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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서의 서재입니다.

아이템 씹어먹고 인생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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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김낙서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3
최근연재일 :
2024.05.24 00:13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1,786
추천수 :
29
글자수 :
145,152

작성
24.05.20 07:34
조회
23
추천
1
글자
13쪽

021 저기 곽동길이 있다

DUMMY


“주리 씨. 이걸로 오늘 일정 끝이죠?”

“네, 하율 님.”


하율은 영향력 있는 몇몇 단체에서 파견한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소파에 드러누웠다. 오늘은 국정원과 국제 난민기구와 세계 유적 탐사 회의의 관계자들을 만났다.


다들 복잡하고 어려운 말을 하면서 하율과 관계를 유지하고 하율에게 무언가를 맡기길 원하지만, 하율은 최대한 겸손을 떨며 고사하는 입장을 고수했다.


당연했다. 대체로 하율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으므로.


하율은 이제라도 자기 레벨이 6에 불과하다고 폭로해버릴까 고민했고, 이동식 측정 장치나 감정사가 왔을 때는 ‘아. 이제 들키는 거구나.’ 하고 체념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들 모두 측정 불가라는 답을 내놓고 갔다. 하율이 12레벨이라는 오해는 깊어만 갔다.


결과적으로 많은 이들이 실망했다. 처음부터 기대를 가진 쪽이 잘못한 거 아닌가 싶었지만, 따지고 보면 그레첸 바그너를 막았다는 사실을 접하고 하율에게 기대감을 안 가지기도 힘들었다.


하율은 날로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대로 잠적해버릴까···.”


하율은 동생인 하람과 함께 인적 드문 곳으로 가서 템밥이나 만들어 먹으며 살고 싶었다. 아니, 하람은 잠적을 바라지 않을지도. 하람은 하율의 동생 자격으로 이런저런 VIP 대접을 받아서 그런지, 요즘 무척 즐거워 보였다.


김주리가 하율에게 책 한 권 분량의 서류 뭉치를 건넸다.


“세계 유적 탐사 회의에서 하율님께 드리고 간 자료예요.”

“주리 씨는 심술쟁이네요. 제 오늘 업무는 끝이라고 했잖아요.”

“아. 죄송해요. 도로 가져갈게요.”


김주리는 서류봉투를 도로 가져가려고 했지만, 하율은 봉투를 놔주지 않았다.


“됐어요. 대충 보고 나서 치우죠, 뭐. 어차피 내가 어쩌지도 못할 일이겠죠.”

“겸손하셔라.”

“사실이에요. 저는 12레벨도 아니고요.”

“거짓말.”


가까이 지내고 있는 김주리조차도 이런 반응이었다. 안 믿어준다. 하율은 투덜대며 봉투 안의 내용물을 꺼냈다. 표지에 이렇게 적혀있었다.


[무분별한 개발로 귀중한 유적들이 소실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적 소실을 막아달라는 거 아닌가. 일단 되든 안 되든 해주실 수 없겠냐고 찔러보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그레첸 바그너를 막아서 대가 없이 사람들을 구해주었으니 다른 것도 부탁하면 들어주지 않을까. 다들 그렇게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하율은 한숨을 쉬며 서류를 대충 넘겼다. 글은 거의 읽지 않고 그림이나 사진만 건성으로 훑어보았다.


그러던 와중에 어떤 석판의 사진이 하율의 눈에 들어왔다.


“가만. 이건 마족어···?”


마왕성 안에서 발견한 책들이 마족어로 되어있었다. 하율은 마족어 교본을 요리해서 먹었기 때문에 마족어를 읽을 수 있었다. 하율은 석판에 새겨진 문구들을 읽어보았다. 읽혔다.


그 내용은, ‘스킬 합성’이었다.


가지고 있는 스킬을 합성해서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적혀 있었다. 하율은 문서에서 이 석판의 소재를 찾아보았다. 이 석판을 템밥으로 만들면 이 능력을 가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율은 실망했다.


[현재 이 유물은 완전히 파손되어 소실되었음.]


···이라고 사진 설명에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아. 스킬 합성인데. 이걸 얻을 수 없다니. 귀중한 유적을 파손하다니, 이 나쁜 사람들 같으니라고. 하율은 고고학자들과 비슷한 입장에 서서 분노했다.


