23.05.09 431 18 13쪽
216 215화 일을 미루면 이자가 붙는다 +1 23.05.08 423 23 15쪽
215 214화 전쟁과 정치는 한 몸이다 +2 23.05.07 464 18 12쪽
214 213화 양동 +3 23.05.06 455 20 13쪽
213 212화 천명으로 가는 길 +1 23.05.05 445 22 12쪽
212 211화 도박은 없다 +2 23.05.04 434 1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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