“이 아까운 템밥··· 아니, 유물이 소실되어야 하다니.”


하율은 아까워하면서 사진에 찍혀있는 마족어 문장들을 전부 읽어 내려갔다. 다 읽었다.


띠링. 하율은 서류를 덮고 인벤토리에 넣자마자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국정원: 곽동길은 잠적했습니다. 서해 쪽으로 밀항해서 해외 도피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추가 정보가 있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역시 국정원이었다. 만난 지 채 몇 시간도 안 되었는데 곽동길의 소재를 이 정도까지 추적하다니. 그래도 신병을 확보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여서 조금 실망.


“오호호호호! 오빠! 나 다녀왔어!”


현관 안쪽에 웬 셀럽이 있었다. 하람이었다. 그것도 여왕님 모드. 예전에는 열받으면 여왕님 모드가 되었지만, 요즘은 기분이 좋을 때도 여왕님 모드가 된다.


하람은 양손에 쇼핑백을 잔뜩 들고 들어왔다. 요즘 하람의 포션 공장이 무시무시한 실적을 보이고 있어서, 대표인 하람은 매일 돈을 펑펑 써도 버는 돈이 더 많았다. 의기양양하게 쇼핑을 마치고 온 하람의 모습을 보고 하율이 말했다.


“선글라스가 잘 어울리네.”

“그치! 나도 마음에 들어! 오호호호!”


양쪽에 깜찍한 날개가 달린 선글라스였다. 하율이 물었다.


“내 선물은 사왔어?”

“응! 여기!”


하람은 큰 쇼핑백 하나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가죽 바지와 가죽 조끼와 가죽 점퍼가 들어있었다.


“오. 진짜 멋지다. 고마워.”

“사이즈는 맞겠지? 그 가게 사장님이 일러준 대로 치수 재서 갔는데.”

“안 맞으면 바꿔오지 뭐.”


하율은 잠깐 신났지만, 곧 풀이 죽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에휴. 근데 이런 거 사면 뭐하나. 나는 외출 자체가 힘든데.”


범지구적인 유명인이라서 하율을 모두가 알아본다. 알아보는 사람들을 피해 다니기도 어려웠고, 일일이 반응해주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하율은 집콕 생활을 유지하는 중.


하지만 이렇게 멋진 가죽옷 세트를 맞춰놓고 외출을 못 하는 것도 아까웠다. 하람은 그런 하율을 위한 아이템을 꺼냈다.


“마스크?”

“모자에 선글라스에 마스크. 연예인들 이러고 다니잖아. 오빠도 얼굴만 가리면 불편한 문제는 없을 거야.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 쓰고 다니는 사람도 제법 많으니까 부자연스럽지도 않고.”

“그럴까?”


솔깃한 이야기였다. 집안에 갇혀서 택배상자나 뜯고 어렵게 찾아온 사람들 실망시키기나 하는 생활은 지긋지긋했다. 하율은 모든 근심 걱정을 버리고 자유로이 거리를 활보하고 싶었다.


하율은 내친김에 옷을 싹 갈아입고 선글라스와 카우보이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했다. 그리고 거울에 몸을 비춰보았다.


허리에 리볼버만 차면 영락없는 서부극의 주인공이었다. 하율이 외쳤다.


“좋아. 하람아! 냉큼 외출하자!”

“사람들이 알아보면 어쩌지?”


하율은 하늘로 손가락을 찌르며 소리쳤다.


“그러면 도망치자!”

“그거 좋네! 가자! 주리 씨! 집 잘 봐주세요!”


쿡쿡쿡. 김주리는 웃음을 삼키며 말했다.


“네. 집 보는 게 비서 업무는 아니지만요.”

“같이 살면 한 식구죠, 뭐!”

“그렇기도 하지만요. 잘 다녀오세요.”


김주리에게 집을 맡겨놓은 하율과 하람은 신나고 요란하게 외출했다. 하람이 운전하는 빨간 스포츠카를 타고. 집 주변에 진을 치던 기자들은 하율의 외출을 포착해서 보고했다.


*


국정원이 추적하기로, 곽동길은 해외로 도피해서 잠적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었다.


하지만, 틀렸다.

곽동길은 서울 시내를 활보했다. 선글라스를 끼고, 마스크를 쓴 채로.


엑스는 곽동길의 정신을 조작해서 서울로 복귀하도록 만들었고, 매란선인은 곽동길에게 특별한 능력을 주었다.


곽동길은 곧 ‘재난’을 일으킬 것이다. 꿈틀. 곽동길의 손등에서 비늘이 나고 털이 수북하게 돋더니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


키메라화의 전조. 엑스타의 금단 현상이었다. 곽동길에게 부여된 능력은 그 키메라화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그으으으···. 어디가 좋을까···.”


여기는 홍대입구.


곽동길은 새로 받은 능력을 펼칠 곳을 찾고 있었다. 사람들이 밀집한, 폐쇄된 공간이 필요했다. 홍대 거리를 활보하던 그는, 적절한 장소를 찾았다.


“곧 공연 시작합니다! 자리 얼마 안 남았습니다! 많이들 보러 와주세요!”


현장에서 입장권을 발부하는, 인디밴드의 공연이 있었다. 지하의 콘서트장에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이 가득 메워져 있었다.


“그으으으···. 나도 하나.”


곽동길은 오만 원을 주었다. 거스름돈은 받지 않았다. 손목밴드 티켓을 차고 입장했다. 객석은 거의 만원이었다.


곧 공연이 시작되었다. 무대의 조명이 켜졌다. 보컬이 외쳤다.


{준비 되셨나요, 여러분! 다 함께 소리 질러!}


크워어어어어어어!

곽동길은 공룡처럼 울부짖었다.


모두 깜짝 놀랐다. 다 함께 들뜰 준비를 하던 공연장 전체가 싸해졌다. 곽동길은 웃으면서 말했다.


“크으으으···. 과연 신하율이 너희들을 구하러 올까? 기대되는군.”


파앗! 곽동길의 몸에서 불길한 핑크색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곽동길은 두 명이 되었다. 네 명이 되었다. 여덟 명이 되었다. 열여섯 명이 되었다···. 그가 512명으로 불어날 때까지 증식은 계속되었다.


뭔가 불길한 상황임을 눈치챈 관중들이 출구로 나가려고 했지만, 곽동길의 분신은 출구를 가로막았다.


“크하하하하하하하!”


곽동길의 몸이 꿈틀거리면서 온갖 생물의 신체부위가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튀어나왔다. 그리고 껌처럼 사방에 달라붙었다. 거품처럼 흘러넘쳐서 주변의 사람들을 집어삼켰다.


이것은 키메라화였다. 그것도 사람들을 잡아먹으면서 증식하는, 보다 악화된 형태의 키메라화였다.


“으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악!”


곽동길의 분신들이 관중들과 무차별로 융화했다.


*


신하율과 신하람은 홍대와 상당히 거리가 있는 강남역에 도착했다. 하율과 하람은 주차타워에 차를 맡기고 나왔다. 하율은 즐거워했다.


“아.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 오니 기분이 좋아지네.”

“오빠. 사람이 그리웠어?”

“응. 정확히는 나한테 무관심한 사람들이 그리웠어.”


하람은 하율의 위아래를 훑어본 뒤 볼을 긁으며 말했다.


“어··· 그래. 그렇게 멋지게 차려입고 나와서 말이지?”

“응.”

“으음. 나도 가죽옷 같이 살 걸 그랬어. 오빠하고 커플룩으로.”

“나는 사양할게. 커플룩이라니. 오해 살라.”


발끈한 하람은 발차기로 하율의 등짝을 후려쳤다. 쫙! 가죽 부츠를 신고 가죽 재킷을 걷어차니 찰지고 큰 소리가 났다. 주변에서 하람과 하율을 일제히 쳐다봤다.


원치 않은 시선을 한 몸에 받은 하람은 부끄러운지 하율의 손을 잡고 인파 사이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본격적인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주로 하람이 하율을 끌고 다녔다.


디저트 카페에서 디저트들을 쌓아놓고 먹었다. 지하상가에서 액세서리를 샀다. 방탈출 카페에서 탈출을 못 해서 애를 먹었다. 극장에서 영화를 봤다. 식사로 초밥을 먹었다. 노래방에서 노래했다. 그리고 거리를 걸었다.


하율은 잠자코 따라다니며 즐거워했다. 웃는 표정이 마스크에 가려져 잘 보이진 않았지만, 하율의 목소리와 행동에서 기분이 좋아진 것을 하람은 느낄 수 있었다. 하람은 하율에게 이야기했다.


“재미있었어?”

“응. 다른 여자 만나면 오늘 배운 코스로 다니면 될 것 같아.”

“하이고. 꼭 말을 해도 그렇게 말하냐···.”


하람은 하율의 어깨를 짚으며 물었다.


“근데 오빠, 여자한테 관심 있어?”

“없진 않아.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솔직히 말하면?”


하율은 무척 답답한 이야기를 했다.


“···역시 템밥 만들어서 너랑 나눠 먹는 게 제일 재미있어.”

“웃.”


하람의 얼굴이 새빨개졌지만, 마스크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하람은 헛기침을 조금 하고, 하율에게 충고했다.


“그러면, 오빠. 템밥 만들어서 나눠 먹을 수 있는 여자를 구해.”

“!”


하율은 놀란 기색을 하며 하람을 돌아봤다. 하람도 놀라서 물었다.


“오, 오빠? 왜 그래?”

“그러면 되는구나! 하람아! 고마워!”


하율은 하람을 끌어안았다. 하람은 화들짝 놀랐다. 하율의 강한 포옹에 몸부림치더니, 두 팔을 빼서 하율을 마주 끌어안았다. 그리고 말했다.


“고맙지?”

“응!”

“킥킥. 이 바보. 진짜.”


토닥토닥. 하람은 하율의 등을 두들기고 쓸어내렸다. 그런데, 그때.


거리의 전광판에서 뉴스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하람은 하율을 끌어안은 채로 말했다.


“오, 오빠. 오빠오빠오빠.”

“응? 왜 그래?”


하람은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다.


“저기 곽동길이 있나 봐.”

“뭐?”


확! 하율은 포옹을 풀고 몸을 돌려서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털썩! 하람은 내던져졌다.


“아얏!”


하람이 내팽개쳐지거나 말거나, 하율은 전광판을 주시했다. 홍대입구 근방의 지하 공연장에서 곽동길로 보이는 사람이 테러를 저지르고 있다는 뉴스였다.


“하람아! 넌 먼저 집으로 들어가!”

“뭐? 저기 가려고?!”


파앗! 하율은 날아올라서 홍대입구 방향으로 쏘아졌다. 행인들이 탄성을 지르며 일제히 그쪽을 바라보았다.


주저앉은 하람은 날아가며 급속도로 작아지는 하율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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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025 행복의 맛 24.05.24 11 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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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023 Now Loading 24.05.22 18 1 14쪽
22 022 사진 속의 해법 24.05.21 19 1 13쪽
» 021 저기 곽동길이 있다 24.05.20 24 1 13쪽
20 020 마지막 한 명 24.05.19 29 1 13쪽
19 019 시한폭탄 템밥 24.05.18 30 1 12쪽
18 018 슬라임은 물에 뜬다 24.05.18 35 1 13쪽
17 017 쓰레기 섬 24.05.17 40 1 12쪽
16 016 인터뷰 24.05.16 44 1 11쪽
15 015 여객기 퐁듀 24.05.15 55 1 13쪽
14 014 좀도둑이 들었다 24.05.14 55 1 11쪽
13 013 레벨 12 24.05.13 59 1 15쪽
12 012 헬스장으로 만든 흑탕 24.05.12 59 0 13쪽
11 011 드러난 악행 24.05.11 70 1 12쪽
10 010 복수의 오버 힐 24.05.11 76 1 13쪽
9 009 강해지면 하고 싶은 것 24.05.10 81 1 12쪽
8 008 템밥은 동생과 함께 24.05.10 78 1 12쪽
7 007 리빙 아머 24.05.09 100 1 13쪽
6 006 템밥에 미치다 24.05.09 116 2 12쪽
5 005 검은 게이트 24.05.08 139 1 12쪽
4 004 귀환하다 24.05.08 143 1 13쪽
3 003 첫 요리 24.05.08 153 1 11쪽
2 002 마왕의 비밀 주방 24.05.08 157 2 13쪽
1 001 복수는 실패했다 24.05.08 181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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